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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리뷰] ‘무난하지만 재미있는 역작’ 에오스

화려함 대신 기본기를 다져 제대로 준비한 MMORPG

안정빈(한낮) 2013-12-19 18:54:08
참신하진 않지만 특별히 못난 곳도 없는 무언가를 두고 ‘무난하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이상한 구석이 없다’ 정도의 뜻인데요. 평범한데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하는 음식, 한 번 들으면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음악처럼 무난한 것들 중에도 유난히 좋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에오스>가 딱 그 모양새입니다. 눈이 확 끌리는 그래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해봐야 힐러가 없다는 것 정도인데, 이조차도 유저에 따라 좋고 싫음이 크게 나뉩니다. 그렇다고 힐러가 없는 '최초'의 게임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오스>는 재미있고, 사람을 계속 끌어 당깁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독특한 시스템을 포기한 대신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습니다. 그 결과 '무난하지만 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쯤되면 '무난하다'라기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려함 대신 기본기를 승부수로 던진 <에오스>를 디스이즈게임에서 평가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슬림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난한 플레이


<에오스>의 플레이는 '무난함'이라는 한마디로 정의됩니다. 퀘스트를 통한 레벨업과 인스턴스 던전을 통한 아이템 공급은 이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시작으로 지겹게 접한 방식이고, 채집과 제작, 탈것, 솔로잉 던전, 대규모 레이드, 간단한 퍼즐이 섞인 던전 등도 수 많은 MMORPG에서 선보인 친숙하고 평범한 콘텐츠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에오스>는 섣부르게 특징을 넣기 보다는 이 무난한 콘텐츠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정확히는 콘텐츠의 진행 과정에 필요한 시간이나 보상, 퀘스트의 개수 등 ‘숫자’에 많은 공을 들였죠. <에오스>에서 내세우는 ‘숫자에 집중한 밸런스 기획’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레벨업 과정입니다. 레벨업의 과정에서 거쳐야하는 퀘스트는 많습니다. 하지만 지겹지는 않습니다. 장소가 겹치는 5~6개의 퀘스트를 2~3번 몰아서 깨고 나면,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특정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아오거나, NPC의 이야기를 듣는 등 ‘1~2개의 퀘스트만 진행하며 쉬어가는 구간’이 여지 없이 등장합니다.

한 번에 쏟아지는 퀘스트들은 대부분 단순 심부름이고, 1~2개의 퀘스트가 등장하는 구간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퀘스트가 쏟아지는 구간은 적당히 몬스터나 잡으며 넘기고, 중요해 보이는 퀘스트만 내용을 읽으면 되죠. 그만큼 진행이 편하고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좋습니다.

퀘스트가 조금 많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이런 쉬어가는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완급조절이 매끄럽죠.

퀘스트에서 처치해야 할 몬스터나 구해와야 할 아이템의 숫자도 적당합니다. 같은 몬스터를 20~30마리 처치하거나, 바닥만 보면서 퀘스트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냥을 하다가 지겹다 싶으면 퀘스트의 90% 가량이 끝나있습니다.

실제로 <에오스>의 개발사인 엔비어스에서는 레벨업 과정에서 만나는 퀘스트 아이템 개수나 몬스터 숫자를 정하는데만 몇 달을 소비했죠. 덕분에 지치지 않고 지속적인 목표를 제공해주는 신기할 정도의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레벨업을 위한 방법도 다양합니다. 퀘스트만 하거나, 레벨마다 제공하는 무한사냥터를 거치거나, 처음부터 전장에 뛰어들어 얻은 경험치만으로도 최고레벨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고루 섞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방법을 택해도 레벨업에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죠.

잊을만 하면 나오는 컷신. 다만 스토리 전달은 약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필수로 해야하는 콘텐츠가 있는것도 아닙니다. 퀘스트의 수는 물론 레벨업을 위한 사냥터가 넉넉해 중간에 적당히 빼먹어도 상관없습니다. 던전을 가지 않더라도 아이템 공급에 어려움도 없습니다.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다면 주요 퀘스트를 하지 않아도 문제 없습니다.

