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해체에 대한 논의가 나옵니다. 적지 않은 게이머들이 여성가족부가 사라져야 하며, 그렇게 오랜 악법인 셧다운제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사라지면 셧다운제도 함께 사라질까요? 여성가족부 폐지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TIG 2021 셧다운제 특집
① 2004~2021, 셧다운제의 역사를 돌아보다 (바로가기)
② 셧다운제 폐지, 정말 게임 업계의 오랜 숙원일까? (바로가기)
③ 여성가족부 해체, 셧다운제 폐지에 도움이 될까?
④ 셧다운제? 최종 보스는 따로 있다 (바로가기)
⑤ 셧다운제 폐지 이슈의 중심, '우마공' 전현수 매니저를 만나다 (바로가기)
⑥ 셧다운제 실효성 논란, 제대로 종결시킨다 (바로가기)
⑦ 두 개의 셧다운제... '게임시간 선택제'도 문제? (바로가기)
⑧ 선생님들, 게임은 해보셨습니까? (바로가기)
1편에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다소 장황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기록을 돌아보면,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따진다면 여성가족부가 시작한 게 아닙니다.
오늘날 시행 중인 셧다운제는 맨 처음 국가청소년위원회가 그 필요성을 제안했고, 국회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가 그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2021년 현재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의 주무부처로 제도 관련 실무, 즉 유지, 보수,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1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이 제도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가족부는 오랜 세월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셧다운제 시행의 필요성을 강조, 현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임법에 이미 선택적 셧다운제에 준하는 내용이 있는데도 말이죠.
청소년 보호의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반대 급부로 부작용은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무부처라면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은 명백히 큰 과오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여성가족부가 어쩌다 이 업무를 맡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문화체육부 산하 행정위원회로 청소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말씀드렸죠? 이 위원회는 여러 번 이름을 바꾸고 또 소속 부처를 옮겨다니는데, 국무총리실로, 보건복지가족부로, 여성가족부로 위치를 바꿨습니다. 오늘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여성가족부 산하에 있습니다.
셧다운제의 기틀을 닦은 최영희 전 의원이 바로 해당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일등공신 김성벽 과장이 2005년 청소년위원회 매체환경팀장으로 공직에 입문, 보건복지가족부를 거쳐 여성가족부로 소속을 바꿉니다. 김성벽 과장의 소속 변경이 사실상 셧다운제의 업무 이관의 이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영유아 보육에 관한 사무를 여성부로 이관하며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했습니다. 후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시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만들면서 역할을 축소시켰습니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동·청소년 담당을 여성부로 넘겨주면서 오늘날의 여성가족부가 완성된 것입니다. 최영희 위원장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됐고, 밑에서 조금 더 살펴볼 김성벽 과장은 여가부 소속이 되었죠.
여기서 알 수 있듯 여성가족부를 없앤다고 셧다운제도 같이 없어진다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정부는 청소년 관련 정책에 완전히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한 차례 그랬던 것처럼, 청소년 보호 제반 업무 담당을 보건복지부로 옮기는 방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처의 업무가 조정되더라도 입법부를 거치지 않으면, 그러니까 법을 바꾸지 않으면 제도는 현행대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시 말해 셧다운제가 포함되어있는 청소년 보호법을 어떤 정부 부처에서 수행하게 될 것인지 모르겠지만,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셧다운제는 남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죠.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수년째 제기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는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셧다운제는 게임산업을 위축시키기 위한 규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명분상으로는 말입니다. 이 제도에는 "밤에는 자야 한다"는 청소년 보호의 대의가 오래도록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성부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청소년 보호' 업무가 추가됐고, 그 분야가 굴러가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준 아이템이 바로 셧다운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법안과 시스템이 불필요한 규제로 이어질 수밖엔 없지만요. 다시 말하지만 핵심은 강제적 셧다운제는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고, 이 제도가 청소년 보호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보호는 대한민국에서 엄청 큰 힘을 발휘하는 명분이 됩니다. 과거 만화책 화형식부터 시작한 수많은 문화 규제의 명분은 청소년 보호였고, 청소년 보호를 위한 움직임에 학부모들은 호응과 찬성과 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죠.
이런 청소년 보호를 주 업무로 하는 여성가족부가 스스로 강제적 셧다운제를 완전 폐지한다고 말하긴 힘들 겁니다. 명분도 없고 스스로 법을 위반하겠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니까요. 여기에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가 타 부처를 상대로 힘을 쓸 수 있는 무기로 꼽힙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여가부는 게임 분야 주무 부처인 문체부를 상대로 오랫동안 파워게임을 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청소년 보호' 논리는 중요한 것이고, 그렇게 단 한 번의 '성공적인' 제도 개선 없이 2021년까지 온 것입니다. (과거 여가부는 문체부와 셧다운제의 개선에 대해서 논의했고, 실제로 법을 만들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2018년 김광진 전 의원 인터뷰 中
Q. 셧다운제 얘기 나올 때마다 여성가족부의 강한 입장이 거론되곤 하는데.
A. 게임업계는 문화체육관광부를 공략해야지. 여가부는 작은 부서다. 예산도 문체부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하지만 문체부에게 게임업계 이슈는 메이저 안건이 아니다. 반면 여가부는 부모들이 강하게 나오니 중요하지.
