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5일 <헬게이트: 런던>의 오픈 베타테스트가 시작됐다. E3 2005에서 최초로 플레이 영상이 공개된 지도 벌써 2년 하고도 6개월, 기다림에 지친 국내 유저들에게도 드디어 지옥의 문(헬게이트)이 열린 것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유저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해외웹진의 다소 짠 리뷰점수가 무색할 만큼 많은 유저들이 <헬게이트: 런던>에 몰려들었으며,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잇따른 서버다운'과 '접속대기'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그 후 2주 가량이 지난 지금, 초기에는 보이지 않았던(혹은 알면서도 애써 무시해왔던) <헬게이트: 런던>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게임 내의 부실한 커뮤니티와 컨텐츠다. 이번 체험기에서는 게임 자체의 장단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디스이즈게임 한낮
■ 부인할 수 없는 뛰어난 그래픽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헬게이트: 런던>의 그래픽은 매우 뛰어나다. 물론 그래픽을 보는 시각에는 개인적인 취향이란 게 있는 법이고 현재 <헬게이트: 런던>의 그래픽은 3년 전 E3 2005에서 최초로 공개된 플레이 영상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모두 고려한다고 해도 <헬게이트: 런던>의 그래픽은 뛰어나다.
이펙트부터 배경까지 흠잡을 구석이 없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런던의 거리와 지하도는 인간이 살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파괴된 모습으로 등장, 분위기를 살리고 있으며, 사실적으로 묘사된 캐릭터와 장비, 현란한 마법과 스킬 이펙트 등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다. 게다가 여타의 게임들과 달리 길거리에 놓인 전화부스, 레일에서 벗어난 전동차 바퀴 등 작은 부분 하나 놓치지 않고 묘사한 섬세한 그래픽 역시 만족스럽다.
특히 ‘지옥에서 막 올라온 것처럼’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몬스터들과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어두컴컴한 화면’은 <헬게이트: 런던> 특유의 비주얼을 완성하고 있는 요소들이다.
화면 밝기를 강제로 올리면 게임의 재미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다만 섬세한 배경과 달리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투박하고,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배경 오브젝트나 몬스터의 ‘재활용’이 지나칠 정도로 심한 탓에 첫 대면에서 느낀 임팩트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전투요원과 기술요원의 경우 FPS 시점의 진행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총기의 반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격감이 떨어져 보이는 것 역시 문제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그래픽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사소하지만은 않은 단점들도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픽만큼은 최근에 등장한 모든 MMORPG 중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한다.
■ 단순하면서도 몰입하게 되는 전투와 아이템 수집
<디아블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단순하게 즐길 수 있는 대량학살과 아이템의 수집’ 역시 <헬게이트: 런던>의 특징이다.
<헬게이트: 런던>의 각 맵은 약 10분이면 클리어하는 짧은 던전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런 던전의 대부분이 세 단위 자릿수 이상의 몬스터로 꽉꽉 차 있다. 심한 경우 한 맵에 2~300마리의 몬스터가 몰려있기도 하니 시쳇말로 몬스터를 ‘쓸어 담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진행도 ‘마을 역할의 지하철 역 → 짧은 인스턴트 던전 1~3개 → 다시 지하철역’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로 플레이어가 체감하는 몬스터의 밀집도나 게임의 속도는 <헬게이트: 런던>의 모티브가 된 <디아블로> 보다 훨씬 높고 빠른 수준이다.
몬스터가 학살을 ‘당한다.’ 누가 헬게이트를 열고 나온 악마인지 헷갈릴 정도. 물론 앨리트 모드 이후는 상황이 약간 달라진다.
게임의 조작 역시 주로 한, 두 가지 액티브 스킬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방식이며 <Ctrl>키를 통해 상황에 맞는 아이템을 자동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아무 생각 없이 적이 보일 때마다 버튼을 눌러 눈앞의 적들을 학살하는 것’뿐이다.
게임의 기본 목표가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쉽고 빠르게 풀어주는데 있다면 <헬게이트: 런던> 이야말로 기본에 가장 근접한 온라인 게임인 셈이다.
여기에 <디아블로> 스타일의 아이템 랜덤 옵션과 게임의 난이도를 올려주는 앨리트 모드, 한 번의 실수로 소중한 캐릭터를 잃어버릴 수 있는 하드코어모드 등을 둠으로써 보다 큰 성취감을 느끼길 원하는 헤비 유저들의 취향까지 맞춰주고 있다.
