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나서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존재가 있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사운드에 이상이 생기면 이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사운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는지도 새삼 깨닫고는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접속해 각자의 ‘소리’를 내는 MMO 장르에서 체계적인 사운드 디자인은 유저 경험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6월 9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에는 글로벌 MMO <길드워2>의 사운드 디자이너 홍성하가 ‘맛있는 스테이크 같은 게임 개발하기’라는 주제로 <길드워2> 사운드 디자인의 핵심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스테이크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소스를 더했을 때 풍미가 한층 배가된다. 홍성하 디자이너는 게임에서 사운드 역시 스테이크 소스와 같이 게임을 밋밋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가 설명하는 사운드 디자인의 4가지 핵심을 짚어본다. 모든 내용은 <길드워 2> 오디오 개발팀의 실제 업무수행 방식에 기반해 설명됐다.
강연자: 홍성하
소속: NC 웨스트 산하 아레나넷 <길드워 2> 개발팀
이력:
▲‘2018 최고의 인디게임’ <셀레스트> DLC OST 첼로 연주
▲ 넥슨 ‘2017 트리 오브 세이비어 OST 커버 공모전’ 우승자
▲ 버클리음대 Electronic Production & Design 전공
거대한 MMO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개별 장소의 특색에 맞는 각종 음향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운드 디자인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환경 사운드 믹싱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오디오 존’을 설정해준다. 먼저 가장 배경이 되는 환경음(바람 소리 등)을 맵 전반에 깔아둔다. 그다음 게임 내 각각의 장소 특색에 맞게 더 작은 오디오 존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도시에 진입하면 도시 소음이 들리도록 설정하는 식이다.
이 때 오디오 존 별로 ‘우선순위’와 ‘타입’을 설정한다. ‘우선순위’는 해당 오디오 존과 다른 존 사이의 덮어씌우기 순서를 결정한다. ‘타입’은 음향이 기존 음향에 ‘추가’될 것인지, 혹은 완전히 기존 음향을 ‘대체’할 것인지 결정한다.
예를 들어 선술집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도시 소음이 사라지고 술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면, 술잔 소리는 도시 소음보다 우선순위가 높으며, ‘대체’ 타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우선순위와 타입을 적절히 설정하면 유저는 캐릭터를 이동시킬 때 주변 사운드를 통해 자연스러운 환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믹싱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로컬’사운드와 ‘논로컬’ 사운드의 구분이다. ‘로컬’ 사운드는 유저 본인의 캐릭터에 연관된 음향이고 ‘논로컬’은 다른 유저 캐릭터의 활동에서 나오는 음향이다. 논로컬 사운드는 사용자 관점에서 덜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적 우선순위가 낮으며, 따라서 볼륨을 작게 설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쾌적함을 키울 수 있다.
보스 사운드 디자인에서는 ‘덕킹(ducking)’과 ‘보이스 리미팅’(voice limiting)의 두 가지 개념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먼저 덕킹이란 ‘사운드 B’가 재생되는 와중에 ‘사운드 A’가 겹쳐 재생되면, 해당 구간에서 ‘사운드 B’의 볼륨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작업을 말한다. 이는 물론 ‘사운드 A’의 중요도가 높기 때문이다. 보스 사운드는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기 때문에 보스 사운드 출력 시 일반 몬스터 사운드 및 환경 사운드 등은 덕킹된다.
보이스 리미팅이란 여러 사운드가 한꺼번에 재생될 경우, 이 중 실제로 들리는 사운드의 가짓수를 한정하는 작업이다. 카테고리별로 다르게 설정하는데, <길드워 2>에서는 플레이어 자신이 내는 로컬 사운드의 경우 중요도가 높아 최대 20개 소리가 동시 재생된다.
이외에도 보스는 단일 스킬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 발동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사운드마저 중첩되면 듣기 불편한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단일한 소리만 나오도록 조정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길드워 2> 팀은 이를 ‘사운드 레일(rail)’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은 같은 소리가 2~3번만 반복돼도 이를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게임 내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 수행할 때 매번 같은 소리가 나온다면 금방 질릴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사운드의 볼륨이나 피치 등 특성을 랜덤하게 변형시켜, 10개 이상의 사운드 파일이 준비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길드워 2> 팀이 ‘리플레이 딜레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다. 이는 유저가 특정 동작을 빠르게 반복 수행하더라도, 사운드는 동일 속도로 재생되지 않고, 대신 일정 간격을 둔 채 재생되도록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안녕’이라는 감정표현을 초당 세 번씩 사용하는 유저가 있더라도, 실제 ‘안녕’ 음성은 1~2초에 한 번씩만 재생되도록 제한하는 식이다.
사운드 디자이너의 중요 덕목 중 하나다. 신규 사운드 콘텐츠를 테스트 단계에서 수없이 검토했다 하더라도, 실제 라이브서비스에서는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게임이 업데이트된 이후 라이브서버를 사운드 디자이너가 실제로 플레이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게임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를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운드가 게임플레이에 적합한지 알아채기 힘들기 때문이다. 직접 플레이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스트리머들의 게임을 시청하는 방법도 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음향기구를 이용해 라이브서버를 체험해볼 필요가 있다. 음향기기에 관심이 많은 일부 유저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저렴한 헤드셋이나 이어폰 등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음향기기 종류에 상관없이 오디오 개발팀의 개발 의도가 적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여러 기기를 사용하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홍성하 디자이너는 오디오 개발팀이 가져야 할 자세와 당부의 말로 강연을 마쳤다.
오디오 개발팀은 방음된 사운드 룸에서 작업하면서 다른 부서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전체 개발팀에서 별개 부서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아예 개발팀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화 등 선형 콘텐츠와 달리 인터랙티브 콘텐츠인 게임에서 음향은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의 별개 작업으로 구분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오디오 개발팀은 다른 부서와의 교류, 조화에 힘쓰고, 기타 개발팀은 개발 단계에서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