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를 돌아보면 많은 사랑을 받은 게임일 수록 후속작이 갖는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을 거에요. 그만큼 기대감도 크다는 의미니까요. 벌써 서비스 11년을 맞이한 <메이플스토리>의 후속작 <메이플스토리2> 그랬을 테지요.
<메이플스토리2> 알파테스트 1일차 첫인상은 한 마디로 ‘참 불친절하다’였어요. 둘째 날은 반복 전투에 지쳐 ‘지루하다’라는 생각도 했죠. 셋째 날이 되자 이 게임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메이플스토리2>가 강력하게 내세운 ‘유저 제작 콘텐츠’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죠.
<메이플스토리>가 지난 10년의 넥슨을 이끌었듯, 넥슨의 향후 10년을 이끌어야 할 <메이플스토리2>는 20년 전 경험했던 재미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 재밌습니다. 다소 평범하고 뻔한 전투와 스토리지만,밤을 새워 맵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던 그 시절의 게임처럼 말이죠.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닥치고 사냥!” 전작 만큼 더딘 성장 속도, 왜일까?
<메이플스토리2>의 성장 방식은 전작과 같습니다. 10레벨까지는 ‘초보자’ 캐릭터로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다루고, 그 이후는 전직을 통해 8개 직업 중 하나를 택하면서 본격적인 플레이가 시작되는 거죠. 초보자 단계에서는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만, 전직 이후에는 눈에 띄게 성장이 더뎌집니다. 21레벨에서 알파테스트 만렙이었던 25레벨까지 꼬박 하루가 걸릴 만큼 말이에요.
11년 전 출시된 <메이플스토리>에서 ‘성장 속도’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될 때마다 “성장 속도 n배 증가!”를 외쳤을 만큼 플레이어의 진을 빼놓는 엄청난 ‘사냥 노가다’를 보여 왔으니까요.
<메이플스토리2>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다음 스테이지의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는 이전 스테이지의 스테이지를 모두 마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커닝 인터체인지’에서 ‘브로커 랄프’로 이동하려면 전투를 통해 열쇠를 획득하라는 퀘스트를 마쳐야만 하거든요.
이번 테스트에서는 별도의 반복 퀘스트 없이, 레벨에 따라 퀘스트의 수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21레벨 퀘스트를 모두 마치면 22레벨이 될 때까지 ‘꼭 해야 할일’이 없는 겁니다. 플레이어 다음 레벨로 성장하기 위해 ‘닥치고 사냥’을 해야 했죠.
21~23레벨 꿀 사냥터는 ‘록펠러타워 건설 현장’ 입구. 집도 없을 시절, 아이템도 버릴 때가 많았죠.
해야 할 것은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많고 , “여기저기 찔러보는 추억의 재미”
이제 알파테스트를 진행하는 게임에서 ‘밸런스’를 지적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메이플스토리2>의 이런 경악스러운(?) 레벨 간 간극은 단순히 밸런스 조정 실패가 아닌, 개발자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때깔’은 21세기 게임인데, 게임을 풀어 나가는 문법은 20세기 패키지 시절 즐겼던 PRG와 닮았거든요.
먼저 불친절한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월드맵과 미니맵에서 퀘스트와 관련해서 표시되는 건 받아야 하는 장소뿐입니다. 해당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곳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죠. 심지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텍스트를 통해 ‘어느 지역’이라는 정도는 안내를 해주지만요.
결국 플레이어는 전 맵을 이곳 저것 둘러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쉬울 리가 있나요? 가는 곳곳마다 몬스터들이 덤벼드는 것은 물론이요, ‘나무꾼의 언덕’의 ‘버려진 납골당’과 같은 던전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데다가 구석에 숨겨져 있어서 꼼꼼하게 뒤져 봐야 한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던전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보물상자에요. 절벽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고, 몬스터나 오브젝트가 가리고 있기도 하죠. 폭포수 뒤에 감춰져있는 보물상자는 비밀 통로를 찾아야만 열어 볼 수 있죠.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냐고? 그럴리가요. 전투를 하며 오브젝트를 부수거나, 길을 헤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당연히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죠. 보물 상자에는 골드뿐만 아니라 해당 던전 레벨에 상응하는 아이템이 렌덤하게 등장해 일반 몹 사냥과 같은 보상을 얻는데도 말이에요.
시점 전환이 안되기 때문이 지나치기 십상. 하지만 이정도는 애교죠.
레벨 성장이 극단적이게 느린데도 불구하고 다음 퀘스트에서 수행해야 할 액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쉐도우 게이트’ 맵에서는 ‘연구조교 다니엘’이 몬스터를 제거해 ‘쉐도우 DNA’를 모아 오라는 퀘스트가 등장하는데요. 퀘스트를 받기 전 해당 맵에서 몬스터를 사냥해도 ’쉐도우 DNA’를 획득할 수 있어요. 나중에 퀘스트를 받으면 해당 액션을 인정도 받고요.
이런식으로 획득하는 아이템들은 단순히 퀘스트용이 아니라,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죠. ‘쉐도우 DNA’도 ‘적중 및 회피10 감소’를 할 수 있는 포션인데요. 예고 없이 사냥 도중에 획득하게 된 아이템이다 보니 굳이 퀘스트가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사냥을 하며 다니엘을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종합해 보면 <메이플스토리2>는 ‘꼭 해야 할일’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담았어요.‘유저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임’을 외치고 있는 오픈월드 게임 <메이플스토리2>에게는 직선형의 ‘성장’보다는 메이플월드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확장’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굳이 오픈월드 게임의 대표적인 <엘더스크롤>이나 <스카이림>과 비교하자면 <메이플스토리2>는 이동부터 제약이 많은 게임이에요. 하지만 존(Zone)에서 존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에서 유저들에게 많은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유저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도록 말이죠.
