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액세스’라는 말만큼 게임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단어도 드뭅니다. 고질적인 품질 미달, 콘텐츠 부족, 개발 중단 등 이슈를 겪어본 게이머들의 숫자는 다 세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3월 8일 출시한 얼리액세스 신작 <코어 키퍼>는 스팀 리뷰어 약 3,000명 중 93%가 호평했고 일주일 만에 25만 장을 판매하는 등, 처음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얼리액세스 단계라는 사실에 아직 많은 유저들이 쉽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직접 플레이한 유저들은 ‘얼리액세스같지 않은’ 완성도와 풍족한 즐길 거리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평가가 어울리는 게임일지, 코옵 모드로 한 번 체험해봤습니다. 잠깐 맛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은 6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정교하고 탄탄한 게임성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코어 키퍼>는 오픈월드·생존·제작 장르 게임입니다. 슬슬 별도의 장르명이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이제는 잘 정립된 분류이기도 한데, 여기에 ARPG, 협동 등 인기 있는 장르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도입부의 짤막한 시놉시스에 따르면 주인공은 미지의 장소를 탐험하던 중, 정체불명의 고대 유물에 홀린 듯 이끌렸다가 지하에 추락해 갇혀 버립니다. 그렇게 땅속에서 살아남고자 생존 기반을 마련하고, 몬스터와 싸우며 지하 유적과 유물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콘셉트입니다.
이렇듯 근현대 문물과 판타지가 적당히 섞인 세계관, 그리고 전반적인 아트 스타일에서 <스타듀밸리>(그리고 그 정신적 전신인 <하베스트 문>)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캐릭터 조작법, 건설·제작, 인벤토리 관리 등 기본 UI도 많은 부분 참고했습니다.
<스타듀 밸리>의 직관적이고 간결한 UI는 농사, 탐험, 전투 등 다양한 콘텐츠에 범용적으로 써먹기에 적합했습니다. <코어 키퍼>도 마찬가지로 여러 콘텐츠를 아우르기 때문에 이러한 UI를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합장르’적 특징, 그리고 비주얼과 UI 상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두 게임 사이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스타듀 밸리>가 목가적 생활과 스토리텔링에 방점을 찍은 방면, <코어 키퍼>는 탐험, 전투, 샌드박스형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어 실질적인 플레이 감상은 서로 크게 갈립니다.
오픈월드·생존·제작 게임은, 표면상 자유도 높은 샌드박스 형식으로 진행되더라도, 그 안에는 제작진이 설정해놓은 보이지 않는 ‘노선’이 존재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특정 아이템이나 제작 재료를 얻었을 때에만 새로운 건설·제작 옵션이 열리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반적인 발전 방향과 그에 상응하는 '할 일'을 정해 놓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때 이런 ‘노선’을 얼마나 또렷하게 드러낼 것인지는 제작진의 선택입니다. 각자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유저가 걸어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려주면 접근성이 높아지지만 자유도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거나 호기심이 덜 유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법을 잘 숨겨둘 경우, 유저들은 도전의식을 갖겠지만 자칫 의욕을 잃기도 쉽습니다.
이 측면에서 <코어 키퍼>는 균형을 잘 잡은 편입니다. 튜토리얼이 아예 없는 대신, 주변 아이템과 상호작용하거나 시스템을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 콘텐츠의 가닥이 저절로 잡혀 자연스럽게 게임이 진행됩니다.
이런 시스템이 어딘지도 모를 지하에 내동댕이쳐진 채 고대의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내러티브와도 잘 맞물려 몰입과 흥미를 유발합니다. 더 나아가 탐험, 생존, 성장, 전투와 같은 개별 시스템과 효과적으로 맞물리면서 전반적으로 촘촘하고 알찬 경험을 줍니다.
물론 플레이 방향 제시에 있어 '설계 미스'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직관적이지 못한 몇몇 편의기능의 설명이 완전히 빠져 있어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 게임 진행상 꼭 찾아야 하는 주요 자원인 ‘주석’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느껴진다는 점 등은 아쉬웠습니다.
“이건 또 뭐지?”
