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에 다녔던 두 소년이 설립한 '지팡이게임즈'는 2016년부터 한 게임을 개발했다. 4천 년 주기, 4개의 요소로 세상이 창조되고 멸망하는 아즈텍의 천지창조 전설을 기반으로 한 퍼즐 어드벤쳐 게임 <턴 택>이다.
그런데 이 게임, 직접 플레이해보면 굉장히 불투명하고 추상적이다. 주인공과 스토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물론 퍼즐 진행을 도와줄 그 흔한 힌트조차 없이 게임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유저로 하여금 새하얀 백지를 채우도록 유도하는 '뿌연 안개 같은' 게임, <턴 택>을 소개한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사실 <턴 택>은 지팡이 게임즈가 과거 개발했던 게임의 이름이다. 당시 <턴 택>은 변신과 전투 중심의 퀘스트를 바탕으로 앞서 해보기까지 출시됐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표류했다. 지팡이 게임즈 조학현 개발자는 디스이즈게임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우리가 과거 개발한 게임이 하나 있었는데 이것의 이름도 <턴 택>이었다. 당시 앞서 해보기 형태로까지 개발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 다양한 곳을 분석, 참고하려 노력했고 시안도 여러 가지 만들었다. 당시 정해진 방향이 변신과 전투를 주요소로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는데 방향성도 뚜렷하지 못했고 두 명이 개발하기에는 너무 큰 소재더라."
그래서인지 정식 출시된 <턴 택>은 전투나 변신 등 다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체 오롯이 퍼즐에 집중한 인상이다. 유저들은 빛이 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플라로'를 조작해 그녀를 제물로 바치려는 아즈텍으로부터 도망치며 그녀를 둘러싼 비밀을 밝히는 여정을 떠나며 그 속에서 다양한 퍼즐을 풀어야 한다.
<턴 택>은 크게 물, 바람, 불, 땅 등 4개의 정수를 주제로 한 스테이지와 이들이 결합하여 펼쳐지는 마지막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만큼, 스테이지별 특성도 뚜렷하다.
이를테면 물 스테이지는 필드 곳곳에 오염된 물과 악어 등 말 그대로 물과 관련된 오브젝트들이 등장해 게임 진행을 방해한다. 또한, 바람을 다루는 스테이지는 공기가 오염되어 특정 스폿에서만 정상 플레이가 가능하고 불이 등장하는 스테이지에서는 뜨거운 용암을 피해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이처럼 게임의 배경이 어두운 만큼, <턴 택>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리 밝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시작부터 엔딩까지 희망차거나 유쾌한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턴 택>은 뿌연 안개 같은 이야기와 분위기로 유저들을 맞이한다.
<턴 택>의 게임 플레이는 매우 심플하다. 필요한 조작키는 방향키와 스페이스 바, 상호작용에 쓰이는 버튼 하나뿐이다. 아즈텍 문명을 차용한 세계관과 다양한 원소를 주제로 한 스테이지 등 얼핏 보면 꽤 복잡한 게임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굉장히 단순한 플레이가 담겨있는 셈이다.
다만, 그 내용이나 구상까지 단순하거나 심심한 건 아니다. 필드에 존재하는 지형지물을 밀고 당겨 올바른 길을 찾는 단순한 퍼즐부터, 개구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돌멩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그림 등 <턴 택>에는 유저들의 머리를 아프게 할 다양한 퍼즐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돌멩이'를 활용한 퍼즐이다.
유저들은 특정 스테이지에서 돌멩이를 통해 의문의 영혼을 조종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해 퍼즐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테면 돌멩이로 절벽 반대편에 있는 영혼을 불러낸 뒤 그곳에 위치한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는 형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뜨거운 촉수와 악어 등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요소들도 신경 써가며 스테이지를 돌파해야 한다. 마냥 쉬운 구조는 아니다.
<턴 택>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턴 택>은 과장 조금 보태 '꿈도 희망도 없는' 우중충한 분위기를 띈다. 더군다나 주인공 플라로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이들에게서 도망치며 비밀을 밝혀야 하는 가녀린 소녀다. 배경 이야기 자체가 암울한 만큼, 등장하는 스테이지 역시 어둡고 축축한 느낌이 짙다.
이러한 게임의 분위기는 <턴 택>의 추상적임과 어우러져 독특한 색깔을 풍긴다.
<턴 택>은 게임 진행에 있어 유저들에게 어떠한 힌트나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퍼즐에 참고할 수 있는 벽화가 등장가힌 하지만, 이마저도 몹시 추상적이다. 심지어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흔한 텍스트나 제대로 된 컷씬도 없다. 이처럼 <턴 택>은 어두운 이야기에 추상적인 분위기가 얹어진, 너무나 '뿌옇디뿌연' 게임이다.
한편으로는 지팡이 게임즈가 이를 의도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다.
앞서 말했듯, <턴 택>은 유저에게 어떠한 것도 알려주지 않고 특정 목표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유저의 플레이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따라서 유저들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고 나름의 기준을 통해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개발사의 색으로 칠해진 도화지 대신, 유저들이 직접 채울 수 있는 순백의 여백을 제공한 느낌이다.
따라서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퍼즐 게임이나 명쾌한 결말과 해석을 갖춘 게임을 원한다면 <턴 택>은 다소 취향과 동떨어진 타이틀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추상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스스로 이야기에 색을 입히는 걸 선호하는 유저에게는 완벽한 취향 저격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턴 택>을 개발한 지팡이게임즈는 지난 4월, 디스이즈게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러티브가 담긴 독특한 퍼즐 어드벤쳐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퍼즐부터 스토리, 연출까지 장르와 플레이 경험을 위해 모든 것에 집중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정식 출시된 <턴 택>은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변신과 전투로 인해 다소 애매하게 느껴졌던 게임의 색깔은 온전히 퍼즐 쪽에 맞춰져 있었고 비주얼 측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인상이 강했다.
반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턴 택>의 추상적인 느낌은 누군가에겐 심각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기자 역시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에 크게 만족했고 개발사의 의도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간혹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령 퍼즐을 클리어하면서도 어떻게 깬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고 게임의 비언어적인 힌트나 스토리가 어렵게 다가올 때도 적지 않았다.
물론 유저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색을 칠할 수 있는 '백지'라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가이드 정도는 제공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최소한 '여기까지가 칠할 수 있는 한계점입니다' 정도의 테두리 정도만 존재했더라도 훨씬 좋았을 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턴 택>은 썩 괜찮은 게임이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웅장한 연출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박한 구성만으로도 특유의 뿌연 분위기를 맛깔나게 담아냈다. 이에 더해, 생소한 아즈텍 문명과 원소를 다루는 퍼즐은 <턴 택>을 한 번쯤 시간 들여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으로 만들어준다.
당신이 주어진 이야기에 자신의 해석을 입히고 분위기를 즐기는 퍼즐 마니아라면 <턴 택>은 당신의 게임 라이프에 오래도록 남을 좋은 타이틀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앞서 언급한 유형의 게이머라면, 오늘만큼은 플라로의 손을 잡고 아즈텍 문명의 세계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