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음’과 ‘유연함’은 얼핏 보기에는 한 끗 차이다. 때로는 오로지 최종 성과만을 가지고 소급하여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러 번의 방향전환 끝에 도달한 곳이 진창인지, 꽃밭인지에 따라 밟아온 자취에 대한 평가까지 뒤바뀌는 일이 다반사라는 얘기다.
가끔은 전체 여정의 방향성을 살펴야만 조금 더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 다분히 무작위 같았던 움직임이 목적지 도달을 위한 필수적 몸짓이었다는 사실을 큰 그림을 보며 깨닫게 된다.
충북글로벌게임센터에서 모바일게임 개발사 딜리셔스 게임즈의 이현진 대표를 만났다. 주력 장르에서부터 게임 콘셉트까지, 그간 자주 변화를 꾀했던 회사다. 그러나 그 과정은 방황이나 표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명확한 목적지를 정해 놓고 ‘우직하게 헤맨’ 것에 가깝다.
만드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 이끌려 이들은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어떤 고민과 재미를 쫓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본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진행됐습니다)
Q. 디스이즈게임: 반갑다. 회사명에서 어떤 포부가 느껴진다. 소개를 부탁한다.
A. 이현진 대표: 이름처럼 ‘맛있는 게임을 만들자’가 우리 회사 슬로건이다. 그런데 아직 맛있는 게임이 안 나와서 걱정하는 중이다(웃음).
Q. ‘맛있는 게임’이 뭔지 설명해줄 수 있나
A. 사람마다 ‘맛있다’의 정의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매운맛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맛과 짠맛의 어우러짐일 수 있다. 그런 다양한 맛을 내는 게임들을 만들고 싶다는 뜻이다.
Q. ‘하이브리드캐주얼’을 표방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이브리드캐주얼’이란 뭔가?
A. 라이온 스튜디오*의 발표에서 처음 들었던 용어고, 우리의 방향성과 맞는다고 느껴서 회사를 소개할 때 사용하고 있다. 라이온 스튜디오는 (하이브리드캐주얼을 정의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하이퍼캐주얼의 게임성을 바탕으로 유저가 다양한 ‘메타’를 시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미국 모바일게임 개발사
그러니까 기존 하이퍼캐주얼이 주어진 퍼즐 등 콘텐츠를 그대로 플레이하며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개념이었다면, 하이브리드캐주얼 게임은 유저가 인게임 상에서 (메타 연구 등) 스스로 즐길 요소를 더 넣는다는 접근이다.
Q. 하이브리드캐주얼에 도전한 이유는?
A. 사실 ‘하이브리드 캐주얼’로 체질개선을 한 게 올해부터다. 그전까지는 하이퍼캐주얼, 캐주얼 장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기작을 기획하려고 식구들(*이현진 대표는 인터뷰 내내 직원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과 둘러앉아 얘길 하다 보니, ‘이전보다 제작 난도가 있는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하더라. 나는 우리 스스로 지칠 수 있으니 중간 어딘가의 수준으로 적당히 난이도를 조절하자고 했고.
그 결과 오리지널 게임 <머지 오브 미니>를 제작했다. 해외에 먼저 출시한 상태고 내년 국내 출시를 노리고 있다.
Q. 장르 안에서 딜리셔스 게임즈 게임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A.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기업들이 이미 시도했던 장르에 우리만의 색깔을 첨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 우리만의 색깔을 하나 꼽자면 퍼즐 아닌 장르에 퍼즐을 결합하는 식의 접근을 많이 취한다. 여기서 유저분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많이 두고 있다.
Q. 새로운 장르의 게임 두 개를 같이 제작하려면 어려움이 따랐을 텐데 도전한 이유는?
A. 팀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청주, 전주, 대구, 경기도 등에서 강연을 많이 해왔다. 거기서 직접 만나서 데려온 친구들이다. 그러니 내 안목을 믿은 것이기도 하다. 내가 굳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게임을 완성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어느 한쪽 타이틀에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는 팀이 알아서 만들 것이라고 느꼈다.
