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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퍼스트 디센던트’ 즐기는 25만, 무엇에 반했나

슈팅보다는 루팅에 집중한 넥슨 신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7-09 14:46:03
“메타크리틱 90점 같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10년 동안 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퍼스트 디센던트> 출시 전 있었던 공동 인터뷰에서 개발팀 이범준 PD가 밝힌 포부다. 한편으론 겸양 같기도, 다른 한편으론 방어(?) 같기도 했던 이 말은 알고 보니 게임의 지향점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발언이었던 듯하다.

첨단 그래픽과 웅장한 시놉시스, 힘을 잔뜩 준 마케팅 등에 가려 오해하기 쉽지만, 출시 후 자세히 살펴본 <퍼스트 디센던트>은 실제로 ‘거창한’ 게임은 아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장르 내 이미 검증된 문법에 넥슨의 색을 입히는 데 주로 집중했고, 욕심을 부릴 법했던 여러 콘텐츠에서도 도박을 포기한 채 안전한 길을 택한 모습이다.

그 결과 화려한 외면에 비해 다소 소박한 내실의 작품으로 탄생했는데, 이것은 시장의 호오가 갈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스팀 플랫폼 상에서 게임 평가는 ‘51% 긍정적’을 기록하고 있다.

스팀평가만 보면 오판하기 쉽지만, 현재 게임은 흥행 중이다. 스팀 내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서비스 첫날 22만 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치로 시작해 매일 상향하고 있다. 스팀 내 전체 게임 중 매출 2위를 유지하는 등 과금 사용자의 비율도 꽤 높은 편이다.

그간 EA, 스퀘어에닉스 등 글로벌 대기업도 고배를 마셔야 했던 루터 슈터 장르다. 따라서 <퍼스트 디센던트>가 씬 내에서 일으키고 있는 파문은 작은 듯 작지 않다(삼성증권은 <퍼스트 디센던트> 흥행 이후 넥슨게임즈 목표주가를 75% 상향했다). 평가가 엇갈린 원인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환호하는 팬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 ‘루터 슈터’의 은근한 전통?

루터 슈터(looter shooter)는 아이템 획득을 통한 성장 시스템(루팅/파밍)과 총격전(슈팅)이 합쳐진 융합 장르다. 역사가 짧지 않지만, 현시점 지속적 수익을 내는 메인스트림 타이틀은 <데스티니 가디언스>와 <워프레임> 정도로 압축된다. 그 외 장르 대표적 작품으로는 <보더랜드>, <디비전> 시리즈 등이 꼽힌다.

이 중에서 장르의 기틀을 닦고 그 인기를 끌어올린 <보더랜드>에 한 번쯤 주목할 만하다(시대적으로 너무 동떨어진 ‘헬게이트 런던’은 논외로 하자). 라이브로 지속 서비스되는 후배 루터 슈터들과 달리,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됐다는 사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보더랜드>는 전통적 패키지 게임 문법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손수 만든 콘텐츠를 십수 시간에 걸쳐 풀어내는 완결된 경험을 상정했다는 의미다. 게임플레이 내내 유저들은 지속적으로 바뀌는 스토리, 캐릭터, 장소, 보스전 등을 즐길 수 있다. 리소스적 한계로 적 유형은 반복되지만 이 또한 되도록 다변화했다.

<보더랜드>는 이런 기본적 구성 위에 특유의 아이템 체계, 직업 시스템, 속성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캐릭터마다 차별성 뚜렷한 빌드를 만들어 같은 콘텐츠를 반복해 즐기는 ARPG적 재미가 더해지면서 ‘루터 슈터’라는 별도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장르적 저변이 확장된 이후에도 <보더랜드>가 확립한 문법은 (특히 대기업 게임들에) 상당 부분 계승됐고 이는 <디비전>, <데스티니 가디언즈>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싱글플레이 슈터로 떼어놓고 봐도 만족할 만한 콘텐츠 적 풍성함과 완결성을 토대로 엔드게임에서의 캐릭터 성장 경험을 추가 제공하는 방식을 따른다.

