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종료 후 펼쳐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2020 케스파컵이 담원의 우승으로 마무리됐습니다. 2020 롤드컵 챔피언 담원은 탑 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이 이탈했음에도 이렇다 할 위기 없이 너무나 부드럽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에 더해, 준우승을 차지한 농심 레드포스(이하 농심) 역시 많은 팬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농심은 '리치' 이재원, '덕담' 서대길을 제외한 선수단 전원이 교체됐음에도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는데요. 농심은 '사나이 울리는 화끈한 한타의 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타를 통해 불리한 경기를 자주 역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농심을 두고 곳곳에서 우려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바로 '케스파컵 준우승팀은 반드시 부진한다'는 기묘한 징크스 때문이죠. 실제로 2015년 <리그 오브 레전드> 케스파컵이 시작된 뒤 준우승을 차지한 모든 팀은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부침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요. 과연 농심은 무시무시한 케스파컵 징크스를 떨쳐내고 매콤한 시즌을 보낼 수 있을까요?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케스파컵 준우승 징크스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채택된 2015 케스파컵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CJ는 '샤이' 박상면, '앰비션' 강찬용, '코코' 신진영, '스페이스' 선호산, '매드라이프' 홍민기 등 쟁쟁한 선수들을 거느린 최고의 인기 팀으로, 4강에서 강팀 KT를 꺾고 결승에 안착한 상황이었습니다.
CJ의 결승 상대는 아마추어팀 'ESC 에버'였는데요. 물론 ESC 에버가 4강에서 T1을 2:0으로 셧아웃시키긴 했지만, 엄연한 아마추어였던 만큼 객관적인 전력은 CJ가 앞선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3:0, ESC 에버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특히 3세트에서는 아예 라인전부터 게임이 박살 나는 구도가 펼쳐지기도 했죠.
이후 CJ는 샤이, 매드라이프를 제외한 주전 선수 전원이 팀을 이탈함에 따라 '운타라' 박의진, '스카이' 김하늘 등 신인 선수들로 로스터를 채우며 차기 시즌을 준비했고, 실제로 2016 스프링 시즌 8위(8승 10패)를 기록하며 분전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서머 시즌, CJ는 3승 15패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죠. 당시 CJ가 기록한 세트 16연패는 LCK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이기도 합니다.
결국 CJ는 승강전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2부리그로 추락했고 다시는 LCK로 돌아오지 못한 채 2017년 팀을 해체하게 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1세대 프로팀의 결말치고는 다소 허무한 마침표였습니다.
2017 케스파컵 준우승을 차지한 롱주 역시 LCK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 팀입니다.
당시 결승에서 KT와 맞붙은 롱주는 풀세트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이 경기는 케스파컵 역사상 가장 멋진 명승부로 꼽힐 정도로 아주 치열했습니다. 특히 롱주는 '피넛' 한왕호 영입으로 한층 공격적인 팀 컬러를 선보이며 많은 이의 호평을 받았죠.
이후 킹존으로 팀명을 바꾼 롱주는 2018 LCK 스프링 우승을 차지하며 신흥강호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서머 시즌, 킹존은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부족한 메타 적응도를 노출한 데 이어, 선수들의 폼마저 떨어졌기 때문이죠. 결국 킹존은 포스트시즌은 물론,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탈락하며 LCK 역사상 처음으로 스프링 시즌 우승팀이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례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2018 케스파컵에 임한 젠지의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그 해 펼쳐진 롤드컵에서 허무하게 예선 탈락한 만큼, 케스파컵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도 확실했을 겁니다.
실제로 젠지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인 서포터 '라이프' 김정민과 국대 원딜 '룰러' 박재혁은 폭발적인 캐리력을 뽐내고 있었죠. 이에 더해 케스파컵에서 샌드박스, 킹존, KT 등 쟁쟁한 팀을 꺾은 만큼 자신감도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젠지는 결승에서 그리핀에 3-0으로 완패했습니다. 세트 스코어는 물론, 경기 내용에서도 완벽한 패배였죠.
이어진 스프링 시즌 젠지는 거짓말처럼 추락했습니다. 거액을 주고 정글러 피넛을 영입했지만, 라이너들이 흔들림에 따라 피넛 역시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게 뼈아팠습니다. 결국 젠지는 5승 13패, 7위로 스프링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젠지라는 이름으로 올린 가장 나쁜 성적이었습니다.
지난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샌드박스 역시 젠지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습니다.
샌드박스는 2019 케스파컵에서 그리핀, T1 등 만만치 않은 팀을 꺾고 결승에 올랐는데요. 가장 돋보인 건 정글러 '온플릭' 김장겸의 활약이었습니다. 특히 온플릭은 T1을 상대로 펜타킬을 올리는 등 폭발적인 경기력으로 샌드박스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샌드박스는 결승에서 아프리카에 3-0으로 패하며 허무하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습니다. 경기 내내 극단적인 한타 조합을 구성한 아프리카의 전략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죠.
케스파컵 준우승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본 샌드박스는 기대와 달리 치욕스러운 정규 시즌을 보내야 했습니다. 개막전에서 APK를 2-0으로 잡고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지만, 시즌 내내 5승에 그치며 승강전까지 추락했기 때문이죠. 천신만고 끝에 잔류에 성공하긴 했지만 샌드박스 입장에서 너무나도 씁쓸한 시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농심은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요?
몇몇 이는 농심이 지난해 샌드박스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고 말하곤 합니다. 당시 샌드박스는 어려운 경기를 펼치다가 한타로 뒤집는 그림을 많이 보여줬고, 올해 농심 역시 '한타의 농심'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한타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2019 케스파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추락한 샌드박스처럼 농심도 어려운 시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 희망을 노래하는 이도 있습니다. 올해 케스파컵은 패배하면 곧바로 탈락하는 토너먼트 형태로 진행된 과거와 달리 풀리그와 토너먼트가 섞인 구조로 개편되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한두 경기 잘한다고 해서 결승에 오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만큼, 토너먼트에 비해 팀 전력이 한층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점 역시 농심에 있어 희망적인 부분입니다.
이번 대회 농심의 행보를 찬찬히 뜯어보면 이런 부분들이 잘 드러납니다. 농심은 조별 예선에서 담원을 제외한 모든 팀을 잡았으며 6강에서 리브 샌드박스, 4강에서는 조별 예선 전승을 기록한 KT까지 꺾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많은 경기가 펼쳐졌음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한 셈입니다. 게다가 호흡을 맞출 시간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죠.
새로운 스폰서, 선수들과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농심이 과연 지긋지긋한 케스파컵 준우승의 저주를 깨고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