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연고제, 뭐라도 시도하자는 심정에서 찬성하는 것이다."
e스포츠 팀 '리브 샌드박스'는 최근 '피어엑스'(FearX)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됐다. 리브 샌드박스는 'KB 국민은행'과의 스폰서십이 종료되고 올해 3월 비주얼 테크 기업 '포바이포'의 인수에 따라 리브랜딩을 예고했던 바 있다.
피어엑스는 여러모로 독특한 이미지를 가진 팀이다. LCK에서는 항상 상위권의 성적은 아니지만, 한 때 강팀을 꺾고 돌풍을 일으키며 '모래폭풍'이라는 이미지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프로 게임단 운영 외에도 PC방 등 다양한 산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부산시와 손을 잡고 최초의 LCK 지역 연고제 팀이 됐다. 피어엑스의 정인모 대표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지역 연고제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리브랜딩을 맞아 직접 피어엑스를 찾아가 정인모 대표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지역 연고제를 시작한 이유,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 이유 그리고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여러 이야기에 대해 직접 의견을 구했다. 정인모 대표는 현재 e스포츠에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힘을 주어 말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피어엑스 정인모 대표
Q. 디스이즈게임: 사명이 바뀌었다. 피어엑스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A. 정인모 대표: 기존 회사명은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보단 단순한 사명의 조합이란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브랜드로써 성장할 수 있는 팀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모회사가 바뀌며 '포바이포 게이밍' 같은 이름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포바이포에서도 저희의 방향성에 동의해 주셨다. 단순한 회사의 이름보단 매력 있고 지속 가능한 브랜드란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희의 이미지는 낭만, 언더독, 모래폭풍과 같은 것들이 있었고, 여기에 포바이포라는 이름을 녹여내려 했다. 생각나는 키워드는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포바이포의 약자가 FX기도 하니 FearX라는 이름을 통해 연속성을 가져가면서도 저희의 브랜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삼으려 했다.
Q. 2021년 리브 샌드박스의 CSO로 영입된 지 3년 정도가 지났다. 현재는 CEO 자리까지 올랐다. 그간 느낀 바가 있는지 궁금하다. 외부에서 본 e스포츠 산업과 내부에서 겪어 본 환경의 차이가 있는가?
A. 사실, 제가 올 때만 해도 LCK가 프랜차이즈화를 시작하는 등 e스포츠에 장밋빛 미래만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때였다.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해 왔는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거의 된 게 없다. 당시 생각한 예측 중에 맞았던 것들이 없더라.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깨닫았다. 저도 원래는 NBA나 그런 프로 무대의 팀처럼 리그를 잘 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게임단에만 집중하기보단,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고 자체적인 사업을 할 수 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여기에 대한 성과가 좋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피어엑스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단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 및 사업에 집중했던 것이 유효하지 않았나 싶다. 리그는 계속해서 성장하겠지만, 리그로 벌어들이는 브랜드 가치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시장이 커지는 것과 별개로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e스포츠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e스포츠가 위기"라고 말한다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스포츠 자체는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TV와 OTT 산업 이상으로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할 것이고, 게임도 더 재밌어지고 고도화될 것이다. e스포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게임사나 종목사에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기는 하다. e스포츠가 실패한다는 것이 아닌, 게임단이 실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피어엑스의 로고
Q. 2021년 부산을 연고지로 선포한지 약 3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연고지를 선포했는지 다시 알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당초 설정한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는가?
A. 앞서 말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당시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e스포츠는 우승이 전부다. 아니면 유명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사업적으로 보면 정말 쉽지 않은 구조다. ROI(투자수익률)가 안 나온다. 유명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어렵고, 우승 전력을 위해선 정말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따라오는 밸류는 미미하다는 생각이 있다.
