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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모범적 리메이크’를 탄생시킨 개발 철학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에릭 바티자 디렉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11-20 17:31:55
2023년 게임계에는 명작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퀄리티 대비 다소 빠르게 화제에서 벗어난 작품들도 많다. 연초에 출시한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도 하나의 예시다. 많은 원작 팬들이 환호했고, 원작을 모르는 게이머들 역시 호평한 타이틀이지만 게이머들의 관심은 이후 연달아 나온 작품들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장 모범적인 리메이크’, ‘원작에 보내는 완벽한 경의’ 등의 극찬이 게임에 쏟아진 것에서 알 수 있듯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가 원작의 재미를 재해석한 방식에는 유념할 만한 특별함이 있다.

지스타 2023 현장에서 강연에 나선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 개발사 ‘EA 모티브’의 에릭 바티자 디렉터는 그 탄생 비화를 직접 공개했다. 원작의 핵심 가치를 전달하고 심화하기 위해 바티자와 팀원들은 4가지 핵심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했다.



# 첫 번째 원칙: 오리지널리티(원작 존중)

바티자는 엔진과 개발진 모두 달라진 상태에서 15년 전 작품을 재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개발팀은 원작의 비주얼 개선에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재미까지 구현하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것은 쉽지 않았다.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를 만들려다가 원작의 느낌을 잃고 마는 사례는 빈번했다.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팀은 몇 가지 전략을 세워야 했다. 우선 원작의 기억을 되살릴 목적으로 자체적인 게임플레이 세션을 진행했다. 다함께 게임을 즐기며 <데드스페이스>를 좋은 게임으로 만들어준 요소들, 그리고 개선할 점을 찾는 과정이었다.

함께 원작을 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일반적 팬 커뮤니티처럼 피드백을 줄 별도의 그룹을 구성했다. 그룹에 속한 11명은 모두 원작의 열혈 팬이었으며, 한 명은 원작 개발자였다. 이들로부터 게임을 정기적으로 검토받으며 잘 한 점과 못 한 점에 관한 솔직한 피드백을 수집했다. 바티자는 “팀이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팬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한다.

게임이 외부에 공개된 이후에는 총 4번의 개발자 라이브스트림을 진행, 실제 팬 커뮤니티로부터 게임의 비전이나 음향, 비주얼, 특수효과 등에 대한 종합적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통해 게임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게임을 개선할 수 있었다. 팬 커뮤니티는 무조건적 ‘원작 고수’만을 원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펄스 라이플’ 무기의 경우 초기엔 원작의 음향 효과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커뮤니티는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내놓았고, 그래서 제작진은 새 음향을 적절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11명의 '팬 대표'로 이뤄진 소규모 피드백 그룹이 개발 과정 전반을 함께했다.


# 두 번째 원칙: 공포

이어서 바티자는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의 공포를 어떻게 연출해냈는지 설명했다. 원작에서 게임에 공포를 더해주는 요소 중 하나가 하나가 바로 ‘네크로모프’의 약점을 맞춰 신체 부위를 잘라내는 절단 메커니즘이었다.

개발 초기에는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개발진은 한 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필링(peeling·껍질 벗기기) 시스템이다.

필링 시스템은 네크로모프의 신체 부위 해체 과정을 눈에 더 잘 보이게 해준다. 팔다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잘려나가는 대신, 그 전까지 피부나 조직이 조금씩 겉으로 드러나 해체되고 흘러내리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이는 유저가 적에게 어떤 피해를 얼마나 주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예를 들어 관통형 무기의 경우 적의 뼈를 드러내기 때문에, 깊숙이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화염방사 무기의 경우 피부만 타기 때문에 절단을 유도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사실 제작진은 이런 신체 손상 시스템을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게임플레이적으로도 심화할 생각이었다. 무기를 사용했을 때 각 신체 부위에 주는 충격의 정도를 달리 해서, 어떤 부위는 특히 더 많이 맞춰야 절단할 수 있게끔 파라미터를 모두 세분화했었다.

네크로모프의 신체 각 부위별로 떨어져 나갈때까지의 대미지 파라미터를 세분화했었다. 이 아이디어는 기각됐다.

흥미로운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론 ‘실패작’이었다고 바티자는 말한다. 원작의 재미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원작을 기억하는 유저들은 네크로모프를 쓰러뜨리는데 필요한 평균적 공격 횟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그 기억을 위배하지 않고자 해당 시스템을 폐기했다.

한편 바티자는, 현실적 공포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가 두려움(terror) 혹은 긴장감(tension)이라고 말한다. 곧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심리적 방어에 들어가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이전까지의 공포 게임에서 긴장감 유발은 보통 스크립트를 통해 연출됐다. 예를 들어 적이 나타나기 전에 음악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고정불변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할 경우 같은 장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긴장과 공포가 줄어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저가 적을 다 해치웠을 경우다.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게 되고 만다.

두려움은 무엇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제작진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언제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긴장감 디렉터’(intensity director)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먼저 음악, 생명력, 적 숫자 등의 요소를 종합해 긴장감의 단계를 1~10으로 나눈다.

