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포츠라도 초반 기세가 끝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초반 연승을 달리던 팀이 순식간에 무너지는가 하면 연패에 허덕이던 팀이 상위권에 오르는 상황도 자주 펼쳐지기 때문. 여기서 파생된 말이 바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이다. 김재박 전 LG 트윈스 감독이 만년 꼴찌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을 두고 내뱉은 이 말은 야구를 넘어 스포츠 전체를 관통하는 희대의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21 LCK 서머 아프리카 프릭스와 KT 롤스터는 '뭔가' 다르다. 지난 스프링 '비난 폭격'에 시달렸던 두 팀은 약점을 보완한 채 시즌에 돌입, 상위권 팀들을 잡아내며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두 팀의 경기가 단순한 이변이 아닌, 압도적 격차에 따른 승리였다는 점도 팬들을 흥분케 하는 요소다. 단순한 반짝 상승세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눈부신 두 팀의 변화를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지난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는 '25분의 저주'라는 유행어가 붙을 정도로 경기 중반만 되면 급격히 무너졌다. 이현우 해설이 중계 중 "도대체 뭐하나요"라는 일침을 가할 정도로 팀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들은 시즌 내내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무너졌고, 5승 13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다만 서머 시즌 들어서는 이러한 문제가 거의 사라진 인상이다. 개막 후 두 경기까지만 놓고 보면 올 시즌 충분히 희망을 품어도 될 만큼, 아프리카 프릭스는 좋은 경기를 펼쳤다.
이러한 경기력은 지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14일 기준, 아프리카 프릭스는 LCK 10개 팀 중 가장 평균 경기 시간(33분 52초)이 길었다. 운영에서 변수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긴 경기를 펼친 셈이다. 그럼에도 올 시즌 아프리카 프릭스의 경기는 꽤 부드럽다. 감정적 플레이가 주를 이룬 스프링 시즌과 달리 확실한 근거를 기반으로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팀의 강점이었던 '라인전 능력'이 그대로 유지된 점도 포인트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14일 기준 15분 골드 차이, 15분 CS 차이 등 라인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에서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리그 전체에서 가장 강한 라인전을 자랑하는 젠지나 T1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직 소화한 경기가 많지 않으며 매치업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팀의 색깔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셈이다.
올 시즌 팀에 합류한 원거리 딜러 '레오' 한겨레의 플레이도 눈에 띈다.
14일 기준, 레오는 LCK 원거리 딜러 중 가장 높은 분당 대미지(734)를 기록 중이다. 3위권 선수들의 수치가 500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레오는 킬 관여율과 대미지 기여율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그의 킬 관여율은 DRX의 '바오' 정현우, 한화생명e스포츠의 '데프트' 김혁규에 이은 전체 3위이며, 대미지 기여율은 젠지의 '룰러' 박재혁 다음으로 높다. 이처럼 레오는 대미지 딜링에 관련된 대부분의 지표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지난 시즌 원거리 딜러의 존재감이 조금 부족했던 아프리카 프릭스의 대미지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셈이다.
KT 롤스터(이하 KT)는 개막전에서 농심 레드포스를 상대로 1:2로 패했다. 충분히 이길 만했던 경기를 내준 만큼, 충격도 상당했다. 하지만 KT의 두 번째 경기는 이러한 아쉬움을 한 방에 날릴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LCK 최강팀 담원기아를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새로운 바텀 듀오 '노아' 오현택과 '하프' 이지융이다.
강동훈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기존 주전 원거리 딜러 '하이브리드' 이우진을 2군으로 내려보내며 노아를 주전으로 쓸 것을 예고했다. 노아가 지난 시즌 막바지 확실한 가능성을 보인 만큼, 기회만 주면 포텐을 터뜨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아는 시즌 초반,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증명하고 있다.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농심 레드포스전과 달리 담원기아전의 노아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노아와 함께 라인에 선 하프 역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경험이 일천한 어린 선수 두 명이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을 라인전에서부터 압도하고, 경기를 주도하는 놀라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현 상황이 KT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건 노아와 하프가 구단 아카데미 출신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KT는 윈나우도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구성으로 시즌을 소화하며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나마 지난 시즌에는 '기드온' 김민성과 노아 등 신인 선수를 활용하긴 했지만, 한발 늦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반면, 올 시즌엔 KT 아카데미 출신의 두 어린 선수가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게다가 팀의 에이스 '도란' 최현준과 돌아온 '블랭크' 강선구는 여전히 건재하고, '쇼메이커' 허수와의 라인전을 잘 풀어내며 경기를 주도한 '도브' 김재연도 좋은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냉정히 말해 KT는 올 시즌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팀이다. 실제로, LCK 해설진 중 KT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예상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만약 KT가 이러한 흐름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올여름 LCK의 최대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머 시즌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팀이 등장한 셈이다.
이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2021 LCK 서머는 아직 두 경기만 펼쳐진 상황이다. 따라서 기사에 적힌 두 팀에 대한 평가는 훗날 '흑역사'로 남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기세를 올린다 해도, 이를 끝까지 유지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 건 두 팀이 지난 시즌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택했다는 점이다.
그 폭이 크건 작건, 아프리카 프릭스와 KT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시도했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카인' 장누리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레오까지 영입하며 어떻게든 다른 길을 찾고자 했다. KT는 바텀 라인의 유망주에 힘을 주고 베테랑 블랭크를 다시 콜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최종 결과가 어떻든 간에 두 팀은 변화를 시도하긴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 하다.
아프리카 프릭스와 KT는 오는 19일,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와 '이번엔 다르다'의 갈림길에 선 두 팀이 긍정적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