냉정히 말해서 한국 e스포츠는 T1의 입지가 상당히 강하다. 커뮤니티에서 각 팀이 언급되는 정도만 비교해도 슬프지만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팀을 응원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부산e스포츠경기장에서 진행된 리브랜딩 행사 (출처:부산e스포츠경기장)
저는 e스포츠가 아직 스포츠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 봐야 한다고 본다. 각 구단은 무엇을 위해 리그에 참여하는가? 왜 사람들이 우리 팀을 응원해야 하는가? 우승은 딱 한 팀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우승하지 못한 팀도 응원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지역 연고라고 생각했다. 물론, 연고지를 만든다고 반드시 우승하는 것은 아니며, 그 연고지의 사람들이 팀을 곧바로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응원할 수 있는 가치, 우리가 리그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생긴다고 보았다. 이번 롤드컵에서 홀로 남은 T1이 LPL 팀과 맞붙으며 'LCK를 대표한다'는 이미지가 생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가치가 없다면 너무나 단순해진다. 이기는 팀이 최고의 팀이고, 시청하는 사람도 당연히 이기는 팀만 응원하게 된다. 그 이상을 포괄하는 가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스포츠를 스포츠로 만드는 것은 대표성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지역, 커뮤니티 간의 경쟁이 필요하다. 단순히 돈을 가지고 선수 영입하면서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 될 수 있다.
우리 팀을 응원할 이유를 정말 만들고 싶었다. 단 10명이라도, 부산 사람이기에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대표성이 생긴다. 이 팬들을 위해 열심히 경기해야 한다는 이유가 생긴다. "단순히 기업이 프랜차이즈 참가비 냈으니까 경쟁하는 것"라고 하면 어떤 감동과 이야기가 써진단 말인가. 프랜차이즈 리그라 해도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한 곳이 많다. 연고지가 있어야 스포츠로 당위성이 생긴다.
스포츠다운 e스포츠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이것은 사업적이거나 단기적인 계획으로는 될 수 없다. T1이 지금 위상을 가진 이유도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저희도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정리하면 부산 연고지 선포는 팀 브랜드에 가치를 더해 주고, 더욱 노력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다. 저도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고 많이 봐 왔기에,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고지를 선포한다고 해서 큰 손해가 생길 이유도 없지 않나? K-리그 같은 곳도 이제야 연고제가 자리잡아 가는 느낌인데, 저희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이니 하루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출처: 부산시)
Q. 그간 지역 연고 팀을 운영하며 가져갈 수 있었던 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일단 지역에 팀이 잘 밀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이것을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저희가 우승권 팀이 될 확률도 높지는 않다. 10~20년을 바라보고 오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청소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피어엑스의 이름으로 하지는 않는다. '부산e스포츠네트워크'(BESPN)라는 별도의 브랜드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무조건 우리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e스포츠가 좋다면 저희 쪽의 행사에 참여하고, 교육도 한 번 들어 보라는 중립적인 지대를 만든 것이다. 10개 정도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가 참여하고 있고, 20~30명의 크루가 행사를 계획하고 주최하고 있다.
항상 아쉽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 사람들이 너무 e스포츠를 사업적 관점이나 이벤트로만 생각하니 많은 행위가 휘발적으로만 된 것 같다. LCK나 T1이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십 년간의 역사와 이야기가 쌓였기 때문이다. 대회가 꾸준하게 열려 오기도 했고. 그렇기에 저희도 이런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길게 가면 더욱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부산e스포츠경기장)
Q. 부산e스포츠경기장을 중심으로 뷰잉 파티 등을 진행했던 듯한데, 지방 팬들의 수요가 있는가?
A. 당연히 있다. 교통편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부산에서 서울을 가려면 3시간이다. 저희가 타겟으로 잡고 있는 젊은 층에겐 부담스럽다고 할 수 있다. 경기 한 번 보려고 돈을 쓰고 긴 시간을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e스포츠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지만, 결국 스포츠는 오프라인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야구도 집에서 중계를 보는 것과,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는 것은 정말로 다르다. 이런 것들이 팬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방에서 오프라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Q. e스포츠는 온라인 중계 위주고, 오프라인 관람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A. 저는 지금보다 대회가 훨씬 재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팀 팬이 많은 구단이 더욱 큰 무대에서 멋진 대회를 할 수 있다면 산업적으로도 좋고, 팀에게도 좋고, 팬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모두가 똑같이 가다 보니 이런 모습이 안 나오는 것 같다. LCK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경험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장도 리모델링을 한다. 다른 스포츠만 봐도 1년마다 정말 많은 것들을 시도한다. e스포츠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발전이 빠르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Q. <LoL>을 초창기부터 봤는데, 예전에는 IEM(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즈) 등 다양한 대회가 있어 재미있다고 느낀 기억이 있다.
