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이하 자유의 날개) 출시 이후 3년이 지났다. 지난 3월 12일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이하 군단의 심장)은 <스타크래프트 2> 3부작의 두 번째 타이틀이다.
3부작의 두 번째, 즉 중간이라는 점 때문에 <군단의 심장>은 중책을 맡은 게임이 됐다. 시나리오 면에서는 <자유의 날개>에서 보여준 이야기를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이하 공허의 유산)까지 이어 나가야 한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유저들을 최대한 래더 게임으로 끌어들여 <공허의 유산>이 나올 때까지 즐기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었다. 더불어 캠페인에서 저그라는 종족에 대한 학습 효과도 누려야 한다.
블리자드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단의 심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듯하다. 캠페인에서는 임무 속에 이야기를 훌륭하게 녹여냈고, 초보자들이 게임을 배우고 순위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 장치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 몰입감 높은 캠페인 임무
<군단의 심장>의 캠페인 진행은 <자유의 날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네마틱 영상으로 시나리오를 이끌어 나가면서 정해진 임무를 수행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캠페인 임무의 몰입감이다.
<군단의 심장>의 캠페인에서 볼 수 있는 시네마틱은 모아서 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뛰어난 영상만으로는 게임에서 몰입감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시나리오에서 제시하는 상황과 임무의 목표, 이벤트 등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군단의 심장>은 몰입감이 뛰어나다. 시네마틱을 본 후 임무 준비 화면에서 현재 상황에 맞는 대화들을 듣고 임무에 들어가면 진행 과정이 시나리오와 딱딱 맞아떨어진다. 덕분에 유저는 케리건 앞에 놓인 목표들을 달성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야기의 국면이 전환되는 부분들이 임무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캠페인 임무에 케리건의 레벨 개념을 넣은 것도 몰입감을 높여주는 장치가 됐다. 각 임무를 진행하며 케리건의 레벨을 높이면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몰입감과 효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레벨업은 칼날여왕의 힘을 되찾고 군단을 재건하려는 케리건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새로운 능력들은 캠페인에서 요긴하게 활용됐다.
레벨업 시스템은 점차 강해지는 케리건이라는 이야기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감정 묘사
<자유의 날개>의 전체적인 테마는 ‘자유를 위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자유의 날개>의 주인공인 레이너는 캠페인 임무에서 계속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유저에게 달려 있었기에 계속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선택은 유저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는 구조였다.
<군단의 심장>의 핵심 주제는 ‘케리건의 복수’다. 복수는 감정의 변화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군단의 심장>에서는 케리건의 감정 묘사에 공들인 흔적들이 보인다. 레이너에 대한 케리건의 애틋한 마음이나 멩스크에 대한 분노 등의 감정을 상당히 잘 묘사돼 있다.
케리건의 감정 묘사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
특히 시네마틱이나 컷신에서 케리건의 눈동자, 미간의 움직임 등을 최대한 강조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묘사해냈다. 덕분에 남자가 플레이하는 입장임에도 그녀의 심리를 따라 진행하는 스토리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여기에 새로 추가된 저그 캐릭터들은 케리건의 감정 묘사를 대화로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재미도 줬다. 여러 가지 적절한 상황 설정에 따라 등장하는 이즈샤, 아바투르 등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할 대상이 케리건 하나로 좁혀지기 때문에 대화 이벤트에서도 케리건에게 더욱 감정을 이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여기에 중간 중간 넣은 개그들은 피로해지기 쉬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하 RTS)에서 긴장감을 풀어주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아바투르. 없었다면 임무 심심할 뻔 했음. 다행임.
■ 캠페인에 녹아든 독특한 저그의 운영법
저그는 <스타크래프트 2>의 세 종족 중 가장 운영법이 독특하다. 따로 생산건물을 지어야 하는 테란이나 프로토스와는 달리 본진 건물에서 일꾼과 병력을 모두 생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불어 ‘빠른 물량회전’으로 게임을 풀어 나가야 하는 스타일도 저그라는 종족을 다루기 어렵게 한다. 유닛 하나하나의 체력이 약한 편이라 적과 아군의 우열을 잘못 판단하면 금세 유닛들을 잃고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단의 심장>은 캠페인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저그의 스타일과 운영법을 학습시켜 줄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단의 심장>의 캠페인에는 저그의 운영 방식이 잘 녹아들어 있다.
저그의 스타일은 물량으로 압도하기. 캠페인 임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캠페인 임무 초반부에는 실험이라는 이유로 저그의 기본 생산 방식을 배우게 되고, 저그 특유의 대규모 물량 공세를 활용해 볼 수 있다. 시작부터 ‘대규모 공격으로 압도하면 좋다’는 개념을 직접 써 보며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 저그 유저의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는 ‘점막 펼치기’는 캠페인에서 본진을 지키기 위해 점막 종양을 빠르게 확장해 건물을 획득하라는 식으로 학습시킨다. 임무의 목표와 학습 과제를 함께 제시하기에 자연스럽게 저그의 특성을 배울 수 있다.
캠페인에 녹여낸 점막 펼치기.
■ 생존을 위한 진화
케리건 개인의 이야기를 배제하고 저그라는 종족만 살펴보면, 종족의 콘셉트부터가 ‘생존을 위한 진화’다. 저그라는 종족은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를 거듭하고, 일종의 자연선택을 통해 더욱 강한 개체가 된다.
