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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인슈라오디드’ 리뷰…2% 부족한 종합 선물세트

좋은 메카닉 모았지만 흡인력 부족한 이유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2-06 18:10:09
2024년 초반부터 불어닥친 <팰월드> 광풍은 ‘오픈월드 제작 생존’(본 기사에서는 편의상 ‘생존’으로 적는다)을 향한 관심을 크게 끌어올렸다. 원래도 유저가 많기는 했지만 <배틀그라운드>에 준하는 메이저 장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시 접속자 200만 이상을 찍은 <팰월드>는 씬(scene)에 찾아온 경사로 볼 만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장의 부수적 피해를 본 작품도 있다. 스팀에서 <팰월드> 다음 가는 인기를 자랑 중인 <인슈라오디드>다. 장르 팬들은 <팰월드> 이전부터 이 타이틀을 주목해 왔다. <팰월드>의 무시무시한 기세가 아녔다면 더 뛰어난 초기 성적을 올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슈라오디드>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각종 트레일러에서 드러난 심상치 않은 만듦새다. 어떤 실리적 이유 때문인지 생존 장르는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개발사들이 뛰어들지 않는 분야로 남아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디 다운’ 게임이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인슈라오디드>의 뛰어난(것처럼 보이는) 프로덕션 퀄리티는 눈길을 끌 만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실제 플레이해본 <인슈라오디드>는 과연 기대에 걸맞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왜일까, 만족의 와중에도 어딘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저절로 손이 가고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든 것이 <팰월드>를 비롯한 인기 생존 게임의 특징이지만, <인슈라오디드>는 그러한 흡인력이 조금 부족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 <발헤임>의 후예

<인슈라오디드>는 개발진이 그동안의 인기 생존 게임, 그리고 몇몇 ARPG를 두루 섭렵한 뒤 각각에서 매력적 메커니즘을 뽑아내 결합한 듯한 작품이다. 잡식성 게임 팬이라면 익숙한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가장 주요한 레퍼런스로 여겨지는 게임은 <발하임>이다. 음식 아이템으로 허기 게이지를 채우는 것이 생존 게임들의 일반적 문법이지만 <발하임>은 음식을 기력/체력 버프 아이템으로 삼는 발상 전환을 통해 이것을 탈피했다. 덕분에 유저들은 농경이나 사냥처럼 ‘덜 재미있는’ 활동보다는 기타 다양한 활동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존 게임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가 주요 콘텐츠인 만큼, 이것은 주요 메커니즘 한 가지를 제작진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발하임>의 게임 디자인이 모험과 전투에 훨씬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발하임>의 콘텐츠는 ‘지역 보스’를 처치한 뒤, 상위 아이템을 획득해 다음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슈라오디드>역시 <발헤임>의 음식 시스템과 콘텐츠 사이클을 빌려 왔다. 제목의 ‘enshrouded’는 번역하면 ‘뒤덮인’, ‘완전히 가리운’이라는 의미로, 인게임에서는 지하에서 흘러나온 안개에 감싸인 구간을 이야기한다. 설정상 이 안개는 세계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게임플레이 중에 안개에 진입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캐릭터는 사망한다.

메인 시나리오는 안개의 원인이 되는 ‘엘릭서 우물’을 하나씩 무력화하는 것이다. 성공하면 안개가 걷히면서 영향 아래 있던 지역이 해방된다. 물론 우물을 지키는 보스급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우물 정화는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전에 ‘성장’이 요구된다. 이러한 콘텐츠 전개 방식이 전반적으로 <발헤임>을 연상시킨다.

<발헤임>에서 성장은 주로 상위 티어의 재료 및 레시피를 얻어, 더 나은 무장을 갖추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인슈라오디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재료 아이템을 획득하면, 연관된 레시피가 자동 습득되는 메커니즘도 같다.

성장 측면에서 두 게임의 두드러지는 차이는 <인슈라오디드>의 경우 고유의 스킬 트리와 아이템 티어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발헤임>은 장착한 무기 유형에 따라 공격 방식이 달라지고 캐릭터의 무기 숙련도에 따라 각각의 효율이 높아지는 정도에서 전투 베리에이션이 한정됐다.