A. 그런 사설 대회나 자유도가 높은 대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콘텐츠와 무대는 충분히 다양화될 수 있다.
Q. 2021년 인터뷰에서 지역 아카데미 설립을 통한 '팜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A. 잘 안 됐다. 지금은 없다. 아카데미는 라이센스를 통해 파트너사와 다시 만들려 하고 있다. 지역 팜 시스템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은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 않나 싶다.
이미 <LoL>은 아카데미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지역으로 이것을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팀에 대한 연고지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LoL>에는 자리잡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카데미보단 아마추어 환경 조성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Q. 다시금 지역연고제 공식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인 트윗을 통해서는 "장기적으로 꼭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많은 난관이 있는데, 현실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과 제도는 무엇이라 보는가?
A. 용기다.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도입을 안 할수도 있다. 지금 그대로 가도 당장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스포츠는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기에 커다란 파이를 조금씩 깎아먹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변화하던가, 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렇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해 볼 만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꼭 지역 연고가 아니라도 좋다. 경기 수가 적다는 의견이 있으니 시즌을 늘려서 경기 수를 더 많게 한다거나, 여러 팀이 참여할 수 있는 국제전을 더욱 많이 만든다던가, 꼭 하이 레벨이 아니더라도 로우 레벨의 팀들이 국제적으로 맞붙는 그림이거나. 최근 이벤트 대회에서 나온 '이전 게임에서 픽한 챔피언은 아예 못하게 하는' 밴픽 방식을 도입한 대회 등이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분명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MLB도, NBA도 아니면 가장 저희와 가까운 KBO도 시도를 많이 있다. 변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e스포츠는 이것이 어렵다고 본다. 게임은 바뀌지만 리그 구조는 항상 같다. 게임의 변화만 해도 충분하다 여길 수 있지만,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스포츠가 스포츠로써 성장하려면 스포츠에 맞춘 리그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치와 명예가 있어야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
연고지 도입을 반대할 수도 있다. 만약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줬으면 하는 바램까지 있다. 제가 연고지를 너무 원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실보다는 득이 많다고 생각한다.
2023 e스포츠 실태조사 자료 중 일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Q. 그렇다면 모두가 서울로만 가고 싶어하지 않을까?
A. 많은 이야기가 있다. 기존의 서울 팬은 어떡할 것인가,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역 선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그렇다면 가고 싶은 팀만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팀이 만약 잘 된다면, 두 번째 지역 연고 팀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지역 연고를 선포하는 구단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남는 것은 도태밖에 없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전 세계 모든 리그와 스포츠가 이렇게 살아남아왔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이 있고, 경기를 한다고 단순히 가서 시청하는 시대가 절대 아니다.
영국 축구를 생각해 보자. 아시아권 시청자를 위해 아침 11시 반, 오후 1시에도 경기를 진행하는 파격적인 수를 뒀다. 자국 팬들에겐 누가 오전에 축구를 보냐는 소리를 듣겠지만, 아시아권은 덕분에 좋은 시간대에 경기를 볼 수 있었다. MLB는 월드 투어를 통해 개막전을 한국에서 한다. 과연 자국에 있는 MLB 팬이 이걸 환영할까? 하지만 리그에서는 이를 통해 다시없을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기니까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잘 안 될 수 있다. 그래도 꾸준히 시도하면 한 번은 될 것이고, 성공하는 경험이 생각하면 LCK의 체급을 더욱 늘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리그를 시청할 이유를 팬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까 뭐라도 해 보자는 것이 제 의견이다. 연고지 도입은 잃을 것 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각 팀이 연고지를 선포한다면 <LoL>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단이 가지고 있는 다른 종목의 팀에도 영향이 생길 것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개막전 (출처: MLB)
Q. 상당히 강한 발언 같다.
A. 지금은 한국의 e스포츠 자산을 소진하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 히트 원더가 될 수 있다. 사업이란 것은 항상 그 이후를 봐야 한다. 가령 라이엇만 봐도 <LoL>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발로란트>에도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고, 저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LoL> e스포츠의 뷰어십은 늘었지만, 뷰어십이 다가 아니다. 어느 순간 빠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사라질 수 있다. 모든 것이 휘발되는 것이다. <오버워치>가 지금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앞은 알 수 없다.
