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돈”. 이 두개의 마법 같은 단어는 니폰이치의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를 관통하는 콘셉트이자 게임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어다.
여기에 PS Vita의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직접 만지고 문지르는 조작이 입에 오르내리며 항간에는 궁극의 PS Vita 타이틀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실 이 말은 반은 사실(문지르는 것)이고, 반(궁극의 게임)은 사실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언뜻 생각하기에 배경의 설정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솔직한 내 첫 감상은 어린 시절 야한 비디오를 보겠다고 낙원상가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왔더니 정작 안에는 9시 뉴스데스크에서 <뽕2>가 개봉됐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던 느낌이랄까?
즉 야한 게임은 아니다. 적어도 비주얼 적으로는 말이다. 다만 대사의 톤이나 전체적인 배경을 본다면 개인의 관점에서는 야한 게임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마케팅 문구를 통해 <동급생>, <하급생> 또는 <귀작>을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이 게임을 접하고 나서 1시간 이내에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2시간을 버틸 수 있다면 어느 순간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그랬다.”
■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야한 게임인가? “야할 수도 있는 게임이다”
처음부터 꿈과 희망(?)을 날려버려서 게임의 구입을 미루었다면 잠시 다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을 법 하다. 솔직히 모두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외치는 소니의 플랫폼에서 나온 게임이 야하면 얼마나 야할까를 따져본다면 어느 정도 수위는 예상했을 터.
그렇다면 아예 작정하고 게임의 평가를 한다면,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졸작, 또는 망겜일까? 단순히 야하지 않아서? 엔딩을 모두 본 입장에서 말한다면 망겜도 아니고 졸작도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분명히 재미를 느꼈고, 덕분에 밤에 잠을 줄여가며 엔딩을 보기도 했다.
이미 알다시피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1년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가진 주인공이 유곽에서 만난 여인을 계속(?) 만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한번 만난 이후 10일안에 또 만나러 와야하고, 만나는 약속 3번을 어기면 게임오버로 끝이 난다.
만날수록 정을 나누고, 정을 나눌수록 PS Vita의 터치스크린에 접하는 손가락은 점점 노골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 게임은 분명히 성인용이 맞다. 그런데 게임의 주 목적은 여성을 만나고 터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게다가 3명의 여주인공 중 한 명을 선택하면 나머지 2명은 만나볼 수도 없다. 즉 멀티 공략은 불가능하고 게임 전 꿈꾸던 하렘 건설은 처음부터 의도되지도 않았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지금 이걸 하고 있지?”라는 의문.
그리고 3일동안(실제 플레이는 15시간) 진행해서 엔딩을 보고 말았다. 어? 이쯤 되면 이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재미가 없지는 않는데, 왜 재미있는지 따져보면 뭐라고 이야기 하기 힘들다. 아마 전체적인 게임의 구성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굳이 야한 정도를 말하자면, 지하철이나 가족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는 하기 힘들 정도의 수위라고 할 수 있다. 화면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그 화면을 터치하고 문지르는 내가 부끄러워서...
■ 그렇다면 RPG 인가? RPG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야한 분위기와 나름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야한 게임은 아니다. 던전에 들어가서 광물을 채집하고 이를 위해서 던전 안의 몬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동료를 모으고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 이쯤 되면 “RPG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RPG는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동료는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시나리오상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찾아 온다. 주인공은 대장장이답게 동료들의 무기를 최신식으로 만들고 강화해서 제공해주면 된다. 그리고 남는 광물을 이용해 팔아서 이윤을 남기면 그뿐.
던전은 같은 던전이라면 광물이 나오는 장소, 미로 등은 변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몬스터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즉 던전 탐험은 <오오에도 블랙스미스>의 핵심 콘텐츠가 아닌 미니게임의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전투나 던전 탐험의 결과 동료의 친밀도는 높아지지만 레벨업이라는 개념은 없다.
최강의 장비를 얻기 위해서 던전 여기저기를 탐험하고 특정한 몬스터를 찾아서 해치우는 것도 아니다. 제작을 위해서 대장 스킬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상위 아이템이 등장하고 이를 만들고 강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 던전을 탐험하면 된다. 즉 커스터마이징의 개념도 희박하다.
장비 제작은 재료만 있으면 된다. 다만 여기서 장비의 가치와 효율을 위해서 강화를 해줘야 하는데, 이는 플레이어의 스킬이 필수적이다. 쇠를 달구고, 마치 리듬액션처럼 망치질 포인트를 타이밍에 맞게 터치해야 한다. 쇠의 온도와 망치질의 타이밍에 따라서 강화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그렇다고 어려운 건 아니다. 약간의 센스와 익숙함이 더해지면 강화를 성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이 아이템 제작과 강화도 일종의 미니게임 정도의 콘텐츠이다. 그리고 남은 재료와 장비를 팔아서 이윤을 남겨 돈을 모으면 된다. 이 게임에서 돈은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핵심 요소다.