패키지 게임의 볼륨과 구성에 라이브서비스 문법을 얹은 <더 디비전> 시리즈


# 단순하고 반복적인 시스템은 유저를…

<퍼스트 디센던트>를 향한 실망 중 상당 부분은 선배 게임들이 보여준 슈터 콘텐츠의 본격성이 다소 간편화된 것에 기인한 듯하다. 실제로 <데스티니 가디언스>, <디비전>, <보더랜드>와 같은 작품들과 비교하면 <퍼스트 디센던트>의 전투/스토리 콘텐츠는 간결한 편이다.

대표적 예로 비교적 단순하게 디자인된 전장을 꼽을 수 있다. <퍼스트 디센던트>의 필드 전투는 대부분 개활지에서 이뤄지며 약간의 고저 차와 엄폐물이 일부 존재하는 수준이다. 그 때문에 상당수 슈팅 장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형지물의 활용이나 기동 방식은 덜 중시된다. 갈고리를 이용해 위험 지대를 이탈하는 정도의 상황을 제외하면 지형과 이동을 고민할 상황은 별로 없다.

보스와 일반 몬스터의 다양성 부족도 자주 지적된다. 가령 필드에서 만나는 보스는 대부분 체력을 일정량 소모시킨 뒤, 이후 전개되는 무적 패턴을 무력화시켜 다시 대미지를 주는 똑같은 방식으로 쓰러뜨려야 한다. 퀘스트 유형 또한 5~6개로 한정되어서(거점 방어, 거점 점령, 염색체 수집, 발전기 폭파 등) 반복성의 체감이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편이다.

보스 주변에 떠오른 '쇠구슬'을 먼저 파괴해 무적 상태를 해제한 뒤 본체 딜링을 계속하는 패턴이 게임 내내 지속된다.

내러티브 측면에서도 (게임의 빠른 템포를 위한 것일 수 있겠으나) 대폭 축약된 여러 연출이 아쉬움을 남긴다. 화려한 볼거리, 혹은 섬세한 인물 묘사를 시도해 볼 만한 상당수 장면을 음성 및 텍스트로만 넘긴 탓에 웅장한 연출과 시네마틱을 통한 스토리를 기대했던 유저라면 아쉬울 법하다.

전투와 내러티브에서의 간소함이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유저가 게임의 본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게임에 ‘물리고’ 만다는 데 있다. 캐릭터 파밍과 육성, 빌드 연구 등 <퍼스트 디센던트>가 주력하고 있는 매력적 무게중심은 중후반 이후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상당수 유저가 동률적 게임플레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결정적인 순간의 시네마틱 컷씬은 웅장하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 동료 계승자들의 활약 등이 대부분 무전 너머 대사로만 묘사되는 지점은 특히 아쉽다.


# 루터냐 슈터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문에 언급한 이범준 PD의 발언으로 되돌아가 보면, <퍼스트 디센던트>의 운영/개발 방향성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10년 동안 즐기는 게임’은 곧 유저를 계속 붙들어두는 게임이다. 만족감을 끊임없이 피드백할 수 있는 콘텐츠적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그 안에 유저를 단단히 포섭하는 디자인이 유리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개발진은 게임의 ‘슈팅’보다는 ‘루팅’ 측면, 더 궁극적으로는 성장 시스템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퍼스트 디센던트>가 제공하는 본격적 재미는 게임의 다층적 성장 시스템을 하나씩 해금해 주인공 캐릭터(‘계승자’라고 부른다)의 위력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계승자들의 성장 요소는 전부 열거하기 힘들만큼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계승자는 액티브 스킬 4개, 패시브 스킬 1개, 그리고 3정의 무기를 활용해 전투를 벌인다. 이때 ‘모듈’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업그레이드 부품들을 무기 및 계승자에게 장착해 총기와 계승자의 위력을 원하는 방향으로 강화할 수 있다.

