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부터 말해야 할까요? <이카루스>의 개발 스토리는 구구절절합니다. 10년 전 <네드>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시작했고, 이후 게임의 주력인 펫 시스템을 빼고, 속성 전투와 펠로우 시스템 등을 추가하며 3번의 리뉴얼을 거쳤습니다. 그 사이 몇 차례 엔진이 달라졌고 이름도 <이카루스>로 바꿨죠.
지금까지 지스타에 나온 체험버전만 세 종류입니다. 덕분에 <이카루스>만 개발하다가 10년차 경력자가 된 개발자도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카루스>의 1차 CBT는 지난 10년의 개발이 아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새롭게 도입한 크라이 엔진 3는 확실한 ‘눈요기 거리’를 제공했고, 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전투와 펠로우 시스템은 익숙한 타겟팅 MMORPG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잘 만든 타겟팅 MMORPG’. 위메이드의 10년이 담긴 <이카루스>의 1차 CBT를 체험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막고, 당기고, 밀치고. 지루하지 않은 전투
<이카루스>는 ‘타겟팅 방식’의 MMORPG입니다. 적을 선택한 후 스킬을 사용하는 친숙하지만 식상한 방식이죠. 그래서 <이카루스>는 타겟팅 전투의 식상함을 줄이기 위해 몬스터의 리액션과 각 직업에 특화된 전투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카루스>에서 모든 적은 입은 대미지에 따라 다른 리액션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어쌔신의 일반공격은 적을 약간 움찔거리게 만들 뿐입니다. 공격에 맞은 적 역시 자신이 하려던 공격을 계속합니다. 반면 버서커의 세게치기 기술을 맞은 적은 크게 휘청거립니다. 자연히 휘청거리는 적의 공격도 취소되죠.
리액션과 더불어 직업마다 다수의 행동방해 스킬도 갖고 있습니다. 직접 플레이해 본 가디언만 봐도 레벨 25까지 공격 타이밍에 맞춰 적을 경직시키는 방패방어와 적을 끌어당겨 기절시키는 신성한 부름 등 도합 6개의 행동방해 스킬을 갖추게 됩니다.
각종 행동방해 스킬에 리액션까지 포함할 경우, (타이밍만 잘 맞추면) 사실상 적의 공격을 완전히 차단한 채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죠.
직업에 특화된 전투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이카루스>에서는 스킬에 여러 조건을 붙여 전투에서 전략을 짜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쌔신의 ‘급살’ 스킬은 ‘돌려차기’ 후 사용하면 50%의 추가 대미지가 붙습니다. 가디언의 ‘난도질’은 기절한 적의 방어력을 낮출 수 있죠.
이 같은 조건은 직업의 특성을 나타내주기도 하는데요, 가디언은 대부분의 스킬이 방패방어 이후 이어지고, 위저드는 마지막에 사용한 스킬에 따라 다음 스킬의 효과가 달라집니다. 프리스트는 최대 3개까지 쌓이는 빛의 징표를 이용해서 스킬의 위력을 높일 수 있고요.
여기에 <이카루스>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일정한 횟수만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콤보스킬’이 있습니다. 콤보스킬을 사용하는 중에도 다른 스킬을 섞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유저는 효율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직업의 특성을 살리고 다음 스킬 연계를 생각하며 게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그만큼 <이카루스>의 전투는 손이 많이 갑니다. 타이밍에 맞춰서 적의 공격을 막고, 띄우고, 밀치고, 내려꽂으며 싸워야 하니까요. 적의 패턴에 익숙해질수록 빠르게, 피해를 덜 입고 처치할 수 있죠. ‘타겟팅 전투의 식상함을 없애주기에 딱 적절한 수준’입니다. 직업마다 차이를 느끼기도 좋고요.
가디언은 방어에서 모든 동작을 시작하고, 위저드는 마지막 마법 2종을 버프 형식으로 몸에 둘러서 추가효과를 얻습니다.
물론 <이카루스>에 완전한 논타겟팅 액션 수준의 전투를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일단 타겟팅 게임의 특성상 ‘적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카루스>에서는 몬스터의 공격모션이 크고 공격속도가 느립니다. 공격을 보고 충분히 피하거나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죠. 하지만 정작 적의 공격 모션이 시작되고 나면 방어나 회피를 입력해도 무조건 대미지를 입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적 해골궁수는 화살을 1.5초에 걸쳐 발사합니다. 정말 슬로우모션을 보는 듯한 속도죠. 하지만 플레이어는 적이 활을 드는 것을 보자마자 방어 버튼을 눌러도 한참 후에 날아오는 화살에 맞게 됩니다.
공격이 발동되는 순간 이미 서버에서 대미지 계산이 끝나 있는 ‘선 대미지, 후 모션’ 방식 때문인데요, 덕분에 제대로 적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려면 아예 적의 모션이 시작되기 전에 공격을 ‘예측해서’ 스킬을 입력해야 합니다. 타겟팅 게임의 한계입니다.