분명 초반엔 불친절한 네비게이션에 ‘짜증’이, 중반엔 끝도 없이 반복되는 노가다 사냥에 ‘지루함’이 있었어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속속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콘텐츠 덕분에 ‘재밌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지난날 같은 던전을 2시간, 3시간씩 뒤지고 다녔던 것처럼 말이죠.
콘텐츠 외에도 케이블카부터 수레, 타이밍에 맞춰 건너야 하는 함정 다리 등 다양한 기믹들이 배치되어 있어 <수퍼마리오>같은 ‘어드벤처 게임’의 기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이플스토리2>가 온전히 패키지 RPG와 같을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는 ‘엔딩’이 있냐 없느냐 일거에요. 패키지 게임의 경우 엔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울 수록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되죠. 그 난이도가 정점을 찍었을 즘이면 게임이 끝나고요.
하지만 <메이플스토리2>는 아마도 엔딩이 ‘없을’ 게임입니다. 5년, 10년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맵은 늘어나고, 만렙도 올라가겠죠. 이 때, 25렙이 끝인 알파테스트와 같이 매번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분명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유저와 함께 만드는 게임’이라는 슬로건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한계점에서 새로운 놀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던전 등의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도, 또 자신이 만든 던전을 공유해 함께 플레이하는 것도 모두 개발자들이 줄 수 없는 새로운 재미가 되겠죠.
단순한 조작으로 개성은 충분한 커스터마이징
지금까지 공개된 유저 제작 콘텐츠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과 건물 꾸미기입니다. <검은사막>이라든지 <블레스>과 같이 피부 주름까지 조절하는 디테일은 없지만, 플레이어의 개성을 살리며 놀 거리는 충분합니다.
얼굴의 경우 눈·코·입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모양이 있지만, ‘마스크’를 통해 원하는 모양을 그릴 수도, 사진 등을 오려 붙일 수도 있어요. 상하의나 장갑·신발 등 의상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꾸민 외형은 단순히 아바타가 아니라 전투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 잘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집은 단순히 ‘보여 주기’위한 게 아니라 여러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메이플스토리2>는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꼭 입구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요.(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돈을 내고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요.) 어느 곳에 있든 ‘귀환’ 버튼을 누르면 바로 집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10분 안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요.
또 집 안에는 장비나 의상을 넣을 수 있는 수납 공간을 배치하기도 합니다. 마을에는 여느 MMORPG처럼 창고가 있지만,그 외 별도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사냥이 끊이지 않는 게임이기에 36개의 인벤토리는 분명 좁았거든요.
<메이플스토리2>는 기본적으로 정육면체 블록 형태로 구성돼 있는데, 이 블록도 직접 꾸밀 수 있습니다. 캐릭터 외형처럼 직접 그리거나 그림 등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아파트와 같이 실내만 소유하는 집 외 대지를 구입해 건물부터 마당까지 꾸밀 수 있는 공간의 경우는 캐릭터 외형만큼 자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기 때문에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발록은 여기서도 발록! 의외의 재미 ‘전투’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해 본 사람이라면 전투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을 거에요. 3D 그래픽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은 만큼 보는 맛은 있겠지만, 어느 수준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지는 예상하기 어려웠죠. 더구나 지난해 <던전스트라이커>가 SD캐릭터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액션’을 보여 줬고요.
기대치가 낮아서였을까요? <메이플스토리2> 전투, 참 깨알 같은 재미있습니다. 스킬은 심심하지 않을 만큼 이펙트에 적절한 화려함이 있습니다. 장비의 종류와 데미지 수준에 맞는 적절한 사운드도 들어가 있고요. 기본적으로 모든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인식하고 공격하는 ‘애드’(Add)가 되기 때문에, 몰아서 휩쓸어는 시원스러운 맛도 쏠쏠하죠.
일반적으로 논타겟팅 게임에서 몬스터애드는 플레이어의 전투를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이지만, <메이플스토리2>는 충분히 피하고 도망갈 수 있도록 했어요. 25레벨까지 등장했던 모든 몬스터가 말이죠. 캐릭터와 몬스터의 레벨 차이가 2~3 정도 차이가 나더라도 2성 장비로도 어렵지 않게 싸울 수 있을 정도였지만요. 즉, 전투 자체의 난이도는 낮추되 몬스터의 수를 늘려 쓸어 잡는 재미를 내세운 거죠.
도망가든, 싸우든 모든 건 플레이어의 몫이지만 이렇게 정신 없이 싸우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몬스터들이 섞이면서, 아직 받지 않은 퀘스트를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만들어요. 생각하지 못한 아이템을 보상으로 얻으면 전투에 더 몰입하게 되고요.
또 특정 구간에는 중간 보스 몬스터들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중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어마어마한 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중간 보스 몬스터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채널마다 시간을 달리 리젠됩니다.
따라서 중간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때 마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틍정 채널에 몰려 파티를 맺지 않아도 파티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보스 몬스터는 10명 이하의 파티를 꾸려 퀘스트를 통한 인스턴스 던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호루스’, ‘바야르’ 그리고 ‘발록’까지 익숙한 인물이 등장하죠.
보스급 몬스터는 정육면체 블록을 활용한 장판 공격은 물론, 위에서 퍼붓는 광역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난이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반 던전에 익숙해진 유저들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에요. 다소 지루할 법한 반복 사냥에 ‘전략’과 ‘전술’이 필요해지는 시점이죠.
다만 <메이플스토리2>만의 액션이 없다는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풍선이나 독수리와 같이 탈것을 이용한 전술이라든지, 기믹을 활용한 공격 방법과 같이 말이죠. 이런 한계도 유저 제작 콘텐츠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완전체의 <메이플스토리2>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