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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길드마저 와해된 최약체 문명, 시민의 힘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아키타이프 2016-01-16 18:57:45

안녕하세요. <문명 온라인>에서 11세션째 살고 있는 아키타이프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구 7일 6번째 세션에서 있었던 아즈텍의 역전 우승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명 온라인>에서 유저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개개인의 의지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를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세션이죠. 필자는 아즈텍에서 플레이했습니다.

 

 

■ 약소국 아즈텍

 

▲ 전통적인(?) 약소국 아즈텍. 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아저씨가 아닐까 싶기도…

 

국가의 우열을 가르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론 다양한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구수입니다. <문명 온라인>에서의 인구수란 결국 세션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어떤 문명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가장 많이 좌우되죠.

 

강렬하고 도전적인 이미지를 가진 로마, 크고 아름다운 슴가문화와 기술로 대표되는 이집트, 동아시아인으로서 친숙하며 역사 속에서 19세기까지 부동의 1위국가였던 중국까지. (산업시대 초기까지 전세계 GDP의 25%를 점유한 것이 중국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아즈텍의 경우는 대중적 인지도도 떨어질뿐더러 캐릭터 생성창에서부터 다른 문명과는 달리 험상궃은 아저씨몬테수마 2세가 반기는 문명이었으니, <문명 온라인> OBT 이후 아즈텍은 대체적으로 약소국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6번째 세션 즈음이 되니 이런 현상은 더욱 고착화되어, 약소국에서 플레이하는 것에 지쳐간 상당수 인원은 다른 국가로 이적해버리고 급기야 지구 7일 아즈텍에는 겨우 100명 남짓의 시민만이 남게 됩니다.

 

▲ 시작부터 차이나는 도시 숫자. 일단 인원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기에, 세션 시작인 오전 10시부터 도시를 건설하고 채집을 통해 장비를 마련했으며, 길드들은 인원을 모집해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된 로마가 1차 타겟이 되었습니다.

 

▲ 고대시대의 첫 전쟁. 안타깝게도 저게 아즈텍의 사실상 전 병력입니다.

 

▲ 분투했으나 결국 요충지를 함락당하는 모습. 병력차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기세 좋게 덤볐지만 고대~고전시대 전쟁 결과 아즈텍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 요충지를 빼앗기고 7개 도시만을 가진 채 쪼그라들게 됩니다. 결정적인 원인은 인구수지만, 의사소통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죠.

 

로마의 경우 1세션부터 이어져온 소위 로마연합으로 대표되는 길드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며 그 체제가 확고하게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즈텍의 경우 사실상 무정부적 과두제 체제로, 전쟁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주기 힘든 부분이 많았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달까요? 승리의 경험이 없는 아즈텍에게는 이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 중세 대항해시대를 맞이해, 아즈텍은 남극에 터를 잡았습니다.

 

아즈텍 수뇌부는 본토에서 바로 밑에 있는 남극으로 영토확장을 시도합니다. 중세시대에 접어들면 ‘중세 항구’ 건설과 ‘화물선’ 운용이 가능해짐으로써 원해 항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이 타이밍에 주요자원이 배치된 4개의 섬과 남극, 북극, 남미개척이 가능합니다. 아즈텍은 일단 남극을 점유하고, 남미에도 1개 도시를 건설하여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이윽고 남미에 건설한 1개 도시에서 결전병기를 소환, 남미의 판세를 흔들기 위한 시도에 들어갑니다. 2~3개 도시만 점령해도 성공적인 상황. 그러나 남미 강대국들의 각축 속에서 결과적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남미는 대항해시대 이후 개척 가능한 영토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곳으로, 기술개발과 주요자원, 영토의 크기 등 뭘로 보나 1순위입니다. 그 결과 로마, 이집트, 중국 3개국이 모두 몰려들었고, 그 사이에서 아즈텍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미에 세력이 집중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술 발전 때문입니다. 르네상스로 진입하기 위한 화약 기술, 산업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강선 기술은 각각 유라시아 본토 중앙의 '그랜드 메사'와 남미 중앙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얻을 수 있죠. 유라시아 본토는 이미 강대국들의 전쟁터였고, 그나마 가능성이 보였던 남미로 눈을 돌렸던 것이죠.

 

▲ 같은 시기 대륙 중앙의 그랜드 메사 역시 이집트와 로마의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전시대 이후 중세~르네상스까지 펼쳐진 아즈텍의 파상공세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전병기까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차를 극복하지 못했죠. 아즈텍 수뇌부에서 전략을 세워도 결국은 병력이 있어야 뭘 해볼 수 있으니까요.

 

 

■ <문명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는가?

 

그런데 아즈텍 수뇌부는 무엇이며, 아즈텍은 어떻게 그들의 의사를 결정하고 전력을 집중시킨 것일까요? 다시 말해 <문명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할까요?