아이템의 유형과 티어가 다양하다


# ARPG식 육성 시스템

<인슈라오디드>는 육성에서 RPG 요소를 대폭 강화했다. 우선 무기 유형이 활, 마법지팡이, 메이스 등으로 <발헤임>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하고, 같은 유형 안에서도 종류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뉜다. 각각에는 티어 개념도 존재하며 티어가 높을수록 자원 투자를 통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잠재력이 향상된다.

육성의 다른 한편으로는 <패스 오브 엑자일>을 연상시키는 스킬트리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중앙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노드를 하나씩 해금하는 방식으로, 각종 수치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패시브형 노드와 스킬을 더해주는 액티브형 노드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스킬트리는 또한 ‘야만인’, ‘암살자’, ‘애슬리트’(운동선수) 등 역할군마다 영역이 나뉜다. 각 영역 안에는 역할에 관련된 스탯 및 스킬 노드가 배치되어 있다. 인접 영역 간의 접경에는 두 역할군 모두에 쓰일 수 있는 노드들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야만인’과 ‘전사’는 ‘고기 섭취로 체력 회복 15% 증가’ 노드를 공유한다.

스킬간 연계 개념도 있다. ‘애슬리트’의 ‘점프 공격’은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공격 스킬이고, ‘생존자’의 ‘더블 점프’는 이름 그대로 공중에서 한 번 더 도약하는 기술이다. 더블 점프 시 체공시간이 길어지면서 적을 맞추기에 더 좋아지는데, 이를 고려한 듯 두 스킬은 붙어있다. 노드끼리 서로 떨어져 있지만 시너지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패스 오브 엑자일이 연상되는 스킬 트리 시스템


# 이 게임 조금, 저 게임도 조금

기초적인 콘텐츠 사이클 외에도 <인슈라오디드>는 실로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고 있으며, 앞서 말했듯 각각에서 다른 게임에 소개된 적 있는 기술적, 시획적 레퍼런스들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복셀 기반 기지 건설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세븐 데이즈 투 다이> 등 동일 방식을 쓴 여러 게임이 연상된다. 돌, 나무 등 자원을 ‘빌딩 블록’으로 가공한 뒤, 다시 이 블록을 소모해 다양한 규격과 형태의 파트를 만들어 건물을 조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건설 자유도가 높다.

연금술, 야금술 등 각자 전문 분야를 지닌 ‘장인’ NPC를 구출해 집 안에 배치한 뒤 거래를 트는 콘셉트는 <테라리아>를 닮았다. 이들 NPC가 지붕이 있는 제대로 된 건물 안에서만 제 역할을 하는 기믹 또한 그대로다. 각각의 장인은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데, 상위 단계의 장비, 포션, 제작용 시설물 등 레시피를 다양하게 제공하면서 콘텐츠를 확장한다.

‘고대 첨탑’이라고 불리는 타워에서 간단한 퍼즐을 풀어 상위층에 도달한 뒤, 주변의 중요한 장소들을 발견하는 시스템은 스위치용 <젤다의 전설> 시리즈나 <파 크라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타워로 빠른 이동을 한 뒤 글라이더를 이용해 원하는 장소까지 빠르게 강하할 수 있는 점도 <젤다의 전설>과 닮았다.

손수 제작한 던전, 적 기지, 광산, 민가 등을 산개시켜 놓은 오픈월드 디자인에서는 영락없이 <스카이림>이 떠오른다. 그 안에 짧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텍스트 로그, 숨겨진 보물, 보물에 대한 힌트, 다양한 침입 루트, 은신형 플레이어를 위한 잠입용 오브젝트 등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 역시 옛 베데스다 게임들을 빼닮았다.

복셀 기반 건축 시스템을 사용한다


# 뷔페의 장단점을 모두 가진 게임

유명 게임과 인기 장르의 좋은 요소들을 모아 이처럼 하나의 게임으로 엮어낸 <인슈라오디드>의 아이디어는 분명 탁월하다.

