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프릭스 뭐하나요?!" 21일 펼쳐진 아프리카 프릭스와 T1의 경기를 중계한 이현우 해설의 외침은 많은 팬의 가슴을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 프릭스는 경기 내내 전혀 팀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의아한 판단을 내리며 자멸했다. 실낱같았던 아프리카 프릭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꿈도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사실 아프리카 프릭스의 올 시즌은 꽤 밝아 보였다. 국가대표 '기인' 김기인은 물론 '드레드' 이진혁, '플라이' 송용준 등 기존 라인업을 유지한 가운데 '리헨즈' 손시우와 T1의 전성기를 이끈 '뱅' 배준식까지 데려온 만큼, 최소 플레이오프는 갈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쏟아졌다. 누구도 아프리카 프릭스가 최하위권에 위치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프리카 프릭스의 성적(4승 13패, 10위)은 충격적이다.
2021 스프링, 아프리카 프릭스는 어째서 이토록 참담한 결과를 마주한 걸까. 아프리카 프릭스가 무너진 과정과 그 이유를 돌아봤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올 시즌 내내 '25분의 아프리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초반 유리한 흐름을 가져감에도 20분대에 접어들면 귀신에 홀린 듯 의아한 판단을 쏟아내며 경기를 내준 탓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프릭스의 경기 초반 지표는 꽤 인상적이다. 22일 기준, 아프리카 프릭스의 15분까지 타워 차이는 0.2개로 리그 공동 3위이며 골드 차이 역시 197로 6위에 해당한다. 심지어 동시간대 드래곤 차이는 1.03개로 리그 1위다. 분명 경기 초반엔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지표다.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는 이러한 흐름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채 수많은 경기를 흘려보냈다. 2021 스프링, 아프리카 프릭스는 15분까지 상대보다 골드를 앞선 11경기에서 4승 7패에 그쳤다. 이는 동일 항목에서 12전 전승을 기록한 T1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수치다. T1 못지않게 많은 경기에서 초반 우위를 점했지만, 이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 기록으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아프리카 프릭스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기가 21일 펼쳐진 T1 전이다.
1세트, 아프리카 프릭스는 늘 그랬듯 상대보다 5천가량의 골드를 더 얻으며 유리한 흐름을 가져갔지만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의아한 판단을 쏟아내며 자멸했다. 2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신만고 끝에 경기를 가져가긴 했지만, 중후반 열린 바론 앞 한타 장면은 모두의 의아함을 자아냈다. 당시 아프리카 프릭스는 '놀랍게도' 잘 성장한 원거리 딜러 없이 싸움을 이어가는 선택을 했고 결과는 '당연히' 대패였다.
더 큰 문제는 코치진과 선수단이 스프링 시즌이 끝나감에도 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계속 언급하고 있지만, 올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는 '팀 게임'과 '운영'에 있어 지속해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설령 게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이가 봐도 손쉽게 짚어낼 수 있을 만큼, 아프리카 프릭스의 문제는 제법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프릭스는 특별한 변화 없이 시즌을 소화했다. 1라운드 최하위를 맴돈 리브 샌드박스가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지고, KT와 프레딧 브리온이 미드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를 돌려가며 활로를 찾는 동안 아프리카 프릭스가 한 거라곤 신인 서포터 '맵씨' 김도영을 기용한 게 전부다. 물론 그마저도 단 '1세트'에 불과했으며 결과는 패배였다.
더욱 뼈아픈 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아프리카 프릭스 챌린저스 역시 1군과 마찬가지로 암흑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22일 기준, 아프리카 프릭스 챌린저스는 2승 16패로 압도적인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다. 현재를 볼 수도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위기에 놓인 아프리카 프릭스다.
프로 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은 '빅네임'을 모아 승리와 성적에 집중하는 윈나우(Win-now)와 유망주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갈림길 중 하나를 골라 시즌을 소화하곤 한다. 그렇다면 2021시즌 아프리카 프릭스의 방향성은 무엇이었을까.
