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만 보고 게임을 판단하지 말라.’ 게임기자라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들었지만 여전히 지키기 어려운 이야기다. 어떤 게임에서 익숙한 방식의 조작,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보이면 머릿속은 비슷한 게임을 찾는 데 여념이 없고, 싱크로율이 높은 게임 하나를 찾아낸 이후에는 어떤 영상을 보더라도 편견이 생긴다. ‘저건 저런 게임일 거야.’
<비욘드 투 소울즈>의 영상을 봤을 때가 그랬다. 처음 콘셉트를 들었을 때는 미스터리 혹은 심리 스릴러를 떠올렸고, 이번 E3 2013에서 영상을 접했을 때는 전형적인 액션게임을 연상했다. 스토리가 많이 괜찮고, 표정 연기가 끝내주는.
부끄럽게도 둘 다 틀렸다. 직접 체험해 본 <비욘드 투 소울즈>는 완벽한 ‘어드벤처 게임’이다.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는 긴박한 전투도, 적에게 자살까지 시키는 잔인한 빙의도, 쏟아지는 총알 세례를 피하며 달리고 구르는 액션도 모두 ‘선택’만 하면 된다. 대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재미는 예상보다 더했다. 퀀틱드림의 전작 <헤비레인>을 가볍게 능가할 만큼. 개인적으로 E3 2013의 최고 기대작으로 뽑고 싶은 <비욘드 더 소울즈>를 체험해 봤다. 2시간에 가까운 체험버전인 만큼 이야기가 길어지는 점 양해를 바란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비욘드 투 소울즈> E3 2013 플레이영상
<비욘드 투 소울즈> 하이라이트 영상
■ 그러니까 이 게임은 어드벤처다
<비욘드 투 소울즈>에서 모든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다. 손이 빠를 필요도, 액션에 능할 필요도 없다. 길을 이동하고, 적과 싸우고, 에이든을 조작해 빙의나 충격파를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선택’이다.
<비욘드 투 소울즈>의 체험대는 2개의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기존에 공개된 소말리아 편이고, 다른 하나는 열차에서 추적자들을 따돌려야 하는 헌티드 시나리오다. 각 시나리오에 걸리는 시간은 모든 경로를 알고 있을 경우 20분 내외, 처음 접할 경우에는 약 1시간 이내다.
소말리아 편을 시작하면 적진에 홀로 잠입한 조디가 적의 총격 속에 몸을 피신해 있다. 아날로그 스틱을 움직여 왼쪽을 살펴보자. 멀리 위치한 기둥 앞에 X버튼을 누르라는 표시가 나타난다. X버튼을 누르면 조디가 기둥으로 이동하려 들지만 이내 적의 총알 세례에 못 이겨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틀린 것이다.
이제 다른 선택지를 이용할 차례다. 여기서는 자동으로 에이든이 등장한다. 영혼인 에이든은 장애물에 구애받지 않고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벽을 뚫고 지나가거나 바닥으로 파고들 수도 있다. 당연히 적은 에이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에이든은 조디의 몸과 ‘영혼의 실’ 같은 끈으로 이어져 있고, 일정 거리 이상 조디와 떨어질 수 없다.
에이든의 조작은 두 개의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한다. 듀얼쇼크의 R1 버튼을 누르면 에이든의 능력이 활성화되고, 여기서 아날로그 스틱을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다른 능력이 나타난다. 양쪽 스틱을 아래로 내렸다가 놓으면 적을 공격하거나 물체를 날리는 충격파가, 아날로그 스틱을 안쪽으로 모으면 목조르기가, 스틱을 밖으로 빼면 빙의가 발동된다.
에이든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에는 파란색 점이 표시되기 때문에 해당 위치에서 R1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능력을 사용하면 된다. 빙의가 가능한 대상은 노란색, 목을 졸라서 처치가 가능한 대상은 붉은색, 양쪽 모두 불가능한 대상은 파란색으로 각각 표시된다.
벽을 건너가는 걸 막고 있는 적은 빙의가 불가능하다. 충격파로 날려버리자. 벽이 무너지고 적이 쓰러진다. 다시 반대편을 보면 다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몸 주변에 붉은 빛이 피어 오르고 있다. 목을 졸라서 쓰러트렸다.
조작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터랙션에 사용하는 버튼이 전부다.
적을 처치하고 다시 조디로 돌아간 후 X버튼을 눌러서 아까 이동하지 못했던 벽 뒤로 넘어가면 된다. 이번에는 빙의가 가능한 적이 보이는데, 몸을 빼앗으면 같은 편을 조준한다. 이때 R1 버튼을 눌러서 같은 편을 처치하게 만들 수 있다.
