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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두뇌계발 퍼즐 FPS 포탈(Portal)

FPS 종합선물세트 '오렌지박스' 中 '포탈' 리뷰

shiraz 2007-10-31 17:11:34

<바이오쇼크>의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밸브의 게이브 뉴웰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렌지 박스> 완성 전에는 사무실에서 <바이오쇼크> 게임 금지!

 

일단 그의 말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요? <오렌지 박스>의 포장지를 뜯어보고 너도 나도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해외 게임 매체들은 저마다 후한 점수를 주기 바빴고 게임매장에서는 <헤일로3>를 누르고 판매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렌지 박스>에 포함된 5가지 게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프라이프2> <팀 포트리스2>입니다. <하프라이프2>에피소드 2까지 3편이 한번에 착한 가격으로 나왔죠. <팀 포트리스2> <언리얼 토너먼트3>와 같이 멀티 플레이에서 최상급의 재미를 보장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런데 5가지 게임 중 하나가 남았는데 무엇일까요? <포탈>? 이름도 생소한 이 게임이 <오렌지 박스>에 끼어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인기 없는 게임 끼워팔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는데요, 그런데 이 게임 한번 해본 사람은 재미없다고 말하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오렌지 박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으로 손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도대체 무슨 게임인지 궁금하신 분들 많으시죠? 어디 한번 같이 들여다볼까요? 참, 약간의 스포일러(게임 스토리 노출)가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설정

 

<포탈>은 상당히 독특하면서 동시에 또 굉장히 흥미로운 게임입니다. 마치 저예산으로 대박을 터트린 영화 <쏘우> <큐브>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플레이어는 사방이 막힌 유리방안에서 깨어나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똑 같은 음악만이 흘러나오고 방에서 나가는 문도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계음성이 앞으로 할 일을 알려줄 뿐입니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방에서 깨어나 기계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기계음성은 상당히 특이한 느낌을 줍니다. 게임 플레이 내내 듣게 되는 무미건조하면서도 때로는 감정이 실린 듯한 목소리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게임 스토리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알고 봤더니 이 기계음은 게임계에서는 꽤 알려진 오페라 가수 아줌마의 목소리를 변조해 만든 것이더군요. <하프라이프2>에서 콤바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여성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게임들에서 성우로 많은 활동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이 황량한 <포탈>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실험 대상이 되어 어떤 연구단체가 만든 시설에서 특이한 실험을 겪게 됩니다. 핀셋을 들거나 시약을 섞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미로에 갇힌 실험용 흰 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죠.

 

 

게임의 핵심, 포탈(Portal)

 

<포탈>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포탈(Porta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공상과학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들 볼 수 있는 워프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가장 비슷한 것으로는 <스타게이트>를 들 수 있겠네요.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가는 곳이 있다.' 바로 <포탈>의 규칙입니다. 

 

여러 퍼즐을 풀어가며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총으로 플레이어는 두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구멍을 열 수 있습니다. 보통 벽에다 대고 쏘는 것으로 구멍이 생기는데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노란 구멍과 파란 구멍이 만나 하나의 포탈을 이루게 됩니다. 이 포탈을 통해서 물체가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구멍 저편에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쪽에서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말로는 잘 설명하기 힘듭니다. 어렸을 적 공간을 접은 뒤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어 두 지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무시한 채로 이동할 수 있다라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포탈>은 이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아니 그냥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동차 엔진의 구조를 몰라도 차를 몰 수 있듯이 말이죠.

 

그냥 벽에 대고 퐁~하고 파란 구멍을 만들고 다른 벽에 또 퐁~하고 노란 구멍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두 지점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쉽고 간단합니다.

 

캐릭터는 유명한 영화 제작자를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포탈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영화 <큐브>에서 자신의 엉덩이를보던 장면처럼 두 벽 사이에 포탈을 열고 지나다니다 보면 자신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는 비밀스러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퍼즐플레이

 

<포탈>은 기본적으로 퍼즐 게임입니다. 이 퍼즐들은 상당히 직관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합니다.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단계마다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물건들을 갖고 이 퍼즐들을 풀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닥에는 유독성 액체가 가득 차있고 통로에는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하는, 어디선가 많이 본 물체가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훤히 보이는 <포탈>의 퍼즐들, 그러나 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 튼튼한 두 다리뿐이더군요. 포탈을 만들어 자신의 캐릭터를 유심히 살펴보면 두 다리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길래 그런 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를 마치기 위해서는 커다란 박스를 들어서 또 커다란 버튼 위에 내려놓아 문을 열고 포탈을 열어 중요한 위치로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즉사하는 고 에너지 운동체의 이동경로를 바꾸어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등 실험실의 쥐가 하기에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사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공원의 안내판처럼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퍼즐 플레이는 너무나 획기적이고 독특한 해법을 요구하기 때문에 게임 속 퍼즐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게이머라도 <포탈> 앞에서는 초심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익숙해지면 각 단계를 완수하는데 드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지만 처음에는 꽤나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렇지만 이 지적인 실험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옛날 <울펜슈타인3D>에서 막돼먹은 퍼즐을 푸느라 온갖 벽을 다 두들기고 다녔던 일은 이제 추억으로 남겨두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각 퍼즐을 풀기 위해서 약간의 물리학적인 사고도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f=ma와 같은 공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빨리 뛰어서 점프하면 더 멀리 날아간다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가속도가 붙어 빨라진다는 정도의 상식을 요구할 뿐입니다.

