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8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오래전 일이다. 너무 어렸을 때라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처음 플레이한 장소가 학교 전산실이라 그랬던 걸까. 선생님 몰래 <소닉 더 헤지혹 3>(이하 소닉 3)를 플레이해 본 경험은 마치 어젯일처럼 생생하다.
소닉 3는 이전까지 플랫포머라곤 <슈퍼 마리오> 시리즈밖에 알지 못했던 내게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어주었다. 마리오와 달리 반응하기조차 힘든 속도로 스테이지를 누비는 경험은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덕분에 ‘인생’ 게임까진 아니더라도 기억에 제법 오래 남았다.
90년대 니켈로디언 만화에서나 볼법한 비주얼, 빠르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OST, 기괴하면서도 정감 가는 주인공 페피노의 모습. 겉보기에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올해 만난 <피자 타워>는 여러모로 소닉 3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이었다. 특히 고속으로 이동하며 장애물을 넘나드는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궤가 같았다.
어떤 느낌의 게임인지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게임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불경기에 고생하던 페피노 앞에 갑자기 피자페이스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그는 페피노에게 가게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타워에서 광산을 발사해 가게를 부수겠다고 협박한다. 피자 페이스의 음모를 막고 자신의 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주인공이 피자 타워에 쳐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월드 곳곳에 게임의 설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오브젝트가 존재하지만,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된다. 메인 빌런이자 최종보스인 피자페이스를 잡기 위한 동기 부여 요소로만 생각해도 충분하다.
메인 디쉬는 어디까지나 게임 플레이다. 총 5개로 나누어진 이 게임의 월드에는 스테이지가 4개씩 존재하고, 잠겨있는 보스 스테이지가 하나씩 있다. 전부 더하면 총 25개다. 스테이지의 기본 진행은 두 가지 파트로 나뉜다. 우선 시작부터 스테이지의 끝에 있는 기둥 존을 터치하는 ‘진입 파트’가 있다. 두 번째는 기둥 존을 터치하자마자 제한 시간 안에 해당 스테이지 시작 지점까지 돌아오는 ‘탈출 파트’다.
진입 파트에서는 주로 스테이지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를 탐색한다. 어느 타이밍에 점프하거나 대시해야 장애물을 지나갈 수 있는지, 구출해야 할 피자 토핑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찾아내야 한다. 구출한 토핑은 스테이지 클리어 시 돈으로 환산된다. 돈을 충분히 모으면 해당 월드의 보스 스테이지를 개방할 수 있다.
탈출 파트에서는 시작 지점까지 제한 시간 내에 이동하는 게 목표다. 진입 파트 때와 달리 지나갈 수 있는 루트가 일부 달라진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동일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것이기에 진입 파트에서 미리 길을 외워두면 탈출 과정이 수월해진다.
게임이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기에 각기 다른 재미를 준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를 즐기기보다는 천천히 맵을 탐방하는 재미가 있다. 이 게임이 대단한 점은 스테이지 자체의 구성도 훌륭하지만, 대부분 각자의 기믹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다른 기믹을 소개하더라도 하나의 월드 내에서는 같은 기믹을 공유하는 경우가 제법 많은데, 이 게임은 월드 하나에서조차 스테이지에서 사용하는 기믹이 각자 다르다.
페피노는 스테이지마다 기사, 닭, 공, 폭탄, 유령 등 다양한 물체로 변신한다. 스테이지에서 활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많지는 않으나 완전히 다른 기능을 가진 동료 요리사, 구스타보로 진행하는 스테이지도 있다. 덕분에 이번엔 어떤 기믹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항상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기에 매 스테이지가 새롭다.
탈출 파트는 본격적으로 페피노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파트다. 정신없는 템포로 변하는 음악은 긴박감을 더한다. 화면에 뜨는 제한 시간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위기감을 주입한다. 제한 시간 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피자페이스가 스테이지에 소환되며 그에게 잡히는 순간 게임 오버다.
