“<리니지>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온 아류작에 불과하다.” <R2>는 소위 말하는 오피니언 리더 유저들에게 철저한 비난을 받은 게임이다. 하지만 <R2>는 국내 20대 후반과 30대 이상의 유저를 타깃으로 한, 전략적인 맞춤 개발로 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 게임이기도 하다.
지난 26일을 기점으로 상용화에 돌입한 <R2>는 10일 동안 진행한 예약가입만으로 매출 19억 원을 기록했다. <R2>는 CBT와 OBT를 거치며, ‘절대 오래가지 못할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R2>, 그 '뜨거운 감자'의 껍질을 벗겨보자. /디스이즈게임 필진 술트라제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는 내러티브의 연속, 그것이 <R2>다.
▲ 철저한 유저 내러티브
많은 이들이 '<R2>, 30분 해보고 언인스톨' 이라는 말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MMORPG를 30분 해보고 평가한다는 일은 사실 매우 어렵다. 이는 <WOW>를 6레벨까지 해본 뒤 “심부름 게임이네. 언인스톨” 이라고 말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WOW>를 10레벨 이전에 접은 이들은 ‘특성’에 대해 모를 것이며, 20레벨 이전에 접은 이들의 대부분은 인스턴트 던전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며, 30레벨 이전에 접은 이들은 상대 진영의 존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40레벨 이전에 접은 이들은 말을 탔을 때의 그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며, 만렙이 되기 전에 접은 이들은 다양한 인스턴트 던전을 클리어하는 재미나 레이드, 전장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다.
<R2>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WOW>처럼 단계별로 치밀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이며 중독성 있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R2>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길드에 가입하고, 레벨 40 이상 키운 다음에는 이전 단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유저 내러티브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다. ‘공략’이 존재하지 않는 지독한 ‘약육강식 판타지 세계’의 역할놀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R2>에는 이렇다 할 스토리나 퀘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이루어진 First Revolution ‘혼돈의 씨앗’ 업데이트에서 스토리가 추가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게임 진행에 별다른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다. 결국 게임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의 종류는, 퀘스트나 시나리오 중심의 게임과는 다른 것이다.
<R2>는 스토리에 상관없이 사냥만 해도 된다.
<R2>가 전달하는 재미는 ‘캐릭터 육성’과 ‘커뮤니티’, 그리고 ‘자유로운 PVP’ 이 세 가지다. 물론, 이 세 가지 재미는 각각 따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유저들 스스로의 역할 놀이를 연출한다.
유저와 유저의 협동과 대립, 길드와 길드의 협동과 대립은 온라인 세상 속의 춘추전국시대를 만들어나간다. <R2>의 핵심인 길드 시스템과 스팟공성전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소수 리딩 길드 그룹만 참여할 수 있었던 기존 게임의 공성전이 아닌, 접근성이 높은 스팟 공성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유저들이 단체 PVP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스팟공성전 성공 이후의 큰 메리트를 누릴 수 있다.
이는 결국, 모태인 <리니지>에서 거대 라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한계를 종식시키고, 서버 내 유저의 대부분이 각자 나름대로의 세력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모든 스토리는 유저 스스로 연출한다. 한 지역의 패자가 되어 높은 세금과 폭정을 휘두르는 길드 마스터가 되거나, 혹은 선정을 펼치며 다른 길드들을 포섭하여 연합을 구성할 수도 있다. 혹은 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그마한 스팟들을 공략해가며 힘을 축적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창출해낸다.
공성전 하나에는 수많은 이들의 희노애락이 숨어있다. 길드마스터, 길드원, 그리고 적대 길드와 적대 길드원, 각각의 유저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한, 역할 놀이를 즐긴다. 길드원들이 하나가 되어 성이나 스팟을 점령했을 때나 대규모 전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들은 엄청난 희열과 쾌감을 공유하게 된다.
▲ 강도 높은 반복작업. 하지만 보상은 달콤하다.
No Rule, Just Power. <R2>의 모토다. 힘은 당연히 캐릭터의 레벨과 아이템이다. 스팟 공성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유저들은 레벨 업과 아이템 파밍 그리고 길드원 모집과 길드원의 결속다지기를 해 나간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길드. 당연히 이곳에서는 커뮤니티가 싹틀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 또한 유저들 스스로의 내러티브를 연출한다.
결국 취향 문제다. 분명 <R2>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재미는 없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R2>의 주 타겟 유저 층인 20대 후반~30대 이상 유저들은 퀘스트를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네가 뭔데 나한테 심부름을 시켜?” 이런 느낌이랄까? 결국 단순한 재미를 원하는 유저들도 전체 온라인 게임 유저들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유저들에게 강도 높은 반복 작업(이라고 쓰고 '노가다'라고 읽는다)인 <R2>의 레벨 업은 고단하기는 하지만, 단순해서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아무리 고단한 반복 작업이라 하더라도, 그 보상이 만족스럽다면 결국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지금껏 우리가 MMORPG를 플레이하며 느껴온 정답 중 하나다.
