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요?'
<리니지 이터널>의 클로즈 베타테스트가 시작된 날,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게임을 '일로 하는' 기자들의 반응도 이 정도였으니, 게임 내 반응은 더 두고 볼 것도 없었죠. 최악이다, 차라리 모바일게임을 하겠다, 5년 간 만든 게 고작 이거냐 등등 온갖 악평이 쏟아졌습니다.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못 만든 게임 정도로 치부하고 끝날텐데 테스트 2일차를 넘기자 반응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거 오만의 탑이랑 파티 던전은 괜찮은데?' 이윽고 주말테스트까지 끝냈을 때는 기자들은 물론 유저들 사이에서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반응까지 나왔죠.
이 이상한 차이는 뭘까요? 여러 의미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 <리니지 이터널>을 디스이즈게임에서 살펴봤습니다. 1차 CBT에서는 혹독한 비판이나 분석보다는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을 이야기하는 게 보통입니다만 이번에는 화제가 화제인 만큼 게임의 비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모바일게임의 문법을 따르는 '이터널 시스템'
<리니지 이터널>은 모바일게임에서 유행하는 캐릭터 수집에 <길드워2> 등이 선보인 '시시각각 돌발 퀘스트가 쏟아지는 필드'를 섞은 게임입니다. 유저는 다양한 경로로 이터널(캐릭터)을 소환하고 최대 4인의 이터널로 팀을 꾸린 뒤 게임을 진행해나갑니다.
이터널은 상황에 맞춰 1명씩 교대할 수 있으며, 자신이 조작하는 이터널 이외에는 휴식 모드에 들어가 체력을 회복합니다. CBT에는 총 13명의 이터널이 공개됐는데요. 요정이나 다크엘프 같은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물론 데스나이트와 서큐버스 등의 몬스터도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향후 이터널의 숫자도 대폭 늘어날 걸로 보입니다.
각 이터널은 빛, 어둠, 불, 얼음처럼 고유의 속성을 갖고 있고, 비행, 순간이동, 대장장이, 세공사 등 각종 추가 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장장이 능력을 가진 데스나이트가 있으면 철제 장비 제작이 좀 더 쉬워지고, 추가 채집 능력을 갖춘 에리가 팀에 있으면 추가적인 식물 채집이 가능하죠.
후반에는 얼음 속성의 이터널로 던전 내의 불을 끄거나, 비행이 가능한 이터널을 꺼내서 함정을 피하는 등 이터널의 특징을 활용하는 플레이도 나옵니다.
참고로 이터널은 굳이 전투에 꺼내서 키울 필요 없이, 게임 내 곳곳에서 입수하는 경험치 물약만 먹여도 쑥쑥 성장합니다. 이를 위해 경험치 물약을 획득하는 던전을 별도로 만들었을 정도죠. 속성이나 능력이 다양한 캐릭터를 모아두고 콘텐츠에 맞는 캐릭터를 그때그때 꺼내서 활용한다. 전형적인 모바일게임 방식입니다.
# PC 온라인게임의 끝을 달리는 '이벤트가 쏟아지는 필드'
필드는 철저하게 온라인게임의 문법을 따릅니다. <리니지 이터널>의 필드에서는 각종 퀘스트가 끝없이 쏟아집니다. 각 장소마다 지역임무와 협동이벤트가 이어지고, 그 와중에 자신의 레벨에 맞춘 저항군 임무와 특별임무가 쏟아집니다. 메인 퀘스트인 알베르트 연대기나 던전 임무도 준비돼있죠. 게임을 시작한 직후부터 필드 전체가 '할 일 투성이'입니다.
마을을 나가기 무섭게 납치된 여자들을 찾는 병사의 무리가 나타나 협동 이벤트에 휘말리고, 주변 유저들과 단합해서 인신매매범을 소탕하는 사이에 길가의 늑대를 처치하라는 지역임무가 더해지죠. 늑대를 잡다 보면 이번에는 다음 저항군 임무로 아데나를 모아보랍니다. 심지어 마을에서 지역 퀘스트를 강제로 발동시키는 스크롤 등을 구입해서 동선이 맞는 퀘스트를 덧붙일 수도 있죠.
보상도 좋습니다. 협동 이벤트는 참가자 전원에게 아이템 상자를 주고, 1등을 하거나 행운상(?)에 당첨되면 추가로 귀한 제작재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초반부터 필드 도처에서 등장하는 각종 보스들은 10명 남짓한 인원이 몰려야 처치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그만큼 좋은 아이템과 높은 경험치를 주죠.
필드만 달려도 할 일이 쏟아지고, 그것만 깨다 보면 어느새 메인 스토리는 뒷전이 될 정도인, <길드워2>에서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돌발 퀘스트의 발전된 모양새입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흑기사 퀘스트의 일부. 이런 퀘스트가 지역마다 쏟아집니다.
