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에서 '김두일의 정글만리'를 연재 중인 김두일 님(닉네임 모험왕)은 중국 게임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입니다. 그의 페이스북에 게재되는 내용은 일부 편집을 거쳐 본 연재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국 게임의 가장 큰 해외 시장이면서도 불투명한 정보로 미지의 영역인 중국 게임 시장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길 기대합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 '이소룡'과 '황비홍'이 싸우는 모바일 게임을 발견했다. 이거 짝퉁은 아니겠지?
중국에 <공부전명성>이라는 게임이 출시됐다. 영어로 게임명을 해석하자면 '쿵후 스타 대전' 정도가 될 것 같다.
텐센트가 최근 출시한 <화영닌자>(나루토 모바일)의 순위를 확인하러 앱스토어에 들어갔다가 피처드(Featured, 애플이 선정한 추천 앱 카테고리. 앱스토어 첫 번째 페이지에 노출된다, 편집자 주)를 받은 게임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게임이다. 전에 지인이 '찰진 재미가 있다'는 평가를 한 터라, 나도 괜히 관심이 생겨 설치했다.
첫 느낌은 의문이었다. '이 게임이 과연 합법적인 IP 계약을 통한 게임일까?'
영화 <정무문>, <취권>, <황비홍> 등 유명 쿵후 영화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의 초상권이 여과 없이 사용된 데다, 영화 속 BGM까지 그대로 들어갔다. 이러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 <코믹X배틀>의 악몽, 이러니 의심을 쉽게 거두기 어렵다
작년 가을, 한국에서 짝퉁 여부를 두고 화제가 된 게임이 있었다. <코믹X배틀>이라는 중국 게임이다.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나오는 유명 캐릭터들이 무단 도용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하나의 게임에서 <나루토>와 <원피스>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에반게리온>의 '레이'와 마블의 '아이언맨'이 함께 파티플레이를 하는 골때리는 게임이었다.
이후 무단 도용 여부를 확인한 기사가 디스이즈게임에서 나왔다. 계약 진행 사항을 일일이 일본 출판사에서 전화해서 알아본 '근성의 기사'였다. 아래 링크를 확인해보자. (문의한 대부분 회사에서 공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퍼블리셔는 게임의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 편집자 주).
<공무전명성>도 게임의 방식만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 안에 있었다. 일단 영화의 유명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이 황당했다. 심지어 영화 <정무문>의 유명한 1:100 대전까지 게임 속에서 재현했다. (이쯤 되면 거의 연출은 <콜 오브 듀티> 수준.)
◆ 영화, 애니메이션... 중국 게임은 IP로 진화 중이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사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의외로 회사의 규모가 꽤 커 보였다. 하긴 게임의 퀄리티만 보면 <공무전명성>은 앞서 언급한 <코믹X배틀>과는 비교가 안 되게 좋았다. 짝퉁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잘 만들었다. (그런데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은, 내 '짝퉁 TUMI 가방'과 '짝퉁 폴스미스 지갑'도 퀄리티만 따지면 정품과 별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서 더 찾아보니 개발사의 주요 주주가 의외로 영화사인걸 알게 됐다. 그것도 'H. Brothers'라는 중국 영화 업계에서 알아주는 큰 회사였다. 그렇다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영화 장면이 최소한 불법 도용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소개한 지인의 플레이 후기에 나는 짝퉁일 가능성이 크다고 댓글로 적었는데, 아무래도 이를 철회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따지도 보면 요즘 나랑 친하게 지내는 중국의 Y사는 하나의 IP로 게임과 영화를 동시에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도조차 어려운 호연지기다. IP가 게임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협업 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 한국은 아직 IP와 썸만 타는 중
중국만 그러냐고? 아니다.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도 비슷한 시도가 있다.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나와 관련 있기 때문에 안다. 요즘 들어 모바일게임 제작에 다양한 형태로 IP 협업이 이뤄지는 걸 확인하는 중이다. 이건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상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가치를 지닌 IP들이 모여 거대한 시너지를 내거나, 더 강한 파괴력을 지닌 콘텐츠로 재생산되는 것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협업이다.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의 저변과 외연 확대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이 역할을 하겠지만,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두는 것은 역시 게임이다. 그게 게임의 강점이 아닐까?
중국 시장은 이를 일찍이 이해하고 IP 중심으로 게임 산업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조금 늦었지만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흥미로운 시도가 앞으로 더 많이 생기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