최고 옵션의 아이템을 뽑기 위한 노력과 극단적인 하드코어 모드! <헬게이트: 런던>이 비단 라이트 유저만을 노리고 나온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 참을 수 없는 지겨움, 반복 맵과 몬스터
그러나 매력적인 그래픽, 화끈한 게임전개와 달리 <헬게이트: 런던>의 컨텐츠는 온라인 게임으로 볼 때 한계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앞에서 예를 들었던 ‘도가 지나친 그래픽의 재활용’과 ‘지나치게 짧은 플레이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맵과 몬스터가 몇 번씩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복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 <헬게이트: 런던>은 액트 4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맵의 종류는 약 10여 개, 몬스터의 경우에도 20여 종이 이름만 바꿔서 계속 등장할 뿐이다.
이젠 지겹다. 맵도 몬스터도!
게다가 <헬게이트: 런던>의 특징으로 손꼽히는 ‘랜덤맵’ 역시 매번 똑같은 지형을 가져다 놓고 그 중 출구와 입구의 위치만 바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출구와 입구도 웬만큼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액트3 정도 되면 ‘처음 보는 맵이라도’ 익숙한 맵처럼 순식간에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중간중간 독특한 이벤트성 맵이 등장하지만 ‘맵의 다양함’을 늘려주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지하철 → 하수도 → 지하철역 → 하수도 → 지하철 → 지하철으로 이어지는 초반 맵의 구성 필자에게 일종의 '데자뷰 현상‘마저 느끼게 했을 정도. 몬스터의 경우에도 이름이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공격패턴이나 조합방식(…)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액트1을 클리어한 이후 <헬게이트: 런던>에서 ’신선함’을 찾기란 ‘유통기한 지난 계란에서 탱탱한 노른자를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워진다.
이런 이벤트 맵이 다수 필요하다.
이렇게 ‘지독한 우려먹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 플레이시간이 지나칠 정도로 짧다. 필자가 액트4까지 모두 클리어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30시간 안팎. 필자가 액션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과 스크린샷 등을 편집하느라 보낸 시간 등을 감안한다면 실제 플레이시간은 더 짧았다. 액트5까지 클리어를 하고 나면 같은 맵을 돌며 보다 좋은 옵션의 아이템을 수집하고 레벨을 올리거나 엘리트, 하드코어 등의 새로운 모드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엘리트와 하드코어 모드 역시 단순히 몬스터의 수와 능력치를 바꾸고 특정한 제약(캐릭터의 영구한 사망)을 걸어놓은 것일 뿐, 완전히 새로운 컨텐츠가 되지는 못한다. 결국 <헬게이트: 런던>을 즐기는 유저의 경우 초반 2~3시간 후부터는 ‘능력치만 달라지는’ 몬스터를 끝없이 사냥하게 될 뿐이다.
■ 커뮤니티의 전멸, 부족한 가이드
'부재'를 넘어서 '전멸'에 가까운 커뮤니티와 부실한 가이드 역시 <헬게이트: 런던>의 고질적인 문제다. 게임의 난이도가 비교적 낮고 진행이 빠르며 원하는 아이템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탓에 굳이 번거롭게 다른 유저들과 파티를 맺거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전체채팅에 말을 걸어 봐도 해도 대부분의 유저가 ‘게임화면을 가리는 채팅창을 꺼놓고 다니는 탓’에 원하는 답변을 듣기는 힘들기 마찬가지다.
솔직히 채팅창을 켜놓는다고 해도 게임이 워낙 빠른 탓에 아예 신경조차 못 쓰는 경우가 많다. 올라오는 대화 역시 90%가 기본적인 질문이나 '앵벌 파티' 모집 글이다.
그나마 유저들이 모이는 장소인 마을(지하철역)은 채널별로 나눠져 있다.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눈앞에 있는 유저는 채 10명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 거기에 엘리트, 하드코어, 노말 유저 간에 파티나 거래가 불가능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마을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가 체험기 작성을 위해서 <헬게이트: 런던>을 플레이하던 중에 다른 유저와 파티를 한 것은 엘리트 모드의 소위 ‘앵벌방’에 들어갔을 때뿐이며 이때 나눠본 이야기 역시 ‘포탈 열어도 되나요?’가 전부였다.
초심자의 플레이를 도와줄 가이드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스스로 배우면서 하는 게 게임이라지만 아이템 분해나 창고, 조합 등 최소한의 편의기능에 대한 설명조차 없는 건 조금 지나치지 않은가?
