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컴 투게더>가 지스타 2024에서 일반 플레이어를 처음으로 만났다. <딩컴 투게더>는 크래프톤 산하 5민랩이 <딩컴> 원작자 제임스 벤던과 협력하여 멀티플랫폼으로 개발 중인 오픈월드 생존/생활 게임이다.
원작의 정신을 최대한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미감과 온라인 기능들을 더해 재미를 새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게 5민랩의 계획이다. 지스타 부스에서 짧은 체험을 통해 처음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플레이해 본 <딩컴 투게더>는, 아직 개발이 한창인 게임이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마감, 마음이 포근해지는 아름다운 비주얼, 그리고 그 중심에 단단히 심겨 있는 생존 메카닉이 인상적이다. 더 나아가 호주 아웃백 환경의 깜찍한 재해석은 그 자체로 게임에 독보적인 룩&필을 부여해 차별화하고 있다.
원작 <딩컴>은 ‘호주판 <동물의 숲>’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게임으로, 실제 <동물의 숲>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직접 플레이해 보면 정작 핵심이 되는 플레이 감각은 판이한 편이다. <동물의 숲>을 <동물의 숲>으로 만들어 주는 몽글몽글함은 빠지고, 그 자리를 거칠지만 정겨운 아웃백의 풍경과 그에 어울리는 생존 메카닉으로 채워뒀기 때문이다.
<딩컴 투게더>는 비주얼 톤 측면에서 <딩컴>보다는 <동물의 숲>에 한 발 더 다가간 모습이다. 이국적인 자연물과 식생, 아웃백의 묘사는 분명 <딩컴>의 호주를 떠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전반적으로 필터를 씌운 듯 뽀얗다. 이것은 비유이자 문자 그대로의 사실인데 게임의 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면 의미를 즉시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은 캐릭터, 동물, 소품, 색감 등 여러 부분에서 귀여움을 발산한다. 그러면서도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정도로 ‘밸런스’를 챙겼다. 유일하게 그 농도가 부담스러워지는 지점은 인간 캐릭터들이다. ‘나 귀여워’를 워낙 노골적으로 어필하는 탓에, 유저 성향에 따라 말 걸기가 조금 꺼려질 수도 있다.
동식물은 <딩컴 투게더>의 백미다. 우리에겐 낯선 생태인 탓에 그 묘사의 충실도를 제대로 논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모습들을 그대로 잘 담으면서도 귀여운 터치를 잊지 않았다.
아이템은 구경하는 맛이 있다. <동물의 숲> 역시 아기자기하면서도 디테일이 넘치는 아이템으로 눈을 즐겁게 했는데, 이것을 적절히 참고해 익숙한 사물들의 표현에서 잘 디자인된 장난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탁월한 미감은 자연스럽게 꾸미기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이 또한 <동물의 숲>에서 중시되었던 요소 중 하나로, 의상의 색상이나 형태는 물론 질감까지 풍부히 느껴지도록 표현해 다양한 옷을 입어 보는 만족감을 최대화하고 있다.
호주만의 개성 있는 환경 표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캥거루 주의’ 표지판이나 버려진 차량, 황량한 도로 등으로 다른 생활 시뮬레이션에선 접하기 힘든 호주 대륙의 감성을 전한다.
<딩컴 투게더>를 개발 중인 박문형 PD는 공동 인터뷰에서 게임이 “30~40% 정도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채우지 못했다는 60~70%가 오로지 콘텐츠 측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딩컴 투게더>의 시스템적, UI적 마감은 현 상태로 이미 견고하다.
<딩컴 투게더>는 멀티플랫폼으로 기획되어 있지만, 이번 시연은 먼저 준비된 모바일 버전으로 이뤄졌다. 왼쪽 아래 가상 조이스틱으로 캐릭터를 움직이고, 오른손으로 빈 공간을 터치해 화면을 돌리는 일반적인 모바일 조작 체계를 따르는데, 거슬리는 지점이 거의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정갈하고 유려한 UI도 높이 살 만하다.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쓴 전체 기획에 맞춰, UI의 질감과 색감,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공을 들였다.
어색한 지점이 아예 없지는 않다. 게임 특성상 화면 내에 표시되는 오브젝트가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튀다 보니 특히 야생 환경에선 가끔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체력, 스태미너 UI의 경우 가시성은 좋지만 다소 미관을 해치는 인상도 준다.
평화롭고 느긋하게 플레이해야 할 <동물의 숲>을 한국인들만 유독 경영 시뮬레이션처럼(혹은 채무자 시뮬레이션처럼) 독하게 플레이한다는 농담은 널리 퍼져있다. 한국인 특유의 열성적 기질을 보여주는 밈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나름의 시사점이 있다.