이런 콘셉트도 캠페인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바로 ‘진화 임무’를 통해서다. <군단의 심장>에서는 진화 임무를 진행하며 유닛들을 캠페인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울트라리스크 같은 경우, 주변 적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독을 내뿜거나 죽으면 알로 돌아가 부활하는 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유저는 진화 임무에서 두 가지 진화를 모두 사용해 보고 울트라리스크의 공격력을 높여 적진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강화할지, 부활 능력으로 특유의 맷집을 더욱 키울지 선택할 수 있다.
언덕을 뛰어올라 공격하는 저글링의 랩터 변종.
이런 진화 임무는 저그라는 종족의 테마를 이해하게 하는 장치로도 괜찮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리 사용해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캠페인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유닛들을 활용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진화 유닛들이 저그의 강점을 부각시키거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이라 캠페인 임무를 더 쉽게 해준다. 전작에 비해 낮아진 난이도는 하드코어한 유저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저그라는 종족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의 문턱을 낮춘 제작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애바퀴를 생성하는 특성을 선택해 더욱 압도적인 물량으로 싸울지, 적을 느리게 만들어 다른 유닛을 도울지 선택할 수 있다.
■ 완성도 높은 임무들, 볼륨이 아쉽다
<자유의 날개>의 캠페인 임무는 모든 선택지를 합해 29개. 그에 비해
<디아블로 3>를 연상시키는 전투. 다른 장르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줬다.
■ 새로운 유닛들, 각 종족을 강화시키다
<군단의 심장>이 <스타크래프트 2>의 확장팩인 이상, 새로운 유닛 추가는 당연한 수순이다. 화염기갑병, 땅거미 지뢰, 예언자, 폭풍함, 살모사, 군단숙주 등이 추가되었다. 블리자드가 RTS 시리즈의 확장팩을 낼 때마다 종족별로 유닛을 한두 개씩 추가했던 행보와 비슷하다.
<군단의 심장>의 새로운 유닛들은 각 종족의 장점을 더 이끌어내거나 약점을 보완해준다. 병력이 모인 상태에서의 힘 싸움이 강한 프로토스에 폭풍함을 주어 한 방 싸움을 더욱 강하게 했고, 저그는 군단숙주를 통해 병력손실이 심한 약점을 보완했다.
모든 유저가 만족하는 유닛이 추가됐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기존의 플레이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각 종족의 강점에 힘을 싣거나 약점을 보완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익숙한 빌드를 사용해도 되고, 새로운 유닛을 활용한 전략을 연구할 수 도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잠복해 근처 적을 공격하는 땅거미 지뢰.
테란의 방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견제에도 유용하다.
<군단의 심장>에서 새로 추가된 기능 중 리플레이에서 게임을 이어하는 기능은 주목할 만하다. 대회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정전이나 PC 오류로 게임이 멈췄을 때, 저장된 부분부터 경기를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 추가는 반길 일이다.
리플레이 이어하기 기능이 새로 도입됐다.
■ 멀티플레이의 새로운 목표 부여
<군단의 심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멀티플레이다. <군단의 심장>은 <자유의 날개> 이후 순위전을 그만둔 유저들을 다시 끌어들여야 했고, 순위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저들까지 더해 폭넓은 유저 풀을 유지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스타크래프트 2>의 래더 시스템은 유저의 실력에 따라 리그가 분배되고, 최대한 비슷한 실력을 가진 상대와 겨루게 되어 있다. 그래서 순위전을 즐기는 유저 수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와 경기를 치를 확률이 높았다. 래더 시스템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유저 수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군단의 심장>에서는 초보자들이 래더 게임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았다. 전작에서는 그저 캠페인을 플레이한 뒤 인공지능과 조금 연습해 보고 순위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캠페인과 순위전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승리 횟수를 기반으로 한 보상 위주라 경기에서 지면 느끼는 스트레스도 높았다.
<군단의 심장>에서 도입한 레벨 시스템은 유저들이 순위전까지 진입하도록 도와주는 디딤돌이다. 유저의 레벨은 종족별로 분리돼 있고, 각 종족으로 플레이하며 자원을 소비하거나 상대 병력을 잡아내면 경험치가 쌓인다.
즉, 졌을 때도 레벨이 올라가고, 레벨업에 따른 초상화나 문양 같은 보상을 받는다. <자유의 날개> 때의 초상화 보상 조건이 100승, 250승, 500승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레벨업을 통한 보상 획득 간격도 짧아서 단기적인 목표를 스스로 부여하기에도 좋다.
심지어 인공지능과 게임을 해도 경험치는 쌓인다. <군단의 심장>에서 새로 생긴 ‘인공지능 상대’에서 점차 어려운 난이도의 인공지능과 게임을 하며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보거나 더 어려운 상대에게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도 생기게 유도했다. 레벨 시스템의 도입이 가져온 긍정정인 영향들이다.
다만, 레벨을 보고 순위전에서 만나는 상대의 숙련도는 가늠해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직관성은 조금 떨어진다. 상대가 속한 리그를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하고, 종족별 레벨은 개인의 동기부여를 위해 추가했다는 느낌이다.
레벨에 따른 보상을 얻을 수 있어서 목표의식이 생긴다.
<군단의 심장>은 몰입감 높은 캠페인 임무로 여운을 남기고, 전작보다 멀티플레이로 유저들을 이끌기 위한 장치들을 잘 마련해 뒀다. 이 정도면 3부작 중 두 번째 게임이 맡은 중책들을 훌륭히 수행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케리건의 슬픈 분노가 여운으로 남는 <군단의 심장>. 스토리의 힘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