 

기존의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이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혼자서 하는 게임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이 유저의 선택에 달렸으며, 유저는 게임 시작턴인 기원전 4천년부터 국가가 존속하는 그날까지 자신이 선택한 국가를 마음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죠.

 

다른 MMORPG의 경우, 모든 유저는 자유롭게 플레이하지만 공성전이 있는 몇몇 게임들은 거의 예외없이 길드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길드장이 인원을 통솔하며, 길드에는 특별한 혜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모여드는 방식이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인스턴스 던전 공략 방식의 게임에서는 일종의 공격대나 파티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명 온라인>은 세션제 게임으로, 해당 세션이 끝나면 캐시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초기화됩니다. 때문에 모든 유저에게 충분한 자유가 주어진 반면, 그 유저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이득이 딱히 없죠. 물론 ‘자국의 승리’를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강제성은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에서 놀고 있어도 누구 하나 그에 대해 강제성을 띤 명령을 할 수 없으며, 해당 유저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 문명 온라인의 채팅창. 문명 내 모든 유저가 칼라문명 채팅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문명 온라인>에서 개인 유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문명 채팅'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문명의 전원이 공유하는 채팅 채널이죠.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첩자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부계정을 통해 다른 국가의 문명 채팅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기습과 같이 비밀 유지가 필요한 작전을 수행할 때에는 문명 채팅에서 해당 내용을 공유하기가 어렵습니다. 국가의 승리를 보기 위해 구상하는 청사진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요. 자연스럽게 길드 채널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그리고 길드 커뮤니티의 최종 진화체가 바로 ‘길드장 채팅’ 시스템입니다. 도시를 소유한 길드장만이 길드장 채팅에 참여 가능하며, 여기에서 작전 회의를 하고 각각의 길드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죠. 심지어 여기에서도 첩자 문제가 우려된 나머지 근래에 들어서는 몇몇 거대 길드장들이 스카이프, 토크온 등으로 작전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즉, 현재 <문명 온라인>의 의사소통 구조는 과두정(oligarchia)에 가깝습니다.

 

▲ 물론 시청 건설은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혼자서도 도시를 세울 수 있죠.

 

물론 <문명 온라인>에는 민주정(demokratia)에 가까운 모습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한다면 길드를 생성한 뒤 도시를 건설할 수 있으며, 설사 많은 도시를 소유한 거대길드라도 도시로부터 그 어떤 이득도 취할 수 없습니다. 도시를 건설해야 할 의무만이 존재할 뿐이죠.

 

거대길드장이라고 해서 세션 보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세션이 끝나면 길드조차 초기화됩니다.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은 길드에 속하지 않은 솔로 유저들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 세션마다 고정 멤버를 통해 유지되며 수직적 통솔구조를 통해 움직이는 길드가 세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까지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번 세션에서 아즈텍의 움직임 또한 그랬습니다. 아즈텍 길드장들은 길드장 채팅을 통해 세션 시작과 동시에 작전 구상을 시작했으며, 유라시아 본토에서 이집트와 로마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이집트 길드장과 ‘불가침 조약’을 추진했습니다. 동시에 로마를 공격하기 시작했죠. 남극을 가져간 것도, 남미에서 결전병기를 소환한 것도 길드장 회의 결과입니다.

 

▲ 아즈텍과 이집트는 세션 초반부터 불가침 조약을 맺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앞트임과 옆트임이 만나면 천하무적 

 

필자를 비롯한 많은 유저들이 각자의 이득과 판단에 따라 움직였지만, 큰 그림을 그려나간 것은 길드장 회의의 의지라는 것이죠. 바꿔 말해 <문명 온라인>에는 시스템적으로는 정치와 외교가 깔끔하게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유저들이 이를 길드장 채팅, 게임 내 메신저, 스카이프 등을 통해 구현했으며 게임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정 거대 길드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다수의 인원을 통솔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정치체제는 최선자정체(aristokratia) 혹은 참주정체(tyrannis)에 가깝게 됩니다. 쉽게 말해 독재 체제라고도 할 수 있죠. 좋은 독재냐 나쁜 독재냐는 해당 길드장과 참모진의 능력에 의해 좌우됩니다.

 

거대 길드 연합이 국가를 주도하게 된 경우도 있으며, 뚜렷한 주력 길드 없이 무정부적 민주정체에 가깝게 문명이 운영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문명 온라인>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 결전병기 지크프리트를 제작중인 모습입니다. 강력한 만큼 적들도 민감하게 반응하죠.

 

위와 같이 특정 위치에서 결전병기를 제작하거나 우주선 설계도를 준비한다던가 하는 것은 적국이 그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게끔 비밀유지가 필요하며, 때문에 길드 주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걸맞게 거액의 비용과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고요.

