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형 게임 개발사 '사이게임즈'의 간판 IP 중 하나는 <그랑블루 판타지>다. 웹 게임으로 시작해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 등 콘솔 게임으로 IP 확장에 힘써 오고 있는 이 게임은 국내에도 이전부터 알음알음 팬층이 존재해 왔다. 최근에는 액션 RPG로 출시된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를 통해 IP를 새로이 알게 된 한국 팬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전부터 <그랑블루 판타지> IP을 총괄해 오며 팬들에게 얼굴마담으로 여겨지는 인물은 사이게임즈의 '후쿠하라 테츠야'다. 2012년 입사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IP를 이끌어 오고 있는 후쿠하라 테츠야는 지스타 2024 현장에 찾아와 <그랑블루 판타지>의 개발 비화와 IP 확장 방법에 대해 강연했다.
'후쿠하라 테츠야' 사이게임즈 <그랑블루 판타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랑블루 판타지>는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11주년을 맞은 게임이다.
아이디어는 사이게임즈의 자회사에서 제작한 '콘셉트 아트'를 바탕으로 '하늘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들자'는 콘셉트로 결정됐다. 2013년 개발을 시작한 게임치고는 독특하게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실행되는 '웹 게임'으로 만들어졌는데, 설치가 필요 없어 접근성이 높고 업데이트 및 유지보수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웹 게임은 애니메이션 표현이나 사운드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폰 웹 사양에서 구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술 연구를 통해 당시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하게 했다. 후쿠하라는 "당시로써도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랑블루 판타지> 개발의 모토가 된 콘셉트 아트
<그랑블루 판타지>의 개발 기간은 11개월이었다. 게임 콘텐츠적인 면에서는 "JRPG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하루 5분, 한 손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자!"를 핵심으로 삼았다. 보스 배틀, 캐릭터 육성, 스토리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되 '파고들기' 요소는 방대하게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됐다.
당시에 3D 그래픽을 활용한 JRPG가 다수 출시되고 있었지만, 2D 사이드뷰 게임 그래픽이라도 패미컴 시대부터 보편적으로 사랑받아 왔기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내부 판단도 있었다. 그 대신 웹 게임의 장점을 살려 시나리오는 10년 동안 매 달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끝없이 선보여야 하는 만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믹한 이야기로 가거나, 로봇물처럼 이외의 콘셉트를 넣는 등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도 힘썼다.
2D 그래픽이지만, 화면의 퀄리티가 진부하거나 부족해 보이지 않도록 '일러스트레이션'도 사이게임즈가 집중한 부분이다.
후쿠하라는 "<그랑블루 판타지>를 통해 사이게임즈가 연간 생산하는 일러스트는 일본 게임 업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게임즈는 <그랑블루 판타지>에 사용된 일러스트를 매년 화집으로 출간하고 있는데, 현재는 총 15권에 4,500 페이지 분량에 이른다.
IP를 팬들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캐릭터 송, OST, 애니메이션, 만화책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진행하며, 그랑블루 페스와 같은 오프라인 행사 개최에도 집중하고 있다. 후쿠하라는 "매년 그랑플루 페스에 참여하는 관람객은 증가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노력 덕분에 IP가 계속해서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랑블루 판타지>는 미려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RPG도 다수 존재한다.
화집은 국내에도 일부 출간됐다. 사진은 <리링크>
현재 <그랑블루 판타지>는 일본을 넘어 글로벌 IP로 도약하고 신규 팬층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도한 것은 콘솔 타이틀 출시다. 첫 도전은 '아크 시스템 워크스'와 공동 개발한 대전 격투 게임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였다.
대전 격투로 장르를 결정한 이유는 이전부터 사이게임즈가 e스포츠 문화에 참여하고자 했던 니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쉐도우버스>라는 TCG를 통해 이미 e스포츠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e스포츠의 꽃 중 하나인 대전 격투 장르에 자사의 IP로 참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더불어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를 개발하던 때는 '모바일 게임'의 유행으로 인해 콘솔 게임 시장이 정체된 시기기도 했다. 후쿠하라는 "콘솔로부터 멀어진 젊은 모바일 세대를 위한 어필이 필요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해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는 '격투 게임 입문을 위한 결정판'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버튼 하나로 필살기를 사용하거나 간편하게 콤보를 이어가는 등의 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스토리 모드는 대전 액션보다는 RPG라는 콘셉트를 살려 만들어졌다.
격투 게임 다음으로 도전한 장르는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를 통한 액션 RPG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액션 RPG가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그랑블루 판타지>를 콘솔 액션으로 즐기고 싶다"는 원작 팬들의 니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 개발은 쉽지 않았다. 오랜 업력을 가진 사이게임즈지만 콘솔 액션 게임 개발은 처음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후쿠하라는 "정말 힘들었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퀄리티는 좋은 평가를 받아 상당히 기뻤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는 여러 독특한 시스템과 연출로 주목받았다. '링크' 시스템을 통한 협력 플레이나, 혼자 게임을 진행하더라도 '멀티 플레이'를 하는 듯한 연출을 제공했다. 콘솔에 익숙하지 않을 플레이어를 고려해 일종의 이지 모드인 '어시스트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후쿠하라는 "이렇게 하나의 IP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전개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팬층을 확장하는 전략이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역별로 장르의 선호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일본은 원작 <그랑블루 판타지> 팬층이 많고, 유럽 지역은 격투 게임인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의 선호도가 높다. 일본 외 아시아 국가나 북미에서는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의 선호도가 높다.
후쿠하라는 "콘솔 타이틀 출시를 통한 팬층의 유입도 실제 확인했다.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 출시 이후 북미의 애니메이션 행사에 참여했는데, 저희 게임을 봐주신 응답자의 70%가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로 IP를 알게 됐다고 답했다"고 이야기했다.
후쿠하라는 "각기 다른 장르의 게임을 출시한 덕분에 여러 지역에 <그랑블루 판타지>라는 IP를 잘 알릴 수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각 타이틀로 유입된 팬층을 유지하며, 더욱 IP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후쿠하라는 "2013년 일본에서 서비스를 할 때에도 <그랑블루 판타지>를 플레이해 주신 한국 게이머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로써도 매우 기뻤다. 사이게임즈는 한국의 팬층에게도 앞으로 최고의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