어디에 있건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보니 힘들거나 지루한 구간이 없습니다. 더불어 퀘스트는 자동으로 받을 수 있고, 먼거리를 오가는 경우 워프로 보내주는 유저 편의성까지 곁들였습니다. 무난하지만 흠잡을 것 없는 플레이가 최고 레벨까지 이어집니다.

<에오스>의 레벨업 과정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막힘이 없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의 완급조절이 있고, 중간중간 혼자 플레이할 수 있는 던전이나 전장도 있고, 지루하면 장소를 옮기거나 레벨업 방식을 바꾸면 되니까요.


적당한 위트도 있습니다. 북방에서 의문의 광신도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 괴물의 모습.


유불급. 타겟팅 전투에 적당한 액션을 더하다


<에오스>는 여기에 ‘약간의 양념’을 더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존의 게임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콘텐츠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편의성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고요.

 

대표적인 예가 전투입니다. <에오스>의 전투방식은 기존의 타겟팅 MMORPG와 비슷하지만 ‘연속기’의 개념을 넣었습니다. 워리어의 예를 들면 회전베기 이후에는 50% 확률로 나선의 칼날이 활성화되고, 치명타가 터진 후에는 30%의 확률로 피의 연격이, 다시 피의 연격 사용 후 50% 확률로 피의 복수가 활성화되는 식입니다.

연속기의 효율이 좋고, 확률에 따라, 스킬트리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연속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히 전투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강제캔슬이 가능한 공격과 불가능한 공격도 따로 구분해 세밀한 콘트롤을 구사하는 유저는 그만큼의 효율을 더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킬의 대미지가 들어간 직후 다른 스킬을 사용해서 딜레이를 없애거나, 딜레이가 큰 기술을 사용하던 도중에 적이 공격을 가하면 일반공격으로 공격을 강제 캔슬한 후, 적의 공격을 끊는 스킬을 사용하는 식입니다.

타겟팅 전투로는 거의 끝을 본 느낌입니다. 어렵지 않고 너무 뻔하지도 않고.

모든 캐릭터가 가진 회피기를 이용해서 범위공격을 피하거나, 타이밍에 맞춰 점프를 요구하고, 적의 스킬을 끊어주는 등 약간의 액션도 섞여 있습니다. 덕분에 익숙한 타겟팅 방식의 전투를 즐기면서도 적당한 긴장감과 콘트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죠.

<블레이드앤소울>이나 <테라>처럼 손이 바쁜 건 아니지만, 느긋하게 1, 2, 3, 4만 누르는 수준도 아닙니다.  최고 레벨 이후에는 콘트롤 면에서 파고들 구석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조작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최고레벨 이전까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콘트롤을 익히는 것도 쉽습니다. 부가스킬의 단축키도 Q와 E로 통일했고, 보스가 사용하는 스킬은 주의사항을 지속해서 화면에 보여줍니다. 0.1초 단위의 타이밍을 이어나가는 것도 아니기에 약간의 노력만으로 자신의 실력향상을 통한 손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광역기술도 나오지만 피할 공간을 예쁘게 보여줍니다.

메시지도 친절합니다. 처음 보는 패턴이라도 내가 뭘 잘못해서 맞았구나는 확실히 알 수 있죠.


임 내 생태계를 다지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


소울스킬과 강화, 에너지와 포만도도 <에오스>에서 더한 양념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전투처럼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적당히 신경 쓸 여지를 남겨서 콘텐츠를 구현했습니다. 특히 이를 커뮤니티와 아이템거래 등 게임내 생태계를 다지는데 적극 활용했죠.