 

여기에서 길드에 속하지 않은 자유시민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전적으로 해당 길드와 길드장의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바꿔말해, 해당 길드와 길드장에게 충분한 성의와 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협조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독선적이며 무능하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어찌됐든, 아즈텍 수뇌부는 길드 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약 60여명밖에 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번 세션을 플레이해왔습니다. 길드에 속하지 않는 인원을 합해도 약 100여 명이었죠. 반면 주적인 로마, 그리고 잠재적 적국인 이집트의 경우 200명을 훌쩍 넘기는 인원과 강력한 주력길드들의 오더 속에서 플레이해왔습니다.

 

전력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2번의 남미 대회전에서 증명됐죠. 즉, 아즈텍의 전병력에 결전병기까지 함께 동원하더라도 적의 주력을 결코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입니다. 그리고 아즈텍의 길드장 회의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 이집트 수뇌부와 거래를 시작한 아즈텍 수뇌부. 이 자리에 끼게 된 필자는 협상 테이블을 진행시키며 '비밀 거래'를 문명 채팅에 공개했습니다. 아래에 서술하겠지만, 아즈텍의 모든 것이 뒤집히는 순간이었죠.

 

산업시대까지 진행된 상황에서도 전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점령 승리’와 ‘문화 승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두 가지 모두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죠. 이 세션에서는 아직 과학승리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점령 승리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체 영토의 67%를 획득하고 1차례의 공방전 1시간 동안 이를 유지하면 승리

- 현대시대까지 진행되었다면, 세션 종료 시점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획득한 국가가 승리

 

정면대결에서 패배한 아즈텍에게 점령 승리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습니다. 적의 후방에 침투해 공격한다 하더라도 너무 거리가 멀 뿐더러, 적국은 더 많은 인원으로 우리의 본토를 초토화시키겠죠.

 

한 가지 더 있는 승리방법인 ‘문화승리’는 더 요원해 보였습니다. 문화 승리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화 불가사의를 7개 건설하고, 문화도시의 비율이 70%를 넘긴 상태로 1차례의 공방전 1시간 동안 이를 유지하면 승리

 

<문명 온라인>에는 ‘군사도시’와 ‘문화도시’, 2종류의 도시가 있습니다. 문화도시에는 문화 불가사의를 건설 가능하지만, 대신 차고를 지을 수 없어 지상병기인 탱크 등을 소환할 수 없기에 방어에 불리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인구가 적은 아즈텍은 문화 불가사의를 하나도 짓지 못했으며, 이제부터 문화 불가사의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그 의도가 자명하기 때문에 적은 병력으로 문화도시라는 패널티를 안고 수성에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결국 그 어떤 방식으로도 승리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태. 여기서 아즈텍의 길드장들은 세션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즉 동맹국인 이집트의 점령승리를 의도적으로 지원해주고, 세션을 종료시켜서 다음 세션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죠.

 

 

■ 아즈텍의 길드장들이 세션을 포기한 이유

 

보기에 따라선 매국행위라고 할 수도 있는 선택. 그러나 게임 시스템에 비춰보자면 불합리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문명 온라인>의 세션 보상은 플레이한 시대에 좌우됩니다. 즉 산업시대까지 플레이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승리/패배 보상만이 존재하죠. 바꿔 말해, 어차피 산업시대에 들어선 이상 1일차에 패배하든 2일차에 패배하든 보상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아즈텍 수뇌부는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세션을 이집트의 점령승리로 유도하고, 다음 세션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산업시대에 진입한 2015년 12월 15일, 게임 시간으로는 1914년에 있었던 일이죠.

 

▲ 아즈텍 수뇌부와 이집트 수뇌부의 비밀 협상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즈텍 수뇌부가 이집트에 제안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이집트의 점령승리를 위해 남극을 수비하지 않고 무혈 입성시켜준다.

2) 이집트는 아즈텍이 북미를 점령할 수 있게끔 협조한다.

 

여기서 아즈텍이 북미를 가져간다는 조건 역시 이집트와 아즈텍 수뇌부 두 쪽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북미를 소유하고 있던 국가는 중국이었으며, 아즈텍이 이곳의 일부를 취할 수 있다면 2~3위 정도로 세션을 끝낼 수 있었죠.

 

<문명 온라인>의 게임 시스템상 1위가 아닌 국가는 모두 패배 처리되지만, 명분의 문제도 있으며 체면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 입장에서도 유라시아 서쪽과 남극, 남미 그리고 북미 일부를 가져간다면 충분히 점령승리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필자는 이 길드장 회의의 결과에 반대했으며, 아즈텍 문명 채팅의 여론 역시 격렬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 그리고 이집트의 남극침공군 50여명을 상대로 수성에 들어갔습니다.

