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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꾸준함의 대가, 위대한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

스타테일 시절부터 KT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기까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4랑해요) 2021-08-06 11:58:48

2021년 8월 1일​, 9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입대한 스코어가 1년 6개월 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스코어는 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비스되기 전 창단된 최초의 프로팀 '스타테일'에서 프로 e스포츠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스타테일 <롤> 팀은 2011년 10월 21일 창단됐고, 국내 <롤> 정식 서비스는 2011년 12월 4일이었으니 e스포츠의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프로 생활에 투신한 셈이죠.

 

게다가 스코어가 처음 맡았던 포지션은 '탑 솔로'였습니다. 이후 원거리 딜러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2015년에는 팀을 위해 '정글'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국내 <롤> e스포츠의 산증인이자, OGN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위대한 정글러, 스코어의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좁은 연습실에 모인 '카오스' 고수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도전하다

 

국내 최초로 결성된 <롤>팀 '스타테일'은 <워크래프트 3> 유즈맵 '카오스'의 e스포츠 대회 'Chaos Clan Battle'(CCB)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팀입니다. <롤> e스포츠의 미래를 내다본 이들은 <롤> 플레이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과감히 프로씬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그만큼 연습, 뼈를 깎는 연습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디스이즈게임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팀 일정표가 "죽어라 연습!"으로 가득 차 있었을 정도였죠. 재미있게도 인터뷰에 따르면 초기에는 '꼬마' 김정균이 탑 솔로를 맡고, 스코어가 정글을 맡기도 했습니다.

 

스타테일 시절 스코어

스타테일은 <롤> 경력이 길지 않은 <카오스>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했고, 그만큼 창단 후 솔로 랭크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본격적인 '롤챔스'(현 LCK)가 개막하기 전에는 각 커뮤니티에서 <롤>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왔습니다. 디스이즈게임도 예외는 아니었죠. 2012년 1월, 스타테일은 '리그디스 네임드 초청 토너먼트'에 출전했습니다. 스코어의 포지션은 탑 솔로였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스타테일은 단시간에 놀라운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이미 <롤> 북미 서버에서부터 굵직한 경력을 쌓아 온 다른 팀과의 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리그디스 토너먼트에서는 '라일락' 전호진이 활동하던 'Team OP'를 만나 0:2의 스코어로 패배했습니다. 2012년 개막한 '2012 아주부 롤챔스 스프링'에서도 유럽 명문 팀 '프나틱'을 만나 최종전 1:2의 스코어로 패배했고, 서머 시즌에서도 '나진 소드'를 만나 1:2로 인해 토너먼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죠.

스타테일 시절에도 스코어는 팀을 위해 포지션을 꾸준히 변경해 왔습니다. 팀 성적이 부진하자 스타테일은 스코어를 원거리 딜러로,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었던 '비타민' 이형준을 탑 라이너로 포지션 변경했습니다. 서머 시즌에는 '로코도코' 최윤섭을 원거리 딜러로 영입해 스코어는 다시 탑 라이너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리빌딩과 포지션 변경에도 성적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 스타테일은 2012년 8월 27일 <롤>팀을 해체하고 맙니다.

 

아쉬움을 남겼던 스타테일 시절

 

# KT로의 이적, '스고수'라 불렸던 시절

 

스타테일 해체 후 스코어 고동빈이 향한 팀은 'KT 롤스터 불리츠'(KT B)였습니다. 같은 팀에서 활동하던 '류' 류상욱, '마파' 원상연과 함께했기에 KT B팀은 스타테일의 시드를 이어받아 2012 롤챔스 윈터 시즌에 본선 참가하게 되죠. 포지션도 다시 원거리 딜러로 변경했습니다.

안정된 스폰서의 영향이었을까요? KT B는 창단 후 참가한 첫 대회에서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합니다. 강력해진 팀의 모습과 함께 스코어의 실력도 일취월장했습니다. 이 시절 스코어를 상징하던 말은 '안정성'입니다. 한때는 롤챔스 KDA 랭킹에서 '15.8'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며 '스고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죠.

