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용산 플레이스테이션 존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미디어 시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는 6월 14일 출시될 정식 버전을 두세 시간 동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체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플레이하는 내내 온갖 감상이 떠올랐습니다. 감염의 공포가 몰아닥친 세상은 더 이상 남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고,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러너’와 ‘클릭커’에게 쫓길 때는 공포에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군요. 남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감염자로부터 벗어났을 때는 생존의 기쁨을 배로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생존 싸움이라는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미와 위기를 극복하는 기쁨을 강조한 게임이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 믿음이 사라진 세상, 하지만 혼자서는 못 산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세계는 미지의 바이러스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구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인간성을 상실한 감염자에게 습격당한 인구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감염자로 생겨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고 사람들은 결국 안전구역을 만들어 그 안으로 대피합니다. 게임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후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사람들은 심리적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배급장이 돈 대신 쓰일 정도로 생활이 빈곤해졌고, 어디선가 입수했는지 모를 무기로 총격전을 일삼는 무법자들이 생겨날 만큼 치안이 나빠졌으니까요.
인간이라 해서 우리 편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감염자보다 더한 적일 수 있고요.
안전구역 외곽은 훨씬 더 흉흉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습격하는 감염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으니까요. 덤으로 안전구역 외곽은 사람 사이의 ‘믿음’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감염이 진행 중인 사람이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되고요.
주인공 ‘조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타인들도 외곽에서 조엘을 만나면 의심부터 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같은 인간에게 억울하게 습격당하는 일을 겪을 수도 있고요. 안전구역 외곽은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언제든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 곳입니다.
조엘은 이렇게 위험천만한 곳을 모험해야 합니다. 동료 ‘테스’와 함께 10대 소녀 ‘엘리’를 안전구역 바깥의 도시로 데려다 줘야 합니다. 조엘은 같은 목적을 가진 테스, 엘리와 서로 도와가며 위험을 하나씩 극복해 나갑니다.
스토리는 인간성이 붕괴된 세상과 서로 도우며 살 길을 찾는 조엘, 테스, 엘리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덕분에 등장인물의 인간미를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적을 죽이는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감상이라 신선한 기분도 들었고요.
조엘의 파트너 ‘테스’.
■ 위협적인 적, 한계가 뚜렷한 대응수단
스토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믿음이 없는 세상과 동료애를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전투 또한 극단적인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극한의 상황을 강조해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을 높이는 방식이죠.
<라스트 오브 어스>의 전투는 꽤나 까다로운 편입니다. 특히 초기 감염자인 ‘러너’와 말기 감염자인 ‘클릭커’가 함께 있을 때 골치 아픕니다. 초기 감염자인 러너는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시력을 이용해 조엘을 찾아냅니다. 말기 감염자인 ‘클릭커’는 눈이 멀어 소리만 듣고 움직이지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플레이어를 게임오버로 몰아갈 만큼 위협적이죠.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감염자를 눈앞에 두고 함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만만해 보인다고 러너에게 싸움을 걸면 어느 순간 클릭커가 달려들어 목덜미를 깨물어 버리니까요.
클릭커에게 한 번만 물려도 죽습니다. 맞아가며 싸울 수 있는 러너, 인간보다 훨씬 더 세죠.
대응수단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청력, 둘째는 총, 셋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오브젝트와 제작으로 만들 수 있는 칼, 화염병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대응수단 모두 한계가 명확합니다. 청력을 사용하면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까이 있는 적의 위치만 파악할 수 있고, 맵 전체에 적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충 청력을 사용하고 적이 얼마 없겠거니 생각해 돌격하면 100% 사망합니다. 특히 클릭커는 청력으로 감지해낸 수보다 두세 마리는 더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합니다. 한번은 허공에 총을 쏴봤더니, 청력으로 감지 못한 클릭커까지 뛰쳐나오더군요. 그리고 클릭커들이 아주 맛있게 조엘을 깨무는(!) 장면을 볼 수 있었죠.
총은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권총조차도 총알을 20발 이상 들고 다닐 수 없고, 총알을 얻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함부로 사용하면 적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줄 수 있다는 문제도 있고요.