<코어 키퍼>를 플레이하면서 여러 차례 되뇐 말입니다. <코어 키퍼>는 몇 개의 지역(biome)을 절차적 생성법을 통해 방대한 맵으로 펼쳐 보입니다. 드넓은 공간을 곡괭이로 사방팔방 뚫으며 필요한 자원 및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 중에 꾸준히 새로운 아이템, 몬스터, 구조물이 등장하면서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이런 발견은 새 콘텐츠 해금으로 연결될 때가 많아 탐험의 재미와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예를 들어, 게임 초반 발견되는 ‘빛나는 튤립’은 '발광 효과'를 부여해주는 음식으로 가공할 수 있습니다. 조명이 꽤 중요한 게임 특성상 나름 도움이 되는 음식입니다.
이렇듯 게임의 중추인 '탐험'이 요리, 농사, 제작, 기지 건설, 전투 등 버티컬한 콘텐츠에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탐험 효율을 높여주는 순환적 설계는, 아주 독창적이진 않지만 영리합니다. 불필요한 활동이 거의 없어 지루함 없이 게임에 몰입해 즐기게 됩니다. 첫날부터 6시간에 걸쳐 플레이한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코옵 시스템 상의 역할분담 측면을 보면 엄밀한 의미의 클래스 시스템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를 생성할 때 ‘배경’(직업)을 고르기는 하지만, 초기 아이템과 스킬레벨에서 약간 차이가 날 뿐, 영구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협동 플레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뉩니다. 모든 활동에 동시에 전념하기에는 그 종류와 작업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근접 전투, 원거리 전투, 채광, 농사, 요리, 제작, 달리기, 낚시 등 각각의 스킬은 관련 활동을 할 때 자동으로 경험치가 쌓여 강화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자기 일에 '특화'되기 마련이며, 이 또한 역할 분담으로 이어집니다.
유사한 시스템을 가진 오픈월드 생존 게임은 많은데, <코어 키퍼>의 경우 여기에 스킬트리 시스템을 더해 심화하고 있습니다. 스킬 기본 레벨을 올리면서 얻는 포인트를 투자해 액티브/패시브 스킬을 언락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얻는 스킬에는 게임플레이 방식을 유의미하게 바꿔놓거나, 관련 활동의 효율을 크게 올릴 수 있는 스킬이 적지 않아 플레이가 장기화할수록 롤플레잉의 재미가 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는 '탐험'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다른 콘텐츠에 큰 영향을 주는 중심 콘텐츠입니다. 각자 '특화'한 분야에 상관 없이 모든 유저가 전투에 뛰어들 수 있도록 게임 시스템상으로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비전투’ 기술처럼 보이는 요리 역시 스킬트리상 상위 티어로 가면 전투 관련 스킬이 많은데, 이는 게임이 후반으로 향할수록 전투 콘텐츠 비중이 높아지리라는 암시입니다.
장비 시스템과 제작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채광 중 랜덤 획득하는 장비 아이템, 제작 아이템, 음식 및 포션 등 보조 아이템 중 상당수에 ‘회피율’, ‘피해량’과 같은 전투 관련 옵션이 다수 붙어 있습니다.
게임 초반의 전투를 겪어보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집니다. 흔히 마주치는 기본 몬스터조차 상당히 위협적입니다. 장비 업그레이드, 요리, 포션제작 등 여러 성장 콘텐츠를 두루 섭렵하도록 만드는 의도적 장치로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렇듯 전투 콘텐츠에 잔뜩 힘을 준 것에 비해, 전투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개선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근거리, 장거리로 무기가 나뉘고, 각각의 유형별 특성도 분화되어 있는 것에 비해 정작 적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전투는 조금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다만 다행히도 전투력 강화의 동기는 현재도 나름 충분한 편입니다. 보스 공략 때문입니다. 각 지역 보스를 잡을 때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해금되기 때문에, 이것을 목표로 협력하고 성장에 힘쓰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보스마다 독특한 행동과 공격패턴을 가지고 있어, 각자에 맞는 전투 계획을 세우는 전략적인 재미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