에너지는 스킬 데미지 효율을 증가시키지만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이 생깁니다. 자연스럽게 효율좋은 비싼 음식을 찾게되죠. 

전투 비중이 높은 유저들은 효율 좋은 음식을 찾기위해 상점이나 경매장에서 골드를 소모합니다. 반면에 짧은 시간을 플레이를 하는 라이트 유저는 게임머니를 투자하지 않아도 에너지 관리하기 쉽습니다. 에너지와 포만감의 상호작용을 통해 효율적인 플레이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헤비유저와 라이트 유저의 격차를 줄이고 게임머니 소비도 유도합니다.

<에오스>에서 일종의 운영을 담당하는 음식. 포만도와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포만도에 따라 당장의 전투 효율부터가 달라지죠.

자체 버프인 소울 스킬도 비슷합니다. 적을 쓰러뜨리면 일정 확률로 얻는 암흑소울을 정화해 용기, 희망, 순수, 평안 등 4개 소울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각 소울은 강력한 버프을 부여하죠. 

재미난 점은 소울의 정화효율입니다. 소울을 마을 성소에서 혼자 정화하면 암흑소울 2개당 일반소울 1개를 얻지만, 유저끼리 상호 정화를 하면 1개당 1개를 얻습니다. 효율이 높죠.

상화 정화는 마을이 아니라도 가능하고, 레벨업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유저가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이다보니 자연스럽에 매번 만나는 유저끼리 상호 정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말 한 마디라도 더 오가게 됩니다. 최소한 감사의 인사라도요. 억지로 파티를 강요해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 아닌, 유저의 필요성에 의해 부담없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꾸준한 소울 정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오가며 인사 한 번이라도 나누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서버 전체 단위로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효과입니다.

원하지 않는 파티플레이를 강요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스트레스도 적고요.

힐러가 없어서 사용하게 되는 소모품도 게임머니 소비를 돕는(?) 장치입니다. <에오스>에서는 체력회복을 위해 붕대와 물약을 사용합니다. 비전투시에는 효율이 좋은 붕대를, 전투시에는 조금씩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물약을 주로 활용하죠. 당연히 상점에서 구입하게 되고, 최고레벨 이후에는 더 비싸고 많은 붕대와 물약을 구입해야 합니다.

셋 다 어찌보면 당연한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게임에서 본 적 없는 신선한 시스템도 아니죠. 하지만 <에오스>처럼 게임의 시스템을 생태계에 맞물려 놓아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끈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소울 정화를 위해서 한 번의 대화를 더 하게 되고, 에너지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 고민하게 되고, 그 결과 편한 마음으로 돈을 벌러 가는 던전과 만반의 준비로 도전하는 던전이 구분되는 등 하나의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와 이어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전투에서는 꾸준히 소모품이 들어갑니다. 인플레이션을 막는 방법 중 하나죠.


다만 결코 돈이 잘 모이는 구조는 아닙니다. 개발사에서도 이를 고려한 듯 최고 레벨 직후의 골드 소비량을 대폭 줄였습니다.


던전과 아이템, 그리고 파티 플레이


최고레벨 이후의 플레이도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에오스>의 최고레벨 콘텐츠는 전장과 인스턴스 던전으로 나뉘는데요. 그 중 던전은 대놓고 계단식 구성을 채택했습니다. 최고레벨을 달성한 순간 자신의 레벨은 의미가 없어지고, 대신 장착한 아이템 레벨의 총합이 자신의 수준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막 최고레벨이 된 직후에는 솔로 무한던전에만 들어갈 수 있지만 아이템 레벨이 570을 넘는 순간 파티무한던전과 흑기사단 수용소 등 1단계 던전이, 아이템 레벨이 646을 넘는 순간 하얀성막과 2단계 무한던전 등 2단계 던전이 열리는 식입니다. 지금은 총 4단계의 던전이 열려있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에서 사용하는 아이템 레벨의 개념을 도입하고 던전을 아예 단계별로 딱딱 구분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템 레벨이 입장 기준이 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공격대 찾기 등에서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단계별로 깔끔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1단계 던전에서는 1단계 아이템이, 모든 3단계 던전에서는 3단계 아이템이 나옵니다. 각 단계마다 나오는 아이템 세트가 정해져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나 던전에 따라 다른 아이템은 아예 찾아볼 수 없죠.