우측 하단의 저 마크가 미니게임이다. 과연 저 마크를 보고 미니게임을 연상할 유저가 얼마나 되겠는가?
차라리 로딩 시에 나오는 ‘적에 따라 무기를 바꿔 들면 효율이 좋다’처럼 뻔한 가이드들을 빼고 저런 기초적인 정보를 알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패키지 게임? 온라인 게임? 불분명한 소속
일대다수의 전투부터 유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랜덤옵션 아이템, 그리고 큰 고민이 필요 없는 핵&슬래시 방식의 플레이까지. ‘<디아블로>의 아버지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헬게이트: 런던>은 <디아블로>의 호쾌한 시스템 그 자체를 3D세상으로 옮겨오는데 성공했다. 최신 게임에 걸맞은 화려한 그래픽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영향이 너무나 큰 탓이었을까? 현재의 <헬게이트: 런던>은 아직 자신이 온라인 게임인지 아니면 패키지 게임인지 제대로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잘 만든 게임. 그게 현재 헬게이트의 모습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현재 <헬게이트: 런던>에서는 ‘한 번 모르고 지나가면 캐릭터를 새로 만들기 전에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지’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 생성 시 '젬 활성화'를 통해 캐릭터 아래 띄울 수 있는 마법진과 초기에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도전과제 등이다.
특히 젬 활성화를 통한 캐릭터 하단의 마법진은 ‘카우 레벨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라는 사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 경우 초기에 마법진을 활성화하지 않고 캐릭터를 만든 유저의 경우 캐릭터를 새로 만들거나 아니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번 구입하고 느긋이 무료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패키지 게임에서는 또 다른 재미로 작용될 지는 몰라도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 매달 돈을 지불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다른 유저와 비교하게 되는’ 온라인게임에서는 여태껏 키운 캐릭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짜증나는 요소로 다가올 뿐이다.
거기에 유저들을 난이도 및 채널 별로 갈라놓으면서 온라인게임 최대 장점인 커뮤니티를 애초부터 스스로 막아놓고 있다. 이래서는 온라인 게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멀티모드에 가까운 수준이다.
카우방을 포기할 것인가? 몇 달 동안 꼬박꼬박 계정비를 내고 키운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 것인 것인가?
그렇다고 <헬게이트: 런던>을 패키지 게임으로 보기엔 스토리와 컨텐츠의 구성, 연출 등이 부족하다. 결국 지금의 <헬게이트: 런던>은 패키지와 온라인 게임 양쪽에 모두 자리를 잡지 못한 셈이다.
■ 기본기는 만점! 이후의 관건은 컨텐츠
앞서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게임의 기본기만 놓고 봤을 때 <헬게이트: 런던>은 분명 매력적인 게임이다. 실제로 필자 역시 체험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게임에 몰입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게임의 중독성과 스트레스 해소 부분에 점수를 매긴다면 <헬게이트: 런던>은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기본기를 보다 풍성하게 꾸미고 가꿔줄 컨텐츠나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유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밑천이 순식간에 바닥나 버리는 상황에서는 훌륭한 기본기 역시 ‘지긋지긋한 노가다성 반복플레이’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액트5와 ‘어려움’ 난이도가 추가되는 컨텐츠 업데이트가 진행됐지만 현재 <헬게이트: 런던>의 문제는 맵이 일부 추가되고 또 다시 ‘능력치만 바꾼’ 모드가 나온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맵’과 ‘전혀 새로운 몬스터’, 그리고 ‘흥미로운 신규 스토리’다.
새로운 맵과 새로운 몬스터가 필요하다!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기가 튼튼한 만큼 이제부터는 컨텐츠의 양을 늘리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되고, 이미 북미에서는 비슷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스톤헨지 업데이트를 실시한 상태다.
이를 얼마나 ‘빠르고’ ‘지속적으로’ 국내에 도입함으로써 유저들의 놀거리를 풍족하게 해줄 수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향후 <헬게이트: 런던>이 매달 돈을 내고 즐길 게임이 될 지, 그렇지 못한 일회성 게임에 머물게 될 지 판가름 날 것이다. 3개월 마다 약속된 온고잉 컨텐츠가 업데이트 될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2년이라는 기다림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 <헬게이트: 런던>. 하지만 화려한 겉과 달리 속은 매우 부실했다. 이제 그 부실한 속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채워 넣을 수 있을 지, <헬게이트: 런던>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