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컴파일하트에서 개발한 PS Vita용 SRPG <성마도이야기>의 ‘한글화’(현지화) 버전이 19일 국내에 발매됐습니다. 이 게임은 ‘마니아 취향에 절대로 발매되지 않을 것 같은 타이틀을 한글화해서 유통하는’ 회사로 이름이 알려진(그래서 바로 그 마니아들 사이에서 정말 고마운 회사라고 불리는) CFK가 선보이는 최신작이면서, 국내 PS Vita 시장에서 흔치 않은 ‘한글화 SRPG’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성마도이야기>는 ‘명작’ 내지는 ‘대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PS Vita를 갖고 있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겉모습만 보면 캐주얼게임 같지만…
<성마도이야기>는 일단 공식적으로는 과거 컴파일에서 개발해 인기를 끌었던 RPG <마도이야기>(마도물어, 魔導物語)를 계승하는 게임입니다.(컴파일이 문을 닫은 후 <마도이야기>의 판권을 획득한 회사가 바로 컴파일하트입니다.)
하지만 <마도이야기>가 국내에서 그렇게 인지도가 높았던 타이틀도 아니고, 그 최신작이라는 <성마도이야기>가 개발 단계에서부터 큰 기대를 받아온 ‘대작’이나 ‘블록버스터’ 타이틀도 아니기 때문에, 국내 유저들의입장에서는 그동안 이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나 이미지만 살펴보면 누구나 <성마도이야기>를 ‘굉장히 쉬운 캐주얼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공개된 이미지나 스크린샷에서 드러나는 비주얼과 분위기는 ‘밝고 가볍다’는 느낌이고, 캐릭터들 역시 동글동글하고 귀엽죠.
“전설의 마도 카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푸푸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는…”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진지함’과는 대략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 수준의 거리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출시에 앞서 리뷰용 게임카드를 받아 플레이한 저 역시, 처음에는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성마도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휴대용 게임기인 PS Vita용 타이틀이겠다, 가볍게, 또 쉽게 즐길 생각이었죠. 하지만, 약 2시간이 지났을 때 제가 외친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속지 마, 이 게임 쉽지 않아!”
은근히 하드코어한 <이상한 던전>류 RPG
<성마도이야기>는 ‘던전탐험’을 테마로 하는 ‘시뮬레이션 RPG’(SRPG)입니다. 플레이어는 마을에서 이벤트를 감상한 다음 던전으로 이동해 공략에 나서게 되죠. 성공적으로 던전을 정복하면 다음 스토리와 이벤트가 나오고, 다시 장비 등을 점검하고 나서 새로운 던전에 도전하는… 그런 방식의 SRPG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어렵기로 유명한 장르인 ‘로그 라이크’,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중에서도 <이상한 던전>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주인공 ‘푸푸르’는 매번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육성한 레벨이 ‘리셋’됩니다. 하나의 던전을 클리어할 때 레벨을 20까지 올렸다고 해도, 다음 던전으로 이동하면 ‘얄짤없이’ 레벨이 1로 되돌아가죠.
레벨이 매번 리셋되기 때문에 ‘레벨 노가다’가 의미가 없고, 랜덤성과 전략성이 중요합니다.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정말 공포스러운(?) 점은 주인공 푸푸르가 ‘던전 공략 도중 사망한다면, 던전 공략 중에 얻은 모든 아이템과 골드가 0이 되어 던전 1층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저장(세이브)을 자주하고, 죽으면 죽기 직전의 저장을 불러오면(로드) 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세이브 슬롯이 오직 하나면서 게임 플레이 도중에는 이전 시점의 저장을 ‘불러오는’ 기능이 아예 없습니다.
즉, 뒤는 없습니다. 던전 공략 중에 죽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레벨 1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합니다.
20층짜리
던전에서 3~4시간을 들여 마지막 층까지 도달했다고 해도, 최종 보스에게 죽으면 착용 장비를 빼고 그동안 얻은 아이템과 골드를 모조리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다행히 장비 중인 아이템을 포함해 일부 아이템은 던전 공략 중에 죽어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와 같은 게임성은 ‘편안함을 강조한’ 최근의 게임계 흐름에서는 약 170도 정도 비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바일 RPG에 익숙한 유저는 물론이고, 웬만큼 콘솔게임에 익숙한 마니아라고 해도 사전 정보 없이 이 게임을 접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하드코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요즘 나오는 ‘쉬운 RPG’를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성마도이야기>를 시작했다간, 보스 공략 직전에 사망해서 3시간 이상 진행해 획득한 결과를 모두 날려버리고, 멘탈이 깨지고, 자기도 모르게 PS Vita를 집어던지고, 결국 신형 PS Vita를 사게 되고, SCEK가 좋아하고, 대한민국 콘솔 게임계가 활성화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에 도달…하는 일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 정말로요.(-_-;)
<성마도이야기>에는 ‘재기의 미로’라는 던전이 등장합니다. 스토리와는 관계없지만 짧은 구성과 좋은 보상을 주기에 던전 공략 중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면 이 던전을 통해 재기를 노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던전 공략 중 죽어도 장비 아이템은 건질 수 있기 때문에, 장비 아이템의 강화와 성능 향상에 언제나 신경 써서 게임을 해야만 합니다.
