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9세대 게임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이 출시된 뒤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2년 전 늦가을 많은 포덕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그 경험이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다시 찾아왔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9월 21일(토요일) 19:30, 9월 22일(일요일) 15:00 두 차례 공연이 예고된 가운데, 기자는 토요일 저녁 공연을 직관하고 왔다. 포켓몬 음악 좋은 것도 잘 알고, 캐릭터와 스토리도 매력적인 건 알겠지만, 게임으로 잘 즐겼는데 굳이 비용을 내고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봐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기사를 읽어줬으면 한다. 최근에 봤던 공연 중 정말 손에 꼽히게 좋은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곡과 영상 및 연출은 모두 <스칼렛·바이올렛>과 <제로의 비보> 상하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본편이나 DLC를 플레이하지 않았어도 공연을 즐기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 걱정마시라. 2시간에 걸쳐 스토리의 큰 줄기를 쭉 따라가는 구성이기 때문에 공연만 봐도 게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DLC까지 모두 클리어했다면 이 공연의 감동은 두 배가 될 것이다. 아는 장면, 특히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 순간, 오케스트라 관현악 및 밴드 연주로 재해석된 음악에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기자도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페퍼와 모란, 카지의 스토리는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뜨거웠던 현장의 분위기를 담아본다.
▲코라이돈, 미라이돈만 봐도 느껴지지만 이번 오케스트라 공연은 <스칼렛·바이올렛>과 <제로의 비보> 상하편 수록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상단의 바이올린, 좌하단의 일렉트릭 기타를 보면 알 수 있듯, 밴드+오케스트라+각종 타악기를 중심으로 포켓몬 음악이 재해석됐다.
▲ 1부는 <스칼렛·바이올렛> 본편의 서사와 배틀을 따라가며 진행됐다. 1부만 1시간 이상 진행됐고, 2부까지 약 2시간 가까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으니, 현장 분위기도 뜨거웠다.
▲ 2부는 DLC <제로의 비보> 상하편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아래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공연을 주최한 포켓몬코리아와 게임 음악 전문 오케스트라인 플래직 게임심포니오케스트라, 플래직 대표 겸 지휘자 '진솔' 외 제작진이 모두 모두 포잘알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곡의 구성 및 연출이 매우 뛰어났다.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공연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사람이 많았는데, 현장에서 판매되는 굿즈를 구매하러 오거나, 웹상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만나는 사람들, 코스플레이어 등 다양한 포덕들이 한 곳에 모였다.
▲ 사람이 그나마 적을 때 찍은 포토존 사진이다. 로비에서부터 인게임에 등장하는 각종 휘장이나 캐릭터, 포켓몬으로 꾸며져 있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 공간 곳곳에서 게임 속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미 이들의 서사를 잘 알고 있기에 공연을 보기 전에도 반가운 존재지만, 공연을 보고 나면 다시 한번 되새겨진 추억 때문에 사진을 또 찍을 수밖에 없다.
▲ 기존 다른 행사들에선 아무래도 귀엽고, 멋진 '포켓몬'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케스트라 공연이 '스토리'를 매우 부각시키며 진행되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더 돋보일 수 있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포켓몬과(정확히는 인형과) 동반 입장 가능하다는 안내가 사전에 있었기 때문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애 포켓몬을 데리고(?) 왔다. 코스플레이어가 많았던 것도, 이런 관객 문화의 연장선에 있었다.
▲ 대략 이런 느낌이다. 체감상 10명 중 8명 이상은 인형을 소지하고 있던 느낌이다. 오케스트라 공연 중 함께 데려온 포켓몬을 들어서 보여달라는 요청도 있었는데, 객석에서 정말 다양한 포켓몬이 머리를 내미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 사진에는 무대 연출이 모두 담기진 않았지만, 중앙 스크린을 통해 인게임 컷씬 및 플레이 화면을 상황에 맞게 띄워줬고, 무대 안팎의 공간을 실제 구조물과 조명으로 <포켓몬> 테마를 잘 표현했다. 특정 포켓몬과의 배틀 및 이벤트에 진입하면, 해당 포켓몬 모양의 조명이 벽이나 천장에 비춰지기도 했다.
▲ 드럼,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등으로 구성된 밴드 음악과 관현악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절묘했다. 딱 들으면 바로 "아, 게임 속 그 음악!"하고 알아챌 수 있게 직관적인 편곡이 특징이었다. 인게임 음악은 보통 특정 테마곡의 도입, 루프, 결말부로 구성되어 플레이에 맞게 조절, 반복되는 게 일반적이라면, 이번 공연에서는 화면 연출에 맞춰 기승전결을 더욱 강조한 것이 눈에 띄었다.
▲ 토요일 공연을 마친 후에도 비슷한 후기가 꽤나 많이 올라왔는데, 포켓몬 보러 왔다가, 지휘자 '진솔'님의 열정에 놀라고 간 공연이었다. 사진엔 그 에너지가 잘 담기지 않았는데, 몸짓이나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굉장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화면 및 무대 연출에도 신경을 많이 쓴 공연이기에, 연주자들에게 시선이 오래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지휘자와 밴드, 오케스트라의 열정이 눈길을 계속 낚아챘다.
▲ 테라스탈을 활용한 전투 장면에선 반짝이는 조명과 미러볼 등으로 몰입감을 높여준 것도 재치있었다. <스칼렛·바이올렛>만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었달까.
▲ 스토리를 따라가는 과정도 굉장히 섬세했다. 2시간이 넘는 공연이라곤 해도, 게임의 플레이타임에 비해 짧을 수밖에 없는데, 핵심 테마를 잘 선정해 스토리 전체의 줄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 포켓몬스터에선 배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전투 장면 및 테마곡도 다수 등장했는데, 이 또한 라이브 공연으로 마주하니 곡이 새롭게 들렸다.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스타단이 등장할 때의 음악들이 참 좋았다.
▲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 <스칼렛·바이올렛>과 <제로의 비보>를 플레이하지 않았거나, 9세대가 최애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연을 즐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공연을 계기로 9세대 포켓몬에게 없던 애정도 생겨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칼렛·바이올렛>을 재밌게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더더욱 이 공연에 꼭 한 번 와보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의 감동과 설렘을 다시 한번 되새겨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