# 이상한 구성 1. 내 캐릭터가 없다
모바일게임에서 익숙한 캐릭터 수집, 교체와 할 일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온라인게임 방식의 필드. 각각 놓고 보면 특별히 이상할 게 없는 구성이지만 둘을 하나로 합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펜파일애플애플펜'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고 덧붙인다고, 재미도 마냥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죠.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의 목적입니다. MMORPG의 기본은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재미'입니다. 근데 <리니지 이터널>은 '내 캐릭터'의 경계부터 불분명합니다.
<리니지 이터널>에서 각 이터널은 단 6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이 이상의 경험을 원한다면 다른 이터널을 영입해서 교대하며 플레이를 해야하죠. 각 이터널마다 성장도 따로 시켜야하고, 장비도 따로 맞춰줘야 합니다.
필드에서는 1명의 이터널만 사용하는 만큼 굳이 다른 이터널을 키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오만의 탑'처럼 4명의 이터널을 동시에 꺼내는 장소가 있고, 뒤에 가면 캐릭터별 속성이나 전투방식도 은근히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쩔 수 없이 최소 4명의 이터널을 키우게 되죠.
그렇다고 4명의 캐릭터가 '내 캐릭터' 대신 '내 팀'이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혼자 플레이하는 상황에서 힐러나 탱커를 꺼낼 필요가 없는 건 물론이고, 같은 이터널로 교대하려면 30초의 쿨타임을 갖다 보니 그냥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1명의 이터널로 모든 걸 소화하게 됩니다.
결국 4명의 이터널을 모두 꺼내는 오만의 탑을 제외하면, 가끔씩 전투의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이터널을 바꾸거나, 이동기술이 있는 이터널로 빠르게 목적지로 향하는 정도의 교체만 있을 뿐입니다. 이터널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닌데, '내 캐릭터'라는 애정만 사라지는 이상한 결과죠.
예를 들어 <포켓몬스터>에서 다양한 포켓몬을 육성할 수 있지만, 그 포켓몬이 내 MMORPG 캐릭터 같은 느낌은 아니잖아요?
차라리 지금같은 억지 교환보다는 필드에서는 1명의 이터널로만 진행하고, 다른 이터널은 소환수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나아 보일 정도입니다. 데스나이트로 전투 중에 팀에 속한 요정 이터널을 부르면 잠시 소환돼 전투를 돕거나, 특정 광역기를 쏘고 돌아가는 식으로 말이죠. 나중에는 요정으로 전투를 진행하다가 데스나이트를 소환할 수도 있는 거고요.
# 이상한 구성 2.게임을 파악하기 전에는 끔찍하게 지루한 초반
이터널 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임 초반은 문제가 더 합니다. 오만의 탑이 나오는 말하는 섬 이후부터는 최소한 이터널을 수집하고 키운다는 목표라고 생기지만, 말하는 섬에서는 그조차 없습니다.
달랑 2명있는 이터널은 30초에 한 번만 교대할 수 있고, 스킬은 몇 개 없는데 필드에서는 퀘스트가 쏟아집니다. 그나마도 이터널의 모든 스킬이 공격에 집중된 것도 아니죠. 결국 유저는 1~2개의 공격 스킬로 필드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퀘스트와 전투를 치러내야 합니다. 엔씨소프트 답게(?) 초반에는 아이템도 아무런 능력치가 없는 일반 아이템만 쏟아집니다
상상해보세요. 전투에서 뭔가 조작할 여지도 없고, 아이템은 하얀색만 나오고, 이터널의 성장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이터널을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수집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필드에서 퀘스트만 쏟아진다고.
차라리 말하는 섬을 튜토리얼 수준으로 빠르게 끝냈거나, 이터널을 다양하게 제공할 거면 이터널을 처음 얻을 때부터 스킬 정도는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여야 했습니다. 지금의 초반 구성은 모바일게임처럼 캐릭터는 따로 얻어야 하는데, 기껏 얻은 캐릭터는 MMORPG처럼 성장을 시켜야 제대로 활용 가능한, 모바일과 온라인의 단점만 모은 그런 구조니까요. 첫 날부터 유저들의 극심한 비판이 집중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 이상한 구성 3.상황을 묶어줄 스토리나 개연성의 부재
게임의 목적이 사라진 데는 막연한 스토리나 부족한 개연성도 한 몫을 거듭니다. <리니지 이터널>은 '이터널이 여신 실렌의 부름에 따라 나타나서 사람들을 돕는다'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이터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정작 유저는 이게 뭔 상황인지를 몰라요.
데스나이트와 요정과 다크엘프와 서큐버스가 왜 한 편이 돼서 사람을 구하는 지도 모르겠고, 이터널이 뭘 위해 세상에 왔는 지도 모릅니다. 자연히 몰입도가 확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저는 이터널이 뭔지조차 모르겠는데 게임은 저항군의 해방전을 메인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더 난감한 사실은 스토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곳곳에 파편처럼 숨겨뒀습니다. 이터널이 선발되는 과정이나, 그 목적, 심지어 <리니지> 이후 세상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까지 모든 부분을 여기저기 숨겨뒀죠.