Q. 개발 중인 오리지널 게임 <머지 오브 미니>는 어떤 작품인가?
A. 유닛과 영웅 카드를 퍼즐판 위해 배치해 나만의 전략을 세우고, 방치형 전투로 상대와 겨루는 PvP 게임이다.
Q. 타이틀에 ‘머지’가 들어가 있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소인지?
A. 사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머지게임*이었다. 똑같은 카드를 합치고 병사를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그렇게 구현했더니 개별 캐릭터들이 구분도 되지 않고, 굳이 이렇게 만들 필요가 있나 싶어서 방향을 바꾸게 됐다. 다만 지금도 그 요소가 살아남아서 동일한 유닛 두 개를 ‘머지’(병합)해 강화하는 시스템이 있다.
*똑같은 오브젝트 두 개를 결합하는 간단한 메카닉으로 진행되는, 하이퍼캐주얼의 한 장르
Q. 부대 구성과 전투 방식은?
병사 유닛은 44종이 준비되어 있다. 각자 속성, 종족, 병과가 나뉜다. 영웅은 현재 18종이며 고유한 속성, 종족으로 나뉘고, 각자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을 지닌다. 액티브 스킬은 타격 혹은 피격으로 스킬 게이지가 꽉 찰 때마다 자동으로 전개된다. <오토체스> 류 게임을 참고한 부분이다.
영웅은 계속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하고 있다. 인게임 코인을 모아서 구매하거나, 과금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Q. 이른바 ‘실력게임’인가? 어떤 유형의 유저들이 좋아할 타이틀인지?
A. 흔히 ‘두뇌 게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게임 종류가 있다. 그런 유형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희 게임도 즐겁게 하시더라. 같은 병력이어도 배치를 더 잘하는 쪽이 유리해진다.
스포를 조금 해드리자면, 이런 전략 요소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퍼즐판을 특정 유형 구성원들로 채웠을 경우 버프를 받게 되는 형태의 업데이트도 계획 중이다.
Q. 참고한 게임에는 무엇이 있는지?
A. <클래시 오브 클랜>, <블럭 스도쿠> 등 여러 게임을 참고했다. 우리끼리 모여서 게임을 되게 많이 하는 편이다. <머지 오브 미니>는 팀원들이 <블럭 스도쿠>를 하다가, ‘이 메커니즘을 우리 게임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얘기가 나와서 기획하게 됐다.
처음엔 <블럭 스도쿠>의 시스템을 게임에 구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였지만 유닛 배치를 이런 방식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너무 번잡하지 않을까 초기에 걱정했으나 막상 넣고 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Q. 게임 반응은 어떤가?
A. 북미 등지 리뷰를 살펴보면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 유닛 배치 메카닉이 특히 재미있고, 이 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덕분에 리텐션율도 괜찮고, 수익도 함께 나는 상황이다. 수익은 동영상광고, 인앱 결제에서 발생한다.
Q. 또 다른 매력 포인트 있다면?
A. (의외로) 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나 역시 병력 배치가 끝나면 전투 시작을 누르고 그저 내버려 두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전투를 지켜보게 되더라.
Q. 전투 화면은 흘러가는 콘텐츠로 기획했다기엔 딱 봐도 공을 들였던데?
A. 아트 담당자 분들이 욕심을 낸 결과다. 원래 계획한 소프트론칭 날짜가 훨씬 더 늦어진 이유가 됐다. 여러 이펙트를 넣기 위해 시간을 더 달라고 하더라. 한 달 반? 거의 두 달 가까이 더 걸렸다.
이 친구들이 20대 초반이다. 워낙에 게임을 많이 못 만들어본 상황이고, 자신들이 만든 아트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말리겠는가. 그러라고 했다.
