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 '사행성', '사행성 게임'.
뭔가 무시무시한 단어인 듯합니다. 때가 되면 신문 지면은 물론 안방 뉴스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죠. (요즘도 그렇고요.)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아프고 단어를 사용하는 주체들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는 사행성 게임을 둘러싼 용어들이 사전적, 법적 정의는 물론, 영어와 숫자로 풀이되는 하는 어려운 개념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길라잡이가 되어 줄만한 책이 다가올 오는 6월 출간됩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 중인 <K-게임 사행성의 비밀>이 그것입니다. 언뜻 제목만 들었을 때, 진짜 '타짜'들을 위한 족보 같다는 인상입니다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책은 '사행'과 '사행성'을 중심에 두고 나선형을 그리며 내용을 확장합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여러 게임의 사례를 들여다봅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K-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알 수 있는데, 이 구조가 마치 한국인들을 위한 '게임의 정석'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서(秘書)를 쓴 사람은 누구이며, 왜 게임산업의 '영업 기밀'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할까요? 5월 23일, TIG의 사무실에서 <K-게임 사행성의 비밀>을 쓴 '고라'님을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어보았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신동하 기자
#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K-게임 사행성의 비밀
고라 님은 게임 로컬라이징, 라이센싱, 마케팅 업무로 경력을 시작하여 개발 전략, 게임 제작 관리까지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콜 오브 듀티>,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천주>, <페르시아의 왕자> 등을 국내 퍼블리싱하고, <팡야>의 콘솔 버전의 해외 라이센싱을 담당했습니다. 현재는 다른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뀨놀의 게임읽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뀨놀의 게임읽기'라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어요. 게임에 대해 잡담하는 채널이에요. 우연히 게임산업법에 관한 내용을 다룬 영상이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게이머들이 상황을 잘못 이해해서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해당 문제가 바뀌길 원하지만 어디가 문제인지 잘 몰라서 화가 났다는 일화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행성 초등학교'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그 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을 더 쉽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스타비즈 출판사에서 좋은 제안을 주셨죠."
그는 사행성의 이론과 실무를 두루 익힌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사행성'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건 2004년경입니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던 그는 한 게임사에 입사하여 플레이스테이션 2와 관련 게임들을 로컬라이즈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회사는 일본의 '빠찡꼬'를 국내에도 도입하고자 계획하고 있었는데, 일본어를 잘하던 그가 사업의 담당자로 낙점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사인 'SNK'의 파치 슬롯을 국내법에 맞게 수정하고, 드라마 겨울 연가의 일본 파칭코 라이센스 계약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게임 과금 모델 설계 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초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수준의 책은 아니고요. 저희가 기본 중의 기본을 이야기할 때, '초등학교' 혹은 '유치원'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행성'은 업계 사람들에게는 너무 뻔하고 당연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러나 게이머들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전혀 알 수 없죠. 결국 이 격차를 좁혀야 진짜 담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제도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이에요. 가까운 분들은 정말 아무도 몰라서 안 팔리는 거 아니냐고 농담하기도 하죠."
유튜브 '뀨놀의 게임읽기' 페이지
# '빠찡꼬'와 MMORPG가 유사하다?
그는 MMORPG와 빠찡꼬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사행행위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모아 우연적인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하여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1)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으로부터 2) 법적으로 재산으로 규정된 것들을 모아, 3) 실력이 아닌 우연적인 방법으로, 4)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빠찡꼬의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만족하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조건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선, 숙련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여 경품을 탈 수 있는 확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빠찡꼬는 돈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게임에 필요한 구슬은 사는 것이 아니고 '빌리는 것'입니다. 볼링장이나 당구장에서 공을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RPG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의 약관을 살펴보면, 캐릭터와 아이템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아이템은 게임사에서 소유하고 있고, 게이머들은 그것을 이용만 하는 형식입니다. 또한, 우연적 요소보다는 게이머들의 노력과 시간, 실력에 의해 게임머니의 획득 여부가 결정됩니다.
"게임 업계에 있으면서, 자칭 빠찡꼬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은 빠찡꼬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것과 관련된 일장 연설을 늘어놓곤 했어요. 하루는 빠찡꼬의 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문득 RPG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은 모두 노는 데에 필요한 물건들을 '빌려준다'고 말하고, 현금 대신 경품을 지급해요. 이걸 토대로 편견 없이 보니 둘의 구조가 매우 유사했어요."
책의 일러스트는 게임 <트릭컬>의 공식 작가인 '족제비와 토끼'가 맡았다.
# 진정한 '사행성' 담론이 형성되기 위해서
책 속에서 그는 가장 먼저 사행과 사행성을 구분합니다. 사행은 로또처럼 법적으로 사행 행위에 해당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을 의미하고, 사행산업통합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습니다.
사행성은 사행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사행 행위의 조건 중 법적으로 규정된 재산의 손익이 없어야 합니다. 가챠를 도입한 게임들이 그 예시이며, 여전히 게임으로 취급되기에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습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빠칭코는 게임의 결과물이 구슬 즉 재산가치가 없기에 사행성 게임이고, 슬롯머신은 게임의 결과를 현금으로 바로 내놓기에 사행게임이 됩니다. 더불어 슬롯머신은 우연에 의한 결과값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기에 도박으로 분류됩니다.
현재 P2E 게임의 유저들이 국내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행법상 한 게임이 국내에 서비스되기 위해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P2E 게임은 게임이 아닌 사행으로 분류되어 등급분류 거부 판정아 나고 있습니다. P2E 게임에 적용되는 가상화폐가 실질적으로는 재산상 가치를 가지지만 법적으로는 재산으로 인정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제가 그동안 책을 쓰기 꺼려던 건 회피법을 다루는 이 부분이에요. 사행성 게임은 일종의 회색지대인 셈인데, 제가 괜히 사행 행위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데 게임판에서 통용되는 밈 중에 '모르면 맞아야지'라는 게 있잖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맞으면 백날 맞아도 바뀌지 않지만, 생각하면서 맞으면 '아 이런 규칙이 있구나'하고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저는 제가 쓴 책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 냈으면 좋겠어요."
<K-게임 사행성의 비밀>은 6월 중순 출간 예정입니다.
책에 수록된 사진. 사람들이 빠찡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