이렇게 남긴 이윤으로 무엇을 하게 될까? 당연히 이 게임의 목적인 유곽을 찾아가서 자신이 찜(?)한 여성의 호감도를 올리고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 된다. 즉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와 “그렇기에 돈을 모은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던전에 들어간다”, “장비를 만들고 강화하기 위해서 퀘스트를 진행한다”라는 4가지의 핵심 축이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를 플레이하는 하나의 패턴이다.
■ 재미? 무슨 재미요소가 있었지? “아! 재미는 이 안에 있다!”
전체적으로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돈을 모아야 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 게임 안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한다.
그 일이라는 것이 마을에 들러서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처리해주거나, 사람들의 호감도를 올려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고, 또 던전을 탐험하며 재료를 모으는 것이 전부다. 소소한 재미로 도박장도 있지만 없어도 무방한 콘텐츠다.
던전 탐험은 마치 레트로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 약간의 요행만 있다면 쉽게 가능한 무기강화, 던전을 탐험하기에 당연하게 생기는 재료와 이를 이용해 해결하는 각종 퀘스트는 하나하나가 큰 재미를 주기보단 잔 재미를 제공한다.
단,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라는 게임 전체의 재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시간의 개념이다. 위에서 언급한 콘텐츠의 흐름을 하나의 턴으로 만들어 주는 10일에 한번 이라는 유곽 방문, 그리고 365일이라는 시간 제한은 마치 하나의 재료를 관통해 요리로 만들어 내는 모듬꼬치의 꼬챙이 같은 역할을 한다.
유곽에 방문해 여주인공을 만날 금액을 모으는 행위(당연히 돈이 모자라면 만날 수 없다)를 위한 10일이라는 시간. 배드엔딩이건 노멀엔딩, 또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 365일이라는 시간 안에 플레이어는 그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재미를 완성 시켜주는 요소가 바로 스토리. 완벽 한글화된 스토리는 이 게임의 엔딩을 볼 때쯤 그 가치가 빛난다. 뭐랄까, 냄비 안에서 완성된 요리를 멋들어진 그릇에 담아내는 플레이팅의 요소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지도.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재미를 알기 위해서는 나름 스토리를 중반부 이상까지 진행해봐야 한다는 점. 즉 더 야한 화면을 보기 위해, 그리고 만지기(?) 위해서 스토리보다는 돈을 모으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기에 눈치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무난하다. 아니 개인 취향에 따라서는 심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엔딩의 분기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감정도 달라진다. 3명 모두의 엔딩을 본다면 스토리 중간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여성의 결과도 무덤덤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굳이 여기서 스토리를 말하는 건 앞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유저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굳이 다루진 않겠다. 다만 한글화가 준 <오오에도 블랙스미스>의 최대의 재미가 바로 스토리라는 것 만큼은 인정해줄 수 있다.
■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전형적인 타깃층을 노린 게임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엔 콘셉트나 게임의 배경이 애매하다. 그렇다고 파고들만한 요소가 있는 게임도 아니다. 한글화된 시나리오는 좋지만 그 길이가 짧다. 던전이나 아이템 제작도 단순한 편이다.
이 게임을 평가하자면 한마디로 “오묘하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재미있게 즐겼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추천하자니 “과연 다른 사람도 나처럼 재미를 느낄까?”라고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내가 닭발을 잘 먹는다고 해서 남들도 잘 먹으란 법이 없으니까. 게다가 PS Vita를 플랫폼으로 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각 콘텐츠의 깊이와 분량은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2%씩 부족함을 느낀다. 물론 한글화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전형적인 마이너게임으로 분류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성우의 목소리 연기만큼은 <오오에도 블랙스미스>가 내놓을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농후한 목소리의 연기는 비록 비주얼로는 할 수 없었던 콘텐츠를 뇌내 망상으로 이어가게 할 수 있는 수단일 정도다.
사실 <오오에도 블랙스미스>는 각 시스템이 오묘하게 엮여있는 시뮬레이션이다. 자신의 명성치에 따라서 제작 아이템의 판매여부가 결정되고, 행동 여부에 따라서 기교와 명성, 운, 몸의 상태 등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서 행동과 수익의 여부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행동은 시간의 제한도 받기에 나름 신경을 전체적인 플레이의 흐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던전 탐험의 동료도 각 능력치에 따라서 특징이 있고 목표에 따라서 동료의 조합도 유저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시해도 될 정도다.
<오오에도 블랙스미스>에 대한 나의 평가는 망작도, 졸작도, 야한게임도, RPG도 아닌 독특한 재미를 준 ‘오묘한 게임’이다. 적어도 한글화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평균은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물론 이 게임에 재미를 느낀 내가 오묘한 취향을 가진 사람 일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하진 않겠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