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스릴이 있는 <모두의 마블>? 최근 플레이 한 <주사위의 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딱 이런 느낌입니다. <주사위의 신>은 지난 15일 출시된 <블루마블>류 보드게임입니다. 투자나 스킬 등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한방 싸움의 묘미를 살린 작품이죠. 한 판, 한 판의 재미만큼은 유사 장르 중에선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이러한 개개의 재미와 달리, 출시 1주일이 지난 지금은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게 되더군요. 왜 그랬던 것일까요? 그간 체험한 <주사위의 신>을 되돌아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주사위의 신> 홍보 영상
■ 스킬이 있는 <모두의 마블>
<주사위의 신>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스킬 있는 <모두의 마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 틀은 다른 <블루마블>류 게임과 같습니다. 말판을 돌며 내 땅을 늘리고, 상대에게 통행료를 받아 파산시키면 승리하는 방식이죠.
게임은 여기에 ‘스킬’로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주사위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덱과 스킬 카드로 운영과 선택의 재미를 주려 한 것이죠. 유저는 게임에서 최고 9장의 스킬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 손에 가질 수 있는 3장을 미리 지정하고, 다른 카드는 4턴마다 임의로 받는 식입니다.
스킬 효과는 다양합니다. 이동 주사위의 주사위 개수나 눈을 조종할 수도 있고 지정한 캐릭터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도시 통행료를 몇 배로 증가시키는 스킬, 도시를 쇠퇴시키거나 도시의 소유주를 바꾸는 스킬 등 다양한 효과가 존재합니다. 유저는 이를 이용해 자신만의 승리 공식을 만들거나 위급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시작 스킬에 주사위를 2번 굴리게 하는 ‘헤이스트’나 임의의 위치로 이동시키는 ‘순간이동’ 등으로 채워 넣는다면 초반부터 빠르게 자기 땅을 늘릴 수 있습니다. 무작위 휴양지로 이동하는 ‘무료항공권’과 내 휴양지의 통행료를 몇 배로 늘리는 ‘휴가계획’ 같은 스킬로 특정 타일을 노린 전략도 한 방법이죠.
스킬로 추격이나 역전도 가능합니다. ‘부동산 강탈’ 카드는 도착한 타일을 통행료도 내지 않고 빼앗아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 줍니다. 만약 유저가 자신의 타일 위에 있다면 ‘포획’이나 ‘끌어당기기’로 상대를 끌어 당겨 강제로 통행료를 뜯어낼 수도 있습니다. 운의 중요성이 강한 <블루마블>류 게임임에도 스킬을 통해 전략을 짜고 운영을 할 수 있죠.
<주사위의 신>은 이렇게 스킬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스킬을 사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뒤에 설명할 ‘제한된 수와 극단적인 통행료 시스템’을 고려하면 한 수, 한 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죠.
우측 상단 ‘통행료 72배 도시’가 내가 2턴 전 인수권 아끼려고(당시는 1단계 도시) 지나쳤던 도시다. 그리고 난 다음 턴에 저 도시를 밟고 파산했다. ㅠ_ㅠ
■ 제한된 수,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만드는 스릴
<주사위의 신>의 본질은 날 선 신경전에 가깝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패의 위력은 강하지만, 패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적고 잘못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죠.
<주사위의 신>은 다른 <블루마블>류 게임과 달리 유저가 행할 수 있는 움직임의 수가 제한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수’죠. 다른 게임에서는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인수지만, <주사위의 신>에서는 인수권이라는 제한된 기회를 소모해야만 쓸 수 있습니다. 아무 보너스 없이 게임 시작하면 인수 기회는 한 번뿐이고 각종 보너스를 받는다고 해도 한 게임에 3번 이상 인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수 기회를 낭비하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하고 말라 죽습니다. 실제로 <주사위의 신>을 플레이 하다 보면 초반이 아무 생각 없이 한 인수 때문에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많죠. 물론 스킬이라는 강력한 패가 존재하긴 합니다만, 이것은 아무 때나 사용하면 손해인 ‘필살기’에 가깝습니다. 초반에 어지간히 앞서 가지 않는 한 후반부 ‘한방 싸움’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는 <주사위의 신>의 기하급수적인 통행료 증가율 때문입니다. 통행료는 처음엔 5천만 원도 넘기 힘들지만(참고로 가장 낮은 시작 금액은 2억 원), 말판을 한 바퀴 돌 때마다 통행료가 2~5배씩 오르고 특정 색상의 말판을 독점하면 여기에 다시 2배가 됩니다.
여기에 특정 말판에 들릴 때마다 통행료가 1.5배씩 불어나고 스킬 카드 한 장에 통행료가 6배까지 불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유저가 해당 타일에 투자하면 다시 통행료가 4배까지 늘어나죠. 뒤로 갈수록 본래 통행료의 몇 십 배씩 지불해야 하는 발판이 맵을 뒤덮습니다. 중반만 돼도 인수권이 떨어져 자산 1위도 일방적으로 돈을 뜯겨야 하고, 극후반부가 되면 1위든 4위든 주사위 눈 하나에 바로 파산이죠.
