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4일까지, 총 130여 종의 게임을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매일 부스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에 만나본 게임은 ▲식당 운영과 아이소메트릭 전투의 만남 <퀴지니어> ▲가난한 예술가 시뮬레이터 <파스포투트 2> ▲프랑스 공립 게임 대학교 학생들의 <ABEL>입니다.
<퀴지니어>(Cuisineer)는 뛰어난 프로덕션 퀄리티가 눈에 띄는 게임입니다. 알고 보니 개발사 배틀브루 프로덕션은 유비소프트 등 업계 유수 게임사 출신 베테랑 개발자 9명이 모여서 만든 싱가포르 기업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가 아닌, 원래 오랜 친구였다고 하네요.
이들은 원래 별도의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다가 중단하게 됐고, 어쩌면 <퀴지니어>가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최후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더없이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아이소메트릭 액션과 식당 경영이 융합된 독특한 게임 디자인도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팀의 절반 정도는 아이소메트릭 액션을, 다른 절반은 식당 경영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형태로 결정된 겁니다.
여기에 더불어 팀원들 공통의 음식을 향한 사랑도 게임에 듬뿍 담겼습니다. 원래 함께 모여 음식을 먹으며 어울리는 일이 정말 많았다는 이들은 코로나19 격리기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는데요.
그 결과 게임에는 100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동서양의 여러 음식은 물론 싱가포르의 전통 음식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만들면서 배가 많이 고팠다고 합니다.
그 많은 음식이 인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게임에 등장하는 손님 NPC들은 각자의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를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으려면 최대한 다양한 레시피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군요.
전투 또한 음식 콘셉트에 꼭 맞춰져 있습니다. 일반적 액션 게임의 ‘속성’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7가지의 ‘맛’이 존재합니다. 던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또한 모두 조리도구 콘셉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레벨보다는 장비에 의해 성장합니다. 무기에는 다른 루팅 게임처럼 ‘접두사’, ‘접미사’가 붙는 식입니다. 이것이 <하데스>의 은혜 개념처럼 '대시'나 '일반공격' 등 동작에 효과와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여기에 더해 식당을 확장하고 인테리어를 꾸미는 건축 요소가 있어 즐길 거리가 풍부합니다. ‘퀴지니어 연합’ 들어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스토리를 따라 ‘소프트 엔딩’에 도달한 이후에도 게임은 계속 즐길 수 있습니다. 총 플레이 시간은 20~40시간에 달할 예정입니다.
플레임베이트 게임즈의 <파스파투 2: 더 로스트 아티스트>(Passpartaout 2: The Lost Artist, 이하 <파스파투 2>)는 ‘가난한 예술가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림을 그려 판매하면서 ‘좋은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여러 스트리머가 다루면서 국내 게이머 사이에서도 유명한 작품인데요. 전편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려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던 주인공이 벌어놓은 돈을 탕진하고 다시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1편에서도 그랬지만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이 그린 그림을 NPC들이 ‘평가’하는 시스템입니다. 각 NPC는 저마다의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취향에 잘 맞는 그림을 그려줄수록, 더 비싼 값을 주고 그림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주관의 영역인 미술의 가치를 수치적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기가 어렵지 않았는지 묻자, ‘마술 트릭’ 같은 것이어서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영업 비밀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마술 트릭이 그런 것처럼, 너무 잘 알려주면 유저들의 재미를 빼앗는 것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합니다.
전편과 비교하면 우선 게임아트 측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전편 유저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전편에서는 꼼짝없이 한 자리에서 그림만 그려야 했거든요. 유저들은 “이게 비록 진짜 예술가의 삶에 가깝긴 하겠지만 게임에서 겪고 싶지는 않아”라는 반응이었다네요.
이렇게 게임을 진행하며 돈을 벌면 더 좋은 미술도구를 얻게 되고, 그러면 더 복잡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을 많이 진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그림은 그릴 수 있다네요. 기자 직전에 부스를 찾은 한 방문객이 불과 15분여 만에 그렸다는 그림을 보여줬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과연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 관객이 15분 만에 그렸다는 그림의 퀄리티
한국에 처음 온 인상이 어떤지 묻자, 재미있게도 ‘크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인구가 적고 인구 밀도도 낮은 스웨덴 출신으로서 서울의 분주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BIC에 참가한 이유는 한국에서 1편이 인기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한국 인디씬의 흥행 원리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합니다.
<ABEL>은 프랑스 Cnam-Enjmin 대학교의 학생 팀이 ‘리미널 스페이스’(역공간) 개념에 영감을 받아 만든 워킹 시뮬레이터입니다. 이 용어는 학술적인 정의와 대중적인 쓰임새가 다른데, ABEL 팀은 ‘익숙한 듯하지만 무엇인가가 빠져 있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라는 보다 대중적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유저는 다양한 물건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벌였던 일들을 반추하고, 여기서 느껴지는 후회와 죄책감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알아가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공포 게임은 아니라고 합니다. 플레이 시간은 약 15분입니다. 링크에서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재학 중인 Cnam-Enjmin은 프랑스 내 공립 학교 중 유일한 게임 전문 대학입니다. 사립 대학들과 비교해 학비가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매우 까다롭게 학생을 선별합니다. 현재 전교생은 54명뿐입니다.
학생 각자가 전문성을 길러 어떤 팀에서든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 방식을 선택하고 있고, 그래서 학생마다 맡은 분야가 다릅니다. 학교는 이들에게 서로 뭉쳐서 학기마다 3~4개 게임을 만드는 과제를 부여합니다.
1학년인 현재는 3~4명이 작은 팀을 이뤄 원하는 주제로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덕분에 <ABEL>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2학년이 되면 팀의 규모가 더 커지고,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이번에 행사를 찾은 ABEL 팀의 루이 기요모와 조에 셈페도 1학년 과제로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학생들끼리 제안을 주고받는 식으로 프로젝트 주제가 자유롭게 결정되는 방식이어서 기요모가 먼저 ‘리미널 스페이스’ 소재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고 여기에 셈페가 합류, 현재의 심리학적 주제를 부여하면서 <ABEL>이 만들어졌습니다.
BIC를 찾은 이유는 학교 차원에서 BIC와 오랜 기간 함께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Cnam-Enjmin의 학생들은 물론 프랑스 게임 제작자들 사이에서 BIC가 매우 유명하다고 하네요.
학생으로서 BIC를 찾은 루이 기요모(왼쪽)와 조에 셈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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