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호요버스가 출시한 모바일 ARPG <젠레스 존 제로>(이하 젠존제)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출시 초기 많은 화제를 모았고, 매출 역시 상당한 등 절대 실패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게임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애초에 호불호 자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젠존제>는 기존 호요버스의 공식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게임이다(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호불호를 예측하고 만든 게임이라 해서, 지금까지 <젠존제>에 제기된 이용자들의 공통된 피드백을 넘길 만한 상황인 것도 아니다. 실제로 호요버스 또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출시 이후로 향후 개선안과 방향성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는 등 변화를 주고자 준비하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젠존제>에 이렇게 많은 피드백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을 오픈 직후 쭉 플레이하며 생각한 내용 몇 가지를 정리해 봤다.
# TV는 왜 호불호가 갈렸나
<젠레스 존 제로>의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TV 파트'로 이야기되는 탐험 부분이다. <젠존제>는 기존 호요버스의 게임과는 달리 3D 맵이나 오픈 월드 구조 대신,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TV를 통한 이동과 탐험 표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TV를 표현한 연출이나 각종 그래픽 리소스를 보면 개발자들이 아트 분야에서 상당한 공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는 것과 달리, 지금까지의 반응을 살펴 보았을 때 이 TV를 통한 탐험 방식은 이용자층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받아들이지 못한 인상이다. 커뮤니티에서는 농담 삼아 'TV사랑단'과 TV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맞서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사실, 화려한 아트로 치장하고 있지만 <젠존제>의 TV 이동 방식은 상당히 '올드'한 것이라는 인상이 있다. 구조 자체부터 칸을 넘어다니며 이동 기믹이나 미니 퀘스트, 퍼즐 등을 풀어나가며 진행하는 방식인데, 기자에게는 과거 <진 여신전생> 류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화려한 아트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 자체는 상당히 과거의 방식에 많은 근간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젠레스 존 제로>의 TV 이동 콘텐츠
개인적으로는 고전 게임 <진 여신전생>의 맵 탐험 생각이 났다.
애초에 JRPG의 탐험 파트를 <젠존제>는 TV로 시각화한 것이라 봐도 좋기 떄문. (출처: 페일의 여신전생 페르소나)
더욱이 <젠존제> 초기에는 이런 연출을 빠르게 스킵할 수 있는 배속 기능이 뒤떨어졌다. CBT 시절에는 배속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고, 정식 출시 초기에는 새로운 연출이 나올 때마다 배속 기능이 멈추기에 번거롭게 다시 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빠르고 단순하고, 화려한 '스낵 컬처'와 같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모바일 이용자들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게임 출시 전 홍보에서도 강조된 것은 '탐험'이나 '퍼즐'이 아닌 '액션'이었으니 반감도 더욱 컸을 것이다. 특히, 콘솔 게임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중국 시장에서의 반응이 차가웠다. 호요버스가 출시 후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개발자 인터뷰 동영상까지 올리며 "빠른 개선"을 약속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젠존제>가 아무리 해외 시장 그리고 새로운 이용자층을 노린 게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기존 이용자층의 반감이 크다면 결코 무시하기 어렵다. 특정 이용자층을 겨냥했다고 해서 기존 이용자층을 아예 배제해버릴 필요는 전혀 없다.
나아가 <젠존제>가 타겟팅했던 '콘솔 게임에 익숙한' 이용자층에게도 이런 TV로 표현되는 게임 진행 방식이 반드시 긍정적이였냐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있다. 그간 출시된 호요버스 게임의 특징이라면 '쉽다'는 것이다. 무조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이용자층에게 호요버스의 게임이 메이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낮은 진입장벽에 있었다.
덕분에 CBT 시절과 비교해 <젠존제> 본편 탐험 콘텐츠의 퍼즐적 요소는 상당히 쉽게 다듬어져 나왔다.지금껏 <젠존제>의 퍼즐 콘텐츠는 아주 약간의 생각만 한다면 곧잘 풀어낼 수 있을 수준으로 나왔는데, 기존 이용자층을 생각했다면 좋은 판단이지만 반대로 이런 퍼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허무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었다.
퍼즐은 웬만하면 정말 쉽게 나온다.
여러 기믹을 활용해 약간의 머리를 쓰는 재미를 얻기보다는, 보상을 얻기 위해 시간을 약간 투자하면 되는 그냥 그런 모바일 게임의 흔한 콘텐츠 느낌이었다. 이렇게 TV란 콘텐츠는 대척점에 위치한 이용자층에게 모두 '불호'라는 감정을 크게 줬다.