총을 쏘는 순간 사방에서 적이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오브젝트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떨어진 벽돌, 쇠파이프를 주워서 쓰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오브젝트에는 내구도가 있습니다. 쇠 파이프를 네 번 이상 휘두르면 부러지는 식이죠. 한 명의 적을 확실하게 죽일 때는 좋은데, 여러 적을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날붙이로 만드는 주머니칼도 마찬가지입니다. 효과는 정말 좋습니다. 뒤에서 찌르면 강력한 적을 한 번에 죽일 수 있고, 달라붙은 클릭커를 뿌리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잡히는 순간 클릭커의 목을 찔러서 게임오버를 막을 수 있죠.
다만 주머니칼은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찌르는 순간 부러지니까요. 덕분에 주머니칼이 모자라서 클릭커에게 반항도 못하고 죽는 상황을 종종 겪었고요.
주머니칼이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지만, 없으면 게임오버로 직행합니다.
한계가 뚜렷한 대응수단에 의지해야 하다 보니, 전투할 때마다 상당한 공포에 직면하게 됩니다. 총을 쏘자니 클릭커 여러 마리가 달려들까봐 무섭고, 하나씩 몰래 찔러 죽이자니 주머니칼이 모자라겠다 싶을 때 극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는 긴장감을 느낀만큼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고요.
■ 스스로 생각해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재미
조금 더 익숙해지면 위기를 차근차근 헤쳐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대응수단의 한계는 뚜렷하지만, 어떤 대응수단으로 헤쳐나갈지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적을 하나씩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선호한다면, 러너는 목을 졸라서 제거하고 클릭커만 칼로 찔러 처리하는 공략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숨에 적을 처리하는 방법을 선호한다면 러너와 클릭커가 모일 만한 위치에 화염병을 던져 정리할 수도 있겠죠.
클릭커만 있을 때는 굳이 전투를 각오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시력이 없어서 쉽게 유인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빈 유리병을 던져서 주인공이 서있는 반대 방향으로 클릭커를 보낸 뒤, 유유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방법도 쓸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고요. 주먹질로 몰아붙인 뒤 붙잡아서 벽에 찍어버릴 수도 있지만, 멱살을 잡은 채로 질질 끌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총격전이 일어날 때 방패로 쓸 수 있도록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응방법을 쓸 수 있다 보니, 정해진 방식으로 흘러가는 게임과 달리 지루하지 않더군요.
■ 인공지능(AI)과의 협력도 전략의 하나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인공지능(AI) 캐릭터의 수준은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AI와의 행동을 고려해 전략을 짤 정도는 되더군요.
조엘의 동료 테스는 총격전이 일어날 때 적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자진해서 맡습니다. 엄폐물 뒤로 숨어서 몇 번씩 총을 쏘는 식이죠. 이때 조엘을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우회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테스에게 정신이 팔린 악당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죠.
감염자들과 싸울 때도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줍니다. 테스가 주도해서 위기의 돌파구를 열어주지는 않지만, 조엘이 쏜 총알 한 발이 빗나갈 때 감염자들의 숨통을 끊을 정도로는 엄호사격을 해주니까요. 클릭커 한 마리만 남았을 때는 테스를 믿고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소수의 적은 테스를 믿고 과감하게 공략해도 괜찮습니다.
엘리와의 상호작용은 시간이 지난 뒤에 할 수 있는 것 같더군요. 처음에 등장한 엘리는 전투가 일어날 때 조엘을 돕기보다 도망가는 태도를 더 많이 보여줍니다. 심지어 러너들에게 잡혀서 살려달라고 고함치는 장면도 나오더군요. 초기의 엘리는 단순한 보호대상이고 ‘테스’가 주로 도우미 역할을 맡습니다.
단, 계속 엘리가 보호대상으로 머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너티독은 지금까지 트레일러를 통해 엘리가 조엘을 도와주는 장면을 조금씩이나마 공개해 왔으니까요. 그리고 엘리가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고 이런저런 무기를 골라잡게 된다고 설명도 했었고요.
실제로 몇몇 트레일러에서는 저격용 라이플이나 활을 든 엘리가 등장하기도 했죠. 정식 버전에서 엘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느 정도로 조엘을 돕는지 지켜보는 것도 <라스트 오브 어스>를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 될 듯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6월 14일 PS3로 독점 타이틀로 출시됩니다. 한글 자막이 제공되기 때문에 언어 걱정 없이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