 

당시 스코어를 대표하던 사진 (출처 : OGN)

정규 대회는 아닐지라도, 원거리 딜러로 활동하던 시절 스코어는 다양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MLG 2013 윈터에서 러시아 명문 팀 '갬빗 게이밍'을 격파하고 팀 창단 첫 우승에 성공하기도 했으며, 2013년 열린 제4회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중국의 'Team WE'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나중에 우승에 대한 농담을 하는 자리에서, 스코어가 이를 장난스레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OGN)

 

준우승과의 악연은 CJ 블레이즈와 프로스트를 꺾고 결승에 오른 '2013 롤챔스 서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상대는 역대 최고의 팀이 되는 과정으로 향하고 있었던 '페이커' 이상혁의 SKT T1. KT는 첫 두 세트를 손쉽게 가져가고, 스코어가 1세트 MVP를 수상하는 등 꿈에 그리던 우승을 목전까지 뒀습니다.

하지만 SKT T1은 3세트에서 확 달라진 경기력을 통해 KT를 압살하고, 4세트와 5세트를 내리 승리해 '패패승승승'으로 KT의 우승컵을 빼앗아 가고 맙니다. 지금까지 <롤> 커뮤니티에서 수백, 아니 수천 번 재생된 류와 페이커의 제드 일기토도 해당 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나왔습니다.

 

이 장면이 이 경기에서 나왔습니다 (출처 : OGN)

이후 KT와 스코어는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2013 월드 챔피언십 선발전에서도 SKT T1에게 또다시 패배해 탈락이라는 쓴 잔을 마셔야 했고, 롤챔스 윈터 시즌에서는 3위, 2014년에는 NLB로 강등되는 수모까지 겪고 맙니다. 스코어도 메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딜은 안 넣고 생존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았죠.

 

 

# 정글러 전향, '위대한 정글러'로 거듭나다

 

2015년, 추락한 성적과 함께 KT는 주축 선수까지 대거 이탈하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스타테일부터 함께해 온 류와 마파가 계약을 종료했고, 당시에 탑 솔로로 활동하던 '인섹' 최인석도 팀을 탈퇴했습니다. KT A에서 활동하던 '루키' 송의진과 '카카오' 이병권도 중국으로 향했죠. 리그제로 개편된 롤챔스에 "형제 팀 금지 조항"이 신설되면서 KT A와 B를 통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글러로 뛸 선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에 스코어가 정글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과감한 한 수를 뒀죠.

당시에는 포지션 변경에 느낌표보다는 물음표를 표하는 팬들이 많았습니다. 원거리 딜러 마지막 시절 스코어는 "지나치게 수비적이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고, 정글러는 "공격적인 갱킹"이 중요한 자리었기 때문이죠. KT를 거쳐 간 정글러가 인섹, 카카오 등 한 시절을 풍미한 공격적인 정글러란 점도 한몫했습니다.

 

KT에게 찾아온 위기, 팀을 위해 스코어는 정글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불안 속에서 시작된 정글 데뷔전, 경기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스코어는 정글 렝가와 리 신을 선택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승리를 이끌었죠. 스코어가 정글로 포지션을 바꾸자 팀워크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등, 운영 면에서도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스코어는 팀을 2015년 롤드컵으로 이끌었고, '역대급' 그라가스를 선보이며 활약했습니다. 점멸 배치기로 과감하게 이니시에이팅을 시도하거나, 모두가 방심한 순간 '술통 폭발' 궁극기를 던져 아군 진영으로 상대를 끌어오는 등 '그라가스 그 자체'라는 별명까지 받을 정도였죠. 아쉽게도 KT의 상대는 전성기 시절 'KOO 타이거즈'였고, 스코어의 첫 롤드컵은 8강에서 마무리됩니다.

 

'그라가스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았던 스코어의 그라가스 (출처 : OGN)

이후에도 스코어는 능수능란한 모습을 뽐내며 KT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습니다. 2016년 롤챔스, SKT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슈퍼 플레이를 통해 경기를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현우 해설에게 "아군이 힘들어할 때 이를 풀어주는 정글러가 위대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정글러"라는 칭호도 이 시절 받았죠.

그러나 정글러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우승'이라는 업적은 스코어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6 롤챔스 서머 결승전입니다. 치열한 접전 끝에 경기는 5세트까지 흘러갔고, KT는 마지막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나가며 "승리까지 한 걸음"을 남겨뒀습니다. 그리고 바론을 시도하고, 강타로 이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e스포츠 역사에 남을 역대급 명장면이 탄생하게 됩니다.