‘모듈’은 <퍼스트 디센던트> 육성의 기초이자 핵심이다. 캐릭터 콘셉트 및 총기 특성을 고려해 모듈을 최적으로 세팅해 나가면 되는데, 이때 유저가 원하는 전투 콘셉트를 잡을 수 있어 그 재미가 배가된다. (이는 <워프레임>에서 차용한 시스템이다. 이외에도 캐릭터 획득 중심의 BM 구조 등 많은 부분에서 <워프레임>을 핵심 레퍼런스 삼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모듈은 캐릭터/무기를 수치적으로 강화하는데 그치지 않으며, 독특한 플레이스타일을 시도하게 해준다.
게임에 마련된 갖가지 모듈을 취향대로 수집, 강화,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듈 세팅은 자유도가 상당히 높다. 더 나아가 성장에 따라 장착할 수 있는 모듈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점점 더 고급 모듈을 착용할 수 있게 된다. 모듈은 주된 파밍 대상이기도 하다.

저등급 모듈의 경우 주로 ‘치명타 배율 증가’, ‘장탄수 증가’ 등 수치 보정의 효과만 지닐 뿐이지만 후반부 얻는 궁극 등급 모듈은 ‘무기 전환 시 일시적으로 방어력 증가’와 같은 특별한 기믹을 가진 것들이 많다. 단독적으로도 위력이 크지만, 다른 모듈/무기/스킬 효과와의 연계로 더 큰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어 빌드 구축의 중요 요소가 된다.

모듈 시스템의 마지막 매력 포인트는 캐릭터의 스킬 효과 및 성능을 바꿔주는 ‘스킬 모듈’의 존재다. 캐릭터별 액티브 스킬은 원래 4개뿐이기 때문에 플레이스타일 다변화에도 다소 한계가 있는 편이다. 이때 스킬의 작동 방식이나 위력을 크게 바꿔주는 스킬 모듈은 나만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재미를 몇 배로 키워줄 수 있다.

또한 모듈은 파밍 대상으로서도 재미를 더한다


# 무기, 장비, 계승자

위에 설명된 것과 같이, 모듈 시스템만 단독으로 살펴보더라도 <퍼스트 디센던트>의 육성 콘텐츠는 깊이감이 있다. 하지만 게임에 마련된 성장 요소는 더 많다.

우선 ‘궁극 무기’는 특수한 메커니즘을 지닌 최상위 등급 총기다. 스토리상 가장 먼저 입수하게 되는 기관단총 ‘천둥우리’를 예시로 들면, 적을 사살할 경우 해당 적의 반경 수 미터 이내에 전기 대미지를 입히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효과는 여타 일반 무기나 스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유저의 플레이 스타일에 새로운 층위를 더해준다는 측면에서 콘텐츠적 의의가 크다. 예를 들어 계승자 ‘버니’는 주로 스킬을 이용한 빠른 이동과 광역 딜링에 특화되어 있는데, 이때 적에게 근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체력적으로 열세일 때는 천둥우리를 사용해 중거리에서 약한 체력의 적만 골라 섬멸하는 방식으로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킬 위력에 관여하는 ‘반응로’, 캐릭터 생존력을 책임지는 ‘외장 부품’ 아이템들 역시 유의미한 성장 요소이자 파밍 대상이다. 각각은 티어가 높아질수록 부수적 버프를 제공하며, ‘외장 부품’의 경우 ‘세트 효과’도 존재하는 만큼, 빌드 최적화에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할 요소다.

파밍/육성 시스템의 정점은 서로 다른 메카닉을 지닌 여러 ‘계승자’다. 계승자 각각은 외모와 캐릭터 설정은 물론 스킬셋의 속성, 작동 방식, 효과와 목적 등이 서로 달라 상이한 방향성을 추구하게 되며, 이는 콘텐츠를 양적으로 팽창시켜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적에게는 디버프, 아군에게는 회복 효과를 거는 궁극 무기. 다양한 조합을 생각해볼 수 있다.


