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도쿄게임쇼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트레일러가 깜짝 공개됐습니다. 올해 말 CBT를 시작하는 게임은 모바일(안드로이드, iOS)과 PC(스팀)에서 할 수 있는데요. 라인게임즈가 코에이테크모와 계약을 맺고 이득규 대표가 이끄는 모티프에서 개발 중이죠.
모티프는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개발 때 코에이와 협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옛 명작을 재탄생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시리즈 최고의 역작 <대항해시대 2>와 그 스핀오프 <대항해시대 외전>을 새로 만든 MMORPG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공개된 3분 20초 분량의 트레일러를 깊게 들여다봤습니다. 원작에서 차용한 요소,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모티브, 그리고 <대항해시대 오리진>만의 특징을 두루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트레일러에서 놓친 것은 없을까요?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은 무엇일까요? 기자 역시 오래도록 <대항해시대>를 즐겨온 팬인데요. 게임에 대한 기대는 물론이고, 걱정도 조금씩 해봤습니다.
원래 일본어 영상을 기준으로 기사를 썼는데 이후 한국어 버전이 추가됐습니다. 위 트레일러에서는 거북선과 두정갑으로 보이는 갑옷을 입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트레일러에는 익숙하지 않은 국기가 보입니다. 아래 스크린샷을 볼까요?
세비야 옆의 그림은 당시 에스파냐의 국기입니다. 원래 이름은 '부르고뉴의 십자가'인데 부르고뉴 공국 출신 합스부르크 왕가가 에스파냐 왕위를 계승(압스부르고 왕조)하면서 나라의 상징이 됐죠. 부르고뉴의 십자가는 에스파냐의 선기(ensign)로도 오래 쓰였습니다.
네덜란드 국적의 UWO 캐릭터 맞은편에 걸어오는 캐릭터에는 알록달록 특이한 무늬가 보이죠?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고요? 튜더 왕조 헨리 8세의 문장입니다. 원작 <대항해시대 2>의 시작점은 1522년인데 헨리 8세의 재위기와 일치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래 문양을 내건 유저는 잉글랜드 국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득규 사단은 고증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이득규 대표는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오스만투르크 본거지 '이스탄불'이 당대의 명칭이 아니라고 지적했는데요.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쓰였던 이름인 콘스탄티니예가 나올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에는 총 217개의 항구와 65개의 마을이 재현됩니다. <대항해시대 2>에서는 100여 소의 항구, <대항해시대 온라인>에는 종류 불문 220여 개의 도시가 있는데, 새 게임에는 더 많은 도시를 론칭 초기부터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참고로 게임은 언리얼엔진4로 개발됐으며 한 화면에 수많은 조명효과를 주는 디퍼드 랜더링이 도입됐습니다.
트레일러에는 세비야, 암스테르담 같은 유명 도시는 물론 명나라의 중경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 상투메, 지금의 말레이시아에 해당하는 말라카 일대까지 전부 볼 수 있습니다. 재밌게도 도시의 이름을 현지의 언어로 써서 궁금한 사람들이 애써 찾아보게 했습니다. 대략 어디쯤인지 특정할 수 있게끔 래카다이브 해(Laccadive Sea) 같은 단서는 영어로 남겼네요.
트레일러를 들여다보면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보여준 게 인상적입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지역별로 다른 BGM으로 공간의 몰입감을 더했는데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도 공간의 특징을 잘 살린 풍부한 BGM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에는 칸노 요코(菅野よう子)의 OST가 들어갑니다. 이번 트레일러에서 쓰인 음악이 그녀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라면 적어도 칸노 요코가 <삼국지>, <노부나가의 야망>, <대항해시대> 삽입곡으로 그 기틀을 다진 '코에이 오케스트라' 전통에 충실한 듯합니다.
또 영상 중간에는 '만덕'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복 차림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예전에도 라인게임즈는 같은 이름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일러스트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 인물의 모델은 조선 후기의 거상 김만덕입니다. 김만덕은 <대항해시대 5>의 항해사로 등장한 적 있는데요. 모티프는 세계 문화별 오리지널 주인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만덕 외에 명나라의 제독 정화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트레일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봅시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대항해시대 2>와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중간 어딘가를 추구하는 듯합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바다는 오픈월드로 다른 플레이어와 NPC와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레일러를 보면 도시 안에서 움직일 때 시점은 쿼터뷰인데요. 자유자재로 시점을 바꿀 수 있었던 <대항해시대 온라인>과 같을지, 쿼터뷰 고정일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시점 옵션이 전혀 없으면 사람에 따라 답답할 수 있을 듯합니다.
<대항해시대>는 항해 자체가 모험입니다. 바다 위에서 모험은 <대항해시대 온라인>과 유사합니다. 바다 위에서 특정 포인트를 찾고 각종 스킬을 동원해 발견물을 획득하는 것은 전작과 똑같습니다. 트레일러에서는 발견물 크라켄과 그레이트 블루홀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크라켄은 발견물이 아니라 배의 내구도를 깎는 '상태이상'이었죠.