월드의 방대함과 비주얼도 인상적이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아트 콘셉트는 없지만, 사방으로 고저 차가 강조된 거친 지형(글라이더 위주 이동 메카닉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보인다)이나, 곳곳의 저지대에 고여 있는 안개의 모습은 특유의 세계관과 더불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러 메카닉을 단순히 빌려왔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분량을 충분히 챙기고 있는 점도 게임의 매력 요소다. 단적인 예로 캐릭터가 선택할 수 있는 역할군은 총 12개며, 각 역할군마다 선택 가능한 노드의 수도 10~15개 정도로 많다. <패스 오브 엑자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중 하나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 육성 방식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슈라오디드>. 그런데도 몰입감이나 중독성 측면에서 다른 생존 게임들에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원인은 이 게임을 이루는 각 메카닉의 디테일과 깊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투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인슈라오디드>의 전투는 패링(막기/쳐내기) 시스템, 그로기 시스템, 속성 공격, 범위 공격, 원거리 공격, 은신 공격, 구르기(회피) 등 요즘의 ARPG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다.

'패링' 외에 다양한 전투 시스템이 존재한다

심지어 각각의 요소는 매끄럽게 잘 작동한다. 은신 유저들을 위한 풀숲이 적소에 배치되어 있고, 각각의 몬스터는 저마다의 공격 패턴을 가지며, 각자의 그로기 메커니즘도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도 <인슈라오디드>의 전투는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다. 이 모든 요소를 사용해야 할 절실한 이유, 그리고 사용했을 때의 만족감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해서다.

방대한 게임 분량을 생각할 때, 점차 나아질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아무튼 10시간 넘는 게임 플레이 동안 만날 수 있었던 적의 유형은 10가지가 조금 넘는다. 이 중 전투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까다롭게 만들었던 건 첫 ‘엘릭서 우물’ 보스뿐인데, 녀석마저 방출형 스킬 하나 외에는 특별히 위협적인 기믹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넓은 육성 선택지, 다양한 무기와 스킬, 장비 업그레이드 시스템 등등은 모두 부수적인 것으로 느껴지고 만다. 단적인 예로 ‘암살자’ 계열의 첫 스킬인 은신 공격은 성공 시 무려 10배의 대미지를 주지만, 10배의 대미지가 필요한 수준의 적은 초반엔 거의 없다. 난관을 헤칠 도구가 다양하게 주어진 것에 반해, 정작 흥미로운 난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인슈라오디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이렇듯 어딘가 ‘2% 부족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필드 곳곳에 배치된 적 기지들은 구조가 단순하고 적들도 위협적이지 않아 공략의 재미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숨겨진’ 보물 상자들도 단순히 한층 아래 지하에서 발견되는 등 찾아내는 데서 도전적 요소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그렇게 발견한 보물 상자 안에는 조금 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것보다 조금 나은 ‘잡템’에 가까운 물건이 나올 때가 많아 만족감을 크게 저해하는 식이다.

공을 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족감이 크지는 못하다

미묘한 부족함의 다른 예시는 <발헤임>을 닮은 레시피 습득 방식이다. <발헤임>에서 유저는 새 레시피로 강해진 다음에야 다음 바이옴(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진출하면 유저에게는 전에 접해보지 못한 환경, 재료, 적, 그리고 새로운 레시피가 주어진다. 즉, 레시피가 다음 관문으로 향하는 티켓이자 달성 목표의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이중의 만족감을 준다.

반면 <인슈라오디드>의 레시피는 그런 드라마틱한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분명 스토리 전개에는 필요한 것들이지만 획득의 과정에서 뚜렷한 역경이 튀어 나오거나, 반대로 획득을 통해서 눈에 띄는 개선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렇다.

종합해 보면, <인슈라오디드>는 합리적 가격의 뷔페와 같은 타이틀이다. 다양한 맛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한두 가지 맛을 진하게 즐기고 싶은 고객에게는 권장할 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 가치를 폄훼하기는 힘들다. 현실의 요식 업계에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모든 분야 요리를 수준급으로 제공하는 ‘고급 뷔페’가 존재하고 있지만, 아직 게임계에는 이렇듯 여러 메카닉을 정성 들여 제공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나 방대한 월드를 누비며 종합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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