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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칼럼] 로한의 흥행은 가문의 위기?

러프 2005-10-10 20:00:50

<로한> <WOW> 발매 이후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MMORPG의 벽을 다시 허물었다.

 

동시접속자 7만명이라는, 근래에 들어선 정말이지 보기 힘든 기록을 세우고 게이머들은 물론 업계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문제(?)의 타이틀은 4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동안 지지부진한 개발 끝에 지난달 12일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점은 아무도 <로한>의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게임이 별다른 흥행을 기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흥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한> <리니지 2> 이후 한국게임 전성기의 가장 큰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노가다성 플레이를 극도로 강요하는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인 상대 플레이어를 알아서 찾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살생부 시스템], 다단계사업처럼 자신의 휘하에 모은 플레이어의 돈과 경험치를 세금처럼 일정 부분 걷는 [결속 시스템], ‘지르는 재미를 극대화한 [아이템 인챈트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로한>의 특징들은, 얼핏 참신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MMORPG필요악으로 손꼽히는 흥행요소를 교묘히 융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상한 척하는 기자들과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평가를 비아냥거리기도 하듯 <로한>의 상승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추세다.

 

게다가 동접검색순위라는 나름대로의 인기 지표로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문제점이라고 손꼽았던 대표적인 특징을 극대화한 그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WOW>의 성공 이후 게이머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웰메이드 게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르짖은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뿐, 다수의 유저가 작업장이라느니, 오토마우스 봇이 활개를 친다는 둥 <로한>의 성공요인을 다른 곳에서 찾기에 분주했다. 게다가 이런 논조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던 본인마저도 <로한>을 계속 즐겼다는 점은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일테고.

 

주변의 지인들은 시기적으로 그다지 할만한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로한>의 상승세를 거품이라고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타이틀의 성공요인은 웰메이드게임을 지향하는 게이머보다 여전히 한국형  MMORPG를 좋아하는 게이머가 많고 큰 변화보다는 익숙한 게임스타일을 고수하는 유저층이 두텁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역시 게임장사 아무나 하는게 아니긴 아닌가 보다.

 

어쨌든 유통사와 개발사는 이 사실을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로한>과 함께 인기가두를 달리고 있는 <데카론> <열혈강호>의 높은 동시접속자는 <WOW>식 웰메이드게임과 <리니지 2> 혹은 <> 스타일로 대변되는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엉뚱한 예일는지도 모르지만 영화 <가문의 위기>를 높이 평가한 평론가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추석시즌 대성공을 이룩한 사례는 <로한>의 인기행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MMORPG의 발매는 도박이다라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는 현 시장 체제에서 <로한>의 성공은 분명 축하할만한 일이나 이 작품이 웰메이드 게임이냐는 물음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오래도록 게이머의 성향을 철저히 파악해 한국형 MMORPG’를 집대성한 개발사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게이머들의 성향을 결코 평가절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점차 다변화되고 있는 온라인게임 시장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만든 <로한>은 자칫 후발주자들에게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선다.  

 

<가문의 위기>가 분명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엔 동의하지만 <친구> 이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조폭영화가 초토화시킨 한국영화의 씁쓸했던 한 때의 단면을 우린 잘 기억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시장이란 식탁 위에선 항상 자극적인 재료의 음식이 인기를 누리곤 하지만 때때론 그 맛과 향을 곱씹어볼 웰빙음식도 필요한 법이다. <로한>이 주는 재미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