요즘처럼 액션게임 뺨치는 논타겟팅 MMORPG에 익숙해진 유저라면 크게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입니다. 최소한 적의 공격모션이 끝나기 전까지는 공격에 대응할 수 있거나, 적의 공격모션을 빠르게 바꿔서 무조건 공격을 예측하고 대응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분명히 피했는데 공격을 맞고, 날아가는 적에게 대미지를 입는 상황이 두세 번 이어지면 짜증부터 밀려옵니다.
■ 수집과 전략의 재미, 펠로우
<이카루스>의 또 다른 핵심은 ‘펠로우’입니다. 펠로우는 일종의 탈것으로 게임 내 곳곳에서 획득할 수 있죠. 평범한 말부터 곰, 페가수스, 표범, 거미, 거북이, 뱀장어(?) 등 간단히 말하자면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등에 올라탈 만한 공간이 있는 몬스터들은 거의 모두 길들일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길들이기는 펠로우의 등에 올라탄 후 W, A, S, D 키를 이용한 미니게임 방식으로 진행되며, 자신과 펠로우의 레벨에 따라 성공률이 달라집니다.
길들일 수 있는 펠로우의 종류는 숫자를 세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효율이나 외관도 천차만별입니다. 이동속도가 빠른 펠로우가 있는가 하면 크리티컬 히트 확률을 30%나 올려주는 펠로우, 이동속도는 무지하게 느리지만 방어력을 높여주는 펠로우, 하늘을 나는 대신 지상에서는 기어 다니는(…) 펠로우도 있죠.
어지간한 동물은 다 있습니다.
이동과 전투에서 펠로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희귀한 펠로우를 길들여 자랑거리로 삼을 수도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펠로우를 찾아서 헤매고 길들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길들이기 위해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거나 꽁꽁 숨겨진 곳에 위치한 펠로우도 있습니다. 찾아나서는 재미가 있죠.
참고로 <이카루스>에서는 펠로우마다 정해진 기력이 있습니다. 기력은 이동이나 전투에 조금씩 사용되고, 기력이 모두 줄어든 펠로우는 자동으로 소환이 해제되는 만큼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라도 최소 네댓 마리의 펠로우를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1차 CBT에서도 중반부터는 길들일 수 있는 펠로우는 일단 성능확인을 위해 탑승(?)해 보고, 콘텐츠를 모두 즐긴 유저들은 알아서 새로운 펠로우 찾기에 나섰을 정도입니다. 강력한 펠로우에 대한 정보도 공유됐죠. 펠로우를 단순한 탈것에서 벗어나 하나의 게임 내 목표로 만드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신기한 펠로우를 보면 일단 길들이고 봅니다. 어느새 조련게임이 된 기분.
■ 전력투구! 공들인 티가 팍팍 나는 공중전
펠로우를 이용한 전투도 신선합니다. <이카루스>에서는 탈것에 오르면 거대한 창과 석궁처럼 특수한 탑승무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사용하는 스킬도 무기에 맞춰 전부 달라지죠.
핵심은 비행전투와 레이드입니다. <이카루스>의 일부 펠로우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적을 공격할 수도 있죠. 당연히 공중을 날아다니는 적도 등장합니다. 타겟팅 방식의 일반 전투와 달리 펠로우를 이용한 공중전투에서는 이리저리 하늘을 날며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1차 CBT 후반에는 순수한 비행을 위해 멸망의 공역이라는 지역이 등장합니다. 멸망의 공역은 여러 개의 조각난 대륙들로 구성돼 있고, 순간적으로 비행속도와 기력을 올려주는 ‘엘로라의 축복’과 플레이어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젤나리스의 기운’ 등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아이템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접근을 막는 포대(?)와 빠른 회피를 요구하는 강력한 범위 스킬을 사용하는 적들도 등장합니다. 펠로우의 기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꾸준히 엘로라의 축복을 얻거나 지상에 착지, 혹은 펠로우를 갈아타며 기력을 관리해줄 필요도 있죠.
덕분에 멸망의 공역에서는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카루스>에서 비행을 단순한 이동 혹은 보너스 콘텐츠가 아닌 핵심요소로 내세운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멸망의 공역으로 입장시켜주는 고래와 비행속도 및 기력을 높여주는 엘로라의 축복.
멸망의 공역 어디에서나 보이는 거대한 레이드 보스 몬스터 ‘멸망의 포식자 즈메우’와의 전투는 그 중에서도 압권입니다. 즈메우는 전방에 블랙홀을 발생시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고, 거대한 빔으로 모여 있는 모두를 일순간에 전멸시킵니다. 일단 블랙홀에 빠지고 나면 빠른 속도로 강하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죠.
즈메우는 자신에게 일정 범위 이상 접근하는 펠로우의 기력을 태워서 강제로 소환을 해제시키거나, 유도탄을 발사해 특정 플레이어에게 막대한 대미지를 입히기도 합니다. 물론 유도탄도 논타겟팅 방식인 만큼 근처에 있는 ‘엘로라의 축복’을 얻은 후 빠르게 강하해서 피할 수 있습니다.
단, 이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10초. 즈메우는 쉴 새 없이 유도탄과 졸개들을 소환해 플레이어를 괴롭히고, 블랙홀과 거대 빔으로 전멸 상황을 만들어내는 만큼 펠로우를 꾸준하게 갈아타며 상황에 맞춰 꾸준히 대응해야 합니다.
