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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전 격투 게임의 강고한 진입 장벽에 균열을 낸 게임들(미리 보기)
흔히 대전 격투 게임을 입문하기 어려운 게임이라고 부른다. 대전 격투 게임의 화려한 타격감과 액션에 반해 입문하려 하다가도, 많은 수의 플레이어가 좌절을 겪는다. 처음 시작했을 때 콤보는 커녕 캐릭터의 기술 커맨드조차 제대로 입력 못 하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캐릭터의 기본기 발동 시간은 어떻고, 상대방의 특정 기술을 막으면 유리하니 반격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봐야 별천지일 뿐이다.
대전 격투 게임 입문이 어려운 이유로는 '진입 장벽'의 문제를 든다. 그렇다면 어떤 진입 장벽이 입문자를 가로막을까. 정녕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까.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디스이즈게임 송영준 기자
대전 격투 게임의 전성기는 1991년 <스트리트 파이터 2> 발매 이후로 알려져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필두로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등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나왔다. 다양한 고수들이 오락실에서 만나고 원정을 다니며 서로의 실력을 시험했다. 그 시기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였다. 그때가 대전 격투 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절이라는 게 (굳이 표현하자면) 정설에 가깝다.
그때 대전 격투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철권>의 유명 프로게이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비롯하여 대전 격투 게임의 프로게이머들 다수는 30이 넘었고, 40이 넘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비단 고수뿐만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도 그 시절에 게임을 하던 사람이 상당수라 연식도 많고 플레이 경험도 많은, '고인물'이 제법 있는 편이다.
대전 격투 게임은 이러한 장르적·역사적 특징이 있기에 입문하려 하는 사람들도 고인물을 만나기 쉽다. 상대방은 수십 년 내공을 갖춘 무림 고수인데, 입문자는 기술 커맨드도 제대로 입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인물을 만나면 입문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두들겨 맞는다. 결국 입문자는 게임을 하는 내내 화려한 고인물의 콤보에 맞으면서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캐릭터를 바라보다 게임이 끝난다.
그래서 근래 나온 대전 격투 게임에서는 티어 시스템을 만들어 고인물과 일반 플레이어를 분리하려 한다. 하지만 발매 초기에만 유효할 뿐 지속적으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초기 이후에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하던 사람들이 주로 남기 때문에 하위 티어에서도 실력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발매 초기부터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하위 티어에서조차 일방적으로 맞다가 분노하고 게임을 끄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누구나 게임을 하다가 질 수는 있다. 입문자뿐만 아니라 고인물도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과정이다. 상대방이랑 엇비슷하게 주고받으며 대전하다 지면 좌절도 적다.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하지만 상대를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막기만 하다가 진다면 얘기가 다르다. 입문자는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데, 상대방은 나를 상대로 유튜브 콤보 동영상을 찍는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게임을 그만두게 된다.
실전에서 상대방과 합을 겨루는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기회가 왔을 때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상대방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여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능숙하게 하려면 충분한 연습과 대전 경험이 필요하다. 이 점은 다른 PVP 게임도 비슷하지만, 대전 격투 게임은 그 단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상당히 고단한 편이다.
대전 격투 게임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로 게임 특유의 조작 문제를 들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은 타 장르의 게임보다 다소 복잡하고 알아야 할 내용도 많은 편이다. 가령 <철권>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커맨드 ‘6N23RP(최속풍신권, 초풍)’를 대전 격투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본다면 암호문을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커맨드 자체만으로도 이미 복잡한데, 정확한 타이밍에 커맨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삑사리’가 난다. 콤보가 길어질수록 입력 과정은 더욱 빡빡해진다.
대전 격투 게임의 입력이 어렵기에 키보드와 마우스로는 정확한 입력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들이 조이스틱, 히트박스와 같은 전용 컨트롤러를 사는 이유다. 콤보 연습하다가 컨트롤러를 망가뜨렸다는 사례가 수없이 많기도 하다. 본 기자의 지인은 콤보 연습을 하다가 조이스틱 5개를 날려 먹었다는 걸 마치 무용담처럼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입력의 어려움은 상황 대처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진다. 대전 격투 게임에서는 수십 가지 캐릭터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컨셉에 따라 각기 다른 기본기, 기술, 필살기 등을 갖는다.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요소가 다르다는 건 캐릭터를 상대하기 위해 파악해야 하는 변수도 전부 다르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기술 하나를 내밀었는데 이걸 막으면 나한테 불리한 건지, 유리한 건지 캐릭터마다 전부 달라서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다.
수십 가지의 캐릭터가 있고, 각기 다른 대처법을 갖고 있다는 점은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MOBA 장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리그 오브 레전드>는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알고 있다면, 대처하는 방법을 인 게임 내에서 실행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실전에서 적절한 대처법을 활용하려면 연습해야 하는 건 같지만, 봇(Bot)전 같은 곳에서 의식하며 사용한다면 (상대적으로) 크게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대전 격투 게임은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알고 있어도 대처법을 수행하기 위해 복잡한 커맨드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하는 어려움이 더해진다. 이 점이 대전 격투 게임과 다른 게임 간의 핵심적인 차이다. 대전 격투 게임의 고수들조차 상대방의 특정 공격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수 시간 이상을 트레이닝 모드에 투자할 정도다.
입문자가 실전에서 기술을 입력하고 상황에 대처하려면 더욱 연습해야 한다. 기존에 하던 사람들은 이미 연습을 해온 상황이니 부족한 부분만 연습하면 되지만, 입문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연습 과정이 지루하고 오래 걸리다 보니, 입문자는 커맨드 입력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대전하곤 한다. 충분한 연습이 동반되지 않은 입문자가 상대방과 대전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버튼이나 막 누르는 방법뿐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인물이 버튼 연타를 당해줄 리가 없다. 입문자는 그저 무력하게 쓰러지는 자신의 캐릭터만 바라볼 뿐이다.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은 비단 조작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극단적인 일대일 위주의 콘텐츠, 유행이 지나 인기가 없는 장르라는 식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유행이라는 건 게임계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분야다. 일대일 위주의 콘텐츠는 대전 격투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징 중 하나이기에 감히 건드리기 어렵다. 일대일 대전을 위주로 발전해 온 대전 격투 게임이 장르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도 크다.
현재까지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 연습 과정의 지난함을 얼마나 덜어내느냐에 달렸다. <스트리트 파이터 6>를 비롯하여 근래 나온 대전 격투 게임들은 장르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시스템을 단순화시키기도 하고, 조작을 쉽게 바꾸기도 하며, 기존 IP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활용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전 격투 게임의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가 있었을까? 다음 편에서는 진입 장벽의 문제를 극복하고 대전 격투 게임의 파이를 넓히기 위해 게임사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지 알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