이러한 극단적인 밸런스 덕에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의 연속입니다. 스킬과 인수권이 풍부한 초반에는 ‘아낌없이 투자해 유리한 위치에 서느냐’와 ‘아껴서 뒤를 대비하느냐’로 고민하고, 통행료 부담이 커지고 스킬과 인수권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중반부터는 ‘주사위와 스킬 중 어떤 것으로 상대 도시를 피하느냐’ 고민하죠.
백미는 한방싸움이 되는 극후반부입니다. 이쯤 되면 서로 한방을 노리고 버프란 버프가 다 발동된 상태기 때문에 누구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땅도 적고 재산도 적은 꼴찌는 말할 것도 없고, 땅 많고 돈 많은 1위라도 여기까지 오면 땅 하나만 밟아도 파산이기 때문에 차라리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바랄 정도죠.
<주사위의 신> 최고의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지켜보는 이들은 상대가 어떤 지뢰를 밟을지 두근대며 보고, 주사위를 굴리는 이는 반대로 최악의 수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혹은 어떻게 하면 이걸 피할 수 있을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며 굴리기 버튼에 손을 뻗죠.
만약 신들린 주사위 컨트롤(?)로 적진 한가운데 있는 안전지역에 도착하면 탄성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기적처럼 드로우된 스킬로 상대를 파산시키면(특히 그것이 역전이라면!) 환호성이 절로 삐져 나옵니다. 이 뽕맛(?) 덕에 한 판, 한 판의 재미만큼은 최고 수준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적절한 스킬도 없고 주사위 운도 없었다면? 맘 편히 운을 탓할 수 있기 때문에 패배감은 크지 않더군요. 승리의 재미는 크고 패배감은 작은 케이스입니다.
■ 고민하고 긴장해 승리하면 보상으로 새로운 고민을 드립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이 한 판, 한 판의 재미가 목걸이처럼 하나로 꿰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주사위의 신>은 고민할 것도 많고 긴장도 많이 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자연히 한 판의 재미만큼 한 판의 피로도 크죠.
그런데 <주사위의 신>은 이 피로감을 이겨내고(혹은 감수하고) 다음 경기를 하게 할 동기가 미약합니다. 게임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부터가 유저에게 와 닿지 않거든요.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주사위의 신>의 화폐 구조(?)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주사위의 신>은 캐쉬 외에도 ‘조이’와 ‘골드’라는 2가지 화폐가 쓰입니다. ‘조이’는 게임 한 판의 시작 금액이나 도시 투자 비용, 상위 리그 입장 조건 등에 쓰이는 화폐고 ‘골드’는 로비에서 캐릭터나 주사위를 강화할 때 쓰이는 화폐입니다.
이 때문에 <주사위의 신>은 게임 보상으로 조이와 골드 2가지를 같이 지급하죠. 조이는 게임 속에서 유저들이 배팅(도시 투자)한 것을 승자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골드는 승리 시 100골드, 패배 시 10골드가 지급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2원화된 화폐 구조, 그리고 보상 구조가 유저가 보기엔 직관적이지 않고 보상의 가치도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죠. 일단 게임의 실질적인 화폐라고 할 수 있는 ‘골드’는 보상의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3성 캐릭터(튜토리얼 끝내면 주는 캐릭터 등급)의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몇 천, 주사위나 4성 이상 캐릭터 업그레이드엔 만 단위 골드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골드는 ‘조이’로도 구매할 수 있고, 조이 보상은 배팅 방식의 특성 상 액수도 큰 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저들에게 조이는 돈보다는 승점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는 것이죠. <주사위의 신>은 조이 보유량에 따라 상위 리그 진입 여부가 결정됩니다. 더군다나 조이는 패배 시 오히려 보유량이 깎이는 자원이고요.
이런 구조에서 상위 유저가 아니라면 피 같은 승점을 깎아 골드나 다른 아이템을 사기 쉽지 않죠. 그렇다고 매번 조이를 쪼개 일부는 골드를 사고 일부는 상위리그 진입용으로 놔두기엔 귀찮고 피로만 쌓입니다. 순수하게 즐거워하고 소비할 수 있는 보상이라기 보다는, 게임 밖에서 ‘운용’해야 할 또 다른 자원인 셈이죠.
참고로 <주사위의 신> 한 판의 플레이 타임은 10분 이상. 10분 내내 고민하고 긴장하며 승리해도 보상은 크지 않고, 오히려 보상을 가지고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한 판, 한 판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점점 다음 경기를 할 '기력'이 사라지더군요.
■ 이제는 질긴 목걸이 줄을 구해야 할 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주일 간 즐긴 <주사위의 신>은 줄 끊어진 목걸이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구슬 하나의 가치, 게임 한 판의 재미는 지금껏 즐긴 <블루마블>류 게임 중 손꼽힙니다. 다른 게임이 따라올 수 없는 짜릿한 한 판이 인상적이었죠.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1위도 파산할 수 있다는 긴장감, 그리고 스킬 등을 통해 내가 그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혹은 그런 기대와 착각) 덕분입니다.
하지만 한 판, 한 판에 대한 무게와 달리, 이를 이어주는 장치가 질기지 못했죠. 너무도 높은 피로도, 그에 반해 보상의 가치가 미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게임 근간에 있는 것이 아닌, 밸런스 차원에서 조율이 가능하다는 점이겠죠. 다른 게임에서 찾기 힘든 강점을 가진 만큼, 이음새만 잘 다듬으면 <주사위의 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