긴장감 높은 전투와 아기자기한 시스템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마도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간단한 전투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지만, 던전 공략에 있어서 꽤나 높은 긴장감과 몰입도를 보여줍니다.
‘이동’이나 ‘공격’ 같은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은 1턴으로 계산되고, 플레이어가 행동하면 맵 위의 몬스터가 바로 이어서 행동합니다.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빠르게 던전을 탐험하며 전투를 할 수 있고, 천천히 즐기고 싶다면 또 얼마든지 천천히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냥 실시간 게임 즐기듯 빠른 속도로 캐릭터 이동과 액션을 해도 되지만,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면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고, PS Vita를 집어던지고, 신형 PS Vita를 사고…(이하 생략) 할 수 있기에 후반부에 가면 한 턴 한 턴, 긴장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전투 시스템은 간단하지만 <성마도이야기>는 찾아보면 아기자기한 시스템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꼽을 수 있는 것이 ‘어디서나 카레’ 시스템입니다. 이는 던전 플레이 도중 얻은 재료를 조합해 카레를 만들어 먹으면 일정한 시간 동안 경험치 증가나 스탯 강화 같은 부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인데요, 카레 제조에는 실패할 확률도 있고, 내가 원하는 재료를 적시에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원하는 카레를 시기적절하게 만들게 된다면 꽤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이상한 던전>류 SRPG답게 이 게임은 대부분의 던전이 ‘고정’돼 있지 않고 임의로(랜덤) 생성되며, 던전 플레이 도중 다양한 랜덤 이벤트가 발생하고, 아이템 생성도 랜덤이라 플레이할 때마다 색다른 재미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던전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모으면 카레를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레 제조에도 실패 확률이 있고, 원하는 재료를 항상 모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플레이어의 입장이 되는 주인공 ‘푸푸르’와 함께 모험하는 ‘쿠우짱’입니다. 이 괴생명체(?)는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며 대신 적을 공격하거나, 대신 공격을 맞아주는 등의 보조 역할을 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던져서 먹여주는 아이템을 통해 레벨이 오르고, 특정 레벨에 도달하면 스킬을 배웁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던전을 공략하면서 정말 부지런하게 ‘쓸모없는 아이템’을 쿠우짱에게 던져주게 되죠.
쿠우짱이 얻게 되는 능력 중에는 던전 탐험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도 있고, 쓸모없는, 아니 오히려 방해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어떠한 능력을 얻을지는 철저하게 랜덤이라 이런 면에서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던전 공략 중에 얻는 아이템을 부지런히 쿠우짱에게 먹여야 합니다. 키운다고 꼭 좋은 스킬을 배운다는 보장이 없기에 이것도 긴장감이 넘칩니다.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해 볼 만한 게임
지금까지 은근히 어렵다는 점을 많이 강조했지만, 사실 <성마도이야기>는 ‘못해먹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게임은 아닙니다. 규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초반에는 던전 공략 중에 자주 죽을 수 있고, PS Vita 본체를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 역시 자주 느낄 수 있지만, 요령이 붙는 중반부터는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던전 공략을 즐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유저가 한 번에 보관할 수 있는 아이템의 양에 비해 던전 플레이 중 얻는 아이템의 양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반부를 지나다 보면 ‘내가 지금 던전 공략 게임을 하는 건지, 아이템 정리 게임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귀찮음을 느끼게 되죠.
물론 쓸모없는 아이템은 쿠우짱에게 먹이면 되지만, 아이템을 던지는 행위 자체도, 여러 아이템을 한꺼번에 던지는 기능이 없고 일일이 던져줘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귀찮아집니다.
스토리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나름 잘 갖춰진 판타지 세계관과 배경설정이 있지만, 이들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 ‘가볍게’ 풀어냈다고 할까요? 최소한 이 게임,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 만큼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굉장히 캐주얼합니다.
이 밖에도 던전의 난이도가 층에 따라 미묘하게 들쑥날쑥하고, 일반 공격에 비해 스킬이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등 밸런스 쪽에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했지만, 그래도 <성마도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보면 무언가 플레이에 치명적인 문제점이나 결격사유가 있는 게임은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의 ‘라이트한’ RPG만 접했던 유저라면 ‘그래, 게임은 원래 이런 맛이지!’라는 느낌으로 도전욕구에 불타오르며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현재 국내 콘솔게임 시장은 어지간한 대작, 혹은 퍼스트파티 타이틀이 아니면 현지화되어 발매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특정 계층에서만 지지를 받는 ‘마니아 게임’, 혹은 이른바 ‘B급 게임’이라고 불리는 타이틀은 현지화는커녕, 국내에 나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죠.
<성마도이야기>는 일본에서 ‘잘나가는 B급 개발사’ 수준의 인지도를 가진 컴파일하트에서 만든 다소 ‘마니아 취향’의 타이틀임에도 불구하고 현지화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것도 PS Vita용 타이틀로요. <성마도이야기> 같은 게임이 좋은 성과를 거둬야 국내 콘솔게임 시장도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취향이나 게임성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성마도이야기>는 ‘못 만든’ 게임은 절대로 아닙니다. PS Vita를 갖고 있다면 사서 즐겨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CFK에서 유통한 게임답게 번역이나 한글화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메인 콘텐츠인 던전 공략 외에도 찾아보면 곳곳에 즐길 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