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펙스 레전드>가 일본 시장을 집어삼킨 방법” 기사에서 스트리머 대회 ‘CR CUP’에 대해 언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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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 게임단 ‘Crazy Raccoon’이 주최하는 <에이펙스 레전드> 대회 ‘CR CUP은’ 평균 동시시청자 5.8 만 명, 최대 동시시청자 11만 명을 돌파했다. 스트리머 대회임에도 스폰서가 5개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대회 방식도 독특하다. 참가자는 게임 최고 등급을 달성한 고수가 아니다. 등급이 낮은 스트리머가 대다수다. 대회도 ‘우승’이 아니라, 연습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상금도 현금 대신 상품권을 지급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최근 마무리된 <영원회귀 : 블랙 서바이벌> 대회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도 ‘CR CUP’과 비슷하게 전개됐다. 해당 대회에서 코치를 맡은 유저가 선수로 참가한 스트리머 ‘따효니’ 덕분에 게임이 흥행했다며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왜 일본인들은 ‘CR CUP’에 열광할까? 왜 국내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유행하고 있을까? /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 Crazy Raccoon)
# AKB48과 블랙핑크의 차이, 게임 대회에서도?
‘CR CUP’의 흥행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일본 아이돌’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AKB48로 대표되는 일본 아이돌 문화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오랜 기간의 연습생 생활을 통해 ‘완성형’으로 데뷔하는 국내 아이돌과 달리, 일본 아이돌은 연습생 생활을 거치지 않아 실력이 미숙하다. 일본 아이돌은 미성숙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기 때문이다.
‘CR CUP’도 일본 아이돌이 만드는 성장기와 비슷하다. 이 대회는 <에이펙스 레전드>의 최고 등급 ‘프레데터’를 달성한 전, 현직 프로게이머도 참가하지만, 압도적인 팀이 등장하지 않도록 등급에 따라 포인트를 배분한다. 포인트가 일정치 이상 넘어가는 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따라서 보통 ‘프레데터’ 등급 한 명과, 게임 티어가 낮은 스트리머 두 명이 팀을 구성한다.
CR컵 참가자 명단. 프로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스트리머나 인플루언서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Crazy Raccoon)
각 팀이 연습하는 과정은 그대로 송출된다. ‘스크림’과 같은 연습 경기도 각 참가자의 개인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이들이 대회 무대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내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의 ‘성장기’가 완성된다. 우승하면 물론 좋겠지만, 여기에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트리머와 같이 울고, 웃으며 스트리머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즐긴다. ‘CR CUP’이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비결이다.
이런 스트리머 대회는 장기적인 게임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계속해서 SNS나 유튜브에 게임을 노출해 지속성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유튜브에 ‘CR CUP’을 검색해 보면 관련 동영상만 엄청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검색만 해도 정말 다양한 동영상이 나온다. 참가 팀을 분석하거나 유저가 직접 만든 하이라이트까지 있다
# 국내까지 들어온 스트리머 참여형 대회 열풍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마무리된 <영원회귀 : 블랙 서바이벌> 스트리머 대회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이 있다.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은 광고 방송 제의를 받은 스트리머 ‘따효니’가 게임이 재미있다며 광고비를 상금으로 돌려 대회를 열자는 제안에서 출발했다. 공식 대회 명칭에 스트리머 이름이 들어가는 이유기도 하다.
(출처 : 님블뉴런)
이 대회 또한 ‘CR CUP’처럼 각 팀이 비슷한 실력을 갖추도록 조절하고, 연습 경기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대로 송출했다.
‘제2회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은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 8만 명을 끌어모으며 흥행했다. 정확히 대회가 진행된 같은 날 <영원회귀>의 동시 접속자 수도 역대 최대인 5만 2,000을 기록했다. 스트리머 연계형 대회가 국내에서 게임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님블뉴런도 다음달을 포함한 올해까지 카카오게임즈 후원을 바탕으로 대회를 지속할 것이라 밝혔다.
대회가 진행된 날, <블서>도 역대 최고 동접자 수를 기록했다 (출처 : steamdb)
스트리머를 연계한 대회 방식 게임 홍보는 이미 예전부터 많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CR 컵’과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이 기존 스트리머 대회와 구별되는 이유는 ‘과정’과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에 있다.
‘따효니배 ER 인비테이셔널’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었다. ‘따효니’는 대회를 만든 장본인임에도 불구, 항상 순위는 최하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게임 유저가 코치로 참여한 4번째 대회에선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해 화제가 됐다. 유저와 스트리머는 대회가 마무리된 후 서로 고마움을 표하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CR CUP’ 또한 게임 최고수 한 명과, 실력이 낮은 스트리머 두 명이 팀을 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두 대회의 특징이다.
(출처 : 님블뉴런)
스트리머가 돈을 받고 ‘앞광고’ 형식으로 게임을 즐긴 후 그만두는 대신, 기존 게임 유저에게 게임을 배우고, 연습 경기와 본선 무대에서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트리머는 콘텐츠를 창출하고, 게임은 자연스레 홍보 효과를 얻는다. 일종의 상부상조다.
스트리머와 연계해 대회를 열어 게임을 홍보하는 방식은 더욱더 확대될 전망이다. 3월 17일 진행된 모바일 배틀로얄 게임 <로얄 크라운>의 ‘크라운 쟁탈전’도 스트리머들이 팀을 구성해 연습하고, 대회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