무사히 차량의 적을 소탕한 순간, 뒤의 벽이 무너지며 적이 나타난다. 근접전투의 시작이다. <비욘드>의 근접전투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비욘드>에서는 각 동작과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며, 그 순간 스틱을 어떻게 입력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조디를 덮친 적군은 곧바로 칼을 뽑아 들고, 그 순간 화면이 느려진다. 칼이 조디의 몸에 닿기 전에 아날로그 스틱을 아래로 기울이면 조디가 잽싸게 적의 칼 아래로 지나간다. 만약 스틱을 뒤로 기울였다면 그대로 적의 칼에 맞고 대미지를 입는다. 스틱의 상하좌우마다 하나씩, 총 4개의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굳이 어떤 버튼을 누르라는 표시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 칼을 들고 아래로 내리치는 적 병사를 보며 굳이 스틱을 앞으로 밀어서 칼날에 몸을 댈 필요는 없으니까.
치열한 전투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정답을 찾아가는 느낌.
■ 때릴 것인가? 먼저 피할 것인가? 갈등의 연속
선택이 매번 쉬운 건 아니다. 두 가지 동작이 겹쳐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도 많다. 예를 들어 적 병사가 칼로 조디를 찌르려는 순간, 조디가 벽돌을 들어 적 병사를 공격한다. 슬로우 모션의 순간 플레이어는 스틱을 적 방향으로 향해서 벽돌을 적에게 던질지, 아니면 스틱을 뒤로 밀어서 일단 칼부터 피하고 볼지, 그것도 아니면 위나 아래로 도망칠지 고민하고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슬로우 모션 시간 안에 입력을 마치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로 간주된다. 방어 모션을 고르는 중이었다면 피해를 입고, 공격 모션 중이었다면 공격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처럼 <비욘드>의 모든 행동은 선택에서 선택으로 이어진다. 중간중간 조디나 에이든을 직접 움직이는 부분이 있지만 (최소한 체험판에서는) 해당 부분에서 컨트롤이 필요한 부분이 거의 없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길에서는 조디를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강제로’ 조디가 멈추게 되며, 슬로우 모션에서 입력이 늦거나 타이밍이 정확하다고 얻는 보너스도 없다.
입력을 타이밍에 맞출 필요는 없다. 시간도 충분하다.
사격이나 목조르기도 누구를 쏠 것인가 정도를 정하는 게 고작. 이후는 모두 선택에 따라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흘러간다.
과거에 크게 유행하던 ‘어드벤처 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화면에는 적의 칼날이 날아오는 장면이 표시되고 1.왼쪽으로 피한다. 2.오른쪽으로 피한다. 3.칼로 받아 친다. 4.상대의 품으로 파고든다. 같은 선택지가 나오는 게임 말이다.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 조디를 움직일 때도 특정 액션보다는 주변을 파악하고, 무엇이 있는지 찾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참고로 어떤 건물 안에서는 작은 창문이 있어서 밖을 내다볼 수 있고, 그때 에이든으로 쉽게 적 병사를 제거할 수 있다. 만약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골목에 숨어들어서 적을 조디가 직접 제거해야 한다. 어드벤처 게임에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힌트를 얻는 방식과 비슷하다.
만약 <언차티드>나 <GTA> 시리즈 같은 액션을 바란 유저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대신 <비욘드>는 선택에 따른 결과를 중요시한다.
플레이어가 겪는 것은 조디가 겪은 15년 동안의 삶이다. 행동 하나가 이야기를 바꾼다.
■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이미 컨퍼런스를 통해 누설된 부분이지만, 조디는 소말리아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한 꼬마아이를 데리고 임무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플레이어가 목표인 자말 장군을 처치할 때, 누구에 빙의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꼬마아이의 부모를 죽이고, 꼬마아이의 총알 세례와 욕설(로 추측되는 문장)을 들으며 씁쓸하게 자리를 벗어날 수도 있고, 그대로 꼬마아이를 부모와 만나게 해줄 수도 있다.
기차에서 물건을 건드려서 괜히 추적자의 시선을 끌게 된다거나, 미리 무기를 든 적군에 빙의해 일을 쉽게 해결할 수도, 빙의한 적군으로 수상한 행동을 취했다가 다른 적군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바람에 빙의가 풀릴 수도 있다. 모두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들이다.
이런 선택의 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비욘드>는 멀티엔딩 시스템을 택했고,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분기와 결과가 존재한다. E3 2013 소니 체험존에서 일부러 컨퍼런스 때 공개된 영상과 다른 행동만 골랐더니 적군의 차량에 올라탄 채 추격전을 벌였고, 꼬마의 원한 어린 눈도 보지 않았다.
선택에 따라 크고 작은 부분이 계속해서 달라지는 덕분에 E3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지루함이 덜했을 정도. 오히려 ‘와, 저 사람은 저기를 저렇게 해결하는구나’ 같은 신선한 경험도 가능하다.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헌티드 에피소드의 경우 소말리아 이상의 선택지를 보여줬다.
