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세계관을 자랑하는 인기 IP일수록 라이선싱 역시 활발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즈 워크숍의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 <워해머> 역시 마찬가지로, 그간 다양한 장르의 비디오 게임으로 재창작되어 온 바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들 게임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워해머> 기반 코옵 액션 게임 <워해머 버민타이드> (이하 <버민타이드>)시리즈의 경우 타이트한 전투, 다양한 레벨 디자인, 충실한 원작 재현 등 여러 장점으로 팬층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버민타이드>를 만든 개발사 팻샤크가 곧 형제 IP인 <워해머 40,000> 기반의 <워해머 다크타이드> (이하 <다크타이드>)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좋은 <워해머> 게임’에 목이 말라 있는 팬, 혹은 <워해머 버민타이드>를 재미있게 즐긴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최근 진행된 CBT를 직접 경험한 결과, 다행히도 이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위험성은 적어 보입니다.
본작 스토리에 따르면 제국 외곽 뫼비안 구역의 행성 도시 ‘테르티움’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이단 세력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제국의 이단심문관들은 죄수들을 징집해 테르티움을 되찾으려 합니다. 플레이어는 사이커, 베테랑, 질럿, 오그린 중 하나의 클래스를 골라 임무에 동참하게 됩니다. 물론 신분은 똑같은 죄수입니다.
베테랑은 지정사수 역할을 하고, 질럿은 적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딜링과 어그로 관리를 함께 수행합니다. 덩치가 다른 캐릭터의 3~4배 가량인 오그린은 근접전과 탱킹에 적절하고, 일종의 마법을 사용하는 사이커는 군중 제어와 원거리 딜링에 능합니다.
이때 RPG가 아닌 멀티 게임으로서는 독특하게도 캐릭터의 클래스뿐만 아니라 출신 및 배경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출생지, 성장 환경, 삶의 결정적 사건, 죄수가 된 경위, 목소리, 말투, 성별 등등을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이 설정과 상황에 맞춰 서로 대화를 계속 주고받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세계관이 학습되고, 지루함이 감소하며, 내 캐릭터를 더 살아있는 인물로 느끼게 됩니다.
원작에 대한 제작진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원작 세계관을 최대한 몰입감 있게 구현하려 노력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이테크와 구식 장비가 기묘하게 섞인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 분노하는 적들과 그 적들을 신나게 베어 넘기는 주인공들은 <워해머 40,000>만의 어둡고 광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해냅니다.
‘타격감’은 사실 논란이 많은 개념입니다. 저마다의 정의가 다르다 보니 객관적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하지만 ‘액션 연출’이라는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접근하면 그럭저럭 두루 논의해볼 만한 사안이 됩니다. 배우끼리의 기본 합이 안 맞는 활극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든 것처럼, 게임 역시 액션 연출에 있어 지켜야 할 기본기는 분명 몇 가지 있습니다.
<다크타이드> 플레이 영상이 처음 공개됐을 때도 이 '타격감'이 전편만 못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영상과 실제의 차이인지, 아니면 개발사가 이후 뭔가 손을 댄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작 CBT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입니다. 반가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크타이드>는 전편과 달리 총기가 존재하는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근접전투 비중이 여전히 매우 높습니다(이유는 후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연출은 탁월합니다. 적을 맞추는 순간의 타격음과 나가 떨어지는(혹은 신체 일부가 떨어지는) 적 애니메이션의 합은 아주 절묘해 액션의 질감이 실감나게 전달됩니다.
넘치는 현장감
또한 난간을 뛰어넘고, 플레이어에게 달려들고, 무기를 쏘고 휘두르고, 엄폐물 뒤에 숨는 등의 모든 적 애니메이션은 현실적인 데다 다양합니다. 실제로 여러 적을 상대하며 난전을 벌이는 듯한 현장감을 키워 주는 요소입니다.