하지만 정작 유저가 스토리에 대해 이해할 때면 이미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은 지난 이후입니다. 적어도 유저 입장에서는 내가 왜 이터널을 모으며 이런 전투에 참가해야 하는지 알려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잘 만든 후반 콘텐츠
아니러니하게도 <리니지 이터널>에서 유저가 재미를 느끼는 시점은 개발사가 만든 콘텐츠를 '자기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보석을 활용해 이동 스킬의 쿨타임을 최대한 줄인 이동용 이터널과 전투에 집중한 이터널로 팀을 구성해서 편의를 도모한다거나, 30초 교체 패널티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평소에는 적의 능력치를 낮추는 디버프형 이터널로 다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디버프를 걸자마자 전투형 이터널로 바꾸는 식으로요.
일단 이터널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고 나면 게임도 다르게 보입니다. 그냥 전투를 위한 이터널을 따로 마련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예를 들어 데스나이트는 사용한 버프에 따라 우클릭으로 사용하는 스킬이 바뀝니다. 석궁수인 에리는 강화 버프를 두르면 일반 공격과 우클릭 스킬이 달라지죠.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고, 스킬의 단조로움도 다소 해결할 수 있는 이터널입니다.
초반 이터널과 달리 직접 소환하는 이터널은 전투의 폭도 넓습니다. 스크린샷은 가속 + 분노를 총동원한 데스나이트의 연속 공격.
이터널에 따른 스토리도 재미있습니다. 대사가 지나치게 유치한 감은 있지만, 각 이터널의 특성이나 사연을 확실하게 보여주죠. 오히려 이쪽이 튜토리얼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이터널마다 바꿀 수 있는 스킨이나, 각성을 위한 각종 조건을 채워나가는 것도 재미 중 하나입니다.
던전도 후반으로 갈수록 각종 기믹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터널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점점 효과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서큐버스로 강한 몬스터를 매혹시켜서 지나가거나, 유저A가 땅에 불을 지른 사이에 유저B는 벽을 쳐서 적을 가두는 등 이터널 간의 전투 연계도 가능하죠.
이후 PVP가 시작되면 이터널의 특성은 더 강조됩니다. 각각의 상성까지 있으니까요. 그때부터는 필드에서는 버림 받았던 30초 교체도 소중해집니다. 초반에는 그렇게 욕만 먹던 <리니지 이터널>이 주말부터는 유저들의 호평을 함께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터널의 용도를 알고 나면 '내 캐릭터만큼의 애착'은 몰라도 '포켓몬스터 같은 활용'은 가능해지거든요.
# 어긋나 버린 '유저의 마음'과 '개발사의 의도'
<리니지 이터널>은 개발사의 의도와 유저가 느끼는 재미가 어긋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개발팀의 의도는 모바일게임과 비슷한 감각으로 즐기는, 그래서 더 대중적인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온라인게임을 만들고 싶었겠지만 유저는 굳이 온라인게임에서까지 모바일게임을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는 팀을 보조해주는 일원 중 하나가 아니라 애정을 줄 수 있는 대상이어야하고, 팀의 성장보다는 캐릭터의 성장을 바랍니다. 그런데 <리니지 이터널>은 굳이 그 많은 캐릭터를 키워야 하는 '이유'도 알려주지 못합니다. 스토리가 됐든 콘텐츠가 됐든, 게임의 목적을 유저가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죠.
사실 후반까지만 오면 어느 정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필드에서 쏟아지는 협동 이벤트에서 재료를 모으고, 이를 이터널의 스킬을 이용해 장비로 바꾸고, 오만의 탑에서 상성에 맞는 이터널을 꺼내다 보면 <리니지 이터널>이 꿈꾸는 미래가 어떤 건지도 알 수 있습니다. PVP를 고려하면 이터널 교체에 30초 쿨타임을 줄 수밖에 없고, 굳이 4명의 이터널을 팀으로 꾸려야 하는 이유도 이해가 가죠.
극단적으로 한 명의 이터널로만 진행하더라도 (초반에 주는 4명의 이터널만 아니라면) 보석을 이용해서 스킬을 강화하고, 아이템 세팅을 맞추다 보면 어지간한 MMORPG 수준의 성장의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석의 색상에 따라 스킬의 성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맞춰가는 재미도 있죠.
다만 이해가 가는 것과 그것을 원하는 건 별개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리니지 이터널>로는 그 후반에 가기 전에 대부분의 유저가 '전투는 모바일게임 수준인데 콘텐츠만 MMORPG처럼 잔뜩 늘어 놓은 게임'으로 느끼고 떠날 확률이 높습니다. 마치 지금의 1차 CBT처럼요.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게임이든 개발자의 의도와 유저가 받아들이는 재미가 100% 같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더하죠. 그래서 개발자는 자신의 의도가 어떻게 유저에게 전달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한 기자로서 후반에는 충분히 재미를 느꼈음에도 <리니지 이터널>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장비 제작화면. 협동 이벤트에서 얻는 보상으로 더 강력한 이터널 장비를 맞출 수 있습니다. 게임 내 경제는 거의 다 만들어진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