<동물의 숲>은 사랑스럽지만, 동기부여를 중시하는 유저라면 ‘싱겁다’고 여길 만하다. 할 수 있는 활동은 많은데, 그중 ‘꼭 해야 할’ 것은 손에 꼽는다. 사실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빚 갚기’ 혹은 ‘부자 되기’ 등의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플레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각종 스테이션에서 아이템을 만들거나 가공하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는 <딩컴>에서도 비슷하게 포착되는 현상이다. 생존 장르인 만큼 농사, 요리, 사냥, 건설 등 생산적 요소가 <동물의 숲>보다 월등히 많지만, 그럼에도 게임 초반을 지난 뒤 동기 부여가 다소 흐릿해지는 것이 게임의 단점 중 하나로 꼽혀 왔다.
<딩컴 투게더>는 <딩컴>의 알찬 생존 메카닉과 <동물의 숲>의 사랑스러운 감성, 그리고 다양한 ‘할 일’을 한 게임에서 만나보길 원하는 유저들에게 딱 어울리는 게임일 수 있다. 박문형 PD는 이 게임을 두고 ‘볼거리, 놀거리, 만들 거리가 가득한 게임’이라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시연 버전에서도 이런 방향성이 얼마간 확인된다.
퀘스트가 다양하다
수집품 모으기, 동물 길들여 타기, 사냥하기, 낚시하기, 공항 만들어 다른 섬 방문하기 등 여러 크고 작은 퀘스트들은 전반적 콘텐츠의 폭을 짐작하게 한다. 각각의 퀘스트는 임무뿐만 아니라 짧은 이야기도 동반해 게임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큰 건물은 터를 잡은 뒤 필요한 재료를 모두 넣어야 완성된다.
<딩컴 투게더>는 궁극적으로는 생존 게임이다. 그리고 물리적 리얼리티를 통해 생존의 몰입과 재미를 키운다. 이것은 <딩컴 투게더>의 뿌리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문형 PD는 <딩컴 투게더>에 계승된 <딩컴>의 특징으로 “캐주얼해 보이지만 게임플레이에 깊이가 있고, 물리적 감각을 준다”는 점을 꼽았다.
창을 장착했을 때 사용 가능한 돌진 스킬을 예시로 살펴볼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앞으로 빠르게 전진하면서 부딪히는 적에게 피해를 가하는 기술로, 사용 후 9초가량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적용된다.
공격 스킬의 존재 자체도 재미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실제 사용했을 때의 월드와의 상호작용이다. 스킬을 사용해 장애물을 향해 돌진해 보면, 충돌 각에 따라 캐릭터가 전진하지 못하거나 느려지는 등, 그럴듯한 상호작용이 구현되는 걸 알 수 있다. 액션 장르에서라면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평범한 메카닉이지만, 캐주얼 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돌진 스킬을 쓰면 사물들과 부딪혀 날아가게 하거나, 장애물에 가로막히는 등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액션게임에선 흔하지만, 캐주얼에서는 자주 보이지 않는 요소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가령 요리를 위해 피워 둔 모닥불에 캐릭터가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몸에 불이 붙어 체력을 잃게 된다. 이것은 일부 하드코어 생존 게임에서도 편의적 이유로 자주 생략되는 디테일이다. 물론 바다에 뛰어들면 불은 즉시 꺼진다.
캐릭터가 모닥불에 불타는 순간, 게임이 출시되면 꼭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화식조 혹은 에뮤에 탑승해 달릴 때도 동일한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그저 캐릭터의 이동 속도를 높여주는 장식물처럼 구현해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개발진은 가속과 감속, 방향 전환 메커니즘에서 나름의 리얼리티를 살려 타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할 수 있게 했다.
<딩컴 투게더>의 리얼리티는 힐링이나 캐주얼보다 하드코어 생존 게임이 취향인 기자가 게임의 정식 출시를 기대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정 반대 성향의 유저들에게도, <딩컴 투게더>는 어필할 매력이 충분한(사실상 더 많은) 게임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매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게임이 방황 끝에 중구난방의 결과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하지만 <딩컴 투게더>는 현재의 방향성을 잘 유지할 경우 두 마리 토끼(혹은 캥거루, 코카투, 웜뱃, 기타 등등) 잡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더 나아가 재미를 몇 배로 키워주는 ‘치트키’인 멀티플레이까지 주요 콘텐츠로 준비 중인 만큼, 출시를 충분히 기대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