팬들이 여기에 대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아니다. 팬 분들은 즐겨주기만 하면 된다. 저희가 팬 분들이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e스포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금광을 캐기만 하는 것이다. 금이 나오면 가공할 수 있는 공장도 짓고, 전시장도 만들고, 관광 자원도 만들어야 한다. 금이 더 안 나올 것 같으면 당연히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가 떨어져 가니 국가적으로 큰 시도를 하지 않나? 같은 것이다.
금이 떨어졌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그 상황까지 가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준비도 안 했고, 금도 이제 안 나오는데, 어떻게 복구하냐는 것이다. 리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시도할 만한 것은 연고지라 생각한다. 이해하기 쉽고, 활용하기 쉽고, 안착 시키기 가장 쉽다.
탁상행정이다, 비현실적이다. 이런 의견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최근 업계 동향에서도 조금 긍정적으로 보고 준비하는 모습이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2023 e스포츠 실태조사 자료 중 일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Q. 지방 e스포츠 경기장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수요'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A. 간단하다. 인프라가 늘어나면 포지티브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네거티브다. 투자해도 결국 시설이 놀거나 방치되면 악영향이 생길 것이다. 투자는 좋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인프라가 생기면 좋지만, 건물이 모자란 시대는 아니다. 정말 잘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면 애매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경기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이 가는 것이 아니다. 축구와 야구만 봐도 경기장을 크나큰 노력을 기울여 설계한다.
결국은 엔터테인먼트고, 사람들이 경기장에서 무엇을 즐기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그냥 경기장을 지으면 좋으니까, 그냥 짓는 느낌이라 아쉬운 느낌이 있다. 적어도 그 경기장을 베이스로 콘텐츠를 제공할 회사가 없다면 활성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연고제가 조금은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방 e스포츠 경기장의 가동률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Q. 조금 쉬어 가는 이야기도 해 보자. <LoL>팀은 '류' 류상욱 감독을 재신임했다. 재신임의 배경은 무엇인가?
A. 항상 강조하지만 류 감독은 워크에식이 너무 훌륭하시다. 프로페셔널한 분이다. 저희 팀이 지향하는 바와 목표에도 잘 맞는다고 느낀다. 선수들에게 더욱 강화된 훈련 방식을 제공하고 보다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의 도입에 대해 열려 있고 소통이 잘 되는 분이다.
이전에 유명 축구팀의 감독이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팀이 아니라 클럽을 만들고 싶다고. 어린 친구들이 팀의 문화와 정신을 만들어 나가고, 이를 통해 하나의 풋볼 클럽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저희가 지향하는 바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길게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희 팀 선수들이 2025년 정도까지 계약되어 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성과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했다.
Q. '헤나' 박증환을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A.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저희가 보았을 때 저평가받는 선수라 생각했고, 프로페셔널하다. 저희 팀에 대한 의지도 먼저 보여 줬기에 빠르게 결정됐다.
'류' 류상욱 감독 (출처: LCK)
Q. 그러고 보니 이전에 '데이터 LoL'을 추구한다고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A. 여전히 하고 있다. 성적을 내는 방식과 노력이 일관적으로 보였으면 했다. 디플러스 기아가 좋은 예시다. 본인들의 색깔과 스타일로 세계를 재패했다.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줘야 팬들이 생긴다고 본다. 멋진 모습이다.
우리만의 스타일과 방식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체득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데이터를 뽑는 것은 쉽지만, 이를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업에서도 데이터를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선수나 훈련 등에 이것을 적용시키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그래도 앞으로는 점점 더 저희 만의 색깔이 강해지고 사람들에게도 보일 것이라 믿는다.