수년 전부터 셧다운제에 관한 청소년 자기결정권 침해와 부모의 양육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여성가족부는 차차 제도의 개선까지는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식으로 톤을 바꾸었습니다. 실제 문체부와 손잡고 법안을 내기도 했던 여가부는 오늘날 <마인크래프트> 사태에 "셧다운제 개선 방안을 적극 논의해 나가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수면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보고서가 쏟아지는데도 그간 장관 후보들은 인사청문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청소년 보호'나 '수면권'을 근거로 셧다운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이 분들은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일각의 지적을 인지하면서도 부처의 영향력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기에, 또 법으로 규정한 본연의 업무를 부정할 수는 없기에 일관적으로 이같은 답변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셧다운제 폐지를 강력하게 막고 있는 주무부처입니다. 업계와 게이머들의 분노가 여성가족부에 쏟아지는 이유이고, 이는 여성가족부가 감당할 부분입니다.
김성벽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환경과장은 2005년 청소년위원회 매체환경팀장으로 공직에 입문, 지금까지 청소년 정책에 매진하고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는 "고도의 전문성과 특수기술이 요구되는" 개방형직위로 공무원이 됐습니다.
2017년 서울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개방형직위는 5년마다 아웃되는 탓에 그동안 2번에 걸쳐서 재공고에 지원해 면접을 봐야만 하는데, 이번에도 5명의 면접관 앞에서 과장으로서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부, 그리고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보호 업무를 맡았는데요. "인터넷게임 셧다운제는 그가 아니었다면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공직 사회에서 청소년 정책 분야만 전문적으로 보는 최고 전문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최근 <마인크래프트> 사태와 관련해서도 "한국의 많은 게임 이용자가 그런 불편을 겪고 있다면 MS가 조치를 취해야지, 귀찮다고 소비자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건 맞지 않다"며 방어 논리를 폈습니다.
김성벽 과장은 2018년 한 토론회에 출연해 "셧다운제는 게임을 억압하거나 순기능을 부정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완벽한 제도는 없고 셧다운제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지날수록 청소년과 게임산업의 상황, 게임 이용 문화, 효과성 등 많은 것이 변한다"라면서 "국민의 바람을 고려해 제도를 유지하거나 발전 및 보안, 폐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토론회에서 밝힌 그의 목표는 "셧다운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셧다운제는 그의 바람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효과적인가'와는 별개로 말이죠.
2020년 이도경 전 이동섭 의원실 비서관 인터뷰 中 (바로가기)
Q. 딱 10년 전, 문체부와 여가부가 셧다운제를 놓고 갈등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셧다운제 시행이다.
A. 셧다운제는 부처 간 싸움에 기인한 문제가 크다. 현행 강제적 셧다운제가 적용되는 청소년보호법은 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 국회에서는 여성가족위원회가 담당한다. 여가부에서는 청소년매체보호과가 이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데, 여기 주무과장이 10년 동안 이 과에만 재직하면서 셧다운제를 방어하고 있다. 반면에 앞서 말했듯이 문체부 게임과는 기피부서다.
(20대까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반 게임 성향이 강하다. 부처와 국회 모두 강제적 셧다운제 해제 반대 목소리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풀리기 어렵다. 전향적인 토론이 필요한데, 어딜 가나 게임을 아시는 분이 너무 적다.
다른 이유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문제를 논하는 것은 기자의 역량 밖이거니와 이번 특집의 주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셧다운제를 폐지해야 하므로 여성가족부를 없애자라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그렇게 된 사례가 있는 것처럼, 소관 부처를 옮기면 그만입니다.
상황은 지금 셧다운제 폐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사를 마무리하는 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권인숙 의원은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와 사후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출했습니다. 이로써 국회에는 총 4가지 셧다운제 관련 법이 발의됐습니다.
법은 한번 만들면 없애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셧다운제가 만들어지기 전 그렇게 많은 반대를 했던 것이고요. 또한 법을 만들거나 폐지하려면 명분을 지지하는 여론의 힘도 매우 중요합니다.
(참고) 2021년 7월 9일까지 나온 셧다운제 관련 법안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안: 청소년보호법 내 강제적 셧다운제 조항 삭제
권인숙 의원 안: 청소년보호법 내 강제적 셧다운제 조항 삭제, 여가부에 인터넷게임 중독 상담·교육 지원책 마련
강훈식 의원 안: 청소년보호법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청소년과 부모‧친권자에 자율권 부여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 안: 청소년보호법 내 강제적 셧다운제 조항 삭제, 가정에서 자율 판단할 수 있는 션택적 셧다운제 활성화
셧다운제는 찬성의 명분과 여론의 힘이 매우 강했습니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셧다운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물론, 게임업계에서조차 힘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은 회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셧다운제 폐지를 위한다면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법안을 낸 국회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실용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셧다운제 폐지를 막는 수문장이 여성가족부이니 이를 없애면 셧다운제도 없어진다는 생각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다음 편에서 알아볼 분들은 건재할 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