게임의 콘텐츠 밸런싱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양 대척점에 위치한 이용자가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상황이 <젠존제>가 마주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TV는 괜찮은데 너무 쉬운데?"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TV 그냥 없애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젠존제>가 자랑하는 액션과 TV를 통한 탐험이 매끄럽게 이어졌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TV로 표현되는 맵 탐험에는 항상 전투가 포함되어 있는데 '일단은 액션 게임이니까' 구태여 전투 콘텐츠를 억지로 넣었다는 인상을 남긴 구간이 많다. 전투에 들어갈 때마다 별도의 로딩도 거쳐야 하고, <젠존제>의 아트 스타일 특성 상 화면 전환 연출이 많아 게임의 흐름을 끊는 느낌은 더 강했다.
몇몇 탐험 퀘스트는 마지막에 꼭 전투가 있는데, 그냥 '넣어야 하니까 넣었다는' 인상이었다.
화면 전환 연출이 많기도 하다.
탐험 중 전투에 진입하면 로딩 연출->캐릭터 연출->전투 클리어 연출(WIPEOUT)->다시 로딩을 거쳐야 한다.
가장 이용자층의 호불호가 갈렸던 곳은 이벤트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었던 '하동백 황금연휴' 스테이지다. 넓은 맵 속에서 날마다 개방되는 구간의 퍼즐이나 미니 게임을 클리어하며 최종 보스에 도전해 보상을 얻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군데군데 배치된 적과의 전투는 없느니만 못했다는 평가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마라탕과 설탕 바른 구운 감자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마라탕에 설탕 바른 감자를 집어넣은 것까지 맛있게 먹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젠존제>의 액션과 퍼즐형 탐험 콘텐츠는 확실히 따로 놀고 있다.
차라리 <젠존제>가 턴제 게임이었다면 버튼 몇 번 누르면 잡졸과의 전투는 금방 끝나기에 전투와 탐험 간의 전환이 그나마 빨랐겠지만, 액션이라는 점 때문에 플레이의 흐름을 끊는 느낌은 더욱 컸다.
잡졸과의 전투는 회피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다.
# 로그라이트조차 될 수 없었던 제로 공동
<젠존제>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제로 공동'에 대한 것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로 공동은 일종의 로그라이트 구조를 띈 콘텐츠로, 랜덤하게 발생하는 이벤트 속에서 패널티와 캐릭터 강화 아이템(레조니움)을 적절히 조율해 얻으며 최종 보스를 클리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선 전 1주일에 수 번을 돌아야 했던 제로공동에 대한 인상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첫 2주일까지는 굉장히 재밌었지만, 로그라이트성 콘텐츠를 모바일화시키고 난이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간소화하며 깎아낸 것들의 문제가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제로 공동'은 로그라이트라 부르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다. 호요버스 역시 여러 홍보문에서 로그라이트라는 단어를 구태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제로 공동
제로 공동의 문제점은 로그라이트적 시스템을 넣었음에도 빠르게 반복형 콘텐츠로 변모해 버린다는 것이다. 레조니움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느낌이다. 레조니움은 여러 카테고리로 나뉘어, 특정 카테고리의 아이템을 얻을수록 플레이어의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같은 카테고리의 레조니움을 4개씩 얻을 때마다 강력한 능력을 주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해 '그냥 많이 먹을수록 강해진다'이다.
로그라이트 콘텐츠에 흔히 생각되는 '도전적인 난이도'의 적을 랜덤한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아이템과 이벤트를 조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한다는 재미는 없다. 그냥 레조니움을 많이 먹으면 강해지고, 충분히 육성한 캐릭터가 레조니움까지 많이 획득해 놓았다면 보스는 '버튼 딸깍'에 쓰러진다. 페널티 요소로 '침식'이 있긴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런 게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진다.
레조니움은 그냥 많이 먹으면 무조건 좋다.
니네베 11단이 아니라면 레조니움 조합은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다.
하지만 난이도를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였을까? 높은 난이도 설정은 '가챠 게임'이라는 BM과 정면 충돌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만약 제로 공동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면 당연히 고돌파 혹은 고성능 캐릭터가 유리할 수밖에 없고, 이용자들에게 "깨려면 돈 써라"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로그라이트류 시스템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은 정말로 하늘과 땅 같은 플레이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난이도 조정을 위해 모두의 출발선이 공평하도록 '돌파'의 차이를 이런 콘텐츠에서 없애 버린다면, 강한 캐릭터를 위해 과금을 한 사람들의 노력을 무위로 만드는 일이 된다. 뽑기 하나에 몇 만원이 들어가는 게임에서 과금까지 한 사람을 역으로 차별하면 역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돈을 써서 캐릭터를 강화해도 게임 핵심 콘텐츠 중 하나엔 영향이 없다고 한다면 과금 이용자층은 화내며 지갑을 닫을 것이다.
애초에 모바일 게임 대부분이 최대한 접근성이 좋은 난이도를 표방하고 있다. 난이도가 쉬워야 최대한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으니 당연하다.
한 가지 더, <젠존제>는 액션을 강조한 게임이다. 아무리 쉽게 만든 들 '액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비선호하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진입 장벽이 있다. 마니아들을 위해 무턱대고 문턱을 올려 버린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는 게임 입장에서는 자해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 된다.
