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시작된 1인칭 슈팅(FPS) 장르의 열기는 2008년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도 쉽사리 꺼지지 않고 있다. FPS라는 하나의 완성된 장르로 게임을 만드는 이상, 대부분의 게임들이 완성도는 어느 정도 높은 반면, 뚜렷한 특징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나더데이>는 조금 달랐다. SF FPS를 지향하면서 들고 나온 카드는 바로 ‘부스터 액션’. <랜드매스>에서 가속 이동을 위한 부스터를 도입한 적은 있지만, <어나더데이> 처럼 공중으로 떠오르는 부스터까지 도입한 경우는 없었다.
과연 <SD건담 캡슐 파이터> <아머드 코어> 등의 메카닉 슈팅에서 볼 수 있었던 ‘부스터 액션’을 FPS에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6월24일부터 진행된 <어나더데이>의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Machine
◆ 한 줄기 섬광처럼 날아올라라!
<어나더데이>의 특징이라면 역시 ‘부스터 액션’으로 대표되는 다이나믹한 캐릭터 움직임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등에 달려있는 백팩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의 점프를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벽을 짚고 점프도 할 수 있고 좌우·후방으로 빠른 회피 스텝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좌우로 트위스트 스텝을 밟으며 점프를 하는 정도에 그쳤던 기존 FPS들의 회피 컨트롤에 비하면 상당히 독특한 요소다.
부스터 액션은 적진을 향해 특이한 루트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부스터는 [W] 키를 빠르게 두 번 누르면 사용할 수 있는데, ‘비행’의 느낌이 아니라 ‘롱 점프’의 느낌이다. 때문에 날아오르는 순간에는 총알도 피할 수 있는 스피드로 움직인다. 컨트롤만 잘 하면 순간적으로 상대의 조준을 피하거나 적의 머리 위로 넘어가서 뒤를 공격하는 등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
부스터는 장착한 백팩의 용량에 따라 1회 리스폰마다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다르다.
부스터를 사용하면 이동이 편해지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방향으로 이동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이 나오기도 한다. 부스터 액션이라는 요소 자체는 단순하지만, 이것 때문에 <어나더데이>는 기존 FPS들과 전혀 다른 플레이 감각을 선사한다.
효율적인 회피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적을 맞추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나더데이>는 이동하면서 사격을 해도 조준점이 크게 벌어지지 않고, 총기반동도 적은 편이어서 사격 컨트롤 자체는 매우 쉽다.
어느 정도 FPS의 사격 컨트롤을 익히고 있다면 승패는 정교한 조준이 아니라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심리전과 현재 교전거리에 맞는 총기를 손에 들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근접 거리에서 샷건은 그야말로 무적 수준이다.
<어나더데이>에서는 수류탄과 권총 이외에도 최소 2개의 주력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있다. 서브머신건과 저격총을 함께 들고 다니거나 스코프를 장착한 소총과 샷건을 같이 들고 다니는 등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모든 거리를 커버할 수 있도록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무기에 애드온(Add-on)을 붙이거나 튜닝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1차 테스트에서는 일부 소총에 스코프를 장착하는 정도만 가능했다. 설정이 SF인 만큼 기존 게임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무기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저격총의 노줌(No-Zoom) 크로스 헤어.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어나더데이>의 그래픽 엔진은 주피터EX다. 최고의 게임용 물리엔진이라는 하복(Havok)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고, 기존의 주피터 엔진과는 다르게 최신 그래픽 기술들이 많이 적용되어 있어서 그래픽의 퀄리티는 높은 편이다.
다만 주피터EX는 기본적으로 최적화라는 측면에서 조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그것은 <어나더데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픽의 퍼포먼스에 비해 게임이 다소 무겁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확실히 그래픽은 좋은 편이다. 로딩이 좀 길고 사양을 조금 타는 게 문제지만.
SF 밀리터리를 지향하면서도 중세 성이나 지하 미궁 같은 맵을 구성한 것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야외 맵의 경우 기대를 밑도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지만, 실내 맵들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장소 특유의 분위기가 잘 녹아들어가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총기의 타격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어나더데이>의 총기들은 반동이 크지 않고 사격하기 쉬운 편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컨트롤에 의한 타격감을 느끼기 힘든데, 사운드나 그래픽 측면에서도 타격감은 평범하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복 물리엔진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1차 테스트에서 공개된 <어나더데이>의 게임 방식은 팀 데스매치, 폭파 미션, 탈출 미션의 세 가지였다. 팀 데스매치와 폭파 미션은 기존의 FPS와 거의 동일하지만, 탈출 미션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탈출 미션의 목적은 아군 기지에 순간이동 장치를 작동시켜서 최대한 많은 아군을 전장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순간이동 장치는 아군 기지와 적군 기지에 있으며, 순간이동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컨트롤러는 맵 곳곳에 떨어져 있는 운송 상자에 들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개의 운송 상자 가운데 컨트롤러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컨트롤러야… 제발 이 상자에 있어다오…
게임 중에 누군가 컨트롤러를 습득하면 아군과 적군에게 모두 그 사실이 알려진다. 컨트롤러를 습득한 사람은 최대한 빨리 기지로 돌아가서 순간이동 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물론 상대팀은 컨트롤러를 가진 캐릭터를 쓰러뜨려서 빼앗을 수 있다.
탈출 미션에서는 일정 점수에 먼저 도달한 팀이 승리하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인원이 순간이동 장치를 타는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만약 미션을 수행하지 않고 상대팀을 모두 쓰러뜨려서 한 라운드를 이겼다고 해도 점수는 거의 얻지 못한다.
리모컨이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 장치라니, 이거 근 미래 맞죠?
다만 탈출 미션에 대한 튜토리얼이 없고 방식이 생소한데다가 직관적이지 못해서 1차 테스트 동안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방식을 추가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된다.
<어나더데이>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FPS라고는 하지만, 부스터 액션과 회피동작을 제외하면 기존의 FPS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회피동작과 부스터 액션은 확실히 많은 부분에서 플레이 감각을 바꿔주고 있다. 그저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이 나왔던 밀리터리 FPS에 질린 유저라면 충분히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영당 하나씩 지급되는 레일건. 조준점이 벌어지지 않고 거의 원샷원킬이다.
다만, 플레이 감각이 기존의 정통 FPS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감도 있다. 캐릭터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회피동작으로 총알을 피한다. SF가 배경이기 때문에 익숙한 총기나 장비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사격은 너무 쉬워서 ‘컨트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고, 타격감도 1차 테스트를 기준으로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FPS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과 별개로, 정통 FPS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어나더데이>는 매우 낯선 게임이다. 익숙한 느낌과 재미 요소를 잊고 새로운 감각을 찾지 않으면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게임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부스터 액션이나 SF 무기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튜토리얼이나 다양한 장치를 추가한다면 훨씬 진입장벽이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운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안고 가는 것이다.
적을 먼저 찾고 쏴서 쓰러뜨리는 것이 전부였던 FPS에서 공격과 회피를 공존하도록 만든다는 발상이 기존의 플레이 감각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지, 단순히 달걀을 깨버린 사람의 궤변처럼 잊혀질지는 유저들의 냉정한 판단에 의해 결정될 일이다.
다음 테스트에서는 타격감 향상을 비롯해 아직 투입되지 않은 총기 개조 시스템, 아이템과 병과 특성화, 시나리오 모드 등을 추가해 한층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