 

더욱 야속한 사실은, 평타 투사체가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KT는 바론 버프를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출처 : OGN)

강타를 맞은 바론의 체력이 ​단 2​가 남고, 타이밍 좋게 떨어진 갱플랭크에 궁극기에 바론을 스틸당하는 초대형 참사였죠. 결국 스코어는 또다시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게 됩니다. 이에 "스코어가 우승하면 그 자리에서 성불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스코어와 준우승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 유독 심했던 준우승과의 악연, 끝끝내 끊어내다


세월이 흐른 2019년, 미드 라이너를 책임지던 '폰' 허원석이 부상으로 로스터 제외되고 그 자리를 신인 미드 라이너 '유칼' 손우현이 채웠습니다.

 

"동빈이 형이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겠다"며 '고동빈 성불(?)'을 공약으로 내세운 유칼과 함께 KT는 정규 시즌 1위를 기록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결승전으로 향했습니다. 상대는 챌린저스 승격 후 우승을 노리던 '어나더 레벨' 그리핀, 상대 정글러는 '타잔' 이승용이었습니다.

 

접전 끝에 결승전은 풀세트까지 흘러갔고, 쐐기를 박기 위해 KT는 바론을 시도합니다. 그리핀도 벨코즈와 탈리야가 동시에 스킬을 사용하며 바론 스틸을 시도했죠. 지난 준우승의 쓰라린 기억이 생각나는 순간, 유칼의 갈리오가 바론을 처치하며 그리핀의 바론 스틸을 막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프로 도전 8년 만에 스코어는 꿈에 그리던 롤챔스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OGN 주관 첫 롤챔스부터 참여해, OGN이 주관한 마지막 대회에서 들어 올린 우승컵이었기에 스코어의 우승컵은 더욱 빛났습니다.

 

'고동빈 성불'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당당한 신인, 유칼 (출처 : OGN)

 

그리고 유칼은 자신의 말을 지켰습니다 (출처 : OGN)

 

이제 롤챔스 우승컵까지 들어 올린 스코어에게 남은 마지막 도전은 '롤드컵' 우승이었습니다.

2018년 롤드컵, 첫 스타트는 분명 좋았습니다. 'EDG', '매드 라이온즈', '팀 리퀴드'와 같은 조에 속한 KT는 1라운드를 전승하며 롤드컵 우승을 향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EDG를 잡아내고 조별 리그 LPL의 전승 행진도 끊어내는 등 당시 불안했던 LCK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죠. KT는 조별 리그 5승 1패로 8강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8강에서 만난 팀은 2018년 최고의 팀 'IG'였습니다.

'루키' 송의진과 '더샤이' 강승록을 앞세운 IG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습니다. KT는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내주며 탈락이 눈앞까지 다가오게 되죠. 다행히 3세트에서는 백도어 끝에 넥서스 '한 대'차로 승리하면서 숨을 돌렸고, 4세트에서는 스맵의 슈퍼 플레이를 앞세워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3세트는 단 넥서스 '한 대'차로 승부가 결정되는 등, IG와의 접전은 쉽지 않았습니다 (출처 : 라이엇 게임즈)

 

그러나 IG의 벽은 높았고, 결국 KT는 IG에게 5세트를 내주고 맙니다. KT를 격파한 IG는 4강과 결승 모두 3:0 승리를 얻어내면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그렇게 스코어의 마지막 롤드컵은 8강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년에는 팀의 리빌딩 실패와 강등 위기 속에서도 팀을 이끌었습니다. LCK에서의 마지막 경기, 2019 LCK 서머 킹존과의 경기에서 스코어는 완벽한 그라가스를 선보이며 KT를 승강전 문턱에서 구해내고, 유종의 미를 남긴 채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MVP를 수상하며 KT를 승강전 위기에서 구해낸 스코어. e스포츠 팬들은 스코어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팀에 헌신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출처 : LCK)

 

 

# 우리는 스코어를 '위대한 정글러'로 기억합니다

 

스코어는 '롤챔스'의 첫 시작부터, OGN이 주관한 마지막 대회까지 함께해온 국내 <롤> e스포츠의 산증인입니다.

스코어를 다룬 수많은 분석 기사, 연대기, 동영상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꾸준함'입니다. 스코어는 ​3번의 포지션 변경, 유독 심했던 준우승과의 악연, 4번의 LCK 준우승, 4번의 롤드컵 선발전 탈락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스코어는 OGN에서 라이엇 게임즈로 LCK 운영이 이관되는 세대교체의 순간, 자신의 힘으로 '정규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자신의 마지막 LCK 경기에서는 홀로 경기를 캐리하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오직 꾸준히, 묵묵히, 프로게이머의 본분을 다해왔던 스코어이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값진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위대한 정글러로 기억합니다.

 

(출처 : O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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