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8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바둑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에요. 자기 집을 잘 지으면서 남의 집을 부수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해요.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
최근 넷플릭스를 달군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바둑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문동은과 주여정, 하도영은 바둑을 두면 서로의 '수'를 읽는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박연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편 하도영까지 함께 무너뜨려야 하는 문동은. 기원에서 만나 대국을 둔 뒤, 바둑을 왜 좋아하느냐라고 도영이 묻는 말에 "침묵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게 좋아서요. 상대가 공들여 지은 집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것도 맘에 들고."라고 답변한다. 이후 우리는 '공들여 지은 집'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쉽게 보게 된다.
옛부터 우리 아저씨들은 바둑이라는 오래된 게임을 도도한 은유의 영역으로 개척해냈다. 우리 생활에서 바둑 용어는 뿌리 깊게 박혀있다. 포석, 정석, 착수, 실리, 국면, 대국, 타개, 사활, 패착, 복기, 묘수, 승부수, 자충수, 무리수 모두 바둑에서 온 말이다. 매 화 기보를 올리며 바둑을 사회 생활에 빗댄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은 또 어떤가? 턴제 전략 게임으로서, 두다가 도끼 자루가 썩는다는 바둑은 빠지면 탈출구가 없을 정도로 멋지다. 그 자체로 인생과 비견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바둑을 젊은이들은 별로 두지 않는다. 2016년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때 반짝 인기를 끌 것만 같았지만, 게이머들은 바둑보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 글로리>에서도 바둑이 비중있게 나오지만, <더 글로리>를 보고 바둑을 보기 시작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더 글로리’가 소환한 바둑… 기원에선 "이대로면 20년 내 사라진다"'라며 생존 위기에 빠진 바둑의 상황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머리 좋다는 천재들은 다 바둑에 입문했는데, 지금은 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대저 바둑이 처한 '동시접속자 감소' 문제의 원인에 한 숟가락을 얹어보자면, 바둑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바둑의 집중력과 끈기, 창의력으로 빚어내는 맛은 다른 게임에 비할 바 없이 재미있지만, 교본이나 기보를 읽고 한 수 한 수를 착점하는 일은 대단히 고되다. 집을 많이 짓는 게임인 바둑이라는데, 알아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바둑에는 'easy to learn, hard to master'의 원칙이 제대로 녹아들었는데, 바둑에서 '마스터'는... 국수 조훈현 수준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만큼 어려운 것이 바둑이다.
2022년 8월 스팀에 출시된 <바둑>은 말 그대로 바둑이다. 할인가 8,400원에 판매 중인데 바둑의 기본부터 천천히 게임의 형태로 가르쳐준다. 커리어 모드에서는 초보부터 프로까지 전 과정을 구현했으며 AI를 적용한 30개의 난이도를 통해서 '해보고 싶었지만, 뭔지 몰랐던 그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키울 수 있다. 바둑을 해보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보재가 될 수 있다. 스팀 댓글에서는 '아버지에게 이 게임을 선물해드렸으니 너무 좋아하신다.'라는 식의 훈훈한 리뷰도 만날 수 있다.
<바둑>에서는 마음이 편해지는 BGM을 즐기면서 AI, 또는 모르는 사람과 '수담'을 나눌 수 있다. 이미 새로울 것이라고는 특별히 없는 바둑의 세계에 한 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튜토리얼에서는 (중국인이 녹음한 듯한) 한국어 음성까지 마련되어있다. 배우고 싶다면, 이번이 기회다. 학원에 나가는 것보다 몇십 배는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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