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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구석게임] 몇 년을 플레이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상황에 대해

유형권(유형권) 2024-10-16 17:40:32
플레이어간 승부를 겨루는 게임에서의 승패는 어떻게 결정될까? 사실 이 승부는 누가 더 완벽하게 플레이 했는지의 여부보다,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문제 없을거라 생각한 모든 플레이가 단 하나의 실수만으로도 모든 것이 어그러지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몬스터 A를 한 턴만에 쓰러트리기 위해 필살기를 사용했는데, A의 특성 중 '필살기 공격에 한해 70% 내성을 가짐' 이란 정보를 망각하고 있었다면, A는 쓰러지지 않는다. 도리어 플레이어는 A의 공격을 받아 HP가 크게 감소하고 필살기 쿨타임과 MP를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다. 가벼운 예시였지만, 실수가 플레이어간 겨루기가 발생하면 기믹이 더욱 복잡하게 작용하고, 이들 중 하나 요소만 까먹고 행동하더라도 전략에 큰 구멍이 생긴다.

몇 년간 플레이 경험을 쌓아 이해도가 높아졌다 싶은 게임도 툭 하면 실수해 패배로 이어지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이게 현실 사회였다면 어땟을까? 처음 실수할 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라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몇 년이 지나고도 실수를 반복하게 되면 주변인으로부터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 단계 발전하기까지의 여정 또한 고될 것이다.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있을 것이고, 자신감도 떨어졌을 것이다.

'현생'이라면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쉽사리 멈출 수 없을 텐데, 그런 모습을 게임세계에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신기하게 생각해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입문한 게임이니만큼 재미를 향한 열정의 깊이는 더 클 것이고, 이는 게임의 빠른 적응과 이해로 이어질 텐데 실수는 끊이지 않는다. 수 년 넘게 같은 게임을 플레이한 프로급 플레이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게임에서 패배하고, 연이어 다음 게임에 도전한다.

우리는 실수에도 계속 게임에 도전한다


# 실수까지 게임이다

현실 사회는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 및 스트레스가 매우 큰 영역에 속하는 만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행하곤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가이드를 만들어 주변 사람과 공유하고, 기계를 만들어 사람이 개입할 일도 없게 자동화를 연구하는 등, 실수가 발생할 환경 자체를 줄여왔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새로운 게임에 입문한다는 것은,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새하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글보다 끝낼 수 있는 비주얼 노벨 게임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클리어를 바랄 수 없는 하드코어 액션 게임도 있다. 게임을 디자인하는 방식에 따라선 플레이어가 실수할 환경을 만들고, 넓힐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면으로 가장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키워드는 턴 전략 + 대전 게임으로 보고 있다. 상대 팀의 상황을 명확하게 읽고, 그에 맞춰 최대한의 이득을 차지하는 방식은 '자기만의 퍼즐을 만들고 & 상대의 퍼즐을 파훼하는 공방'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 바둑, 장기, 체스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그 중 하나라도 길을 그르치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다른 플레이어가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승리를 쟁취하곤 한다. 대전 게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실수를 하고, 안하는 것의 여부까지가 승패와 놀이의 영역에 있다.


# 카드 덱 빌딩 게임에서의 실수

카드 덱 빌딩을 지원하는 턴 전략 대전 게임으로 가게 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각각의 카드에는 캐릭터 / 스킬 등의 능력치가 붙어있고, 이들을 바르게 조합하고 활용해야 승리할 수 있지 않은가? 바둑과 체스와는 달리, 올바른 퍼즐을 짜맞추기 위해 이해해야 되는 요소가 크게 늘어나게 되고, 이는 곧 전략을 구성할 때 무언가를 하나 잊고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게임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개발팀이 주기적으로 카드간 밸런스 업데이트 / 신규 카드 지원등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되면, 게임 서비스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플레이어가 사전에 숙지해야 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해야 되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특정 테마 카드를 가진 상대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이는 적재적소의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즐기고 있는 게임 <유희왕>의 경우, 20년 이상 서비스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등록된 카드 수가 12,000장에 달하고 있다. 물론 유저들 사이에서 주력으로 쓰이는 카드는 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수백장에 이른다. 모든 카드의 특성을 외우는 것도 고역이지만, 이들 카드의 조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략도 외우는 것은 더욱 더 많은 경험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상대는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혼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 부끄러움에 '항복' 버튼을 누르고 게임에서 탈주하는 플레이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10년 넘게 <유희왕> 관련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는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 짧게 게임을 즐긴 것도 아닌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항복하는 일을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하는 상황이 올바르다 볼 수 있을까?

<유희왕>에서 필자는 게임 유저로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다른 게임을 즐기러 가는 것이 훨씬 스트레스도 덜하고 이득일 것이라 생각하는 방향도 있었을 텐데, 필자는 아직도 이 게임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줄곧 자문한다. '왜 나는 반복된 실수와 패배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유희왕>에서 필자는 게임 유저로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 우리가 계속 게임을 하는 이유... 실수 그 자체에 답이 있다

필자는 '실수' 그 자체에 답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팀을 이뤄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나의 실수가 다른 팀원의 피해로 이어지기에 문제되는 요소가 많았다. 실수를 안하는 것이 팀플레이의 기본이라는 사회적 풍조도 있겠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플레이를 해도 팀원이 나를 기쁘게 할 정도의 피드백을 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나의 실수가 나 혼자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실수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었을 때 얻는 쾌감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다. 그냥 한 번 승리하는 것보다, 5번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하는 것이 더욱 값지다고 느끼는 심리와 비슷하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해서 패배할 때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은 분명  적잖이 있었지만, 실수하지 않았을 때의 몰입감이 계속 필자를 이 게임에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의 재미는 오로지 승리했을 때만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상한 전략이 효과적으로 통했을 때, 우연한 요소로 인해 상황이 유리하졌을 때, 내가 실수했는데 상대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더 큰 실수를 했을 때 등, 실수는 게임을 심심하게 만들지 않고 변수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사람인 만큼 실수하기 마련이고,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으로 볼 수 있는 시각도 있지 않는가? 

항상 최선의 수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노련한 프로게이머들의 대전도 재미있지만, 실수 투성이인 초보자들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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