그리고 여기에 연기, 시청각 특수효과, 빛, 환각, 적 등장과 같은 요소를 투입해 긴장감 단계를 조금씩 키우는 것이 바로 긴장감 디렉터 시스템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같은 구간을 플레이하더라도 매번 연출과 적 등장 등 세부 요소가 달라지게 됐고, 게임의 전반적 긴장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는 혁신적 시스템이지만, 게임 진행 및 밸런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몬스터 숫자가 더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탄환 등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경우 인텐시티 디렉터로 인해 게임플레이 자체에 지장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

해당 문제는 문서상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플레이테스트를 통한 검증이 이뤄졌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긴장감 디렉터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디렉터가 제 기능을 하면서도 과도하지 않게 작동하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긴장감 디렉터는 게임플레이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긴장감을 점증하는 자동 연출 장치이다.


# 세 번째 원칙: 물 흐르는 듯한 경험

원작보다 나아진 경험을 주기 위해  제작진이 노력한 세 번째 지점은 바로 경험의 연속성이다. 

로딩이나 카메라 컷씬 등으로 게임플레이가 끊어지면 유저의 몰입감은 깨질 수 있다. 제작진은 <데드스페이스 리메이크>의 플레이어들이 시작버튼을 누른 그 순간부터 게임에서 나갈 때까지 몰입을 지속하길 바랐다.

여기서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바로 로딩이었다. 원작 <데드스페이스>의 경우 게임의 무대인 이시무라 호가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를 로딩을 통해서 넘나들 수 있었다.

제작진은 새 게임에서 로딩이 존재하질 않길 바랐다. 하지만 기존 월드맵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따를 경우, 각 지역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 로딩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맵의 레이아웃을 바꾸면서도 기존의 경험을 유지하기 위한 밸런싱에 나섰고, 다시금 끊임 없는 피드백을 받았다.

원작의 복잡한 맵 구성을 탐험하려면 로딩이 필수였다.

결과적으로 제작진은 원작에도 있었던 트램(전철) 시스템을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인게임 맵에 실제로 긴 노선의 트램을 설치하고, 여기 탑승한 채 각 구역을 이동하는 동안 로딩이 이뤄지게 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극복해야 하는 기술적 과제가 많았다. 예를 들어 당연히 트램 탑승 시간이 너무 길어져선 안 되기 때문에 시간 단축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트램에서 밖을 살펴볼 때, 트램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했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게임플레이 요소를 더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선형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끝을 맺었지만 이번에는 유저가 원한다면 이전의 장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구조를 통해 선택적인 사이드 퀘스트와 모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혁신은 자유 유영 시스템이다. 1편에서 주인공이 무중력 공간에 접어들 경우, 벽에서 다른 벽으로 옮기며 플레이하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간을 공중부양 상태로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무중력 공간에서의 모험 자유도가 높아졌다. 1편에서는 가볼 수 없었던 구석구석을 직접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몰입을 깨지 않은 채 공간에 대한 호기심 또한 자극하면서 탐험의 재미를 심화할 수 있었다.

자유 유영 시스템을 통해 게임플레이를 현대화할 수 있었다.


# 네 번째 원칙: 창의적 게임플레이

네 번째로 제작진은 전투에서도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 무기 시스템 개선을 결정했다.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무기 시스템은 1편의 상징적인 영역이었고, 팬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니아들은 무기의 발사음까지 기억할 정도였기 때문에, 무기 유형 자체를 바꾸는 것은 너무 위험성이 컸다. 그래서 제작진은 무기의 2차 발사 방식을 바꾸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예를 들어 레일건으로 레이저 함정을 설치할 수 있게 됐고, 그 외에 화염벽을 만들거나 적을 끌어들이는 등의 기능이 무기들에 추가됐다. 이를 통해 유저들은 창의적으로 무기를 조합하고 새로운 공격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유저가 마음껏 무기를 조합하고 실험할 수 있는 자유도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것이 레이저 함정을 이용한 광선검 공격이다. 원래 레이저 함정은 벽면 등에 부착해 이를 지나는 적에게 지속 대미지를 입히는 방식의 무기다. 그런데 유저들은 이를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에 붙인 채 오브젝트를 들고 다니면서 ‘광선검’처럼 휘두르고 다녔다.

상호작용 오브젝트를 증가시킨 것 또한 전투 자유도에 일조했다. 맵에 파이프, 소화기 등을 많이 설치해 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일부는 제작진의 의도 대로 잘 활용됐지만, 어떤 요소들은 대부분의 유저가 모른 채 지나가기도 했다고 바티자는 전했다.

한편 환경 상호작용 시스템은 퍼즐 풀이에도 이용됐다. 불에 타지 않는 블록으로 화염이 분출되는 파이프를 막아 통로를 지나는 등의 퍼즐 구간을 말한다. 이런 퍼즐은 때로는 분명하게 제시됐지만, 때로는 모호하게 제시되면서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떤 오브젝트들은 미처 활용되지 못했다.


# 숨겨진 다섯 번째 원칙: 일점 집중

한편 바티자는 앞선 네 가지 원칙을 추구함에 있어 항상 중요하게 지켜진 다섯 번째의 숨겨진 원칙, ‘일점 집중’(laser focused)을 설명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그 재미를 심화하기 위해 바티자의 팀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들 아이디어를 일일이 실험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네 가지 원칙에 따라 그 중요도를 판단하고, 그렇게 선택한 하나의 아이디어에 고도로 집중해보는 것 또한 중요했다.

즉,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 있어 처음에는 양(quality)에 치중하더라도, 나중에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고도화하고 퀄리티를 높여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전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확한 개발 원칙에 맞는 아이디어를 선별해 고도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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