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풀면서 지적 만족을 얻도록 만든 알아맞히기 놀이
탈출: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인간은 한없이 넓은 우주 속의 작은 먼지 같은 존재"라거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자. 인간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존재의 의의'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심지어 게임에게도, 캐릭터에게도 마찬가지다.
퍼즐 게임 <쿠키런: 마녀의 성>이 오늘(15일) 오전 10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게임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마녀의 성'에서 쿠키들이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게임은 그 동안 <쿠키런>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세계관 중 가장 앞선 시점을 다루는 '프리퀄'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의 목표는 매우 직관적이다. 퍼즐을 풀고 '별'을 모아, 성 안에서 길을 트고 창문 밖으로 탈출하는 것. 그 과정에서 성 안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비롯해 새로운 쿠키들을 만나며 이야기는 확장된다.
그런데 이 게임은 하나의 거대한 역설을 품고 있다. 탈출해야 할 두려운 공간이자 폐허에 가까웠던 성 안의 공간들을, '데코'를 획득해 꾸며나가고 쿠키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간다. 용감한 쿠키와 일행들이 지나간 자리는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해간다. 설령 그들이 생존을 위해 마녀로부터 도망친 흔적의 일부일지라도 말이다. 일본 드라마 제목처럼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역설은 항상 물음표를 달고 다닌다. "마녀의 성이라는 공간은 쿠키와 마녀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 답 또한 이번 게임 안에 있다.
만약 당신이 <쿠키런> 시리즈 팬이라면 이 게임을 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쿠키런: 마녀의 성>은 일반적인 캐주얼 퍼즐 게임과 달리 스토리,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힘을 제대로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양정화, 서유리 성우 등 목소리 캐스팅은 물론이고, 전개나 연출만 봐도 그 내공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클리셰를 비틀었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손과 매부리코 모양의 가면을 쓴 실루엣만 보면 전형적인 마녀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소녀'로 지칭되는 마녀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위치베리맛 쿠키'는 마녀가 있는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미스터리와 공포는 '용감한 쿠키'의 탈출 서사의 동기로서 완벽하게 기능한다. 살아남으려면 성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 그다지 용감해 보이지 않는 순간이 꽤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세상으로 끊임없이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용감한 쿠키'의 작명 과정도 자연스레 납득이 간다.
명랑한 쿠키를 비롯해 동료가 되어줄 쿠키들, 성 안에 오래 살았던(또는 갇혀 있던) 주민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더욱 입체성을 띈다. 이들이 서로에게 '동료애' 또는 '우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굉장히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마음처럼 그려지지만, 이를 둘러싼 상황과 연출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떤 때는 스릴러였다가, 어떤 때는 판타지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쿠키런> 시리즈는 원래부터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까웠고, 캐릭터들이 양면성을 가진 경우가 많았었다. 이번 작품이 유독 반갑고 유쾌하게 느껴졌던 건, 그 양면성을 가감 없이 담아냈기 때문이다. 명랑한 쿠키의 광기를 마주하면, 다음 쿠키들은 어떤 반전을 품고 있을지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서문에 소개한 것처럼 <쿠키런: 마녀의 성>은 아이러니한 게임이다. 탈출하기 위해 모험을 나선 쿠키들은 퍼즐을 풀며 '별'을 모으고, 이를 활용해 지나온 공간들을 새롭게 단장한다. 벽지, 바닥, 가구 및 오브제 등 '데코' 아이템을 원하는 대로 배치할 수 있고, 쿠키들을 특정 공간에 입주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해금한 공간이 퍼즐 플레이 등에 필요한 아이템을 생산하는 건 부가적인 요소에 가깝다.