또 트레일러에는 바렌츠 해(북극해의 일부)와 남극해가 등장합니다. <대항해시대 2>에서도 열려있던 뱃길인데요. 보급품을 수급할 수도 없고, 선박 내구도 관리도 쉽지 않아 일반적인 항로보다는 발견물 조사나 지도 작성을 위한 '해역조사' 콘텐츠 수행 공간이었죠.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북극해, 남극해도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대항해시대>의 전투는 크게 포격전과 백병전으로 구별되는데요. 전투는 <대항해시대 2> 느낌을 많이 살리면서도 3D 환경에 맞춰 변화를 준 듯합니다.
HEX 타일에서 턴에 맞춰 진행되는 점, 방향과 사거리를 잘 계산해야 한다는 점, 함장의 보조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등은 <대항해시대 2>가 추구하던 SRPG적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자유롭게 바다 위에서 기동할 수 있는데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는 칸 계산을 열심히 해야 할 듯합니다. 개발진의 전작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백병, 포격과 함께 도구와 기술 커맨드가 확인됩니다. 선박을 고치거나, 전장에서 도망치거나, 관통력을 높이는 스킬을 사용할 때 이 버튼을 이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인터페이스를 보면 바람이 부는 방향, 수심, 날씨도 전투에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입니다. 전투 중 <대항해시대>의 주요 자원 빵, 물, 자재, 포탄이 숫자로 나타납니다. 또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사슬탄과 연발탄이 <대항해시대 오리진>에도 등장합니다.
특이하게도 영상 중간에 섬 위로 포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백병전에서는 별다른 커맨드가 보이지 않는데 빨리감기 버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동으로 넘길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와 검술 레벨은 어느 정도인지, 플레이어가 어떤 장비를 착용했는지, 또 선원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가 복합 작용할 것으로 예측해봅니다.
영상 중간에는 조안 페레로와 카탈리나 에란초의 일기토가 나오는데 공격이 찌른다, 벤다, 친다가 아니라 가위바위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카탈리나가 보를 내고 조안이 주먹을 내자 카탈리나의 HP 게이지 밑의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이 확인됩니다. 각성 게이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사견입니다만 찌르기, 베기, 치기 대신 가위, 바위, 보는 조금 깨는 것 같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전 지구를 탐험하며 지역, 동·식물, 문화유산 등 발견물을 모으는 재미, 해적을 소탕하거나 자신이 해적이 되는 재미, 도시와 도시를 오가며 교역품을 팔아 부자가 되는 재미 등을 담은 게임이죠.
<대항해시대>만의 아이덴티티는 교역, 전투, 모험입니다. 성장 과정은 대부분 '대항해시대'답게 바다에서 이루어집니다. 트레일러에서 전투와 모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만, 교역과 관련한 힌트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일부러 공개 안 한 걸로 보입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MMORPG입니다. 옷토 스피노라, 알 베자스, 피에트로 콘티 등 추억의 캐릭터들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대항해시대 2>와는 달리 다른 플레이어와 교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MMORPG기 때문에 고도화된 경제 시스템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참고 사례는 전작 <대항해시대 온라인>일 것입니다. 추억의 JRPG를 MMORPG로 되살려내 지금까지 업데이트를 거듭하는 게임이죠.
<대항해시대 온라인>에는 모든 유저에게 똑같은 물리적 공간(지구 그 자체)과 '게임:실제=1일:1분'이라는 조건이 주어집니다. 플레이어는 바다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요. 빵과 물 같은 자원을 부족하지 않게 관리하고, 돛을 올리고 방향을 바꾸는 조작도 해주면서 괴혈병, 쥐떼, 해적 같은 악재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각종 스킬이 어느 정도 자동화를 돕지만, 플레이어의 꾸준한 개입이 있어야 합니다.
게임의 근본인 교역은 정말 고역입니다. 더 빨리 가야 하고, 더 많이 실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시속 18노트로 항해하면서 쥐떼가 내 교역품을 갉아 먹지 않도록 신경써야 합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수십 분 동안 한눈 팔아도 항해에 큰 지장은 없지만, 그 리스크는 본인이 지고 가야 하죠.
플레이어는 한 명의 선장으로 자신의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하면서도, 동시에 소속 국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국가 별로 더 많은 동맹항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전과 대해전, 플레이어들의 망명이 끊임없이 이뤄집니다. 동맹항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물건 값이 바뀌기에 국가별 알력 다툼은 고래들 잔치면서도 새우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차별 요소를 모티프가 어떻게 구현했을까요? 모두에게 똑같은 시공간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단축하기 위한 각종 장비 싸움과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국가별 동맹항 싸움은 반드시 들어갈 것 같습니다. 트레일러에도 동맹항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항해시대>의 근간은 항해인데, '1일:1분'와 같은 피로감 요소를 모바일에서 어떻게 담아냈을지 궁금합니다. 플레이어 개인이 느끼는 시간, 중량, 해적 등의 압박을 과금을 통해서 덜어줄까요? 국가별 투자전을 비즈니스 모델로 열어둘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모델이 투입될까요?
이득규 대표의 말에 따르면,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는 실제 지구의 축척과 가까운 비율의 맵이 들어갑니다. 트레일러에도 "둥근 지구를 재현한 광대한 세계", "현실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환경 시뮬레이션"이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MMORPG는 경제와 불가분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광고 문구는 게임의 자랑거리면서 동시에 걱정거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