 

필자는 문명 채팅에 여론을 알려 남극 수성을 호소했으며, 결국 남극 중 일부 수성에 성공했습니다. 아즈텍의 병력은 소수였지만, 이집트는 아즈텍이 남극을 무혈입성시켜준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의 창끝이 날카롭지 못했죠. 더불어 아즈텍 길드 중 일부가 이집트의 점령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이집트 본토를 침공, 이집트의 점령승리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이후 <문명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 및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게임의 원칙을 명백히 어긴 어뷰징이냐, 아니면 정당한 정치외교의 일부이냐 하는 것이었죠. 운영측에서는 어뷰징이 아니라고 공식 답변했습니다만, 아즈텍 수뇌부와 이집트 수뇌부의 협상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정의에 따라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필자 개인은 한 명의 유저로서 비록 패배가 명백하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 역시 필자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지는 게임을 빠르게 끝내고 새 출발을 하는 것 역시 나름의 당위성을 가진 의견이니까요. 여하튼, 이렇게 이집트의 조기종료가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혼돈의 지구7일 세션은 마지막날을 향해 치닫습니다.

 

 

■ 이성적인 외교가 사라진 혼돈의 마지막날

 

결국 모든 국가가 점령승리, 문화승리를 포기한 상황에서 판정 승리만이 남았습니다. 12월 16일 23시가 되는 순간 가장 많은 영토를 점유중인 국가가 승리하는 것이죠.

 

전날 아즈텍-이집트 수뇌부의 외교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집트 수뇌부는 주로 로마, 중국 유저들에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로마와 중국 유저들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이집트가 아즈텍과 부적절한 외교로 의도적인 조기 종료를 노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아즈텍 수뇌부는 해체되다시피 하여 그 통솔력을 대부분 상실했습니다. 아직도 전황은 좋지 않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아즈텍은 아직도 남극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 마지막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와 로마가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결국 로마와 이집트, 중국은 서로를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집트는 남미에 3개의 결전병기를 모두 소환해 로마를 공격했으며, 로마 또한 이집트를 공격했고, 중국 역시 유라시아 본토에 랜드크루저 탱크를 소환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즈텍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록 수뇌부가 해체되었지만 아즈텍의 자유시민들은 남아서 남극에, 그리고 아즈텍 문명 발생지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며 영토를 조금씩 늘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인원이 유지되던 아즈텍 길드, 즉, 전날 이집트에게 협조하지 않은 길드들은 결전병기 힌덴부르크 비공선을 남미로 날려보내 로마와 이집트를 모두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전병기 랜드크루저 탱크를 남극에 소환했습니다. 남극은 모두 아즈텍의 영토였지만, "남극으로 공격을 온다면 랜드크루저로 대응하겠다"는 무력시위의 의미였죠.

 

뒤늦게 일부 로마, 이집트 게릴라가 남극에 침투했지만 아즈텍 시민들의 건설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 남극에 빽빽이 들어찬 아즈텍의 영토. 어떠한 자원도 나지 않는 땅이지만,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로마는 이집트가 승리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이집트는 로마가 승리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총공격하여 유라시아 대륙은 파멸로 치닫았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가 파괴됐죠. 이 과정에서 아무도 아즈텍을 주력 병력으로 마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멀쩡한 남극을 지킨 아즈텍의 판정승으로 세션은 끝났습니다. <문명 온라인> OBT 이후 줄곧 약소국이었던 아즈텍의 첫 승리였습니다.

 

▲ 세션 종료 5분전. 유라시아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아즈텍의 남극만이 온전합니다.

  

▲ 결국 해체 직전까지 갔던 아즈텍이 극적으로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세션이 끝나자 감개무량했습니다. 기대하기 힘들었던 승리를 하게 되니 기쁘기도 했으며, 국가 해체 위기까지 갔던 문명 채팅의 험악한 분위기와 매국노로 몰린 일부 길드장들, 그리고 <문명 온라인> 정치와 외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스템상 유저는 한 번 국적을 고르면 다시는 바꿀 수 없었기에, 아즈텍 시민으로서 알 수 없는 애국심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나의 게임이 사람을 가상의 애국자로 만들어버리다니,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하나의 캐릭터로 세션마다 국적을 바꿔 플레이할 수 있게 업데이트 됐습니다.)

 

외교 논쟁과 관련해서 무엇이 옳은지는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게임과 달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고, 그것이 비록 작지만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가의 스토리, 역사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문명 온라인>은 전무후무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이라고, 이 세션 이후 감히 장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플레이해주신 아즈텍 자유시민과 길드원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그야말로 막강한 화력과 전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로마와 이집트 유저분들, 그리고 함께 힘든 상황에서 끝까지 건투해주신 중국 유저분들에게 모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남극 수성전과 승리과정의 생생한 장면을 전달할 영상을 동봉합니다. 다음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