Q. <미니 오브 머지>에 거는 앞으로의 기대, 목표는?
A. 일단은 지금처럼 북미를 포함해 글로벌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기는 하다. 처음에는 북미 사업 진출에 있어 아트 쪽에만 신경을 썼었다. 현재는 북미 유저들이 게임성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한 걸 선호하지만, 퍼즐을 넣어두면 어려워하면서도 재미를 느낀다. 우리 게임의 그러한 요소가 먹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싶다. 그런데 한국분들 피드백을 들어 보면, 재미있다는 분들도 있지만 ‘뭔가 심심하다’는 반응이 많다. 이를 고려해서 향후 업데이트는 한국 유저들을 고려해 조금 더 어렵게 나아갈 예정이다. 조금 더 머리를 많이 쓰도록 만들고, ‘내 실력으로 이겼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려고 한다. 이를테면 병사 배치판을 바꿔서 지금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게 만드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Q. 그 경우 기존 해외 유저들의 반발도 있지 않을까
A. 걱정되기는 한다. 글쎄, 가봐야 알지 않을까? 최근 다른 기업 분들을 만나 얘기하며 느낀 것인데, 콘텐츠 업데이트는 사실 도박인 것 같다. 게임을 바꿨더니 리텐션율이 급감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더라.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도전을 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두려우면 게임을 못 만드는 것 아닐까.
Q. 게임 개발 과정을 들어 보니, 팀원끼리 의사 교환이 자유롭고, 그 의사에 따라 유연하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점이 크게 다가온다. 그런 사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따로 노력한 부분이 있는지?
A. 노력을 많이 했다. 초반에는 아이디어를 너무 얘길 안 해줘서 조금 답답한게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워낙 외향적이기도 하고 얘길 활발히 하는데, 다른 분들은 조용히 앉아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먼저 ‘이런 걸 넣으면 어떨까’하고 얘길 하면 그때야 ‘아뇨 그거 지금 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요’ 하며 반박이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웃음).
결국 너무 얘기들을 안 해줘서, 고민하던 끝에 친구들이 하는 게임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게임을 왜 하는지, 뭐가 재미있는지 물어보는 식으로 접근을 했다. 그런 소통이 3, 4년 쌓여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Q. 팀원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게임에 두루 넣으려고 각별히 노력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
A. 게임에 자기 아이디어가 들어갔을 때 스스로 더 재미를 느끼고 동기부여가 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팀원들 입장에서는 ‘내가 한 이야기’가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셈 아닌가. 아티스트가 한 이야기가 프로그래밍으로 구현되고, 거꾸로 프로그래머가 한 이야기가 아트로 그려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낸 요소가 게임에 잘 어우러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본인들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계기가 되는 순간 같다. 그런 계기들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Q. 기업 설립은 언제인가? 2018년 충북글로벌게임센터가 설립된 시점에 바로 입주했던데, 어떤 계기였는지?
A. 창립은 2015년 경이다. 그러니까 가장 오래된 멤버들은 6~7년 정도 함께 하고 있다.
원래 기업은 서울에 있었는데 당시 매우 힘들었다. 회사를 접을까 말까 기로에 서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소개를 통해 충북글로벌센터가 입주 기업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제작지원금도 지급된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더욱더 솔깃해 도전하게 됐다(웃음).
Q. 선정된 이후 입주와 적응은 어땠나
A. 처음엔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솔직히 부담스럽더라. 그러나 일단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당연히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려와서 열심히 하니 (센터분들이)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나는 원래 서울 출신인데 주소지도 청주로 옮겼다. 다들 너무 잘 대해주신다. 팀원들도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출신 등 다양한데 여기 모여서 살고 있다.
센터에 계신 다른 개발사들도 제작지원사업 선정으로 센터 입주가 결정돼 청주로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원래 청주에 계시다가 센터를 알고 입주한 분들도 있다.
Q. 마지막으로 국내 게이머들에게 전하는 포부나 다짐의 말 부탁드린다.
A. 아무래도 국내에서 하이브리드캐주얼 게임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 있다. 유저들에게 ‘맛있는 게임’으로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