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의 인기는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
때는 바야흐로 한국 연예인들의 전성시대이다. 특히 중국에서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른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대박 드라마의 제작사보다는 연예인 자체의 인기가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듯 하다.
안타깝게도 과거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안재욱, 배용준, 권상우, 이영애 등은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혜의 폭이 좁았다. 무엇이든 너무 빠른 것도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비교적 최근에 인기를 끈 <상속자들>의 이민호,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 쌍끌이로 히트를 칠 때 각각 한 해 중국 매출이 200억을 초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태양의 후예>로 대박을 터뜨린 송중기는 저 둘을 합한 것 이상의 매출을 혼자서 낼 전망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늦게 성공할수록 거둬들이는 매출도 함께 오른다. 일 년 늦게 비슷한 대박을 터뜨리면 두 배의 매출을 올린다. '황의 법칙'이 아닌 '김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이 정도로 시장이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송중기는 중국의 모든 영화, 드라마, 광고의 섭외 1순위다. 출연료는 언리미티드가 됐다. 심지어 나에게도 백지수표를 줄 테니 섭외해 달라는 광고청탁이 들어왔을 정도이다. (꽌시를 동원해서 어렵게 소속사와 연락이 닿았으나 거절당했다. 이미 동종업계의 다른 광고계약이 완료됐단다.)
# 런닝맨 그리고 중국
내가 근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은 사실 따로 있다. 이광수다. 그는 인기 예능 <런닝맨>의 고정출연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이전에는 모델 출신의 연기자 지망생으로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작은 역할을 하나 맡은 게 전부일 정도로 특별한 이력이 없었다. 오로지 <런닝맨>을 통해서 스타가 된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것도 한국에서가 아닌 해외에서 말이다.
사실 <런닝맨>은 한국에서의 시청률은 주말 예능치곤 낮은 편인데, 뜻밖에 중국어권과 동남아, 아랍까지 해외에서 폭넓은 인기를 얻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제작 중이다. 제작지원도 해외에서 워낙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섭외는 넘쳐난다고 한다.
특히 <런닝맨>은 중국에서 놀라운 인기를 얻고 있는데, 고정 출연진 모두가 상당한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심지어 멤버 중 비교적 인기가 낮은 편으로 여겨지는 지석진이 작년에 새로 들어간 소속사(FNC)를 나와 별도 독립을 할 정도로 중국에서의 인기가 상당하다(심지어 그는 중국에서 중국어 앨범도 냈을 정도이다.)
저장위성TV에서는 이 <런닝맨>의 판권을 공식 구입해서 '중국판 런닝맨' <달려라 형제>(중국명, 奔跑吧兄弟)를 제작했고 이후 같은 시간대 1위를 유지 중이다.
# 중국에는 없는 캐릭터, 이광수
최근 MCN 관계자, 방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이구동성으로 <런닝맨>은 중국판보다 한국판이 더 재밌다고 한다. 일반인 시청자들도 그렇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로 이광수라는 캐릭터의 존재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광수라는 캐릭터는 꽤 입체적인데 중국에서 예능을 하는 연예인 중에 그런 캐릭터가 없다는 설명이다.
가령 '잘생긴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웃긴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바보' 등의 캐릭터가 있다면 중국판 <런닝맨>에서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캐릭터가 부여되는 편이다. 그런데 한국서는 각각의 출연자가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캐릭터를 가진 입체성을 보여주는 데다 이런 입체성 덕분에 반전의 묘미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이 중에서 이광수의 캐릭터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이다.
예를 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가진 김종국은 주로 힘 센 상남자이면서 여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부드러움의 양면성만을 갖췄다면, 이광수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늘 새로운 변신이 가능한 카멜레온 같은 캐릭터라는 점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차별점이라는 얘기가 주된 골자였다.
키 크고, 잘생기고, 유머러스하고, 어떤 때는 바보 같고, 어떤 때는 영리해 보이고, 어떤 때는 가볍고, 어떤 때는 진중한 고정되지 않은 입체성을 갖춘 그의 존재에 대해 다들 극찬을 한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았는데 연기에서도 그런 느낌이 확실히 보인다.
@런닝맨, SBS
# 중국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캐릭터의 변주
최근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하나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에 많이 몰두하는 편이다. '미친 사람', '돌+아이', '상남자', '능력자' 등등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잡고 이후에는 하나의 고정된 포맷으로도 시청률을 높이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하나의 고정된 캐릭터보다는 다양한 반전이 있는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인기라고 하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나름 한중 예능의 선호도가 다른 셈이다. 중국 방송용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 혹은 MCN도 그런 맥락에서 캐릭터를 잡는데 한 번 연구해 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한국 드라마 작가들의 여심을 움직이는 대본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남자 배우들의 달달한 연기는 중국서 쫓아가기 힘든 영역이라는 얘길 들었다. 중국 배우들은 비장미를 표현하는 데 특화됐다고 한다. 하긴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드라마의 배경은 '무협'과 '항일운동'이 주류였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장미가 크게 요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배우의 표현력과 소재의 다양성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차별적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일반인들은 송중기라는 배우에 열광하지만, 관계자들은 김은숙 작가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