쿠키들이 걸어온 길(엄밀히 따지면 탈출하기 위해 도망쳐온 공간)이 다시 생기를 띄게 되는 것은, 마녀와 쿠키가 사는 시간, 공간의 성질 자체가 다름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별을 따라가는 쿠키들이 희망을 찾는 이야기라고 다시 쓸 수 있다. 마녀의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공포 영화다. 누군가의 탈출이 누군가의 점령처럼 보이는 것은 기자 혼자만이 아니리라. 그 역설이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다만, 용감한 쿠키가 꿈꾸는 '탈출'이라는 목표는 이 게임의 서비스가 지속되는 한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마녀의 성' 밖으로 나가버리면 서사가 끝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모를 일이지만, 성 안의 성과 같은 구조로 탈출에 성공한 느낌을 주며 매듭을 짓고 넘어갈 수도 있고, 진짜 탈출에 성공해도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다시 성으로 들어와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이번 <쿠키런: 마녀의 성>이 출시되기 전, 기자의 걱정은 하나였다. 쿠키들의 매력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충분히 증명됐지만, 퍼즐이 재밌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던 상황이다. 출시 이후 이는 불필요한 기우였던 것으로 판명됐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일단 재밌다.
<쿠키런: 마녀의 성>은 2개 이상의 연결된 같은 색 블록을 터치해 터트리는 '탭 투 블라스트' 방식의 퍼즐 게임이다. 연결된 블록 개수가 많으면 터진 이후 부스터로 변환되며, 폭탄, 폭죽, 젤리곰 등은 넓은 범위를 파괴할 수 있다. 매우 직관적인 퍼즐이지만 일부 스테이지는 만만치 않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쿠키들은 각기 다른 쿠키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이 효과와 연출도 눈에 띈다. 뱀파이어맛 쿠키는 십자 모양의 다섯 칸을 확정적으로 터트리면서, 붉은 흡혈귀 입으로 씹어 먹는 듯한 연출이 동반된다. 크림 유니콘 쿠키는 3X3 아홉 칸 범위 안에서 네 칸을 확률적으로 터트리며, 유니콘이 블록을 부수는 연출이 등장한다.
쿠키 스킬은 '생명 물약'을 소모하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해야 하며, 밸런스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개발팀은 각기 다른 쿠키 스킬들이 퍼즐 플레이 난이도에 영향을 주게 설계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퍼즐 플레이 화면 안에서의 디테일이었다. 블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결된 개수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부스터의 종류가 블록 윗면에 음각으로 표시되는 게 눈에 띈다. 일반 스테이지와 달리 제한 시간이 있는 보너스 스테이지 등에서 빠르게 플레이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이런 표시가 유용하게 활용됐다.
또한, <쿠키런>스러움을 퍼즐 화면 안에서 담아낸 점도 좋았다. 앞서 소개한 쿠키 스킬이 대표적이지만, 곰젤리 부스터와 같은 아이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에 <쿠키런> 팬들에게 익숙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최민석 PD는 "<오븐브레이크>에 있었던 젤리 개구리나 만드라고라도 기믹으로 등장해, 퍼즐 판만 보더라도 <쿠키런>의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60 스테이지 이상 진행하면 보스전을 경험하게 된다. <오븐브레이크> 이후 매우 오랜만에 등장하는 '쿨쿨이'가 거대한 고양이에게 붙잡힌 위기 상황. 쿠키들은 고양이를 무찌르고 쿨쿨이를 구출해야 한다.
보스전의 기믹도 신선한 편이었다. 고양이는 블록 중간 중간에 통조림을 생성하는데, 인접한 블록을 터트리거나 부스터 공격 범위로 통조림을 파괴하면, 고양이에게 대미지가 들어간다. 체력을 모두 깎으면, 고양이를 빠르게 연타하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 요소도 있다. 특정 시간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과 누가 더 많은 스테이지를 깨는지 등을 경쟁하는 빗자루 레이스, 케이크 쌓기 대회 등이 있었다.
보스전도 PvP도 결국 본질적으론 나와 내가 아닌 존재들 사이의 싸움이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쿠키들은 무엇을 하고 있고,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분투하는 쿠키들의 서사를 담은 퍼즐 게임 <쿠키런: 마녀의 성>은 "초심"이 강조된 게임이다. 점프 앤 슬라이드의 간편한 조작으로 시작됐던 런게임 <오븐브레이크>처럼 직관적인 퍼즐로 쿠키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근원으로 돌아갔다. 서문에서 소개한 문장을 뒤집어 이런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쿠키들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