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기말고사만 잘 보면 돼!"
학창 시절 중간고사를 망친 분이라면 한 번쯤 해본 생각일 텐데요, 1년에 스프링-서머 두 번의 시즌을 소화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특히 서머 시즌은 롤드컵 진출이 좌우되는 만큼, 스프링에서 부진한 팀들은 더욱 이를 갈며 차기 시즌을 준비하곤 하죠.
하지만 모든 팀이 유의미한 성과를 낸 건 아닙니다. 스프링 시즌 최고의 성적을 내고도 무너진 팀이 있는가 하면, 중위권에서 세계 챔피언으로 도약한 팀도 있으니까요. 슬프지만 두 시즌 내내 최하위를 지킨 팀도 존재합니다.
2021 LCK 서머 개막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스프링-서머 시즌의 운명이 갈린 '흥미로운' 사례를 정리해봤습니다. 몇몇 팬분들껜 가슴 아픈 기억이 될 테니 안전벨트 꽉 메시는 게 좋을 겁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킹존 드래곤 X(이하 킹존)는 남다른 각오로 2018 스프링에 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17 서머에서 킹존(당시 롱주 게이밍)이 선보인 경기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습니다. 특히 결승에서 전통 강호 T1을 무너뜨렸던 만큼, LCK에 킹존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까지 쏟아졌죠.
기존 라인업도 충분히 강했던 킹존은 T1에서 활약한 정글러 '피넛' 한왕호까지 영입하며 전력을 끌어올렸고, 예상대로 스프링 시즌 왕좌에 올랐습니다. 당시 킹존은 스포티비로부터 '어나더 레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력했는데요, '칸' 김동하, '피넛' 한왕호, '비디디' 곽보성의 상체와 베테랑 '프레이' 김종인, '고릴라' 강범현의 바텀까지 어느 하나 약점이 없는 팀으로 꼽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킹존의 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킹존은 스프링 종료 후 참가한 MSI 결승에서 RNG에 3-1로 패했으며,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도 1승 3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결국 킹존은 서머 시즌에서도 4위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죠.
2018년이 킹존에 있어 더욱 아쉬운 해로 꼽히는 건 롤드컵 때문입니다. 서머 시즌 내내 방향을 잡지 못한 킹존은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아프리카에 패하며 쓴 잔을 들이켜야했습니다. LCK 역사상 '스프링 우승팀이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첫 번째 사례'가 새겨진 순간이었죠. 중간고사 잘 쳤다고 기말고사까지 1등 하는 게 아니라는 속설이 LCK에도 등장한 셈입니다.
팀의 운명이 뒤바뀐 킹존과 달리 1년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한 팀도 있습니다. 2019년을 최악의 해로 장식한 KT 롤스터와 진에어 그린윙스입니다.
KT 롤스터는 2018 LCK 서머를 우승한 데 이어 롤드컵에서도 LCK 팀 중 가장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많은 팬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물론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 '유칼' 손우현 등 핵심 자원들이 빠져나갔지만, '스멥' 송경호와 '스코어' 고동빈이 건재한 데다 '비디디' 곽보성도 영입한 만큼 최소 중위권엔 오를 거라는 기대도 가득했죠.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데프트가 떠난 원거리 딜러 포지션은 그해 내내 KT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에 KT는 서머 시즌을 앞두고 삼고초려 끝에 프레이를 영입했지만, 그 역시 팀의 운명을 바꾸진 못했죠. 결국 KT는 스프링 '승강전', 서머 '8위'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긴 채 2019년을 마무리합니다. 디펜딩 챔피언이 불과 한 시즌 만에 강등 위기에 놓였던 유례없는 몰락이기도 합니다.
KT에 비하면 소박했지만, 진에어 역시 나름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팀을 지탱했던 에이스 '테디' 박진성과 '엄티' 엄성현이 떠난 대신 '린다랑' 허만흥과 '스티치' 이승주 등 잔뼈 굵은 베테랑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테디의 추천을 받은 원거리 딜러 '루트' 문검수 역시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에어는 다른 의미의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해 스프링, 서머 시즌을 통틀어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죠. 될 듯 될 듯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지는 진에어의 경기력은 많은 이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진에어의 1승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진에어는 서머 승강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에 패하며 챌린져스로 추락했고, 이듬해 팀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한국 e스포츠를 지켜왔던 진에어의 마지막은 이토록 씁쓸했습니다.
2019년 LCK에 입성한 담원 게이밍(현 담원기아)은 리그에 새바람을 불러온 팀이었습니다. 그들은 '너구리' 장하권, '쇼메이커' 허수를 필두로 엄청난 공격성을 선보이며 뛰어난 경기를 펼쳤고, 스프링 5위-서머 2위-롤드컵 8강이라는 굵직한 성과까지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담원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주전 멤버가 그대로 유지됐음에도 2020 스프링 1라운드에서 롤러코스터 행보를 이어간 건데요, 4승 5패라는 성적은 기대치를 감안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반전은 2라운드부터였습니다. '고스트' 장용준을 영입한 담원은 2라운드부터 안정감을 찾았고, 5위 자리를 지키며 가까스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합니다.
이후 펼쳐진 서머 시즌, 담원은 LCK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선수들의 기복이 줄어들면서 특유의 공격성까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담원은 서머 시즌 단 2패만을 기록하며 너무나 부드럽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DRX와의 결승전(3-0 담원 승)조차 특별한 위기없이 무난히 흘러갈 정도였으니, 당시 담원의 경기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죠.
담원은 롤드컵에서도 '패왕'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중국의 징동 게이밍에 한 차례 발목을 잡힌 것 외에는 큰 위기 없이 우승을 차지했거든요. 특히 쑤닝과의 결승전에서는 환상적인 한타와 운영을 선보이며 경기를 지켜본 많은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2020 스프링에서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던 팀이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특급 반전 드라마가 완성된 겁니다.
2021년, 담원기아는 여전히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0 케스파컵, 2021 LCK 스프링을 재패한 데 이어 MSI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LCK 대표팀'의 입지를 굳히고 있죠. 과연 담원기아가 또 하나의 왕조를 구축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