<R2>는 극악의 아이템 드랍률을 자랑한다. 거기에 인챈트 시스템의 성공 확률 역시 극악이다. 그리고 레벨업 또한 그리 쉬운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고급 아이템과 고 인챈트 무기의 희소성은 매우 높으며, 그 효과 역시 매우 만족스럽다. ‘+7 쌍칼과 방어력 53’의 유저는 ‘+5 쌍칼 방어력 35’의 유저 4명을 상대해낼 수 있다. 또, 레벨에 대한 메리트가 낮다고는 하지만, 결국 비슷한 아이템을 착용한 상태의 대결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것은 레벨이다. 이러한 레벨과 아이템에 대한 높은 메리트는 유저들의 성취감을 극도로 자극한다.
게임 내 파티플레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파티 시스템’의 부재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게임을 하다 보면 알 수 있다. 아이템의 희소성과 그 메리트가 천차만별인 <R2>에서, 만약 파티가 있었다면, 혹은 힐이 있었다면, <리니지>의 ‘쫄법사’ 처럼 <R2>의 엘프 역시 ‘쫄엘프’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쫄엘프‘를 이용해 고 레벨 유저가 매우 빠르게 ‘생산’ 될 것이며, 게임 내 인플레이션은 극심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솔로잉 중심의 게임이, 단순한 것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더욱 환영받는 요소다.
만약 <R2>에 회복 계열 마법이 존재하고, 파티 시스템이 존재했다면?
▲ 그래픽 수준은 ‘중상’. 하지만 첫인상은 ‘합격’
<R2>의 그래픽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분명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무척 허술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캐릭터의 디테일은 괜찮은 편이나, 배경 오브젝트는 정말 낮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하지만, <R2>의 캐릭터 모션과 타격 이펙트와 효과음이 연출하는 타격감은 발군이다. 캐릭터의 모션은 시원시원하며 박력이 넘친다. 대미지와 크리티컬 타격 시 나오는 효과음만으로도 대미지에 대한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다.
거기에 지형에 따른 이동의 제약이 없어 마음대로 필드를 누빌 수 있다. 높은 산과 바위, 언덕 등을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누빌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괜찮다. 마을의 건물들을 마치 야마자키를 즐기듯 올라가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들도 많을 정도다. 물론, 절벽마저도 슬슬 올라가는 모습은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R2>의 그래픽과 시스템을 보고 혹평을 한다. 하지만 분명 <R2>의 그래픽은 최고의 퀄리티는 아닐지언정, 중상 정도의 평가는 받을 수 있으며, 비전문가들에게는 ‘매우 좋은’ 그래픽으로 인식될 수 있다. 모든 게임의 그래픽이 감탄사를 연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면, <R2>의 그래픽은 상당한 수준으로 보인다.
▲ 단점도 수두룩하다.
<R2>의 단점을 언급하자면, A4용지 한 페이지는 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AMD 3000+, Geforce 6600GT, RAM 2G의 시스템에서 최하 옵션을 설정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프레임을 보여주는 최적화는 <R2>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또한 인원 숫자가 전투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전략과 전술이 취약한 대규모 PVP시스템 역시 전쟁을 모토로 하는 게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Z 좌표가 존재하지 않아 절벽 위에서 밑에 있는 유저를 타격할 수 있는 뭔가 ‘어색한’ 게임이 <R2>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부분인 환금성 역시 <R2> 플레이의 달콤한 보상으로 제공되는 동시에 부작용을 낳고 있다. 아이템 드랍확률이 극도로 낮은 탓에 <R2>의 환금성은 국내 게임 최고의 현금화율(환율?)을 자랑한다. 게임 내 화폐인 ‘실버’가 10만당 8천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 작업장들이 주목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운영팀 전원이 신입 사원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어이없는 운영을 보여주는 점이다. 이는 정말 최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문의 메일은 3일이 지나야 매크로 답변을 받을 수 있고, 게임 내 신고함은 신고한지 두 달이 지나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말 꼬집자면 수두룩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R2>의 평가는 유저에 따라 극과 극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PVP와 커뮤니티를 가장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R2>는 매우 재미있다. NPC가 주는 퀘스트가 아니라, 다른 유저들과 나 자신이 연출하는 서사시적 스토리의 매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며, PVP에서 승리 시 쾌감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R2>의 유저 내러티브는 <리니지> 이상이다.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는 내러티브의 연속, 그것이 <R2>다.
그 누구도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일은 없다. 나의 플레이가 곧 이야기가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