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지난 주 칼럼에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법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가 원칙이고 예외적인 경우만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대한민국헌법 제109조, 이 점이 헌법에 명시된 원리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법원의 재판을 방청하고 판결문을 살펴볼 수 있는 관계로 지난 주 칼럼과 같은 내용은 법원 사건에 조금 관심이 있고, 민사소송절차와 지적재산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분석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법이란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 내용과 절차를 알아야 하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칼럼 또한 TIG 독자 여러분께서 상식을 쌓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난 연재의 판결서가 어렵다고 하신 분들을 위해, 판결서를 어떻게 읽는 것인지에 대해 애프터서비스를 해 드리겠습니다.
애프터서비스: 판결서는 어떻게 읽는 것인가?
지난 연재에서 법원의 판결서는 마치 개발자가 작성한 프로그램 코드와 같이 그 나름대로의 일정한 형식과 문법을 갖고 작성되는 것이라 형식을 알고 읽으면 좀 더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고로 제1심 판결서의 형식에 대해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간단히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표지 및 앞부분
판결서의 표지와 앞부분의 내용을 보면 판결을 선고한 법원, 재판부, 사건 번호와 사건의 종류, 원/피고의 인적사항, 대리인인 변호사나 법무법인, 변론종결일 및 판결선고일 등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판결문[링크]을 보고 계신다면 원/피고의 정보는 비공개로 표시되어 A, B로 기재돼 있을 겁니다. 이는 외부 공개를 위해 법원에서 임의로 일부 정보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고, 실제로 당사자들이 받게 되는 판결문에는 원/피고가 되었던 개인 혹은 법인에 대한 정보(생년월일, 주소, 법인이라면 대표자의 이름)가 기재돼 있습니다.
또 법원의 대국민 서비스 사이트에서 따로 판결서 제공 신청을 하여 판결문을 받은 분이라면, 당사자의 일부 정보는 공개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판부’에는 해당 법원의 어느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했는지가 나오는데, 재판부가 아닌 단독판사가 판결을 선고한 경우에는 이 표시가 없습니다. ‘변론종결일’이라는 것은 법원에서 사건의 심리를 종결한 날을 말하고, 그 이전에 제출된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과 증거만이 판결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변론종결일’은 재판에서는 여러 의미를 갖습니다. 마지막 변론기일에는 보통 재판부가 양측 대리인(대리인이 없으면 출석한 당사자 본인)에게 ‘더 할 것이 있는지’를 문의하는데, 이는 변론이 종결되고 나면 법원은 그 때까지 제출된 주장과 증거를 근거로 판결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새로운 증거가 찾아진 경우 변론이 재개될 수도 있긴 합니다만, 일단 변론이 종결되면 판결 선고가 임박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보통 판결선고는 변론종결 후 1달 내외의 기간이 경과한 후에 내려지며, 재판부나 단독판사는 변론을 종결할 때 판결을 언제 선고할 것인지도 함께 알려줍니다. ‘판결선고일’에는 실제로 판결을 선고한 날짜가 기재되죠.
2) 주문
‘주문’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해당 판결의 결과를 말하며, 이 판결의 효력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판결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지난 주 연재에서 공개된 판결서의 주문 제1항을 읽어 보면 결국 그 의미는 피고가 분쟁 대상이 된 게임을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를 통해 배포하거나 서비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바일게임인데 두 곳에서 배포하지 말라고 한다면 서비스를 하지 말라는 의미이겠지요.
판결서의 주문 제2항의 내용은 가, 나로 나누어 피고가 원고에게 11억 6,800만 원 가량의 금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과, 게임 서비스를 중단할 때까지 매월 8,350만 원 남짓한 돈을 지급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문의 3, 4, 5항은 소송기술적인 부분이라 그냥 넘기셔도 되는데, 설명을 드리면 제3항은 원고 청구 중 일부가 인용된 경우 나머지는 기각되었다는 것을 표시하여 전체 청구에서 인용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고, 제4항은 소송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주문인데, 보통은 인용된 비율을 역산하여 대략적으로 분담 비율을 정합니다.
‘역산한다’는 말이 의아하실 수 있는데 원고가 전부 이기면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인(가끔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합니다) 결과가 되므로 이를 ‘역산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제5항의 가집행이란 이 사건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집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집행은 실제로 압류 등 피고의 재산에 대해 환가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므로, 실제로는 이 부분도 무척 중요하긴 합니다.