더불어 자동 전투를 추가한다면 게임의 재미가 크게 훼손될 수 있기에 가능하면 수동으로 플레이하도록 해야 한다. <붕괴 스타레일>에서 '시뮬레이션 우주'를 자동 전투를 돌려 놓고 클리어하는 것과는 다르다.
덕분에 제로 공동은 꼬이디 꼬인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주어지는 랜덤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수를 찾으며 재미있는 레조니움 조합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강력한 보스에 도전하는 재미는 별로 없다. 캐릭터 적당히 잘 키워 놨으면, 그냥 보스로 달리고, 빨리 깨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일일이 수동으로 해야 하며 중간중간 화면 전환 연출이 계속돼 시간을 잡아 먹고 있으니 고통이 가중된다.
어려우면 또 어려운 대로 문제가 된다.
패키지 로그라이크 게임의 난이도를 가챠가 BM인 모바일 게임에 그대로 넣기란 쉽지 않다.
초기 1~2주일은 최대한 이득이 되는 루트를 타며 클리어하는 맛이 있었지만
육성이 완료되는 순간 보스로 달려서 그냥 빨리 깨는 것이 최선이 된다.
으레 모바일 게임의 콘텐츠는 결국 '분재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긴 하지만, '액션'을 강조한 게임인데도 이토록 빠르게 게임이 반복적이고 단조롭게 귀결되어 버리니 '콘솔 게임'에 보다 익숙한, <젠존제>가 목표한 이용자층에게는 빠르게 흥미가 식을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 단조롭다는 문제는 게임의 다른 핵심 콘텐츠인 '시유 방어전'에서도 동일하다.
결국, 호요버스는 1.2 패치에서 TV 탐험 콘텐츠를 아예 없애 버린 제로 공동을 새로이 내놓는 임시 조치를 단행했다. 제로 공동의 이벤트 연출이나 OST의 퀄리티를 보면 가볍게 개발한 느낌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개발에 들인 공을 생각하면 아까운 결과다.
정리하자면, <젠존제>가 신규 이용자층을 노리고 모바일 서브컬처 게임에서 보기 힘든 여러 신선한 시도를 했지만,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콘솔 감성과 모바일 게임이라는 환경은 밸런싱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 발빠른 개선 약속,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젠존제>는 9월 경 '기획자 면담' 동영상을 공개하고 이용자들의 여러 피드백에 대해 상세한 개선안을 공개했다. 약 출시 2달 만인데, 초반 메인 스토리의 몇몇 부분은 다시 제작하겠다고 밝힐 만큼 상당히 큰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실제로 1.2 업데이트 콘텐츠의 경우 메인 퀘스트에서 TV 탐험 구간이 아예 제외되어 나왔다.
호요버스의 게임은 늘 그랬으니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취하는 이용자도 있다. 히트작인 <붕괴: 스타레일>부터 출시 초기에는 여러 문제점을 보이며 지적 받다 거듭된 개선을 통해 이용자층의 불만을 해소하고 당당한 메이저 히트작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1.2와 1.3을 통해 약속된 개선안이 일부 적용되자 방향성이 괜찮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용자들이 보이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젠존제>는 현재 11월 5일 1.3 업데이트 콘텐츠를 선보이고, 추후 공개될 1.4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초기 이용자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대적 개선안과 신규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젠존제>가 그저 그런 흥행작으로 남을지 아니면 호요버스를 대표하는 새로운 강력 IP로 발돋움할지는 1.4 업데이트와 그 이후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점이 있더라도 <젠존제>에는 사실 칭찬할 구석이 상당히 많다. 잠재력이 있는 게임이다. 누구나 모바일로도 간편히 즐길 수 있는 화려한 액션이라는 모토는 잘 살려냈으며, 각 캐릭터나 컷신마다 들어간 애니메이션 퀄리티는 오로지 <젠존제>에서만 느낄 수 있을 만큼 화려하게 깎였다. 특히 '칼리돈의 자손' 소속 캐릭터들의 애니메이션은 제작진의 사심이 듬뿍 들어가 있지 않나 느껴질 정도.
힙한 아트 스타일과 EDM 파티에도 출현시키는 등 호요버스 측에서도 밀어주는 듯한 SAN-Z 스튜디오의 OST도 매력이 넘친다. TV가 많은 호불호를 낳긴 했지만, 독특한 아트 스타일 덕에 메인 스토리 콘텐츠에서 TV 이동 구간이 사라지자 "아예 뺀 것은 아쉽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기자도 TV사랑단이다.)
첫 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다. <젠존제>가 타겟팅한 이용자층에게 이런 장점을 통해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만큼 차후의 업데이트와 개선을 통해 보다 재미있는 게임으로 발돋움하길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 제로 공동의 콘셉트는 상당히 마음에 들기 때문에, 보다 <젠존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쏟을 만큼 어느 정도는 깊이 있는 콘텐츠로 재단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