# 뒤로 쏠린 무게중심

그런데 다채로운 캐릭터 빌딩이 즐거운 것은 어디까지나 키워 놓은 캐릭터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전투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을 때다. 앞서 <퍼스트 디센던트>의 전투는 동률 반복적이라고 지적한 만큼, 육성의 만족감 또한 그 시스템적 볼륨에 비해 충분치 않으리란 우려가 나올 법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며, 어쩌면 제작진이 앞으로 개선을 고민해 봐야 할 지점처럼 보인다. 특히 필드상의 일반 적 유형은 ‘방패병’이나 ‘자폭병’ 같은 흔한 베리에이션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기믹적 다양성이 부족하다. 또한 전투 시나리오들도 서로 대동소이한 탓에 다양한 캐릭터 기용의 필요성과 만족감이 모두 줄어든다.

그러나 개성적 빌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콘텐츠가 현시점에 부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 난도가 점차 올라가는 후반 시점부터 경험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어, 초반 진입장벽을 넘긴 유저들만 발견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가령 새로운 지역을 해금해 나가다 보면, 이전에 못 봤던 특수한 속성 공격을 가하거나 기존 대비 공격력/생존력이 강해진 적들을 만나게 된다. 이 시점부터는 자연스럽게 캐릭터 최적화를 통해 성능을 키우는 빌드 최적화의 재미도 함께 본격화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내 캐릭터는 잘 눕고, 적은 잘 안 쓰러지는 경험이 유의미하게 늘어난다.

새로운 ‘계승자’ 획득의 필요성도 함께 커진다. 스토리상 초반에 공통으로 주어지는 최고 인기 계승자 ‘버니’는 빠른 속도와 광역 딜링으로 필드 콘텐츠나 특수 작전(여러 라운드에 걸쳐 적을 섬멸하는 인스턴스 미션) 등 다양한 전투에 적합해 상당수 콘텐츠를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일 대상에 높은 피해를 주어야 하는 미션, 아군 보호가 필요한 미션 등에서는 점차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새 계승자를 획득해 새로운 콘텐츠 유형에 대응하는 재미를 유저들이 자연스레 찾아가게 되는 흐름이다.

캐릭터 육성의 필요성과 만족감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 콘텐츠는 ‘보이드 요격전’이다. 설정상 다른 차원에서 인류를 향해 다가오는 ‘거신’들을 저지하는 내용으로, MMORPG의 보스 레이드와 유사하게 전개된다.

각각의 거신은 패턴, 속성, 특수 기믹 등이 모두 달라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계승자 및 빌드 세팅 또한 달리한다. 한편 이들 보스를 통해서만 새로운 계승자 파밍에 쓰이는 재료 아이템 획득이 가능해 클리어를 등한시할 수 없다. 즉, 육성 만족감을 느끼는 시험장이자 새로운 육성의 발판으로서 동시에 기능하는 셈이다.

'거신'은 육성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다. 새로운 캐릭터 육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 <퍼스트 디센던트>가 어울리는 사람은?

다채로운 전투 디자인, 몰입적 인게임 연출 등 블록버스터 슈터 게임에 흔히 요구되는 미덕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쉬운 게임으로 여겨질 만하며, 실제로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게임을 호평하는 유저들은 끊임없이 만족감을 되먹임해 주는 깊이 있는 성장 시스템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정리하면 (긍정적 의미에서) ‘파밍할 것이 많은 게임’이라는 평가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난이도 곡선은 파밍 성과를 느낄 좋은 시험대가 되어 주고 있다.

이처럼 <퍼스트 디센던트>는 참신한 경험의 연속보다는 느긋하고 지속적인 달성감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권할 만하다. 한편, ‘계승자 스토리’ 콘텐츠를 통해 스토리적 몰입을 보강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서비스에서 게임의 아쉬운 지점(게임플레이 다양성, 육성 재미가 떨어지는 초/중반 게임플레이)을 채워 나가길 희망해본다.

계승자 스토리는 다소 부족한 캐릭터 내면 묘사를 보강하는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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