아프리카 프릭스의 올 시즌 주전 로스터는 기인, 드레드, 플라이, 뱅, 리헨즈 등 잔뼈 굵은 스타급 베테랑 선수들로 채워졌다. 물론 드레드가 어린 선수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 역시 2018년부터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활동해온 만큼 '신인'이라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올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가 철저히 '윈나우'로 스토브리그를 준비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애매한 느낌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올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는 한가락 했던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렸다. 기인은 2018아시안게임 국가대표였으며 리헨즈는 그리핀과 한화생명e스포츠, 뱅은 T1을 빛낸 선수였다. 플라이 역시 2014년부터 LCK에서 활약한 베테랑 미드 라이너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중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크랙'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플레이오프 권에 위치한 팀들을 보면 제각기 확실한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현재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엉킨 경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선수를 짚어보라면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이름값 높고 경험 많은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렸지만, 확실한 '에이스'는 없었다.
만약 아프리카 프릭스가 유망주 대신 즉시 전력감으로 시즌을 풀어갈 생각이었다면 조금 더 확실한 카드를 영입했어야 했다. 기인은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계속해서 휘청이고 있으며 드레드는 기복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어린 선수고, 플라이는 준수하지만 크랙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뱅은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북미 리그에서도 고전했던 선수다. 방향성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프리카 프릭스가 모호한 방향성에 표류하는 동안 타 팀은 착실히 스토브리그를 소화했다.
담원기아는 팀의 핵심 '너구리' 장하권을 중국에 내줬지만, 다른 선수들을 지킨 가운데 베테랑 '칸' 김동하를 영입하며 윈나우 기조를 이어갔다. 어려운 2020년을 보낸 한화생명e스포츠는 '쵸비' 정지훈과 '데프트' 김혁규라는 확실한 크랙을 영입하며 상위권 팀이 됐다. 한순간에 리빌딩에 직면한 DRX는 공들여 키운 아카데미 선수들을 과감히 콜업해 동화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처럼 확실한 방향을 설정한 채 시즌에 돌입한 팀들은 나름의 목표를 달성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 프릭스는 스토브리그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출발점부터 엉킨 느낌이 크다. 윈나우도, 유망주를 활용한 탱킹도 아닌 애매한 로스터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여기서 잠시 200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악의 팀으로 꼽히는 2019년 롯데 자이언츠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롯데 자이언츠는 베테랑 고액 연봉자들로 인해 리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이었기에 윈나우를 목표로 했지만, 48승 93패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특히 100개 이상의 폭투를 기록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된 취약한 포수진은 시즌 내내 팀을 괴롭혔다.
충격에 빠진 롯데 자이언츠는 이듬해 젊은 단장을 선임하며 쇄신에 들어갔다.
샤워장에 비치된 샴푸처럼 사소한 요소부터 최고급 장비를 활용한 육성 등 전반적인 팀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선 것이다. 물론 아직 '변화'를 성공이라 단정 짓긴 이르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팬들에게는 '희망'이라는 씨앗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팀이 건강해지는 과정이라는 믿음과 머지않아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움직임인 셈이다.
올해 아프리카 프릭스는 그때의 롯데 자이언츠와 많이 닮아있다. 스토브리그부터 팀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실패했음은 물론, 선수들의 이름값이 높아 윈나우를 노려야 함에도 성적은 곤두박질쳤으며 명확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노출됐음에도 끝내 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아프리카 프릭스가 '건강해질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약 아프리카 프릭스가 올 시즌을 토대로 발전할 수 있다면, 훗날 2021 스프링을 두고 창단 후 최악의 암흑기라 평하는 대신 가치 있는 성장통의 시간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아프리카 프릭스는 팬들이 보낸 성명서에 대해 "보내주신 내용을 모두 확인했으며 실망과 우려를 끼친 점 사과드린다. 올 시즌을 철저히 분석할 예정이며 시즌 종료 후 자세한 사항을 빠르게 전달 드릴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어쩌면 아프리카 프릭스에는 이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 수도 있다.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아프리카 프릭스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팬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선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