매우 단순한 구조지만 질리지는 않습니다. 단계가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고, 단계별 아이템 성능차이도 엄청나거든요. 아이템 하나만 바꿔도 성능 차이가 확확 느껴지고, 솔로던전부터 파티던전까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많다 보니 늦어도 2~3주면 단계를 하나씩 넘어갈 수 있습니다.

덕분에 최고레벨 이후에도 강해지는 재미를 부여하죠. 예를 들어 3단계 아이템을 몇 개만 착용해도 1단계 던전은 졸면서도(!)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죽을 일이 없습니다.

물론 다양한 아이템을 취향에 맞게 조합하는 재미는 그만큼 적습니다. 시스템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단점이죠. 그러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습니다. 기존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방식의 ‘주간 던전 공략 횟수 제한’과 ‘아이템 레벨’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 장비를 바꿔나가는 확실한 재미를 주는데 성공했으니까요.

1단계 아이템과 4단계 아이템의 차이. 숫자만으로도 거의 2배의 차이가 납니다. 단계가 오르는 속도도 빨라서 최고 레벨 이후도 매주 강해지는 폭풍성장을 느낄 수 있죠.


힐러가 없는 던전 플레이,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다

 

던전 플레이도 독특합니다. <에오스>에는 힐러가 없습니다. 대신 파티원 전원이 붕대와 물약 주문서를 이용해 힐러 역할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 덕분에 독특한 던전 파티 플레이가 만들어 집니다. 장점도, 단점도 확실하죠.

 

전투 중에는 탱커까지 5명 모두가 회복을 담당하는 만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전멸하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탱커가 위험한데 아무도 회복 주문서를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다음 공격이 날아오는 상황에서 모두 회복 주문서가 쿨타임인 경우 등이죠.

 

대신 호흡만 잘 맞는다면 오랜 시간 힐러를 구해야 하는 부담 없이 파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는 대미지를 딜러와 나누는 스킬을 이용하거나 잠시 다른 유저가 공격을 끌어주는 등 다른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의 파티플레이도 가능합니다.

 


모두 뭉쳐서 때립니다. 회복역할을 어떻게 맡을지만 잘 정해 놓으면 재미있는 플레이가, 여기서 논란이 생기면 지옥이 시작됩니다.

모든 캐릭터가 자체적으로 힐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솔로 던전에서 '제대로 된' 보스전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에오스>의 솔로던전은 길면 약 5분의 보스전을 치르게 되는데요, 물약을 통합 회복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디자인입니다.

실수를 하면 대폭 체력이 깎이고, 수 차례 실수를 하면 곧바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체력을 비축될 때까지 회피에 초점을 맞춰 수비적으로 전투를 운영할 수도 있죠. 다른 MMORPG의 솔로던전에 비해 확실히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합니다.

물약이라는 부분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저도 많지만 물약에 쿨타임이 있고 회복속도도 더뎌서 소위 말하는 물약게임들(…)처럼 돈을 쏟아 붓는다고 모든 던전을 깰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약을 통한 회복속도보다 피해를 덜 입거나, 서서히 체력이 줄어들더라도 죽기 전에 보스를 처치해야 하죠.


3분에 가까운 전투 중. 심지어 일정 체력 이하로 떨어지면 새로운 패턴도 등장합니다. 혼자서도 제대로 된 보스전을 맛볼 수 있죠.

