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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대리와 어뷰징의 또 다른 이름, 롤 협곡 속 '듀오 강의'에 대하여

필기는 물론, 시험까지 대신 쳐주는 게 진짜 강의일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주보국(Amitis) 2021-09-24 09:24:03

게임을 의도적으로 망치는 행위를 두고 '어뷰징'(Abusing)이라 부르죠.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요, 솔로랭크 최상위권에서는 특정 유저의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패배를 유도한 뒤, 배정된 돈을 받는 또 다른 형태의 '어뷰징'이 유행 중입니다. 실제로, 과거 롱주에서 선수로 활동했던 '프로즌' 김태일은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어뷰징에 대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돈을 걸고 유명인의 게임을 방해하는 것만이 어뷰징일까요? 설령 돈이 걸려있지 않더라도 과정이 불공평하면 어뷰징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리그 오브 레전드>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어뷰징이라 칭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오늘 필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듀오 강의'에 관한 어뷰징입니다. / Amitis(주보국)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분명 '강의'인데... 선생님이 필기는 물론 시험까지 대신 쳐준다고?!

 

듀오 강의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듀오 강의는 티어가 높은 유저들이 '강의'라는 명목하에 수업료를 받고 하위 티어 유저와 랭크 게임을 돌리는 걸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보다 낮은 티어에 위치한 계정을 구한 뒤, 학생이라 불리는 '고객'과 듀오를 맺고 협곡을 누비죠. 여기서 수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강의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단어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수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반적인 경우, 유저들은 게임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불리한 경기를 역전하고 유리한 경기를 내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승리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몸으로 취득하죠. 물론, 이는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과정이 요구되니까요. 수업 내용을 착실히 복습한 뒤 시험에 임하는 학생들의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입니다.

 

반면, 앞서 언급한 '듀오 강의' 수강생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복습이나 예습 등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원하는 티어까지 부드럽게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수강생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천상계' 유저인 만큼, 질 경기를 승리로 바꿔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강사가 수업 진행과 필기는 물론이거니와, 학생과 시험까지 함께 본 뒤 성적표만 손에 쥐여준 꼴이나 다름없죠.

 

아무런 노력도, 문제도 없이 원하는 티어에 안착한 수강생들은 강사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솔로 랭크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듀오 '강의'의 실체는 위 그림과 다를 바 없다

 

 

# 선생님의 '힘'으로 올라온 수강생이 야기한 나비효과

  

수강생이 별다른 복습 과정 없이 브론즈에서 다이아몬드 티어까지 '편하게' 도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물론, 강의를 들은 직후에는 강사의 발자취가 남아있기에 그나마 게임을 따라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드러납니다.

 

강사가 알려준 내용을 실제로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양의 게임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를 직접 경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수강생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홀로 높은 티어의 게임을 플레이하면 패배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선생님이 '알아서' 티어를 올려줬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상위 티어 유저를 밟고 올라간 만큼, 그 대가는 뼈아프다

 

게임 수 부족으로 티어가 떨어질 거라는 걸 직감한 수강생은 뒤늦게 홀로 랭크 게임을 시작하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힘으로 원하는 티어까지 올라온 만큼,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여태까지는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을 바라보면 됐습니다. 적당히 와드만 해주고, 스킬만 쓰더라도 선생님이 알아서 해줬으니까요. 하지만, '홀로' 뛰는 랭크 게임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수강생의 미숙한 기량이 다른 일반 유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아이언 유저가 강의를 통해 플래티넘까지 올라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 수강생은 경험을 쌓을 시간 없이 단시간에 티어를 끌어올렸기에 게임 실력 자체는 플래티넘보다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티어 평균보다 실력이 낮은 만큼,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군에게 전달되죠. 이러한 과정은 수강생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협곡 생태계를 망치는 황소탐켄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황소탐켄치가 만들어지는 과정.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유저들의 몫이다

   

 

# 선생님의 힘으로 올린 티어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2011년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리' 제도가 유행처럼 번진 시기로 기억됩니다. 당시 하위권 유저들은 돈을 지급한 뒤 계정을 천상계 유저에게 맡긴 채 원하는 티어를 부여받곤 했죠. 이에 한국e스포츠협회와 라이엇 게임즈는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실제로 대리 제도는 어느 정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약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대리 제도는 '강의' 형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듀오'라는 보기 좋은 간판까지 덧붙인 채로 말이죠. 타인의 계정을 직접 플레이해주는 건 아니지만 듀오 랭크를 통해 해당 유저를 원하는 티어까지 끌어올려 주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리'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과거의 '대리'가 그러했듯 '듀오 강의' 역시 수많은 광고를 통해 유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오늘(23일) 기준 카카오톡 오픈 채팅이나 구글에서 듀오 강의를 검색하면 너무나 쉽게 관련 업체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죠. 심지어 모 사이트에서는 버스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최정예 베테랑 기사들만 존재한다, 기사 부주의로 인한 정지 시에는 모든 배상을 해드린다'라는 문구까지 걸려있는 상황입니다.

  

선생님이 진행하는 강의라고는 믿기 어려운 광고 문구다

  

듀오 강의는 양의 가면을 쓴 늑대와 같습니다. 돈은 돈대로 쓰지만, 실력은 그대로일뿐더러 같은 구간에서 열심히 경쟁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피해만 끼칠 뿐이니까요. 설령 당신이 강의를 통해 인생 최고 티어를 달성 한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윈-윈 게임이 아닌, 루즈-루즈 게임만 남을 뿐이죠.

 

실력은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게 아닙니다. 승리와 패배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이를 플레이에 녹여내야만 비로소 티어도 올라가는 거니까요. 만약 티어 상승에 지친 당신이 조금이라도 '듀오 강의'를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재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힘으로 올라간 티어는 결국 허상일 뿐입니다.

  

조금 느려도 좋다. 천천히 자신의 힘으로 티어를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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