Q. LCK에 '균형지출제도'가 도입된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과감한 도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더욱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미 다른 스포츠에서는 하고 있고, 해외 <LoL> 리그에서도 도입했던 제도다. 세부적인 디테일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각 팀마다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개선과 도전은 환영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방향성이 더욱 늘어나면 좋겠다.
Q. 그러고 보니 <카트라이더> 팀은 대만의 '닐' 리우창헝을 영입해 많은 화제가 됐고, 대만 등지에서 샌드박스를 알게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닐 영입의 계기와, 영입을 통한 효과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A. 한국 시장만으로 e스포츠를 발전시키는 것은 지금이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리그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세계적 리그가 되려면, 당연히 세계의 선수가 모여 경쟁해야 한다. 리그와 협력하고 준비해서 잘 된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닐의 영입을 통해 리그 뷰어십이 크게 성장하고, 다양한 행사가 현지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MLB나 영국 축구팀들이 아시아 선수를 영입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리그가 되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LCK에서도 외국인 선수를 운용하고 싶어 하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 다른 구단은 잘 모르지만, 일단 저희는 그랬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는 않더라. 그래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 팀도 이번에 브라질 코치를 영입했다. 이런 모습을 늘려나가려 한다.
본인의 독특한 플레이와 기술을 실전에서 선보이는 등
엄청난 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카트라이더> 선수 '닐' 리우창헝 (출처: 피어엑스)
Q. 종목 확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국내 e스포츠는 특정 종목에 크게 편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A. 말씀드렸다시피 시장 구조가 양극화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 한국 시장의 규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아서 인기 종목이 다수 생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자원을 미리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고지 등을 통해 자원을 분배하고, 미래를 도모해야 하지 않나 싶다. 연고지가 생기면 마이너 리그라도 투자할 가치가 생긴다. 그 지역에서 그 게임을 하는 누군가는 그 팀을 응원할 것이니까.
조금 더 이야기하면, 이전 e스포츠의 역사를 살피면 여러 종목의 팀이 생겨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것은 스포츠답지 않다고 본다. 저희도 그랬는데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가령 영국의 6부 리그의 축구 팀을 운영한다고 가정하자. 승격을 못 했다고 곧바로 팀을 해체하나? 아니다. 될 때까지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 생각한다. KBO에서 LG 트윈스도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결국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몇몇 종목의 팀을 없앤 것. 저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가 안 되려면 하방을 조금 더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산을 분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키운다는 관점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말을 듣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가 생각났다.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승격에 도전하는 축구 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Q. 그래도 올해부터는 환경이 많이 개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A. 결국 e스포츠 자체는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석유는 여전히 나온다. 석유마저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면 e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직 석유는 나오기에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LoL>의 이용자 풀도 유지되고 있고, e스포츠 자체의 인기가 유지될 수 있는 근거도 쌓여 있다.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으면 지금의 좋은 방향성도 늦춰질 수 있단 것이다.
저희가 게임단 비즈니스에서 많이 벗어난 면도 있다. 크리에이터나 게이밍 크루, 포탈 PC방의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포탈 PC방의 경우 이번에 돈을 들여서 경기장을 만들어 종합 e스포츠 허브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오랜 싸움이 될 것 같기에, 오래 버틸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순수한 저희의 능력에 달려 있다.
Q. 굳이 스포츠로 꼭 수익을 내야 하는가, 스포츠는 사회 환원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A. 2003년 아브라모비치가 2,250억 원 정도에 첼시를 인수했을 때 다들 미친 것 처럼 취급했지만, 결국 6조원 가까이의 가치를 가진 구단으로 키워냈다.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산업이나 스포츠는 경쟁력이 없고, 재미도 떨어진다. 자생력과 경쟁력이 있어야 세계적 레벨과 문화로 성장할 수 있다.
Q. 그러고 보니 부트캠프를 꽤나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듯하다. 별도 유튜브 채널과 디스코드가 존재한다. 앞으로 한국 부트캠프에 대한 해외 구단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 건지?