던전 보스들도 단순한 광역공격부터 점프를 뛰어서 피해야 하는 지진, 이동경로에서 벗어나야 하는 돌진, 정해진 시간 내로 특정 물건을 부수거나, 한데 뭉쳐서 피해를 받아야 하는 등 어지간한 MMORPG의 패턴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한 번에 4명 이상이 공격을 캔슬시켜야 하거나, 보스가 없고 대신 지정된 체력으로 몬스터 무리를 벗어나야 하는 등의 독특한 구성도 준비돼있습니다. 참고로 보스의 모든 패턴을 중앙에 경고문으로 띄워줍니다. 간단한 대책도 알려주죠. 초심자도 아무것도 몰라서 죽는 일은 없습니다. 앞서 말한 <에오스>의 다른 특징들처럼 약간은 독특하지만 어렵지는 않는 방식입니다.

다만 던전의 레벨디자인은 조금 아쉽습니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같은 단계에서 쉬운 보스와 어려운 보스가 확연히 구분되고, 쓸데 없이 긴 구간들이 많죠. 특히 일부 던전에서는 하도 많은 몬스터를 처치해야 하는 탓에 탱커가 몬스터를 유인하고 그 사이에 다른 파티원이 중간보스까지 달리는 ‘달리기 파티’가 유행할 정도입니다.

던전 입장 횟수도 제한돼서 콘텐츠 소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만큼 의미 없는 구간은 조금 더 생략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솔로무한던전은 그나마 15분 내외로 끝납니다. 하지만...

일반 몬스터로만 가득한 구간을 20분 이상 진행하다 보면 슬슬 지겨워집니다.


무난함이라는 장점 안에 갇힌 단점들


지금까지 <에오스>의 무난함 안에서 탄탄한 기본기가 제공한 장점들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말을 뒤집으면 이는 <에오스>의 단점도 됩니다. 평범함 속에서 기획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게임 방식입니다.

 

일단 이미 인기를 얻은 시스템을 조심스럽게 섞는 방식이다 보니 <에오스>만의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콘텐츠를 둘러봐도 어디선가 본 것들입니다. 약간은 다르지만 이건 정말 다르다는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미묘한 수준이죠.

 

조금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에오스>가 재미있을 유저는 많아도 <에오스>를 최고의 게임으로 생각하는 유저가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과감한 도전정신이나 참신함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죠.

 


플레이 방식에 집중하고, 스토리 자체가 가볍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점이 됩니다.

여기에 숫자에 집중한 기획까지 선보이다 보니 운영도 아슬아슬합니다. 서비스 초기의 ‘천골사건’은 차치하더라도, 조금만 설계가 잘못돼도 콘텐츠의 목적성이 사라지거나 밸런스가 붕괴되기 일쑤죠.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전장 업데이트입니다. 전장 매칭 방식을 바꾼 것만으로도 전장 아이템을 최소 1단계까지 모은 유저가 아니라면 정상적인 전장 플레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죠.

지금은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했지만 던전을 돌수록 적자가 쌓이는 탓에 최고 레벨 직후에 게임 플레이를 사실상 포기하는 유저들도 많았습니다. 길드 단위의 전쟁터인 발할라가 효율 문제로 버려지면서 길드 콘텐츠도 덩달아 버려지고 있죠.

게임 내내 부족한 가방도 단순한 소지공간 부족이 아니라 요리나 퀘스트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콘텐츠들이 지나치게 유기적이다 보니 어느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게임 전체의 문제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만약 <에오스>가 ‘오묘한 밸런스’가 아닌, 신선한 전투방식이나 기발한 게임성을 내세운 게임이라면 밸런스가 경제가 다소 어긋나는 것도 감안해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밸런스 자체를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면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업데이트로 제대로 망가진 전장. 다행히 19일에 다시 업데이트를 진행하죠.