만약 에피소드에서 취한 행동이 다른 에피소드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결과는 정말 다양해질 수 있다. 빠듯한 액션이 없어서 <비욘드>의 체험이 더 재미있었던 이유다.
행동 하나에 결과가 달라진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길 수도 있다.
■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과 스토리, 성장하는 플레이어
스토리와 연출도 이런 ‘선택의 재미’를 더해준다. <비욘드>의 연출은 정말 잔인하다. 칼로 찌르거나 베는 장면이 잔인하다는 게 아니고, 감정적으로 잔인하다. 조디는 쉴 새 없이 쫓기거나 압박을 당하고, 그녀 주변에서는 비극이 이어진다. 잠깐의 즐거움과 이어지는 비극을 번갈아 보여준다. 그것도 체험대에서.
헌티드 에피소드에서 기차에 오른 조디는 며칠 동안 밤을 새워 피곤하다. 하지만 육체가 없는 에이든은 피곤함과 상관없이 계속 장난을 치고, 조디는 그런 에이든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지쳤지만 그래도 소소한 일상이다. 에이든을 조종해 커피를 쏟거나 가방을 떨어트리고,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장난을 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차가 역에서 멈추고 추격자가 따라오면서 둘의 대화는 멈춘다. 추격전이 이어지고, 조디는 기차에서 날아가고, 쓰러지고, 발에 차이고, 숲으로 굴러 떨어지며 도주를 계속한다. 조디의 힘을 눈치챈 단체의 추격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걸까?’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문이 계속 쏟아진다. 최고의 몰입감이다. 게임의 연출도 좋다. 사다리에서 꼬마를 올려줄 때는 패드를 위로 들어야 한다거나, 패드를 아래로 내려서 뛰어내리는 등 조디의 동작과 플레이어의 조작도 잘 맞아떨어진다.
패드를 위로 들어야 한다. 진짜 발을 들어 올려주는 기분.
전투에서는 눌러야 하는 버튼을 보여주지 않고,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는 만큼 긴장감이 더해진다. 조디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도 전투를 거듭할수록 익숙해지는 부분도 재미있는데, 예를 들어 소말리아 에피소드를 마친 후 헌티드 미션을 시작하면, 처음 접하는 적의 동작에도 어느 정도 반응할 수 있다.
‘칼을 이렇게 휘두를 때는 스틱을 이쪽으로 향해야 하는구나’, ‘칼이 이 정도 속도로 날아올 때는 반격해도 소용이 없구나’ 하는 식이다. 사람 동작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생기는 상황이다.
그런데 숲으로 뛰어 내린 후 늑대를 만나는 순간 지금까지 익힌 내용은 허사가 된다. 사람과 싸우던 기억에 맞춰서 대응할 수 없는 탓이다. 물론 에피소드를 끝낼 때쯤이면 늑대와의 전투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아마 나중에 개나 고양이와 싸울 일이 있더라도 비슷할 것이다. 플레이어 자신이 어느 정도의 ‘상황과 패턴’에 익숙해지는 셈이다.
전투는 겪을수록 익숙해진다. 개발사에서도 노린 듯한 부분.
■ <헤비레인>의 진화판! 차세대 어드벤처
글이 길었지만 <비욘드>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퀀틱드림의 전작 <헤비레인>의 진화판이다. <헤비레인>의 버튼에 따른 조작이나 어드벤처와 비슷한 진행은 그대로 유지했고, 조금은 답답했던 진행은 분기를 늘리고, 장면을 계속해서 전환해줌으로써 탈바꿈시켰다.
참고로 <비욘드>는 사실적인 표정 연기를 위해 엘렌 페이지와 윌렘 데포 등 모든 장면을 실제 배우가 연기했다. 그만큼 표정과 동작이 살아 있다. 훈련을 받지 않은 조디의 동작은 정말 어설프고, 비명을 지를 때나 도망을 가는 장면은 정말 처절하다. 개발사인 퀀틱드림에서 그렇게도 ‘표정과 안면연출’에 집중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다만 진행과정도 과거 어드벤처 게임 수준으로 불친절해서 진행이 막히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빈번하다. 체험대에서도 20분이면 클리어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1시간 가까이 붙잡는 사람들이 속출했을 정도다. 여기에 연출을 위해 시선을 주디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직접 걷거나 움직여야 하는 부분에서 멀미도 난다. 둘 다 출시 전까지는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드벤처 장르나 스토리를 보는 걸 좋아하는 유저라면 정말 미친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E3 2013의 최고 기대작으로 꼽는다. <비욘드>는 오는 10월 8일 PS3로 발매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자막 한글화로 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