A. 석유가 아직 나오니 일종의 정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LoL>의 솔로 랭크 수준이 높고, 잘 하는 프로 게임단이 많고, 인프라도 많으니 한국 와서 훈련을 해 보려 하는 팀이 있다. 이 부분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꼭 프로 팀이 대상은 아니다. 일반인이나 아마추어 대상으로도 생각하고 있다.
(출처: 피어엑스)
Q. 트위터를 보니 브라질 리그와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인도와 중동, 브라질 쪽의 e스포츠를 주목하는 구단들이 있기도 하다
A.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자산이니 한국에서만 하면 아까울 것 같았다. 그쪽에서도 관심이 있으니까 반응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저희도 브라질 쪽에 훈련을 가거나 투어를 해 보면 어떨까 생각이 있다. 절박하니 무엇이든지 해 보자는 심정이다.
Q. 포탈 PC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지난번에는 <롤> 개발자 초청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TL>의 오픈 랜파티도 열리는 등 게임 행사가 상당히 자주 열리는 느낌이다.
A. 보통 PC방은 오픈 직후가 매출이 가장 높다. 저희는 제작년보다 작년 매출이 더 높았다. 많은 행사와 콜라보가 진행되고 있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단순한 PC방이 아니라, e스포츠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아마추어나 비영리 행사는 무료로 대관하고 있기도 하다. 일반인들의 예약도 상당히 많다. 올해는 더욱 가속화해 일반적인 PC방이 보여줄 수 없는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LoL> 핵심 개발진이 직접 PC방을 찾아온 행사 (출처: 라이엇 게임즈)
Q. 이전에 웹3와 NFT에 도전했다. e스포츠 기반 NFT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적어도 게임 쪽에서는 NFT와 웹3의 기세가 꺾인 느낌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A. 웹3가 가진 비전이 e스포츠 콘텐츠 프로바이더에게 좋은 비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모든 것이 종속된 것이 아니고, 기여에 따른 소유권과 보상을 준다면 더욱 능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좋지 못한 상황과 여러 요인이 맞물려 힘들어진 것 같다. 최소한의 진행은 하고 있지만 많은 리소스를 투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독립되어 있는 시장이라기보단 많은 것들이 얽힌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다시금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계속해서 하고 있다.
Q. 사옥 1, 2 층에 '마우스 포테이토'라는 게임을 주제로 한 소셜 라운지를 오픈하기도 했다. 이전에 이런 게임 허브를 확장해 브랜딩을 강화할 것이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A. 하나 더 늘릴 계획이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 문화를 베이스로 각종 제품이나 콜렉션, 굿즈를 모아 놓은 샵이자 카페의 역할을 겸한다고 보면 된다. 많은 발전 가능성을 느낀다. 게임 굿즈의 매력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으로도 론칭해 더욱 크기를 늘려 가려 한다.
마우스 포테이토
Q. 사명을 바꾼 만큼 다시 '피어엑스'라는 브랜드를 e스포츠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A. 동영상을 만들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 않았다. 1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니 천천히 하기로 다짐했다. 저희의 전략은 현재 모두 롱텀으로 바뀌었다. 10년 동안 진행할 가치가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다. 죽음을 생각해야 하루가 소중해지듯이, 먼 미래를 생각해야 오늘 하루를 어떻게 가치있게 보낼까를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가 피어엑스를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마음가짐을 먹으니 오히려 건전하고 멋진 아이디어들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무리하지 말고 우리의 색깔을 지키면, 경쟁력이 생겨나고 언젠가는 우리의 노력을 모두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피어의 2024년 목표,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A. 게임단의 목표는 당연히 롤드컵 진출이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진출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만한 도전을 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LCK 뿐만 아니라 CL 팀에서도 많은 도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스카우팅을 진행하기도 하고, 코칭 방식도 바꾸었다. 기존보다 급진적인 방식의 밴픽도 도입하려 한다. 이게 잘 되면 LCK 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피어엑스의 장기 목표는 스포츠 팀다운 e스포츠 팀이 되자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의 게임단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닌, 차근차근 준비해 멋진 스포츠 정신을 보여 주는 팀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