 

그러나 두 공간이 맞물려 있는 3D FPS 게임에 활용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죠. 때로는 순발력을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일러가 시작됩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영화관에 <쏘우> 보러 들어갔는데 복도에서 누가 범인은 OO!라고 외쳐서 그 OO잡아서 O치고…… 흠흠. <포탈>을 아직 안 했는데, 앞으로 즐길 예정이거나 줄거리를 다 알아버리기 싫은 분들은 이 단락을 건너뛰어도 좋습니다.

 

<포탈>은 단순한 퍼즐게임은 아닙니다. 이 곳은 바로 익숙한 세계관, <하프라이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포탈>은 연구 시설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느 시기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고든 프리맨이 일했던 블랙메사(Black Mesa)에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세계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게임의 무대는 애퍼쳐 사이언스(Aperture Science)라는 연구기관에서 세운 시설입니다. 애퍼쳐 사이언스는 블랙 메사와 정부 출연기금을 타내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벌이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두 기관은 엇비슷한 시기에 포털을 여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블랙메사는 이를 잘못 사용하여 지구에 재앙을 불러오게 되었죠. 게임 도중에 블랙 메사와의 경쟁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직원들이 떠나버린 시설에서 프로젝터는 계속 돌아가더군요.

 

이 시설은 모종의 사건에 의해서 버려집니다만, 직원들의 중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는 계속해서 실험을 반복합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늘어놓는 목소리가 바로 그 컴퓨터 'GLaDOS(Genetic Lifeform and Disk Operating System)'입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어떤 이유로 이 시설에 들어와서 실험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플레이 도중 컴퓨터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봐야 합니다. 아주 아주 중요한 단서가 곳곳에 숨겨져 있거든요. 게다가 퍼즐 플레이 도중 벽과 바닥에 새겨진 여러 가지 흔적들은 게임 배경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런 흔적은 게임 배경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렌지박스>에 포함된 <하프라이프2: 에피소드2>에서도 이 애퍼쳐 사이언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앞으로 나올 <에피소드3>에서 애퍼쳐 사이언스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플레이어는 이런 단편적인 조각들을 끼워 맞춰서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해야 합니다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플레이 도중 얻게 되는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게다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프라이프>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방대한 스토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바이럴 마케팅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개발사는 재미있는 플래쉬 사이트(www.aperturescience.com)를 하나 열었습니다. 예전 도스(DOS) 시절의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분이라면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구글 검색에도 익숙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만….

 

 

오렌지에서 튀어나온 배꼽 <포탈>

 

<포탈>은 올해 나온 FPS게임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이정표를 세운 <바이오쇼크>를 비롯해 수많은 게임들이 FPS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왔습니다. 그러나 <포탈>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 퍼즐을 본격적으로 FPS 게임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전 게임들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퍼즐들은 가히 올해 가장 독특한 게임이라고 평가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면 당장 구글이나 야후를 띄우고 <포탈>에 대해서 검색해보세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엔딩을 보고 나면, 케익이 나옵니다. 정말?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요, 바로 게임 플레이가 너무 짧습니다. 10점 만점을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약 6시간 정도로 엔딩을 보았습니다만 빠른 사람은 서너 시간 안에 플레이를 끝냈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 정도로는 진득하게 즐기기가 힘들죠. 다만 개발사측은 시장의 반응을 보아서 후속편을 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 때문에 아쉽군요.

 

<포탈>은 게임 플레이 도중에 받게 되는 인상이 강렬할 뿐만 아니라 그 기저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스토리 때문에 앞으로도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로 떠오를 만한 게임입니다.

 

마치 오렌지(박스)에서 튀어나와 있는 배꼽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 배꼽 때문에 <오렌지 박스>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만약 영화 <큐브> <쏘우>를 본 것처럼 우와 영화 한편 잘 봤다라는 느낌이 들만한 게임을 찾고 있다면 <포탈>을 즐겨보기 바랍니다. 물론 <오렌지 박스>를 구입해야 할텐데요,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