특히 ‘몸통 박치기’로 표현되는 페피노의 대시는 이 게임의 백미다. 우선 대쉬는 총 4단계로 나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면서도 강력해진다. 3단계부터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대쉬 하나만으로 호쾌하게 뚫고 지나간다. 흔히 ‘타격감(이 말도 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이 좋다라는 표현이 실재한다면, 이 게임이야 말로 그런 수식어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탈출 파트로 접어들면서 대시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제한 시간이 주어지는 상태에서 플레이어는 빠른 탈출을 위해 최대한 대시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탈출 시퀀스에서만 들리는 전용 OST는 페피노의 대시와 어우러져 광기 어린 속도감을 연출한다. 플레이어는 손에 땀을 쥐는 긴박함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시작 지점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른다.
스테이지 마지막의 보스전은 모난 부분 없이 깔끔하다. 마지막 보스인 피자페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보스는 2페이즈로 나뉘고 3~4개 정도의 각기 다른 패턴이 존재한다. 2페이즈에 돌입하면 새로운 패턴이 생기기보다는 기존 패턴의 강화형이 나오는 식이다. ‘죽으면서’ 배우는 게임이지만 까다로운 패턴은 적다. 진행하다 보면 보너스 체력도 충분히 주어지기에 클리어 자체만 따지면 어렵지는 않다. 패턴 대처법을 익히다 보면 충분히 깰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이 게임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처음 조작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이 존재하지만, 상당수의 플랫포머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익숙해지려면 반복 숙달을 요구한다. 까다로운 테크닉도 제법 있다. 처음 게임을 한다면 페피노의 다채로운 조작법에 익숙지 않아 여러 번 벽에 박히거나 게임 오버를 당할 수 있다. ‘손 타는 게임’을 싫어한다면 안 맞을 가능성이 높다.
들쑥날쑥한 스테이지 난이도도 단점으로 꼽힌다. 스테이지마다 새로운 기믹을 소개하는 건 좋으나, 기믹을 활용하는 난이도가 스테이지마다 다르다. 응당 난이도 곡선이 깔끔한 게임이라면 쉬운 스테이지에서 시작하여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조를 채택한다. 이 게임은 그런 교과서적인 구조는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 게임의 난이도를 말하자면, 마지막 월드인 5월드의 스테이지보다 3, 4월드의 스테이지가 전반적으로 더 어렵다고 느꼈다.
사소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주 인상적인 플랫포머 게임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각양각색의 레벨 디자인 구조나 기믹은 다채로운 플레이 경험을 주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비밀방이나 보물 같은 건 점수에 영향을 줄 뿐 게임 클리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려운 부분은 철저하게 플레이어에게 성취감을 주기 위한 도전과제로만 남긴다.
가령 이 게임에서 S 랭크를 받으려면 해당 스테이지의 모든 토핑 재료와 비밀방을 찾고, 숨겨진 보물을 얻어야 하며 제한 시간 내에 두 바퀴를 돌아야 한다. 여기서 한 단계 위인 P 랭크를 받으려면 위 S 랭크 조건을 전부 충족시킨 상태에서 한 번도 콤보가 끊기지 말아야 한다.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P 랭크를 받으려면 정밀한 컨트롤과 관찰력이 필수다. 보스전에서는 ‘노히트’ 기준에서만 P 랭크를 준다.
최고 랭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게임이 고 랭크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단순 클리어 기준) 탈출 시간도 넉넉하여 요즘 게임의 트렌드인 이지 투 스타트, 하드 투 마스터에 딱 부합하는 게임이다. 고 랭크를 노리지 않는다면 콤보가 끊기는 걸 두려워할 필요도 없기에 첫 진입 파트부터 적극적인 플레이를 해볼 수도 있다. 물론 ‘고인물’들은 빠르면서도 정확한 컨트롤로 모든 스테이지를 물흐르듯 클리어하지만.
현재 이 게임은 스팀에서 정식 출시된 상태다. 빠른 속도감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사람, 개발자가 정교하게 만들어 낸 레벨 디자인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추천 포인트
1. 정교하게 짜맞춰진 스테이지 디자인.
2. 각기 다른 스테이지 기믹이 주는 다채로운 플레이 경험
3. 개성 있는 비주얼과 OST
▶ 비추 포인트
1. 처음 페피노의 조작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손을 좀 타는 편.
2. 개성 있는 비주얼이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도?
▶ 정보
장르 : 플랫포머
가격 : 21,000
한국어 지원 : 플레이어 자체 한글화 패치 존재
플랫폼: PC(스팀)
▶ 한 줄 평
천방지축 좌충우돌 페피노의 피자 타워 박살 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