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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현실과 비현실 레이싱의 조화, 고고씽

고고씽 오픈 베타테스트 버전 리뷰

안정빈(한낮) 2008-06-02 09:58:52

레이싱 게임의 종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란투리스모> 처럼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게임들이고, 다른 하나는 <카트라이더>나 <리볼트>처럼 현실적인 요소를 버린 대신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잔재미를 끌어올린 캐주얼 레이싱 게임들이다.

 

오늘 이야기할 <고고씽>은 두 종류의 레이싱 타입의 경계선에 걸쳐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캐주얼 레이싱 게임에 몸을 담근 채 한쪽 발을 사실주의의 레이싱 게임에 뻗고 있다는 편이 맞겠다. 캐주얼 레이싱처럼 비현실적인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게임의 즐거움을 높이면서도 레이싱 자체는 보다 현실적으로 갖추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디스이즈게임 한낮



◆ 비현실적 트랙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속도감

 

레이싱 게임의 트랙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왔다. 과거 <행온> <세가랠리> 등의 게임에서 트랙이란 어디까지나 유저들의 실력을 겨루기 위한 무대였다. 각 게임들은 보다 사실적인 트랙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으며, 얼마나 현실과 가깝느냐가 그 트랙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하지만 <마리오카트> 등의 캐주얼 레이싱 게임이 등장하면서 트랙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게 된다. 다소의 현실성을 포기한 대신 부스터나 점프, 아이템 박스 등의 다양한 장치를 추가하면서 트랙 그 자체를 하나의 컨텐츠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비현실적인 트랙이야말로 캐주얼 레이싱 게임의 대명사라는 의견도 있다.

 

한술 더 떠서 <고고씽>은 기존의 부스터나 점프, 이동패널 등의 장치 이외에도 엄청난 고저차이와 360도 회전코너, 나선을 그리며 달리는 터널 등이 존재하는 3차원적인 트랙을 제공한다. 계속 차체를 90도로 돌린 채 원심력에 의존해 질주하는 맵도 있을 정도. 3D의 장점을 적극 살려 '레이싱 경기장보다는 롤러코스터에 가까운 트랙'을 구현해낸 것이다.

 

반면, 물리엔진과 그래픽에 있어서 <고고씽>은 오히려 여타의 캐주얼게임보다도 훨씬 현실적이다. 차체의 크기가 큰 탓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코너링과 드리프트 역시 현실주의 레이싱 게임에 가까울 만큼 묵직하다. 관성이 존재하는 탓에 한 번 속도가 붙은 차가 쉽게 밀리지 않고 360도 회전에서 가속력이 약하면 차체가 거꾸로 떨어진다.

 

그래픽 역시 바닥의 경계선이나 판과 판 사이의 이음새, 투명판 밖으로 비춰지는 배경 등 세밀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트랙에 놓인 각종 표지판이나 가림막, 아이템전에서 사용하는 대형 바위 등도 충돌이나 기울기에 따라 미끄러지고, 튕겨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튕기고, 부딪힌다. 각각의 물체에 따라 관성과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 체크포인트!

 

이처럼 현실적인 레이싱으로 위에서 말한 비현실적인 구성의 '롤러코스터에 가까운' 트랙을 달리다 보니 <고고씽>에서는 그 어떤 캐주얼 레이싱 게임보다도 뛰어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방이 뚫린 우주공간에서 차체를 90도로 기울인 채 달리거나 70도 이상의 내리막에서 이어지는 나선형 터널을 관성을 받으며 달리는 식이다. <고고씽>은 차체의 기본속도가 빠른 편이고 중력이나 관성에 따른 가속이 현실이상으로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스릴은 배가된다.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속에서 게임에 필요한 부분만을 제대로 뽑아낸 셈이다.

 

1인칭 시점이 있었으면 플레이 도중 몸을 움찔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지나치게 잦은 충돌, 사라진 힘겨루기

 

옛말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뭐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고고씽> 역시 지나치게 의욕적인 시스템 몇 가지를 무리해서 적용시키려다 보니 오히려 캐주얼 레이싱 게임만의 독특한 게임성을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 우선은 지나친 충돌효과다.

 

현실과 달리 레이싱 게임에서는 상대의 차체나 트랙 외곽에 부딪히는 일이 매우 잦다. 특히 유저끼리 순위를 겨루는 온라인 레이싱 게임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런데 <고고씽>에서는 차체 충돌 시에 범퍼카 수준으로 흔들리며 튕기는 차량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충돌로 인해 밀려나는 범위도 매우 길어서 2~3명의 유저가 모인 코너에서 충돌을 일으켰다가는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트랙 밖으로 밀려나가기 일쑤다. 심할 경우 단 한번의 충돌로 차체의 방향이 180도 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오죽하면 충돌을 비매너라 하는 유저까지 생겼을 정도.

 

가뜩이나 트랙은 트랙대로 꼬여있고, 관성과 중력까지 심하게 작용하는 <고고씽>에서 지나친 충돌효과는 유저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지나친 충돌 때문에 캐주얼 레이싱 게임의 묘미 중 하나인 '힘겨루기'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캐주얼 레이싱의 기본은 '가볍고 단순한 조작으로 상쾌한 속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나친 충돌을 피하려고 상대방과 가능한 부딪히지 않고 360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복잡한 트랙을 돌고 싶어하는 유저가 얼마나 되겠는가?