신의 한계를 확실히 아는, 제대로 ‘준비된’ RPG


<에오스>의 리뷰를 쓰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작성한 내용의 절반 정도는 다른 게임에 이미 ‘당연히 있는’ 시스템이니까요. 특별한 장점을 내세우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에오스>는 각양각색의 콘텐츠를 붙이면서 ‘모난 구석 없이’ 모든 콘텐츠를 둥그렇게 잘 깎았습니다.

실제로 엔비어스의 김준성 대표는 OBT 이전부터 개발과정을 설명할 때 ‘신도시’를 예로 들었습니다. 크고 멋진 건물 1~2채가 들어와 있는 신도시보다는 편의점부터 병원, 음식집, 카페까지 작더라도 모든 게 갖춰져서 돌아가는 곳이 제대로 된 도시로 커 나갈 수 있다는 뜻이죠.

<에오스>는 김준성 대표의 말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두루 갖춘 유기적인 신도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콘텐츠의 구성부터 배치, 밸런스 디자인까지. 이미 몇 년은 서비스한 게임을 보는 듯합니다. 그만큼 각 부분이 원숙하게 다듬어져 있죠. 구석구석 신경 쓴 부분도 많고요. 그냥 이 콘텐츠가 재미있을 듯하니 붙여 보자는 수준은 전혀 아닙니다.


얼음과 평원. 2개의 맵을 하나씩 모두 깨는 것과 양쪽을 오가며 플레이하는 건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동선도 아주 매끄럽죠.

게임을 돋보이게 만드는 눈속임도 능숙합니다. 예를 들어 <에오스>의 맵은 작은 여러 개여 조각으로 쪼개진 방식인데요, 그 덕분에 중요하지 않은 통로 구역이나 건물 내부 등은 그대로 붙여 놓은 경우가 많죠. 그래도 크게 위화감이 없습니다.

레벨업 과정도 1개의 지역을 모두 끝내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2~3개의 지역을 이리저리 오가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배경이 계속 달라진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되죠. 콘텐츠를 풍부하게 보이기 위한 눈속임입니다.

콘텐츠의 분량이나 유기적인 연결, 게임 내의 생태계 구성 등을 본다면 준비된 MMORPG라는 표현을 쓸 자격은 차고 넘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다듬어 놓은 공식을 지금 시대에 맞춰서 정말 잘 고쳤어요. 이건 진심입니다.


생각보다 그래픽은 괜찮은 편입니다. 맵 재활용과 과도한 이펙트 등을 통한 눈속임의 결과입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신선함을 요구하는 유저층에게는 크게 어필하기 어렵습니다. 익숙함에 플러스 알파(+@)를 더한 느낌이랄까요? 리뷰에서 수차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언급했는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역시 기존 MMORPG의 친숙한 콘텐츠를 잘 섞어서 블리자드 특유의 양념을 친 MMORPG입니다.

하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유저를 확실히 붙잡아 둘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잘 짜인 스토리와 호드와 얼라이언스로 나뉜 소속감, 다른 게임보다 확실히 앞서가는 던전 및 레이드 등이죠. <에오스>에는 그런 요소가 없습니다.

유기적으로 짜인 신도시도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도시만의 장점을 보여질 필요가 있습니다. 절묘한 밸런스와 레벨 디자인으로 유저들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면, 이후에는 단순히 게임이 없을 때 할 만한 게임’에서 벗어나 유저들을 계속 붙잡아 둘 수 있는 ‘<에오스>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외형보다 내실을 갖춘 MMORPG라는 점, 플레이할수록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점, 다만 운영을 통한 문제가 지나치게 게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에서 8.5점을 주며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참고로 디스이즈게임의 리뷰 점수는 마케팅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게임의 재미에만 점수를 매긴 결과입니다.


세세한 배경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부족합니다. 매력적인 NPC도 없고, 기억에 남는 퀘스트도 없습니다. 


갑옷을 입은 주요 인물의 이름은? 농담 삼아 20여 명의 길드원에게 물어봤지만 단 1명도 기억을 못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