어쨌든, 판결의 효력은 ‘주문’으로 선고한 범위에서 발생하므로, 이 ‘주문’의 내용이 무척 중요합니다. 아주 만약에 피고가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 이외의 제3의 앱마켓이 있어서 그 곳에서 배포나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면, 그 서비스까지 중단할 필요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모바일게임 마켓 – 플랫폼 홀더 – 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스토어로 양분되므로 이 주문이면 원고는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룬 것이죠.
3) 청구취지
그 다음의 ‘청구취지’라는 것은 이 사건 소송을 통해 본래 원고가 판결을 구하였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구취지’와 ‘주문’을 비교해보면, 원고가 전부승소, 일부승소(일부패소), 전부패소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본 연재 제10회 ‘판사는 어떻게 게임의 내용을 알고 판결을 내릴까’ 에서 말한 ‘변론주의’를 계속 말씀을 드리게 되는데,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원고가 청구한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므로, 주문이 청구취지를 넘어선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TIG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설명 드리면, 판결이 소송에서 구하는 바를 인용한 정도를 살펴볼 때 전부승소를 ‘100%’라고 하고 전부패소를 ‘0%’라고 한 후 일부승소한 정도를 분수로 나타낸다면 청구취지가 분모, 주문이 분자에 해당하게 됩니다.
법원은 절대로 100% 이상의 판결을 선고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사소송의 대원칙 중의 하나인 ‘처분권주의’라는 것인데(민사소송법 제203조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변론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4) 이유
그 다음으로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주문’을 선고하게 된 사실관계와 당사자들의 주장, 그리고 그에 따른 법원의 판단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는데, 변호사들은 ‘이유’를 통해 조금 더 많은 정보들을 읽어내게 됩니다. ‘이유’에서 목차와 내용이 기재된 부분의 순서를 살펴보면, 원고가 어떤 주장을 했고, 이에 대해 피고가 어떻게 반박을 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부분은 상당히 복잡하기도 하고, 전문가가 아닌 분들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영역이니 이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판결서에서 ‘이유’를 쓰는 방법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정도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이는 결국 법논리를 치밀하게 문장으로 구성해내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입니다.
지난 연재에서 제가 원고의 주장과 그에 따른 피고의 반박을 TIG 독자 여러분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정리하여 보여 드렸습니다. 이 또한 ‘이유’의 구성에 따라 어떤 위치에 어떤 주장과 설명이 나올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내용을 뽑아서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여기서의 판단과 사실관계는 사건이 확정된 경우 다른 사건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집니다. 또한 실제로 판결문의 대부분의 내용을 구성하는 부분이 바로 ‘이유’에 해당하게 되죠. 다만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4) 판결
끝으로 판결문에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의 서명 및 날인이 이어집니다. 제30회 연재에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합의부의 경우 3명의 판사가 단독판사의 경우에는 1명의 판사의 서명 날인이 있게 되는데, 누가 판결을 내렸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반드시 게임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 아니더라도, 업무나 개인적인 흥미 등 어떤 이유로든 민사소송의 판결서를 보실 기회가 있다면(형사소송의 판결문은 그 형식이 또 다릅니다), 이런 흐름을 참고하여 살펴보실 경우 많은 정보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치며
오늘 연재를 마치기에 앞서 판결의 선고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판결서에 기재된 내용을 재판장이 판결선고일에 구두로 선고하면서 판결서에 기재된 주문과 다른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민사소송에서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아마 거의 없겠지만, 판결은 선고로 효력이 생기고(민사소송법 제205조), 판결은 재판장이 판결원본에 따라 주문을 ‘읽어’ 선고하기 때문에(민사소송법 제206조) 구두로 선고한 판결이 더 우선하는 효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본에 쓰여진 것 보다 구두로 말한 주문이 더 우선한다는 것이죠.
재판의 선고와 고지의 방식에 대해 유사한 규정(형사소송법 제42조, 제43조)이 있는 형사판결의 경우, 구두로 선고한 형이 주문의 기재보다 우선한다고 본 대법원 결정(대법원 1981.5.14. 자 81모8 결정)이 있습니다. 물론 민사판결의 경우에도 꼭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참고할만한 사례인 것이죠.
판결서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게임과 법’ 보다는 민사절차에 대한 내용을 많이 말씀 드리게 되었는데, 다음 연재에서는 게임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의로 다시 돌아가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