 

롤러코스터처럼 복잡한 트랙에 속도감 넘치는 레이싱을 구현하려 한 <고고씽>에서 한번의 작은 충돌로도 차량을 제어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한 번의 충돌을 겪은 후 필자가 느낀 점은 '범퍼카 모드를 만들면 재미 있겠다'였다.

 

 

아이템전에도 적용된 드리프트, 높은 진입장벽

 

드리프트로 인해 지나치게 높아진 진입장벽 역시 문제다. <고고씽>은 <카트라이더>와 마찬가지로 드리프트를 통해 부스터 게이지를 모으고 이를 사용해서 순간적인 속도를 얻을 수 있다. 드리프트 중에도 간단한 조작(방향키를 떼었다가 다시 누르는 것)을 통해 차량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손놀림이 좋은 유저들은 직선 코너에서도 좌우로 드리프트를 하면서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저와 사용할 수 없는 유저의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물론 필자도 이런 컨트롤적인 요소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고고씽>의 '아이템전'에서도 부스터를 모아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초보 유저들의 경우 직선 드리프트를 배우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방에서 무조건 패배만을 거듭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고고씽>에서 유저들의 정보를 봤을 때 대부분 80% 이상의 승률을 보이거나 반대로 80% 이상의 패배를 갖고 있었다. 중간 단계의 유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템을 사용할 때의 이펙트도 부실하다. 화면은 미사일을 맞고 차가 하늘로 뜨는 모습. 그저 퉁퉁 튕기며 세 번 떠 오를 뿐이다. 아이템전은 단순히 보너스라는 느낌.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충돌효과가 심한 <고고씽>에서는 '초반에 앞서나간 유저'를 뒤에서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패배해도 게임만 재미있으면 됐지'라는 느긋한 성격의 유저가 아닌 한 직선 드리프트를 소화할 때까지 패배를 곱씹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 RPG보다 인색한 보상과 부족한 컨텐츠

 

캐주얼 레이싱 게임치고는 지나치게 짠 보상도 문제다. <고고씽>에서 엔진 하나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드는 비용은 3천 토크(게임머니), 차량을 구입하는 비용은 5천~1만7천 토크 정도다. 반면 한번 주행으로 얻는 토크는 승리하면 20~60토크, 패배하면 0~15토크 정도다. 대충 계산해봐도 엔진 업그레이드 한번 하려면 100여 판 이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엔진의 수는 총 3개. 그나마 업그레이드 확률도 매우 낮고 실패 시 업그레이드가 떨어지는 경우까지 있다. 여기에 캐릭터와 복장이라도 구입하려고 하면 수 백판에 가까운 게임을 즐겨야(?) 한다. 초반에는 각종 이벤트를 통해 레벨 업 할 때마다 보너스 아이템과 토크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도 레벨 10까지가 한계다.

 

'단순한 꾸미기용 캐릭터'의 가격이 이 정도.

 

물론 <고고씽>의 경우 총 차량의 수가 10대도 안되고 캐릭터별 능력치 차이도 제대로 구현돼 있지 않은 만큼 최대한 컨텐츠를 아껴야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꾸준한 컨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할 일이지 유저들의 성장을 막아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 참신한 도전, 하지만 너무나 '실력중심'이다

 

<고고씽>은 캐주얼 레이싱 게임의 '제왕' <카트라이더>를 노리고 만들어진 게임이다. 드리프트와 아이템의 구성이 그랬고, 경기 초반의 연출부터 팀 부스터 등의 자잘한 부분들도 그렇다.

 

물론 <카트라이더>를 '노렸다'는 말을 쓸 수 있을 만큼 게임의 곳곳에서는 <카트라이더>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드리프트에는 현실과 캐주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고고씽> 특유의 매력이 있었고, 물리엔진과 각종 효과들도 뛰어났다. 부스터를 원하는 양만큼 나눠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실력에 따른 결과의 차이도 더욱 뚜렸해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새로운 시스템과 발상에만 매달리다보니 오히려 게임의 기본적인 재미를 놓친 부분이 많다. 완전히 실력 위주의 게임이 되다보니 유저 간의 승패가 시작 전부터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차량이나 캐릭터에 따른 차이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실력이 전부가 아닌 게임 방식이 반드시 하나 이상 필요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템 강화도 +1을 위해 엄청난 반복 플레이를 요구한다. 결국 '몇몇 이기는 유저'만이 아이템을 강화하고 또 다시 승리하고, 패배하는 유저는 계속 지기만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운으로 이길 확률도 거의 없는 게임에서 계속해서 패배만 하는 유저가 실력을 쌓을 때까지 게임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트라이더>가 성공한 이유는 엄청나게 세밀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소수의 뛰어난 유저들을 노렸기 때문이 아니다. 뛰어난 물리엔진과 컨트롤에 따른 실력차이가 게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카트라이더>는 순위에 따른 속도의 차이(후순위 유저의 속도가 조금씩 빠름)와 부스터 게이지 없는 아이템전 등 이른바 묻어가서 이겨보는 재미’를 적절히 구현했다. 꼴찌도 충분히 일등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후에 게임에 익숙해지면 본격적으로 드리프트 경쟁을 벌이는 스피드전과 다양한 토너먼트에 도전하는, 실력과 재미-보상의 적절한 흐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고고씽>의 강점인 물리엔진과 트랙 디자인은 보다 쉽고,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는 쪽으로도 충분히 살려나갈 수 있다. 앞으로 쉽고 가벼워지는 <고고씽>의 모습을 기대하며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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