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가도를 달리는 <아이온> RvR의 핵심 컨텐츠인 요새전. 하지만 상용화 이후 실제로 진행된 요새전은 유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 부족했다. 전략은 실종되고 단순한 '숫자놀이 레이드'로 전락한 요새전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아이온디스 필진 곱절
<아이온>의 상용화를 하루 앞둔 11월 24일, 필자는 오랜만에 책방에 발걸음을 했다. 평소에 보는 글이라고는 <아이온> 관련 글과 지하철 노선도 뿐일 정도로 활자와 소원한 필자가 서점에 간 이유는 병법서(!)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지인들로부터 ‘군대 갈 날이 머지 않았다더니 밀리터리 마니아로 전향이라도 하려나’ 등의 흰소리를 들었지만, 사실 필자는 소싯적부터 남몰래 간직해 온 꿈이 있었다.
‘필자가 선정한 존경하는 인물 10년 연속 1위’, ‘삼국지 팬들이 선정한 사기 캐릭터 부동의 1위’ 에 빛나는 그 남자. 필자는 제갈공명이 되고 싶었다! ‘요새 점령’ 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수많은 칼과 지략이 맞부딪힐 전장만 생각해도 가슴이 울렁이고 각오가 섰다. ‘모름지기 무한 RvR의 클라이막스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제갈공명(건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출처 : 삼국지 IX)
그렇게 꿈에 부푼 필자는 손자병법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요새전이 시작된 지 10분만에 책값이 아까워 땅을 치고 후회했다.
앞에서는 흥미를 위해 다소 과장해서 표현했지만(안타깝게도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필자는 <아이온>의 요새전을 많이 기대했다. 비록 클로즈 베타테스트에서는 숫자로 밀고 당기기 식의 단순 전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지용찬 개발팀장도 오픈 전 몇 차례의 인터뷰에서 ‘동양의 병법과도 같은 전쟁’, ‘특색있는 구조의 요새’ 등을 언급하며 오픈 후에는 이전과는 다른 형식의 요새전이 이루어질 것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오픈베타를 먼저 접해보자! 지용찬팀장 인터뷰 - ① (TIG 아이온)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별로 느낄 수 없었다.
상용화가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나면서, 각 서버마다 요새 점령에 성공한 레기온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플레이하는 서버에서도 요새전이 벌어졌고 당연히 필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요새의 공략법 자체는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요약하자면 ‘누가 제일 빨리 수호신장 앞까지 도달해서 첫 타를 날리느냐’의 이른바 ‘선빵싸움’ 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장애물이 비교적 적은 뒷문으로 네다섯 포스에 달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가 요새 내부의 용족들과 수호신장을 20분 남짓한 시간에 쓸어버리는 허무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요새전인지 레이드인지 분간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20분 타임 어택 레이드인가?>
물론 아직 상용화 초기라 요새전을 즐기는 유저는 물론, 어비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유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베타테스트 시절에 요새전을 체험한 레기온에 비해 새로 만들어진 레기온들의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단순히 놓고 말해 몬스터나 다름없는 용족의 인공지능(AI)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레이드 방식의 요새전은 몇 가지 이유로 전략의 의미가 크게 반감된다.
먼저, 수호신장의 행동이나 위치가 정해져 있다. 요새마다 수호신장이 나타나는 위치가 다른 경우도 있지만, 한두 번 요새전을 치르다 보면 수호신장을 향한 공식 루트(?)가 생기게 된다. 수호신장의 위치가 일정하기 때문에 주된 공격 루트가 한정적이다. 또한 요새마다 똑같은 수호신장이 엇비슷한 스킬과 패턴을 쓰기 때문에 수호신장 공략에도 큰 전략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메인 탱커가 죽지 않도록 힐링하면서 광역 스킬 조심하고, 몬스터 소환에 주의하는 것 뿐이다.
둘째로, 모든 전투가 요새로 집중된다. 요새전에 앞서 아티팩트 점령을 놓고 쟁탈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하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요새전 시작 전의 포석에 불과했다. 요새전이 시작되면 수호신장에게 도달하는 게 최우선이므로 결국 요새를 노리는 대부분의 인원이 수호신장을 향해 돌격하게 된다. 때문에 요새전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전투는 요새의 진입로와 수호신장의 방으로 집중된다.
셋째로, 요새전의 동기가 미약하다. 기본적으로 대규모의 인원이 참여할수록 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술도 풍부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요새전 보상체계로는 수많은 군소 레기온과 소속이 없는 개인 유저들의 참여동기가 매우 약하다. 현재 요새전의 보상으로는 공적에 따른 세금 배분과 공훈장, 그리고 종족 버프 정도이다. 그나마도 세금과 공훈장은 아직 쓸모가 없고, 종족 규모의 버프가 있다고는 하지만 발동석도 2개나 들어가고, 누군가 발동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눈에 띄는 혜택을 받지는 못 한다. 이래서는 요새전이 거대 레기온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비루한 보상…>
아이온의 요새전에도 전략적으로 쓰일 수 있는 요소들은 아직 있다.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아티팩트, 아직 아무도 만들지 못 한 공성병기, 드레드기온의 출몰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으로 인해 요새전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한, 요새전의 재미 또한 반감된다.
수호신장 공략의 획일성을 탈피하기 위해 수호신장의 랜덤 리젠, 요새마다 특색 있는 수호신장 스킬 등을 도입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요새의 구조(진입로, 구조물 등)나 보상 체계 등이 필요하다. 또한 요새 근처의 필드에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구조물(함정이나 목책) 등을 세울 수 있다면, 전장의 확장과 전략적 재미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레벨이 낮아서 상층부나 심층부의 요새 공략을 시도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하층부의 요새 3개 외에는 그 구조나 공략법이 밝혀진 바가 없다. 또한 <아이온>은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필드 기반의 새로운 어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보다 새롭고 스릴있는 요새전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