거대 병기를 내려찍는 적 엘리트 유닛, 전방의 적들을 헤집어 모두 쓰러뜨리는 ‘오그린’의 스킬 등, 실감 나는 애니메이션과 물리적 표현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특히 <워해머 40,000> 시리즈의 전통적 무기 '체인소드'의 장쾌한(?) 고어 표현에서는 거의 팬서비스 정신까지 느껴집니다. 전반적으로 치고받는 액션의 만족감이 큰 게임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전작의 ‘스케이븐’떼와 같이, <다크타이드>에서도 적은 홍수처럼 밀려옵니다. 그런데 그 밀도가 더 높고, 모션은 하나같이 분노에 차있으며, 공간은 한층 폐쇄적이다보니 압박감을 넘어 가끔은 공포감까지 줍니다. 흉흉하고 광기어린 작품 성격을 잘 살려주는 메인 피쳐입니다.
이 ‘사람떼’는 총기가 있는데도 근접전을 포기할 수 없는 주된 이유가 됩니다. 장르 특성상 한 탄창에 들어가는 탄환은 수십발 단위지만, 그래도 그 많은 숫자를 전부 처리하기엔 연사력과 장전 속도 모두 결국 받쳐주지 못하는 시점이 옵니다.
난이도가 기본에서 한 단계만 높아져도 총기 사용을 절제할 이유가 하나 더 생깁니다. 난이도 2단계부터 총기는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 때 덩치가 유독 큰 ‘오그린’이 껴 있으면 도무지 오인 사격을 피할 수 없어 서로 불쾌해집니다.
근접전의 조작 메카닉은 전편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클릭으로 적을 밀어낸 뒤 공격을 연계하는 기능이나 좌·우·후방으로 회피하는 ‘닷지’ 시스템 역시 그대로입니다. 강력한 적의 공격은 피하고, 둘러싸였을 땐 적당히 밀어내가며 정신없이 베어 넘기는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게임플레이는 이번에도 똑같이 펼쳐집니다.
<다크타이드>의 적들은 모양도, 크기도, 하는 짓도 다양합니다. 각자 어울리는 무기로 혼내줄 필요가 있습니다. 쏟아지는 일반 적들을 근접 무기로 쓸어버렸다면, 갑옷과 총기로 무장한 적 엘리트 유닛들은 이쪽에서도 화력이 높은 총으로 상대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제작진은 총기 도입으로 인해 멀리서 시시하게(빠르게) 상황이 정리되어 버리는 현상은 원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거리 전투 또한 엄폐와 이동을 수시로 활용하며 '쫄깃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총기의 활용성을 다소 억누르는 장치를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총을 가진 적들은 아군 총기에 ‘제압’ 당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적 주변에 총을 쏘면 적들은 제압 효과에 의해 엄폐합니다. 상대의 원거리 공격을 억제하고, 더불어 아군이 그들에게 접근할 시간을 확보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반대로 플레이어 역시 적에게 제압당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화면이 심하게 흔들려 사격이 아주 힘들어집니다. 유저 역시 적극적으로 엄폐해가며 제압 상태를 해제해야 합니다. 이런 플레이를 위해 맵 곳곳에는 엄폐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방으로 미끄러지는 '슬라이드' 기능 역시 엄폐물로 숨어드는 데 유용하게 쓰입니다.
정확도 높은 총기를 가진 베테랑이나 원거리 마법 공격이 가능한 사이커는 숨은 적을 제거하는 재미, 근접 화력이 높은 질럿와 오그린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접근해서 처리하는 재미를 챙길 수 있는 균형 잡힌 디자인입니다.
<다크타이드>에서는 아군을 행동불능 상태로 만드는 특수 몬스터들은 전편에 비해 종류와 등장 빈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이런 유형의 적을 되도록 등장시키지 않아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방지한 듯합니다.
그렇다고 전반적 고민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저격병, 유탄수 등 원거리형 특수몹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전투에는 새로운 유형의 긴장감이 형성됩니다. 숨어들 곳이 많은 맵 특성상 적의 위치를 빠르게 '핑'으로 특정하고 빨리 제거하는 협력 플레이가 요구됩니다. 강력한 갑옷과 공격력으로 무장한 근접형 엘리트도 여전히 등장해 근접 전투에도 다양성을 더합니다.
미션의 중간, 혹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스는 게임의 백미입니다. 거대한 덩치, 보호막 등 각자의 기믹이 확실해 비주얼적 흥미와 함께 공략의 단서도 함께 더합니다. 또한 유저를 발로 차 날려 버리거나 검을 크게 휘둘러 광범위 피해를 주는 등 근접전 상황까지 고려한 여러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어 상대하는 재미를 최대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