펠로우 교체가 공중에서도 자유롭게 이뤄지다 보니 공격할 때는 공격능력에 특화된 펠로우에 탑승하고, 다시 방어력이 높은 펠로우로 갈아타서 즈메우의 공격에 버티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더군요. <이카루스>의 향후 콘텐츠 방향을 잘 보여주는 레이드입니다.
즈메우와의 공중 레이드. 화면에 보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모두 유저입니다.
다만 문제는 조작인데요, 펠로우에 탑승한 후에는 제자리 회전이 불가능하고, 플레이어의 이동방향도 모니터 전방이 아닌 펠로우의 정면으로 맞춰집니다. 일종의 레이싱게임을 떠올리면 됩니다. 빠른 방향전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적의 공격을 피하고, 시야에 움직이는 적을 고정한 채 싸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냥 제자리에 서서 적과 공격을 주고받으며 싸우게 됩니다.
게다가 적의 인식범위도 넓어서 잠깐만 생각 없이 이동하면 네댓 마리의 몬스터가 사방에서 몰려들기 일쑤죠. 방향전환이 쉽지 않은 만큼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기도 번거롭습니다. 지상에 내려오더라도 공중에 위치한 적을 공격할 수 없는 직업이라면 귀찮기는 매한가지죠.
360도를 모두 신경 써야 하는 탓에 피로도 쉽게 쌓입니다. 1차 CBT에서 공중전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앞으로는 편의성에도 신경을 쓸 차례입니다.
툭하면 애드. 그냥 보이는 적들은 다 처치하는 게 속 편할 정도입니다. 어디서 쏘는지도 몰라요.
■ 힘은 실었지만… 아쉬운 스토리와 퀘스트
스토리는 많이 아쉽습니다. <이카루스>에는 1인 시나리오가 자주 등장합니다. 1인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서 혼자 진행하는 퀘스트인데요, 조금 중요하다 싶은 퀘스트는 여지없이 1인 시나리오로 진행됩니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는 왕궁 같은 곳은 아예 1인 시나리오 지역이죠. 스토리에 많은 힘을 실으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게임의 스토리가 너무 상투적입니다. 공주가 납치당하며 게임을 시작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까지 나서게 만들다니’를 외치는 악당이나, 엄청 강하고 하루 종일 진지한 조력자(크로우), 대놓고 수상한 귀족의 딸이 국새를 훔친 범인이라는 설정 등은 플레이어가 <이카루스>의 스토리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초반부인 점을 감안해도 너무 뻔한 인물의 너무 뻔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던전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NPC 살려줬더니 사연 한 마디 없이 사라지거나, 같은 NPC가 높임말과 반말을 번갈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죠. 1인 시나리오까지 도입한 보람이 반감돼 보입니다. 퀘스트 몬스터가 고급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정작 퀘스트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반면 퀘스트의 음성지원은 좋습니다. <이카루스>에서는 NPC가 퀘스트의 이야기를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중요한 퀘스트의 경우 거리가 멀어지거나 창을 닫고, NPC와 멀어져도 대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퀘스트를 받더라도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지나가던 귀족의 딸이 국새를 훔치고, 다짜고짜 딸에게 영생을 부여하는 동네. 솔직히 말해서 인상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습니다.
■ 아깝지 않은 10년, 오랜만에 느낀 ‘탐험’의 재미
<이카루스>는 지난해 지스타 2013에서 첫 체험버전을 선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직업별 전투와 간단한 스토리, 비행 펠로우를 이용한 공중 전투를 공개했는데요, 타겟팅 MMORPG임에도 불구하고 지겹지 않은 전투와 오랜 시간 공들인 직업별 개성 등이 호평을 받았죠.
이번 1차 CBT에서는 이런 <이카루스>의 장점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됐습니다. 개발팀이 크라이 엔진 3에 익숙해지면서 그래픽은 한 단계 뛰어올랐고, 본격적으로 도입한 공중 콘텐츠는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카루스>만의 독특함을 안겨줬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대륙의 파편들이 떠도는 멸망의 공역에서 저 멀리 위치한 레이드 보스가 거대한 빔을 내뿜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모험’의 재미도 살렸습니다. 새로운 지역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펠로우를 살펴보게 되고, 곳곳에 숨겨진 펠로우를 찾고 획득 조건을 알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아이템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게임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만큼 찾아냈을 때의 보람도 크죠.
마우스를 대기 전에는 NPC의 역할을 알 수 없어서 마을에서 한참 동안 상점을 찾는다거나, 펠로우를 버릴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마을 이동을 시켰는데 돌아갈 방법을 알려면 한참이 걸리는 등 불친절한 부분도 많지만 1차 CBT인 만큼 아직은 고쳐 나갈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뛰어난 그래픽을 활용한 눈요기와 직업별 개성이 살아 있는 전투, 비행과 펠로우 등 <이카루스>는 첫 시험비행에서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어필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이카루스처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오르는 데 성공한 셈이랄까요?
이제는 날개가 녹지 않고 그 비행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줄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